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역사 탐방
일시:2023년 5월 22일 월요일
장소:부용대,구영주역관사,영주제일교회,영주근대역사문화거리,반구정,삼판서고택 등
* 관사골 공원
영주 탐방에서 맨 처음 찾은 곳이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높은 지대에 있다. 관사골은 영주시가 1942년부터 70년대까지 교통 요지로 옛 역장과 역무원들이 거주하던 옛스런 마을이다. 현대적인 모습도 있지만 옛날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관사골 공원은 관사골 마을에 위치해 있어서 근대식 기와지붕과 조촐한 옛마을 풍경이 정겹게 눈에 들어온다.
* 부용대
관사골 공원에 있는 정자다. 조선 명종 때 풍기 군수로 있던 이황이 이곳을 지나다가 경치가 아름다워 부용대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일제감점기에 무궁화를 닮은 부용을 보며 애국심을 지켰다고 한다. 이황 선생님의 족적을 본 것이 참 보람되고 흐뭇한 순간이다.
* 관사골 공원에서 본 영주 시가지
관사골 공원에서 내려다보니 영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좌우 외곽으로는 옛스런 풍경이지만 정면으로는 현대식 발전된 풍경이다.
* 애국충정 55현
관사골 공원에서 아래로 조금 내려가니 애국충정 55현의 영혼을 모신 아담한 건물과 정원이 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선열의 애국심을 간직했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 기념식수 애국충정 55현 정원 아래 끝부분에 현 대통령인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 기념식수가 있다. 파평윤씨 오상문중에서 2022년 4월 7일에 식수했다는 안내 비문도곁에 있다.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솟구쳐 오른다.
* 경임정
관사골 공원 바로 아래에 경임정이라는 기와집이 있어 갔다. 그 건물에 사람은 살지 않고 어느 문중에서 관리하는 듯하다. 뒤뜰에는 딸기나무가 정겨운 풍경으로 자라고 있다.
* 구영주역 관사 7호와 5호 원경
관사골 공원에서 시내로 내려오는 계단에서부터 구영주역 관사 7호와 5호가 보인다.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그 건물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제 그곳으로 내려가서 볼 것이다.
* 관사골 마을센터와 여행자 쉼터
점점 더 아래로 내려오니 관사골 마을 센터와 여행자 쉼터가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인 듯하다.
* 영주 벽화 거리
구영주역사 건물로 가는 길에서 만난 벽화거리다. 영주의 철도 등 역사를 그림으로 담아 전시해둔 소중한 공간이다.
* 구영주역 관사 7호와 5호 근경
마을 속에 들어있는 두 관사가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 일제시대 건물이지만 그 옛날의 영주 철도의 번성기를 대변하고 있다.
* 영주 제일교회
아주 온랜 역사를 간직한 교회다. 1909년에 최초로 건립 되었고, 동란 때 소실 되어 1958년에서야 오늘의 모습이 탄생되었다. 일제감점기, 6.25전쟁 한국근대 산업시기를 거치며 청년계몽 등 좋은 일을 해온 교회다. 영주 시민의 역사가 담긴 소중한 유산이다.
* 풍국 정미소
옛날 시골에서 본 정미소다. 벼나 보리 등 껍질을 벗기는 곳이다. 이 부근에 30여개 정미소가 있었다하니 영주 주변의 풍요로운 영토를 대변하고 있다. 풍국 정미소는 1940년경에 설립된 역사적인 명소다.
* 숭은전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곳이다. 관사골 공원에서도 보였다. 그런데 시간관계로 외경만 보았는데, 근대역사문화거리에도 숭은전 가는 안내 팻말이 있어서 다시 골목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서 외경을 조망했다. 경주 김씨인 나의 조상님이라서 더욱 정겨웠다.
* 영광 이발관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에 있다. 1930년 경에 설립된 이발소다. 유년시절 동네에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이발소가 생각난다. 그 정겨운 가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영주 근대역사 문화거리
경북 영주시 영주동에 있는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는 영주의 근대생활사를 보여주는 역사문화공간이다. 2018년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720호로 지정되었다. 철도 역사와 그 배후에 형성된 철도관사, 정미소, 이발관, 근대한옥, 교회 등 영주 지역의 근대생활사 요소를 간직한 건축물이 집적되어 있다. 관사골에서 광복로 일대의 거리다. 영주의 근대생활사를 보여주는 역사문화공간으로서 보존과 활용 가치가 높은 곳이다. 영주365시장, 옛영주역터 유적비도 가까이 있다. 긴 도로를 따라 걸으며 곳곳 유적을 살펴보는 소중한 탐방이었다.
* 옛 영주역 터
중식을 하고 이동하는 중에 보았다. 근대역사문화거리 주변의 전통시장 입구에 옛영주역터라는 돌비가 세워져 있다. 곁에는 영주역의 역사를 사진으로담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 구성 공원
구성공원은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공원으로 옛산성터에 있다. 영주에는 신라시대부터 부석사, 소수서원, 희방사 등 문화유산이 많다. 구성 산성은 돌로 쌓았고, 성 안에 우물과 군창이 있었던 곳이다. 지대가 높아서 영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가학루란 누각이 있다.
* 가학루
가학루는 구성 공원 정상에 있는 2층 누각이다. 관아의 외문루로 영주초등학교에 있던 것을 1923년 이곳으로 옮겼다. 가학루에 오르니 옛 명사들의 시판이 걸려 있다. 영주의 역사 한 단면을 보며 흐뭇했다.
* 사복재 유적
구성 공원에서 내려오니 산자락에 사복재라는 유적 건물이 있다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영주의 소중한 유적인 듯하다.
* 영주 반구정
반구정은 구성공원 안에 있다. 구성 공원에 온 것도 이곳 반구정을 보기 위함이 크다. 반구정은 1392년에 고려말 괴산군수, 김해부사 등을 지낸 사복재 권정(1353∼1411)이 고려의 멸망 소식을 듣고 고향에 내려와 지은 정자다. 반구정이란 고려를 회복한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안동 임하면 도목촌 북쪽 지어실(현 예안면 기사리)에 세웠으나, 후손들이 1720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평소에는 마루를 개방하지 않고 있지만, 열 수 있는 문을 두어 개방시에 전체가 하나의 공간이 되도록 하였다. 반구정은 전체적으로 18세기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 우리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큰 규모로 잘 보존 된 반구정과 그 주변을 살펴보고 왔다.
* 서천
삼판서 고택으로 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하천이다. 큰 홍수로 아픔을 간직하기도 한 하천인데 장미꽃이 만발하여 터널을 이루며 아름다운 풍경이다. 영주 서편에 있어 서천이라 부르는 것 같다.
* 제민루
구학 공원 삼판서 고택 바로 곁에 있는 2층 누각이다. 구학공원은 시가지 중심 서천둔치 운동코스 4km와 연결되어 있다. 구학 공원은 삼판서고택과 제민루가 있는 역사문화공간에 조성된 도심 속 최적의 운동과 쉼터 공간이다. 제민루는 오늘날의 보건소와 같은 역할을 하던 건물이다. 고려 공민왕 때는 학교였다. 그러다가 허물어진 건물을 조선시대에 복원하여 지방의원으로 사용했다. 태백산과 소백산에서 나오는 한약재를 이 건물에 보관하고 마을 주민들을 치료해주던 제민루는 조선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공립 지방의원인 셈이다.
* 박정희 장군 기념식수
제민루와 삼판서 고택 옆에는 박정희 장군 기념식수가 있다. 1961년 영주 서천의 대홍수로 이곳에 와서 보고 홍수의 상처를 다독여준 뒤 그 다음해 1962년에 식수한 나무다.
* 삼판서 고택
구학공원 안에 제민루와 가까이 있다. 조선 개국 공신인 정도전의 생가로 불리는 이곳은 조선시대 세 명의 판서가 살던 곳이다.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이 살던 집인데, 그는 고려말 형부상서라는 벼슬을 하던 사람이다. 조선시대로 치면 형조판서다. 그후 정운경의 사위 황유정이 공조판서에 오르고, 또한 황유정의 딸의 아들 김담이 조선시대 이조판서에 올랐다. 그로인하여 세 명의 판서를 탄생시킨 뜻깊은 고택이어서 삼판서고택이라 이름 지었다. 정도전은 이곳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말년에는 유배생활을 마치고 여기 내려와서 지냈다. 현재 모습은 2008년 복원된 것이다. 영주 대홍수로 1961년 허물어진 것을 이곳으로 옮겨 복원시켰다. 매우 큰 규모의 저택이다. 문이 닫혀 있어 외경만 조망하고 왔다.
* 영주 석조여래입상
영주 석조여래입상은 남북국 시대 신라의 불상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 제116호 영주석교리석불상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이 불상은 발견 당시 목에는 금이 가고 발목 아래는 땅에 묻혀 불완전한 상태였다. 현재는 보수정비하여 양감이 강조된 발과 유려하게 흘러내린 옷자락 등 생동감 있는 세부묘사를 했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세련된 이목구비를 갖춘 얼굴은 둥글고 우아한 모습이다. 신체는 몸에 꼭 붙은 오른팔이나 쳐진 어깨 등에서 다소 부자연스럽지만,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양감있는 다리에서 생동감이 드러난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옷깃은 굵은 선으로 둥글게 표현하였다. 특히 양 다리에서는 각각 동심타원형의 주름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삼국시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표현기법이다. 동심타원형의 주름이 삼국시대 작품인 장창곡불보다는 형식적이면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보물 제71호)보다는 덜 형식적인 점을 볼 때, 만들어진 시대는 통일신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다소 이완되고 형식화되어 가는 면도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긴장감 넘치고 우아하며 세련된 특징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좀 어눌한 자태인데 이런 훌륭한 역사를 머금고 있다하니 한참을 둘러보며 역사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