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이 위로 갔던 때 외 2편
송진권
할머니 따라 소쿠리 쓰고
텃밭에 갔을 때
똥 마려워
밭고랑에 땅 파고 똥 눌 때
괭이밥이며 개밥두더지
노린제 노낙각시 불개미 새끼지네 들이
다 내 밑을 봤다고 중뿔나게 소문을 내고 다녔을 거고
똥이 시커멓더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을 거고
칡넝쿨 번지듯 삼동네에 다 소문은 났을 거고
똥 위에 소문처럼
쇠파리 똥파리 금파리 초파리 말파리 파리란 파리는 다 날아들었을 거고
할머니 뽕잎 따다 밑 닦아주었을 거고
밑이 위로 가게 하고
바라본 할머니가
달이산만큼이나 크기도 했을 고
똥 위에 하얗게 배긴 오디 씨앗들의
훌륭한 매개였던 내 몸이 기특해서
똥도 이쁘게 싸놓았네 내 새끼, 하셨을 거고
밭둑의 뽕나무도 이파리 뒤채며 아유 내새끼들, 했을 것인데
오늘 어린 딸의 밑을 닦아주며
밑이 위로 갔던 세상을 생각해보고
참외씨 배긴 똥이 예쁘다는 생각도 해보고
참외씨와 오디씨가
낄낄대며 깔깔대며
우리랑 어떻게 어울려 살았는지 생각도 해보네
소나기 지나간 여름날
길마다 미꾸라지 올챙이 박실박실 기어나왔지
뻐끔뻐끔 입을 벌린 채 튀어나왔지
소나기에 섞여 내려온 피라미 붕어 새끼
길가 웅덩이에서 놀았지
험상궂은 산은 안개를 쓰고
서리서리 열두발 늘인 용을 놀게 했지
해와 달이 한 하늘에서 놀고
명암이 음양이 한자리에서
지지고 볶고 놀았지
사내와 계집이
사람과 짐승이 한 하늘에서 놀았지
애초에 구분된 것도 없고
사람이고 짐승이고 다 한 말을 하고
하늘이고 땅이고 따악 맞붙어서
우물이며 산골짝 도랑마다 용이 오르고
남에서는 주작이 북에서는 현무가 놀았지
꼭 오늘만 같았지
길바닥 웅덩이마다 물고기가 뛰어오르고
산천초목 다 눈을 번히 뜨고
굼실굼실 승천하는 용을 보았지
무지갯빛 꼬리의 봉황이 날아다니는 걸 보았지
음덕
나야 아부지 덕 보고 살지
혼자 사는 늙은이들 불쌍하다고
우리 소 몰고 가서
논 갈아주고 밭 갈아주고
저녁밥 한끼 얻어먹고
막걸리 한잔 먹으면 그만이던 분
동네 사람들 다 손가락질하며
사람이 미련하니께 저렇게 기운만 시어서
품삯두 제대루 못 받구 남의 일만 하구 돌아다닌다고 해두
그냥 웃기만 하던 아부지
제 일도 제대루 못 추면서
남의 일만 직사하게 하러 댕긴다고 엄마가 웬수를 대두
아, 그이덜은 혼자배끼 없는디 워뜨캬
나래두 가서 해야지
오죽하면 서울 사는 윤셍이가 부모님 모셔 간댔어두
그 부모라는 분들이 안 가구
우린 여기서 용재(우리 아부지)랑 살란다고 해서
들락날락 그 집 일 다 봐주던 아부지
그이들 돌아가셨을 때두 궂은일 다 해주던 양반
그이들 땅 부치다가 아부지한테 말도 안 하고 윤셍이가
땅을 팔아버려서
거름 내놓은 게 다 헛일이 되었어두 말 한마디 안하던 아부지
그 덕 보구 살지
우리 수양고모나 다른 이들 모두 나만 보면
느 아부지 심덕을 봐서래두 잘 살겨
늘 말씀하셨지만
나야 그 덕으로 여적 잘 사는 거 같지
― 송진권 시집, 『원근법 배우는 시간』 (창비 / 2022)
송진권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2004년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자라는 돌』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동시집 『새 그리는 방법』 『어떤 것』이 있다. 천상병시문학상과 고양행주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