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프로야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기대주를 선택하는 2014년 신인 1차 지명이 오는 7월 1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주말리그와 각종 전국대회를 통해 옥석을 가린 각 구단은, 이제 고르고 고른 옥 가운데 좀 더 밝게 오랫동안 빛을 발할 진옥(眞玉)을 가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올해의 1차 지명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먼저 신생팀 NC와 KT를 제외한 기존 8개 구단이 각자의 연고지에서 선택한 1차 지명 선수를 1일에 한국야구위원회(KBO)를 통해 발표한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8일에는 나머지 선수들을 대상으로 NC와 KT가 연고지에 관계없이 1차 지명 선수를 선택해 발표한다.
제주고의 초고층좌완 임지섭. 큰 체구에 강한 힘과 순발력까지 겸비한, 장래성이 돋보이는 투수다.
서울지역 : 가장 관심을 끄는 지역은 3개 팀이 몰려 있는 서울권이다. 당초 서울권의 1차 지명 방식을 두고 추첨제부터 자유경쟁까지 다양한 방안이 거론됐지만, 과열 경쟁을 막고 상생을 도모하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성적 역순 방식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이에 올해는 LG - 넥센 - 두산 순서로 지명권을 행사한 뒤, 내년에는 넥센 - 두산 - LG, 그 다음해는 두산 - LG - 넥센 순으로 지명하게 된다.
복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권에서는 제주고 좌완 임지섭, 서울고 우완 배재환, 덕수고 유격수 임병욱, 덕수고 투수 한주성, 성남고 외야수 배병옥 중에서 지명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중 좌완 임지섭은 앞서 신생 KT의 우선지명 가능성도 거론된 바 있는 기대주. 190cm의 고층빌딩에서 왼손으로 내리꽂는 140km/h 후반대 빠른 볼이 위력적이다. 단지 덩치만 큰 게 아니라 순발력과 밸런스가 좋은 편이라 프로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다. 지난 9일 열린 친정팀 용마고와의 경기에서는 8타자 연속 삼진을 포함해 6이닝 동안 노히트 12K의 삼진쇼를 펼치기도 했다.
덕수고 에이스 한주성. 140km/h 중반대 빠른 볼과 도루코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고교 타자들을 요리한다. 승부 근성과 투쟁심이 대단하다.
서울고 배재환도 여전히 1차 지명 후보 중 하나다. 비록 올 시즌 1.1이닝 4사구 7개(평균자책 27.00)로 참혹하게 무너지긴 했지만, 기본적인 신체 조건과 잠재력만큼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지역에 ‘초고교급’으로 분류할 만한 투수 유망주가 부족하다는 것도 배재환에 미련이 남는 이유. 일단 이번 주말에 열리는 서울권 주말리그 경기에 오랜만의 실전 등판이자 1차지명 전 마지막 쇼케이스가 예정된 상태다. 그 외 덕수고를 황금사자기 우승으로 이끈 한주성도 서울권 투수 중 상위권으로 분류된다. 체격조건과 빠른 볼 구속이 약간 아쉽지만, 대신 날카로운 슬라이더와 경기 운영 능력, 투쟁심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주성의 슬라이더는 고교 타자들은 제대로 맞히지도 못할 정도로 위력이 있다.
야수로는 덕수고 임병욱과 성남고 배병옥이 눈길을 끈다. 둘 다 5-툴 플레이어로 분류해도 무방할 만큼 다재다능한 선수들. 임병욱은 유격수로는 큰 편인 182cm의 장신에 빠른 발과 정확성, 강한 어깨와 파워를 고루 갖췄다. 수비력에 대해선 스카우트마다 평가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프로에서 외야수나 코너 내야수로 전향해 수비 부담을 덜어주면 대형 타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은다. 전반기 주말리그에서 타율 .571에 홈런 3방, 후반기 주말리그에서 .444에 도루 5개를 기록한 배병옥도 장래가 촉망되는 기대주. 프로에서 턱돌이과 얼굴형을 지닌 선수들이 야구를 잘한다는 사실은 이미 홍성흔 - 조성환이 입증했다.
덕수고 유격수 임병욱. 정확성과 스피드, 힘을 겸비한 미래의 대형 타자감으로 꼽힌다.
성남고의 간판타자 배병옥. 힘과 빠른 발, 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한다. 요즘 고교야구에서 이만큼 다재다능한 외야수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서울권의 3팀은 일단은 투수 쪽에 초점을 맞춰놓고 1차 지명에 임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투수 쪽에서 확실한 카드를 뽑기 어렵다는 판단이 설 경우, 방향을 바꿔 고교 야수쪽을 선택하는 팀이 나올 수도 있다. 특히 올해 서울권에는 임지섭 외에는 대어급으로 분류될 만한 투수 유망주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상위 라운드에서 야수의 이름이 일찌감치 호명되더라도 의외의 결과만은 아니다. 현재 세 구단 모두 최종 선택을 앞두고 장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하대 잠수함 박민호. 지난해에는 낮은 팔각도에서 145km/h를 넘나드는 빠른 볼을 마음껏 뿌렸다.
인천 - 경기지역 : 인천과 경기권은 확실하게 ‘이거다’하는 선수는 없는 상황. 대학 잠수함 박민호와 고교 우완 이승진, 그리고 동산고 이건욱 정도가 대상이다. 이중 지난해 인하대를 하계리그 우승으로 이끈 강속구 언더핸드 투수 박민호는 올해 들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연초에 스피드업을 위해 팔각도를 사이드암에 가깝게 들어 올렸는데, 이게 구속과 컨트롤에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최근 하계리그 예선에서는 강호 동국대를 상대로 2.1이닝 무실점으로 호투(최고 140km/h)하며 조금은 회복세를 보였다.
대안으로는 야탑고 우완 이승진이 있다. 겨울부터 가벼운 어깨 부상으로 많은 이닝을 던지지는 못했지만, 올해 현재까지 7경기에 등판해 13.2이닝 동안 자책점 ‘0’으로 좋은 투구내용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황금사자기 마지막 경기에서 140km/h 중반대 빠른 볼을 뿌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고, 최근 주말리그 광역권에서는 2경기에서 4.1이닝을 던지는 동안 삼진을 10개나 잡아내는 괴력투를 펼쳤다. 지난해까지 낮은 지명 순번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잠재력 위주로 1라운드 지명자를 선택해온 SK. 올해는 연고지 선수들을 대상으로 예년보다 조금은 선택의 폭이 넓어진 가운데, SK가 즉시전력감과 장래성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가 자못 흥미롭다.
야탑고 우완 이승진. 연초에는 경기 출전이 드물다가 몸 상태가 회복된 최근 들어 빠른 볼을 뿌리며 건재를 알렸다.
대전 - 충청권 : ‘유’일한 ‘희’망을 ‘운’ 나쁘게 놓쳤다. 매년 최상위권 유망주가 쏟아져 나온 충청권 고교에 올해는 이렇다할 대어급이 없는 상황에서, 신생팀 KT가 우선지명으로 북일고 유희운을 데려가며 한화는 신인 지명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1차 지명은 매년마다 이런 피해자를 양산한다. 스카우트 능력이나 구단 지원에 관계없이, 그해 그 지역에 대어급이 없으면 손해를 보는 복불복 게임이다(역사적으로 한화는 삼성과 더불어 1차지명으로 가장 많은 손해를 본 구단에 속한다).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후반기 주말리그 들어 충청권의 두 투수, 황영국과 안상빈이 나란히 호투를 펼치고 있다는 점.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청주고 좌완투수 황영국이다. 팔꿈치 부상으로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좀처럼 등판 기회를 잡지 못하다, 후기 주말리그부터 본격적으로 마운드에 올라 좋은 피칭을 이어가는 중이다. 광역권 5경기에서 18.1이닝 동안 평균자책 2.00에 탈삼진 20개를 잡아낼 동안 4사구는 6개만을 허용했다. 185cm의 큰 키에 130km/h 후반대로 형성되는 빠른 볼과 슬라이더를 구사하며, 아직까지 보여준 건 많지 않지만 스카우트들 사이에서는 장래성 있는 선수라는 평을 듣는다.
청주고 좌완 황영국. 지난해 팔꿈치 부상 후유증으로 전반기에는 많은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다. 후반기 들어 호투 퍼레이드로 충청권의 기대주로 조금씩 부각되는 중이다.
지난해부터 강속구 사이드암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전반기 주말리그에서 7이닝 동안 볼넷 16개(몸맞는볼 8개)를 내주며 무너진 세광고 사이드암 안상빈도 최근에는 안정을 찾는 모습. 광역권 3경기에서 16이닝 동안 5피안타 7볼넷 20탈삼진 1자책점으로 평균자책 0.56을 기록하며 전반기때와는 전혀 다른 투구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모 스카우트 관계자는 “후반기 들어 빠른 볼 구속을 떨어뜨리고 변화구 위주의 피칭으로 제구를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잠수함 투구폼으로 140km/h대 위협적인 공을 뿌리는 투수였다.
한화 정영기 스카우트 팀장은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는 자세다. 떠난 배에 연연하고 좋지 않은 상황을 마냥 한탄하기보다는, 있는 선수들 중에서 보다 잠재력 있는 선수를 찾기 위해 스카우트 팀 전체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중이다. 황영국과 안상빈 모두 최근 들어 급속도로 기량이 올라오는 중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운 상황. 이에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이번 주말에 열리는 지명 전날 주말리그 경기까지 전부 체크한 뒤 신중하게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한화가 마른 수건을 짜서 금가루를 쏟아내는 기적을 연출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