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단지 사라질 뿐이다-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
가장 남자다운 스포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복싱이라고 대답할 것
이다. 일정한 링 안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하여 끊임없이 주먹을 내밀고, 또 상대의 날아오
는 주먹을 피하기 위하여 몸을 움직여야 하는 힘들고도 힘든 스포츠, 복싱. 그래도 굳이 복
싱을 하려고 하는 젊은 선수들이 많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1등만이
존재한다는 진리 앞에 오늘도 수많은 선수들이 샌드백을 두드리며 최강자가 되기 위해 비지
땀을 흘리고 있다.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린 선수만이 챔피언의 영광된 자리를 지킬 수 있
는 경기가 바로 권투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복싱 선수들이 정상의 자리인 챔피언이 되었다
가 쓸쓸히 쓰러져 가는 모습을 많이 보아 왔다. 그런 선수들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영원
한 맞수가 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헤비급 프로 복싱을 양분하며 전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붙잡은 무
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 당시 복싱을 좋아하던 팬들은 이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귀를 기
울였다. 그만큼 두 선수는 세계인들의 주목을 끌었고, 또 누구보다도 열심히 권투를 했다.
두 선수 모두 맨주먹으로 세계를 제패했을 뿐 아니라 공허 누구보다도 강한 주먹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 지구촌의 복싱계를 주름잡았던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복싱 인생은 끊
임 없는 화제를 몰고 다니며 팬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들의 복싱 인생을 살
펴보면 약간은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지만 같은 복싱 선수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
기에 재미있는 일화도 많이 있다.
무하마드 알리.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겠다.'
세계 권투계의 명언처럼 언제나 따라 다니는 이 말은 알리가 경기장에 나가면서 기자들에
게 한 말이었다. 무하마드 알리는 복싱을 하면서 항상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그래서 사람
들은 알리를 두고 '떠버리'라는 별명가지 지어 주었다. 맨주먹 하나로 세계를 평정한 사나이
무하마드 알리...
복싱의 제왕. 아직까지도 그는 헤비급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물론 오래 전에 은퇴했
지만 그를 아끼는 팬들은 아직도 그가 경기하는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알리는
영원한 헤비급의 챔피언이라고 말한다. 경쾌한 발놀림. 번개처럼 빠른 펀치, 예리한 눈...그
앞에서 수많은 헤비급 선수들은 기가 죽었고 패배자의 명예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알
리의 앞에는 항상 승리라는 말만이 남아 있었다. 무하마드 알리가 이 세상에 권투 선수로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올림픽이 열렸을 때의 일이다. 이미 천
재적인 복싱 재질을 타고난 알리는 미국의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승승장구하며 마침내 국
가 대표가 되었다. 복싱 선수로서의 명함을 미국 국민들에게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로마 올
림픽에서도 알리는 여유 있게 결승전에 올랐다. 질풍처럼 뻗는 알리의 강펀치에 모든 선수
들이 무릎을 꿇었다. 결승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알리는 올림픽에서 라이트헤비급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 때부터 세계가 알리
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훈련만이 살길임을 안 알리는 결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침내 2년 뒤 '늙은 곰'이라 불리는 소니 리스튼을 7회에 통쾌하게 KO로
눕히고 마침내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무하마드 알리의 세계가 열린 것이었다. 그러나 승자
의 길은 역시 험하고 어려웠다. 무적이라 일컬어지던 알리도 새롭게 등장하는 강자들 앞에
서는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알리는 챔피언에 있으면서 벨트를 빼앗겼다
가 다시 뺏는 과정을 네 번이나 반복했다. 그 가운데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오래 기
억되고 있는 경기가 바로 권투의 맞수인 조지 포먼과 1974년 경기를 가졌을 때일 것이다.
조지 포먼은 헤비급의 가장 촉망받는 해머 펀치의 소유자였고, 알리는 도전자로서 강인한
승부사였다. 그러나 결과는 알리의 KO 승. 알리의 노련미가 포먼의 젊음을 이기고 만 것이
다. 알리는 늘 권투를 하면서도 한 가지의 문제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것은 흑인가 백인
의 인종 차별 문제였다. 자신 스스로가 흑인이었기에 백인들에게서 받는 고통은 일반인들의
이상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챔피언이 된 후에도 흑인으로서의 설움은 여전했다 자연 백인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알리는 흑인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가장 훌륭
한 권투 예술가로 추앙을 받았지만 백인들에게는 언제나 웃음거리가 되었다. 알리는 자신이
권투를 해서 번 돈으로 못하는 흑인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권투를 그만두고 파킨슨씨병에
걸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불굴의 투지로 딛고 일어서 지금은 세계의 스포츠 대사로 열
심히 활동하고 있다.
조지 포먼.
1993년 6월 8일. 미국의 어느 복싱 경기장.
거구의 사나이들이 링 위에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심히 펀치를 주고받았다. 한 사나이
는 나이가 젊어 몸을 빨리빨리 움직이며 공격과 수비를 적절히 취하는 반면 다른 한 선수는
거구의 몸집으로 마치 곰이 움직이듯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버지와 아들이
권투 시합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움직임이 느린 거구의 사나이는 그리
지친 기색도 없이 열심히 손을 내밀어 상대방에게 펀치를 먹였다. 그러나 주먹에는 이미 힘
이 빠져 있었다. 거구의 사나이가 주먹을 맞고 휘청거릴 때마다 관중들은 안타까운 듯한 신
음소리를 밖에로 토해냈다. 거구의 사나이는 열심히 상대 선수를 공격하고 끌어안았다. 얼굴
에는 굵은 땀방울이 비오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 거구의 사나이는 한때 주먹 하나로 세계를 평정했던 조지 포먼이었다. 권투 선수로서
는 이미 환갑이 지났다고 할만큼 포먼의 나이는 많았다. 이에 비해 포먼과 싸우고 있는 선
수는 포먼 보다 자그마치 스무 살이나 어린 선수.
경기를 지켜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저 나이에 무슨 권투냐고 했지만 포먼은 굴하지 않고
열심히 싸웠다. 마흔 네 살의 조지 포먼, 그리고 그물 네 살의 토미 모리슨. 이 경기는 챔피
언 벨트가 걸린 아주 중요한 경기였다. 당연한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이 경기에서 포먼은 판
정으로 패하게 되면서 영원히 링을 떠났다. 다시 한번 은퇴를 공식 선언한 것이었다. 알리의
가장 강력한 맞수였으나 경기를 주선하는 사람들이 알리만을 키워 포먼은 그리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와 한번쯤 경기를 치러 본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포먼의 강펀
치에 혀를 내둘렀다. 어쩌면 알리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이 권투를 한 것이 포먼에게는
불행이었는지 모른다.
1971년 3월 '세기의 철권'이라고 불리던 조 프레이저 선수를 2회에 KO시키고 처음으로
챔피언 벨트를 목에 건 조지 포먼. 1974년 알리에게 패하고 1976년 다시 챔피언 벨트를 찾
았으나 다시 다음해에 패배를 기록하고는 쓸쓸하게 링을 떠났다. 그런 조지 포먼이 40이
다된 나이에 다시 권투를 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하고 나섰다. 그리고는 거짓말 같은 기록
행진을 계속했다. 재기를 준비하면서 18명의 선수들과 싸워 모조리 KO 승을 거두었던 것
이다. 급기야 포먼은 당대 최고의 헤비급 복서로 아려진 타이슨에게 도전장을 던지기도 했
다. 성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조지 포먼은 많은 나이에도 불구, 후배들의 귀감이 될 수 있는
권투 인생을 살았다. 지금은 휴스턴이라는 곳에서 전도사로 활동하며 불우 청소년들을 위
해 건물을 짓고 희망을 주는 등대가 되어 그의 찬란했던 권투 인생을 회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