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자기를 모르니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주인공은 누구인가?(6)/ 경봉선사 이야기
경봉은 서신 뿐만이 아니라 직접 선지식을 찾아 자신의 경계를 점검 받는데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당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추앙을 받았던 만공 화상이 서신을 통한 답변을 해오지 않자, 하루는 직접 선학원으로 찾아가 친견을 한 후 서신답변 주지 않은 연유를 진지하게 물었다.
이에 만공 화상은, “그 막중한 일을 어찌 서신으로 답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경봉이 그렇다면 지금 말씀을 해달라고 청하자 만공은, “스님의 그 경지를 잘 깨달아 살피시오[覺察].”라고 답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봉은 화상의 팔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힘주어 눌렀다. 그러자 만공은 경봉을 바라보며 빙그레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개안의 경지를 인정하는 인가의 의미였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
경봉은 세수로는 6년이 아래이지만 자신보다 6년 먼저 오도를 이룬 전강과도 법형제의 연을 맺으며 두터운 교분을 가졌다. 두 개안종사의 만남은 저 중국 당나라의 남전과 그의 스승 마조와의 거량 장면과 흡사해 흥미롭다.
제자 남전(南泉)을 맞은 마조(馬祖)는 대뜸 큰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는 “들어가도 때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때리리라.” 고 하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전이 선뜻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갔고, 이에 마조가 남전을 주장자로 내리치니 남전이 태연히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때리지 못하십니다.”라고 하니 비로소 마조가 주장자를 거두어 등에 메고는 때리기를 멈췄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법거량처럼 경봉을 만난 전강도 땅에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는 “들어가도, 들어가지 않아도 때리리라.”고 했던 것이다. 이에 경봉은 부채를 펴 그 일원상(一圓相)을 지워 물리치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이 일은 있은 후 두 사람은 법결의 형제를 맺었고, 이후 평생 동안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하며 돕는 수행 도반이 되었다.
경봉은 80이 넘어서도 수좌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용맹정진을 하기도 했다. 특히 화두가 들리지 않아 고민하는 수행자가 찾아 올 때면 여러 가지 말로 무섭게 경책과 격려를 했다.
“쇠가 아무리 굳어도 열이 3,000도가 되면 녹는다. 죽기를 각오하고 주인공에게 맹세를 하면서 공부를 해도 될 듯 말 듯한데 조금만 고통스러워도 못 견뎌하니 어림도 없는 노릇이다. 졸음이 일어나면 허벅지를 꽉 꼬집어 비틀어서 잠을 쫓아 버리고, 망상이 일어나면 `네 이놈, 네 놈 말만 듣고 다니다가 내 신세가 요 모양 요 꼴이 되었으니 내 말 좀 들어봐라. 죽나 사나 어디 한 번 해보자.' 라고 용맹심을 내어야 한다.”
때때로 후학들에게 피골이 상접해 있는 석가모니의 고행상을 보여 주면서 정진을 재촉하기도 했다. 확철대오를 한 이후 이전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한 터라 경봉은 많은 일화와 이야기를 남겼다.
확철대오를 한 다음 날의 일이다. 경봉은 예정대로 화엄 산림법회에서 설법을 했다. 그러나 그의 설법은 이미 전 날의 설법과는 내용이 다른 것이었다. 경을 새기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음은 물론, 문자에 매달려 글귀의 뜻을 파악하고 전하는 것에서 벗어나 길가에 서 있는 나무에서도 흐르는 냇물, 구르는 돌덩이에서도 화엄의 도리를 거침없이 펼쳐 나갔다.
“일이삼사오륙칠 대방광불화엄경(一二三四五六七 大方廣佛華嚴經).” 개안(開眼)의 경지를 얻은 경봉의 눈에는 법문을 듣는 사람들의 두 눈과 두 개의 콧구멍, 두 귀와 입을 합친 일곱 개의 문이 곧 대방광불화엄경이었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 자체가 화엄법문이었다.
거침없는 사자후, 천진난만의 동심으로 돌아가 있는 그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법문은 격외(格外), 걸림 없음[無碍], 직설(直說)로 표현될 수 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밤잠 안 자고 고생한 끝에 깨친 고승이라면 미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불가의 말처럼 경봉 역시 `깨친 뒤의 나풀거리는 기쁨의 바람'에 휩싸여 있었던 것.
그러나 차츰 사람들로부터 `미친 사람' 이라는 소문이 나돌게 되자 그는 중생을 수준에 맞춰 정법으로 제도하기 위해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법문보다는 쉽고도 자상한 법문이 제격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참으로 주체하기 어려운 해탈의 기쁨을 내면 속으로 감추는 결단을 내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