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사회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김아무개와 버디는 사회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평범한 술집에 마주 앉았다.
첫 번째 안주로 한치회가 나왔을때 k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나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대답을 했다.
- 그래서?"
그는 약간 당황하는 듯 보였으나, 곧 희미하게 웃으며 내 잔을 채워주었다.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 볼까봐 버디를 만났습니다.
당신이라면 나를 귀찮게 하지 않을꺼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그래서" 라는 말을 들으니.....어째 약간 바보가 된 듯 합니다.
나는 차마 바보가 맞아 라고는 말 할 수 없었다.
- 한치회 옆에 있던 오뎅을 한 개 주워 먹으며(오뎅은 써비스였다)...정말 사회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수많은 넥타이 부대들을 보며 나는 재미있다고 말했다.
저사람들 (얼추 70명쯤 되었다) 대체 뭐가 저리 진지한 걸까.."
"진지한 바보들이죠.."
- "그새 염세주의라도 된거야?...평소 그 진지하고 따뜻한 모습들은 어디로 간거야?"
" 하하 "
세병째 술이 왔을 때 맥빠진 목소리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사실 전 왜 그녀를 사랑했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그녀와 결혼을 생각해 본적도 없습니다. 아이가 있는 여자를 집에서 좋아할리도 없겠지만...
하지만 지금 저의 상태가 너무 이상합니다.
그러니까....제 몸 어딘가가 빠져있는 느낌입니다.
제대로 걸을 수도 없고, 제대로 식사를 할 수 도 없으며, 회사는 꼴도 보기 싫습니다
(그는 3일째 무단결근이다).
어쩌면 이제 서른이 되어서 제가 약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 그에따른 데미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봅니다.
지금도 버디(물론 이렇게 호칭하진 않았다)가 아니라 그녀였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그의 매력은 솔직함이다..)."
그리고 두 번째 안주로 나온 해물파전에 굴을 그가 먹었다. 아마도 오늘 처음 음식을 먹는듯한 모습이었다.
-"k 가 설령 60먹은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해도 그건 별로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해.
지금 이 술집에 70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두 번씩만 이별을 했다고 계산하면 140명의 여자들이 울었을 테고...하지만 다시 140명의 남자들이 그녀들과 다시 사랑을 하는거지.
마치 어릴적 오락실에서 동전을 바꾸는 시스템과 같아..
소모되고....리필하고....동전넣고....플레이 시키고....다시 소모되고.
정말이지 k.
난 사랑이나 이별 따위의 얘기는 관심조차 없어...좀...심하게 지루하고...졸려.
물론 이렇게 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만...k의 가슴아픈 이야기는 타인에겐 그저 그런 에피소드일 뿐이야..
나역시 그렇고..
하지만 회사를 무단결근 한 건 칭찬 받을만 해.
내 얘기가 좀 심한가?"
"......전혀요"
- "그리고 정말 k 가 힘들어 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야? 이별? "
".......이것 저것인 것 같습니다...제 삶도...사랑도..."
사회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나온 사회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슬픈 김 아무개와 약간 술에 취한 버디가 사회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재즈바에 사회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어린 여자가 가져다준 맥주병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빌 위더스가 스피커 속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ain't no sunshine when shes gone
그리고 맥주 한병 씩을 먹었을 때쯤..그 어리석은 사내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랑에 가슴 아픈 서른살의 사내가 삶에 지쳐버린 사내가 모퉁이 술집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는데...
축축히 젖은 맥주병은 마치 봄의 전령처럼 반짝거렸다.
티내지 않기위해 애를 쓸수록 더욱 서뤄워 지는 서른살의 사내 모습은
약간은 아름답다고 할만 했다.
따뜻한 위로의 말이라도 해줄걸 그랬나 라고 후회도 해보게 된다.
그는 약간의 취기를 빌어 흐느끼다..잠이 들 것이다.
다시 아침을 맞을테고,
가까스로 일어나 라면이라도 먹을지 모르겠다.
k를 그토록 가슴아프게 한 그녀가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그녀또한 얼마나 가슴아플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그가 어릴적 꿈꾸었을 서른살의 모습과 지금 스스로의 모습을 비교하며, 얼마나 좌절할지도 생각해 본다
부디 그가 훌훌털고 일어나서 봄 곁으로 가기를 바래보고,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하지 않길 바래본다.
2월 아직은 겨울 속에서
서른살의 사내가 울고 있다.
서른살의 그 사내에게 세상은 조금 가혹해 보인다.
이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