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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l
한강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생명줄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한강의 존재는 너무나 일상적인 우리 삶의 일부분이어서 새롭지도 않은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공기의 존재를 새롭게 느끼며 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한강을 바라보며 우리는 저마다 무수한 상념에 젖곤 합니다. 저 흐르는 강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사회처럼 변화에 적응하며 살고 죽고 다시 태어납니다. 쉬지 않고 흐르면서, 어디론가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그 지점을 알 수 없고, 또한 늘 어디론가를 향해 흘러가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리네 삶처럼 말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강은 우리네 삶을 싣고 흘러가는 시간을 비유하는 인류의 오랜 메타포였습니다.
우리가 그림과 문자를 통해 기록하는 시간의 이전부터 한강은 그 자리에서 언제나 흐르고 있습니다. 2007년에서 지금 현재 2009년이라는 시간의 한강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거기에 흐르는 강물은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결코 단 한 방울도 같은 강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현재의 강물은 언제나 새로운 강물이고 과거의 강물은 이미 흘러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으로서 끊임없이 새롭고 동시에 끊임없이 무의 존재로 가라앉는 현재시점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전체로서의 시간이 의식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의 반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지평은 그 주관적인 상관개념에 의해서만, 즉 회상과 직관, 기대로서만 회귀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래서 시간의 상태를 이렇게 분류한 바 있습니다. 과거에서의 현재성, 현재에서의 현재성, 미래로부터의 현재성.
레비나스에 의하면, 현재는 자기로부터의 출발을 실행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소멸해 버리는 운명을 지닙니다. 만일 현재가 지속된다면 그것은 자신보다 선행하는 어떤 것에 의해 존재를 유지한다는 의미가 되므로 순전히 '자신'으로부터 출발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레비나스는 (현재의) 소멸이 (주체가 현존하는) 시작의 근본적인 형식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순간으로서의 현재는 과거-현재-미래와 같은 선형적인 관계 이전에 주체가 자기 자신에 현존하는 순간이며, 따라서 현재는 주체의 실현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나는 현재와 결합함으로써 존재자가 되는 것이라고 할까요.
사진은 시간을 쪼개서 찰나와 같은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여기에 기록된 한강은 흐르는 강물 그 자체라기보다 우리의 관념에 투영되었던 한 장의 이미지, 그 역동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강물의 유속을 뚫고 들어가 강의 줄기와 뿌리, 그리고 그 찬란한 무늬를 일순간에 포획하는 힘있는 그물입니다. 한 송이 꽃이 피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사람의 눈에게 그것은 일종의 마법의 채집술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는 촬영할 수도, 볼 수도 없는 그 시간의 기록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강을 통해 바라본 우리네 삶은 10대 20대의 치열한 혼돈스러움처럼 소용돌이치는 것이면서 아기 숨소리처럼 잔잔한 것, 그리고 노년의 순응하는 부드러움처럼 희노애락이 있는 복합적이고도 역동적인 것입니다. 끊임없는 우리의 삶도 이처럼 소멸과 생성의 변화에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강에서 인과나 연쇄를 벗어나 질서정연하지도 조화롭지도 않은 세계를 봅니다. 무상한 흐름들을 다만 병렬적으로 보여주고 그 사소하고 덧없음의 유정함, 수많은 인상과 연상들의 변화들을 바라보도록 한강은 인도해 줍니다. 한강은 언제나 지금, 여기는 새롭고 동시에 끊임없이 무로 가라앉고 있는 생멸의 지대이며, 나 자신을 향해 출발하여 나를 만나고 그리하여 나란 존재를 확인하는 진정한 홀로서기의 무대입니다.
강 앞에서 우리는 모두 혼자가 됩니다. 우리를 여기 세워둔 채 무심히 흘러가는 것, 사라지는 것, 저물어 가는 것, 돌아오지 않는 것, 돌이킬 수 없는 것, 그 무상하고 범속한 것들 앞에서 우리는 외따로 떨어진 존재가 되어 시시각각 현재가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야말로 언제나 바로 지금, 여기의 나를 일깨우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코 무의미할 수만은 없는 우리의 인생, 우리네 삶, 그리고 우리의 시간들에 대한 직관들이 여기에서 찾아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통과하여 흘러가는 시간을 보고, 과거의 회상과 현재의 직관과 미래에의 기대로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우리는 마침내 우리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은종 (LEE EUN JONG / 李垠宗)
학력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산업디자인전공 사진디자인세부전공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사진디자인 전공
전시경력
개인전 2010 The mu:l <갤러리K 청년작가 기획전>- 갤러리K 2007 ONE AND THE SAME - 관훈갤러리 2003 形 그리고 다른 形 - 한원 뮤지움
단체전 2005 POSTPHOTO -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2003 POSTPHOTO -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2002 STILL LIFE - 고토갤러리
강의 2007-09 경기대학교 시각디자인 - 사진의 이해 - 2002-03 미래산업과학고등학교 디자인과 - 사진, 컴퓨터 -
A.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 1463-10 호서대학교 벤처대학원 (예술의전당 맞은편) B1 T. 02. 2055. 1410 H. www.galleryk.org M. master@gallery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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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관심히 지나치든 한강의 소중홤을 다시금 소중하게
생각하게 해 주시는군요
귀한 정보 감사히 섭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