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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 지파가 분배받은 땅
수 17:1-13
1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였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버지라 그는 용사였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으므로
2 므낫세의 남은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이니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남자 자손들이며
3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4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그들의 아버지 형제들 중에서 기업을 주므로
5 요단 동쪽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6 므낫세의 여자 자손들이 그의 남자 자손들 중에서 기업을 받은 까닭이었으며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들에게 속하였더라
7 므낫세의 경계는 아셀에서부터 세겜 앞 믹므닷까지이며 그 오른쪽으로 가서 엔답부아 주민의 경계에 이르나니
8 답부아 땅은 므낫세에게 속하였으되 므낫세 경계에 있는 답부아는 에브라임 자손에게 속하였으며
9 또 그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 그 시내 남쪽에 이르나니 므낫세의 성읍 중에 이 성읍들은 에브라임에게 속하였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그 시내 북쪽이요 그 끝은 바다이며
10 남쪽으로는 에브라임에 속하였고 북쪽으로는 므낫세에 속하였고 바다가 그 경계가 되었으며 그들의 땅의 북쪽은 아셀에 이르고 동쪽은 잇사갈에 이르렀으며
11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곧 벧 스안과 그 마을들과 이블르암과 그 마을들과 돌의 주민과 그 마을들이요 또 엔돌 주민과 그 마을들과 다아낙 주민과 그 마을들과 므깃도 주민과 그 마을들 세 언덕 지역이라
12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13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수 17:1-13 / [므낫세 지파가 차지한 땅] 므낫세 지파가 제비를 뽑아 그들 몫으로 차지한 땅은 다음과 같다. 므낫세는 요셉의 맏아들이었다. 마길은 므낫세의 맏아들이고 길르앗의 아버지인데다가 또한 전쟁에 매우 능한 용사였다. 그래서 마길은 길르앗과 바산을 그의 몫으로 차지하였다. 2) 또한 므낫세의 나머지 자손들인 아비에셀 자손과 헬렉 자손과 아스리엘 자손과 세겜 자손과 헤벨 자손과 스미다 자손도 마찬가지로 각각 그 씨족에 따라 땅을 그들 몫으로 분배받았다. 이들 자손의 씨족 할아버지는 모두 다 므낫세의 아들들이고 므낫세 또한 앞서 말한 대로 요셉의 아들이기에 그 씨족에 따라 각각 그들이 대대로 물려줄 몫으로 땅을 분배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자손들이 요셉에게서 퍼져 나간 것을 남자 후손들의 계열로 구분해서 설명한 것이다. 3) [므낫세 지파 중 여성이 차지한 땅] 슬로브핫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의 아버지는 헤벨이고 할아버지는 길르앗이고 또 증조 할아버지는 마길이고 고조 할아버지는 므낫세였다. 므낫세의 4대손인 이 슬로브핫에게는 아들이 하나도 없고 단지 딸들만 있었다.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였다. 4) 하루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엘르아살 제사장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나아와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이미 모세에게 명령하신 일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도 몫으로 차지할 땅을 나누어 주라고 말입니다. 우리 피붙이가 자기들 몫으로 땅을 차지하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몫을 나누어 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이렇게 청을 하자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슬로브핫의 딸들도 그들의 형제들과 함께 그들 몫으로 땅을 나누어 받았다. 5) 이렇게 해서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요단강 건너 동쪽에 있는 길르앗과 바산 땅 외에 더 배당받은 땅은 열 몫이나 되었다. 6) 므낫세의 딸들이 그의 아들들과 함께 땅을 그들 몫으로 분배받았기 때문이다.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나머지 자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7) [므낫세 지파의 경계선]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차지한 땅의 경계선은 아셀에서 시작하여 세겜 동쪽에 있는 믹므닷까지 이어지고 그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죽 내려가 엔답부아 주민들이 살고 있는 땅까지 경계선이 내려간다. 8) 답부아 둘레에 있는 지역은 므낫세 지파 사람들의 소유이지만 이 답부아 성읍 자체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의 소유이다. 9) 또 경계선은 가나 개울 쪽으로 내려간다. 이 땅이 본래는 므낫세 지파 사람들에게 분배된 것이기는 하였어도 가나 개울 남쪽에 맞닿아 있는 성읍들 가운데에는 에브라임 지파에 속해 있는 성읍들도 있다. 므낫세 지파가 차지한 땅의 경계선은 이 가나 개울의 북쪽을 지나 큰바다라고 흔히 부르는 지중해에서 끝난다. 10) 에브라임 지파가 차지한 땅의 남쪽과 므낫세 지파가 차지한 땅의 북쪽 경계선은 흔히 큰바다라고 부르는 지중해이다. 그리고 므낫세 지파의 북쪽 경계는 아셀 지파의 땅과 맞닿아 있고 동쪽 경계는 잇사갈 지파의 땅과 맞닿아 있다. 11) 잇사갈 지파가 차지한 땅과 아셀 지파가 차지한 땅 안에도 므낫세 지파의 몫으로 분배받은 성읍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벧스안과 그에 딸려 있는 마을들, 이블르암과 그에 딸려 있는 마을들, 돌의 주민들이 사는 지역과 이에 딸려 있는 마을들, 엔돌 주민들이 살고 있는 땅과 이 지역에 딸려 있는 마을들, 다아낙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이에 달려 있는 마을들, 므깃도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이에 딸려 있는 마을들, 그리고 높은 지역 세 곳이다. 12) 그렇지만 므낫세 지파 사람들은 이 성읍에 살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을 내쫓지 못하였다. 그래서 가나안 사람들은 여전히 그 지역에서 버티면서 살고 있다. 13) 이스라엘 사람들은 점점 힘을 키워 가면서도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지 않고 그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다.
요단 서쪽에 있는 므낫세 지파가 땅을 분배받습니다.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1-6) 므낫세 지파의 반은 이미 요단 강 동편에서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므낫세 지파는 요단 강 서편 가나안 땅에서 땅을 분배받는 나머지 반 지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요셉의 실질적인 장자권은 에브라임 지파가 가지고 있습니다(창 48:14-20). 그래서 에브라임 지파가 좋은 땅을 먼저 분배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므낫세는 혈통적으로 분명히 요셉의 장자였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두 몫의 분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므낫세 지파는 요단 강 동편과 서편에서 두 몫의 분배를 받습니다. 본문은 ‘요셉의 장자 므낫세’라고 이야기함으로써 므낫세의 장자권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편 슬로브핫의 후손은 아들이 없고 딸들만 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딸들은 상속자가 될 수가 없는데, 놀랍게도 슬로브핫의 딸들은 여자의 신분으로 기업을 분배받게 됩니다. 이렇게 슬로브핫의 딸들은 땅의 분배를 요구함으로 가문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순전히 이것은 땅에 대한 욕심이 아닌 가문을 이어가겠다는 진심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기억하며 지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므낫세가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매(7-13) 요단 서편 가나안 땅의 므낫세 반 지파의 경계는 서쪽으로는 대해 즉 지중해와 남쪽으로는 에브라임 지파 그리고 동쪽으로는 요단 강과 북쪽으로는 잇사갈과 스불론, 아셀 지파와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므낫세 반 지파는 불행하게도 자신들의 기업에 거주한 가나안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불신앙과 어리석음 때문인 것입니다. 당시 가나안에 정착하기 시작한 이스라엘 민족은 청동기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그들은 이미 철기 문화를 사용하는 가나안 주민들을 두려워하여 쫓아낼 생각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16). 사실 므낫세 지파는 요단 강을 건넌 이후에 가장 앞장서서 전쟁을 했던 지파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앙의 용맹은 신앙의 안일함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가나안 주민을 물리치면 충분히 쫓아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용기를 다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다윗과 솔로몬 시대 즉,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을 종으로 삼게 됩니다.
적용: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발걸음을 막는 당신의 핑계는 무엇인가요?
오리비롯치라는 과학자는 탄생, 결혼, 죽음을 '인생의 3대 모험'이라고 했습니다. “첫째, 탄생 - 하루를 살든 1년을 살든 50년을 살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둘째, 결혼 - 탐험가 아문젠은 ‘결혼은 극지를 탐험하는 것 이상의 모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남녀 두 사람의 결합은 하나님께서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죽음 - 그것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대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인생의 세 가지 모험도 지혜롭게 맞이합니다.
< 설 교 >
쫓아내지 못한 죄
수 17:1-13 / 김광석 목사
오늘 본문은 요셉지파 가운데서 므낫세 반 지파의 기분분배가 나옵니다. 그런데 므난세 반지파가 기업을 분배받은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2.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분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가나안땅의 부동산을 많이 차지하여 부를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 지파들에게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유는 자신들이 맡은 기업에서 가나안사람들을 완전히 물리쳐서 쫓아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12절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므낫세 자손은 그들이 분배받은 성읍의 주민들을 쫓아내기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여 그 땅에 거주하였다고 합니다.
또 13절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강성한 후에도 그들을 종으로 삼아 노역을 시키기 위해서 쫓아내지는 않다고 합니다.
이것은 유다지파나 에브라임지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15장63절.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수16장10절.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나라가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가나안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그 가나안의 죄악을 완전히 물리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 땅만 차지했지, 그 안에 있는 죄악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 다음 이스라엘의 역사가 사사시대가 되는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사시시대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 그래서 사사기에 마지막에는 이스라엘지파 동족들이 서로 싸우면서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가 라고 하면서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하고 사사기가 마칩니다.
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차지하고도 하나님나라를 누리지 못하고, 사사시대가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의 죄악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12절에서 어떻게 말합니까?
가나안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니까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합니다.
또 이스라엘이 힘이 있어서 그들을 쫓아낼 수 있었지만 그들을 종으로 삼아 노역을 시키기 위해서 완전히 쫓아내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 죄를 우리가 완전히 진멸하고 죽이고 쫓아내지 않으면 그 죄악이 결심하고 우리 안에 거주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죄를 이용해서 우리의 유익을 구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에게는 사시시대의 영적 암흑기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물론 사람들을 사랑해야합니다. 그러나 죄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절대 그 죄를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에 동성애자를 교회가 사랑하자는 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도 사랑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남의 돈을 착복한 죄를 잘못되었다고 인정하고 회개한 세리, 간음한 죄를 철저히 회개한 창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킨 죄인들을 사랑하셨지, 회개하지 않은 세리와 창기와 죄인조차도 무조건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동성애자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고 돌이키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에서 무엇이 우리가 쫓아내어야할 죄인가를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들 볼 때마다 우리 안에 그런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쫓아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다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자리만을 차지하고, 그 안에 죄를 쫓아내지 않으며 그 죄가 결심하고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고, 결국 우리는 그 죄들로 말미암아 영적인 암흑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히 다 쫓아내서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누리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
수 17:1-13
야곱의 축복에 의하여 요셉은 두 몫을 받게 되었고 그 가운데서도 야곱의 우수의 축복을 받은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먼저 기업을 받게 된 것을 16장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로서 응당의 기업 분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였습니다. 므낫세의 아들 마길은 이미 요단 동편에서 길르앗과 바산 지역을 점령하여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함께 기업을 인정받았습니다. 이제 므낫세의 남은 여섯 족속이 기업을 분배 받을 차례인데 오늘 본문에서 그 과정을 밝히고 있습니다.
1. 므낫세 자손의 기업 분배(1-6)
1)요단동편의 기업(1절)
수 17:1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였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버지라 그는 용사였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으므로
여기에서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였고”라는 것을 밝히는 이유는 그가 출산 순으로 장자이기 때문에 이미 요단 동편에서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요단 서편에서 남은 자손들이 기업을 받음은 당연하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받은 자는 므낫세의 장자 마길이었습니다. 그들이 기업을 받은 것은 용사로서 싸워서 길르앗과 바산을 기업으로 차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단 서편에서 마길의 자손을 제외한 므낫세의 여섯 후손들이 기업을 분배받는 것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신앙의 결과로 받게 되는 후손의 축복으로서, 요셉이 야곱의 아들들의 장자권 문제에 있어서 결국 장자권은 유다에게 넘어갔으나,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장자의 축복 즉 두 몫을 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유다 다음으로 큰 축복을 차지하였고 후에 남북 왕조가 분열시에 북 왕국의 왕권을 차지하였습니다. 또한 므낫세는 출생 순으로 장자였기 때문에 요단강 동편과 서편 땅에서 기업을 차지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실로 신앙의 유산은 천대까지 이르도록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축복을 물려주시기를 소원하십니까?
2)요단 서편의 기업(2-6)
(1)므낫세 6자손의 기업(2절)
수 17:2 므낫세의 남은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이니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남자 자손들이며
요단 서편에서 기업을 얻은 므낫세의 여섯 자손은,
①아비에셀의 자손, ②헬렉의 자손, ③아스리엘 자손, ④세겜 자손, ⑤헤벨 자손, ⑥스미다 자손입니다.
(2)헤벨 자손 중 다섯 여자의 기업(3-6)
자손들에게 속하였더라
므낫세의 여섯 자손 중 다섯 족속의 남자는 정당하게 기업을 받았으나 다섯 번째 아들인 헤벨의 자손 중 므낫세의 현손에 해당하는 슬로보핫은 무자하고 다만 딸만 다섯이 있었습니다. 당시 상속법에 따르면 딸은 기업을 받을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딸들은 기업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슬로보핫의 딸들은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라는 이름을 가진 딸들이었습니다. 특별히 딸들의 이름이 성경에 나타난다는 사실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용감하게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와서 자기들에게도 기업을 분배하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모세의 명령에 근거한 요구였습니다. 모세는 슬로보핫의 딸들을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하였는데 그것은 조건부였습니다. 딸들이 상속권을 가지되 단 출가할 때는 같은 지파 내의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민26:33, 27:1-11, 36:1-13).
이로써 요단 동편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다섯 남자와 다섯 여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은 여성 상위 시대가 되어서 자녀의 성도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지만 그 당시에 여자들은 아무런 권리도 없었던 시대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성경이 남녀의 평등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이토록 용감한 여성들의 이름이 성경에 네 번이나 기록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2. 므낫세 반 지파의 경계(7-13)
1)남방 경계선(7-10)
17:7 므낫세의 경계는 아셀에서부터 세겜 앞 믹므닷까지이며 그 오른쪽으로 가서 엔답부아 주민의 경계에 이르나니
수 17:8 답부아 땅은 므낫세에게 속하였으되 므낫세 경계에 있는 답부아는 에브라임 자손에게 속하였으며
수 17:9 또 그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 그 시내 남쪽에 이르나니 므낫세의 성읍 중에 이 성읍들은 에브라임에게 속하였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그 시내 북쪽이요 그 끝은 바다이며
수 17:10 남쪽으로는 에브라임에 속하였고 북쪽으로는 므낫세에 속하였고 바다가 그 경계가 되었으며 그들의 땅의 북쪽은 아셀에 이르고 동쪽은 잇사갈에 이르렀으며
2) 북방경계선(11-13)
수 17:11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곧 벧 스안과 그 마을들과 이블르암과 그 마을들과 돌의 주민과 그 마을들이요 또 엔돌 주민과 그 마을들과 다아낙 주민과 그 마을들과 므깃도 주민과 그 마을들 세 언덕 지역이라
수 17:12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수 17:13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므낫세 자손들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역부족으로 쫓아내지 못하였겠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도 그들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에브라임 지파의 전철을 밟는 것이었습니다.
16:10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이와 같이 므낫세 지파 자손들도 강성하게 되었지만 눈 앞에 이익 때문에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칼빈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므낫세 지파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게을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사역꾼으로 부리려는 더럽고 천박한 이득 때문이었다.”라고 말합니다.
가나안 사람들에게 사역을 시켰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쫓아낸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거하는 것은 결국 이방신 숭배나 종교 혼합주의 등의 씨를 배태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트남에 가면 그런 종교가 있습니다.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그 신전에 가면 부처님, 공자님, 예수님 등등 모든 좋다는 종교는 다 갔다 붙여놓고 또한 신상을 새겨 놓고 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혼합주의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대순진리회와 같은 사이비 종교가 그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재미슨(Jamiesion) 역시 “나태하고 안락에 대한 사랑, 즉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거나 망각함으로써 일어난 잘못된 인간애와 하나님께 봉사하는 믿음과 열심의 원칙의 쇠퇴 등이 실패의 원인이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는 후에 큰 벌을 받게 되어 이스라엘의 큰 위협이 되었으나, 오랜 후에 여선지 드보라와 바락 장군에 의하여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야 점령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삿4:1-24).
뿐만 아니라 저들은 가나안 인의 우상숭배에 감염되어 북 왕국 이스라엘이 마침내 멸망을 초래케 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 것이야말로 오늘까지 큰 교훈을 성도들에게 안겨주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후손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주시기를 소원하십니까? 요셉처럼 축복받아 자녀들에게 두 배의 축복을 물려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하십시오. 타협하다가는 자신까지도 타락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을 지켜 나가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복은 권리가 아님을
여호수아 17:1-18
이젠 에브라임의 산지에 대해 얘기했고, 오늘은 므낫세 지파에 대한 분배입니다.
특이한 것은 슬로브핫의 딸 5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딸의 이름을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이라고 얘기하고, 여호와의 명령에 따가 그들의 기업을 준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고대사회는 모든 지 부계사회이고, 딸들은 유산 상속에서 제외되었지만, 슬로브핫이라는 사람은 아들은 없고 딸만 5명이었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민수기를 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왔다. 슬로브핫은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의 가족으로서, 헤벨의 아들이요, 길르앗의 손자요, 마길의 증손이요, 므낫세의 현손이다.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이다.
그들은 회막 어귀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도자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호소하였다.
"우리의 아버지는 광야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거역하여 모였던 고라의 무리 속에 끼지는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다만 자신의 죄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가족 가운데서 아버지의 이름이 없어져야 한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에, 우리에게도 유산을 주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그들의 사정을 주님께 아뢰었다. (민수기 27:1-5, 새번역)
이런 요구는 아마 고대때는 상상조차도 못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모세도 이런 것을 그냥 관습대로 처리하지 않고, 즉 여자에게 돌아갈 분깃은 없다 라고 얘기하지 않고 주님께 여쭈어 보았으며, 민수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이런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께서 유상 상속의 프로세스를 새로 정립하십니다.
그리고 또한 민수기에서는 이들이 자신의 지파 남자오 결혼해야만 므낫세지파의 분깃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 민수기를 봅니다.
주님께서는 슬로브핫 딸들의 경우를 두고 이렇게 명하셨소. 그 딸들은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누구하고든지 결혼할 수는 있소. 그러나 그들이 속한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만 시집갈 수 있소. (민수기 36:6, 새번역)
그리고 이들 5명 모두 자신들의 사촌 오라버니와 결혼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므낫세의 기업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것을 다시 한번 명기합니다.
며칠전에 갈렙의 딸이 자신의 땅을 차지할 때, 우물도 달라고 해서 더 많은 복을 받은 장면을 목격하였는데, 오늘 본문에서 당당하게 이렇게 자신의 유산을 받는 딸 5명을 다시 목격하게 됩니다.
본문을 봅니다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우리 남자 친족이 유산을 받을 때에, 우리도 그 가운데 끼워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주님의 명대로, 그들의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받을 때에 그들을 그 가운데 끼워 주었다. (4절, 새번역)
고대사회에서 여자의 목소리는 수용이 되지 않았던 그런 문화안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유산에 대해 언급하고 이것을 요구하던 여자들의 용기와 담대함은 지금 생각해 봐도 남자의 용기보다 더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의 결말을 성경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그래서 요단 강 동쪽의 길르앗과 바산 땅 밖에도, 므낫세에게 열 몫이 더 돌아갔다. (5절)
므낫세 지파는 자신들이 제비뽑아 받은 땅외에도, 이런 여자들의 용기로 말미암아, 더 많은 분깃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여자와 달리 전혀 용감하지 않고, 불평만하는 남자들의 얘기도 나옵니다.
본문을 봅니다.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가 큰 무리가 되었는데, 어른께서는 왜 우리에게, 한 번만 제비를 뽑아서 한 몫만 유산으로 가지게 하십니까?" (14절)
여호수아는 간단하게, 그렇게 큰 무리면 더 많은 땅을 너희들이 개척해라 하고 말했으나, 그들은 녹녹치 않다고 얘기합니다.
아마,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라, 자신들과 같은 족속이니 이렇게 얘기하면 들을 줄 알았는데, 여호수아는 어떤 특혜도 베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요셉 자손들의 변명을 열거해 봅니다.
- 산간 지방은 우리에게 넉넉하지 못하고
- 골자기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은 다 철병기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런 변명을 똑같이 이용해서 답을 합니다.
- 너희는 세력이 많으니 받은 땅은 좁을 것이다
- 그러니, 개간을 하던 철병기를 가진 사람을 쫓아내던 당신들은 다 할 수 있다.
이런 말씀을 읽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씁씁합니까?
사실, 여호수아의 대답은 어떻게 보면, 칭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칭찬이 아니고, 그들에 대한 징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이 많으니 더 많은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즉, 다른 지파들은 모르겠고, 우리는 사람이 많으니 다른 지파에게 나눠줄 것도 받아야 하겠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여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자신들의 땅을 차지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들은 자신들이 사람이 많다고 더 많은 땅을 차지해야 한다고 우깁니다.
어떤 여자들은 용기를 내어 제사장과 여호수아 앞에 갔습니다.
수백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중 여호수아가 여자 5명과 그들의 가족을 어떻게 다 챙길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여호수아 앞에 여자가 당당하게 나아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더 더욱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축복을, 자신의 기업을 받기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그런데, 사람도 많아 싸울 수 있는 군인도, 일을 할 수 있는 남자도 많은 이들은 그냥 자신의 축복을 스스로 개척하려 하지 않고 남의 것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저는 나이가 많으니까, 더 받아야 합니다.
저는 식구가 많으니까, 더 받아야 합니다.
저는 많이 먹으니까, 더 받아야 합니다.
저는 아들이 많으니까, 더 받아야 합니다.
저는 딸이 많으니까, 더 받아야 합니다.
이유를 대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받는 땅을 entitlement (권리) 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작으면 불평이 새어 나옵니다.
어떤 말도 안되는 이유지만, 아무튼 자신이 받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 즉 권리하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두개의 사건을 다시 정리해봅니다.
슬로브핫의 딸은 자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인데도 힘들게 여호수아 앞에 가서 얘기하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남자들은, 자신이 받아야 할 권리라고 착각하고 불평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아니라 권리라고 생각하니 받은게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축복을 축복으로 이해한 5명의 딸들은 자신의 축복을 차지했으나, 축복을 권리라 생각해 더 받으려는 무리들은 그 축복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오늘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너는 네가 줄 축복에 대해 이해하고 그 축복을 받도록 노력하여라.
네는 축복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구원을 거저주는 축복이지만, 이 세상에서 네가 받을 유산은 이 지구에서 네가 물려 받을 산지는 네가 받아야 할 entitlement, 권리도 아니다.
너는 네가 받은 축복에 감사하고 take it for granted하지 말라.
그것이 네가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는 길이다.
<기도>
주님.
당신께서 주신 축복을 세어봅니다.
당신께서 주실 축복도 헤아려 봅니다.
제 삶에서 주신 당신의 축복을 받으려 주님께 엎드려 기도합니다.
제가 받을 기업을 위해 당신께 기도드리고, 당신의 말씀에 따라 살려합니다.
이런 저를 기억하시고, 당신이 저를 위해 준비해 놓은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이런 저에게게 당신의 축복을 허락하시옵소서.
제가 받은 축복을 행여 권리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이 원하시면 언제든 더 많은 축복을 주실 것이고
당신이 원하시면 언제든 이 축복을 가져가실 줄을 합니다.
교만해져서, 당신의 축복을 권리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