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7일(금)
* 시작 기도
주님...
마음은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 하지만 게으름에 나를 내어줄 수 없어서 따스한 이불 속을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한국은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데 이곳 베트남 하이퐁은 약간 쌀쌀할 정도여서 생활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이 하루도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업어지고 오직 나의 주님이신 예수만 드러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지구 반대편인 아프리카 차드에서는 복음생명캠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자와 통역하는 자 그리고 듣는 자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생명의 복음으로 연합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씻어 주의 정결한 신부로 서게 하소서.
나는 거룩한 불구자이오니 오늘도 영적 하루살이의 삶으로 살아내게 하옵소서.
함지교회의 형편을 아시는 주께서 예배의 처소를 순적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상 3:1-14
제목 : 엘리를 심판하시나 이면에서 사무엘을 준비하시고 생명이신 예수를 통하여 영적 이스라엘을 영원히 세우심.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 나의 묵상
엘가나와 한나 사이에서 태어난 사무엘은 자라서 젖을 뗀 후에 그의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실로의 성소에 와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다.
아직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이나 부르심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지 못하였다.
또한 엘리의 영적 감각이나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있던 그 시대는 영적으로 워낙 흑암과 같은 시대였기 때문에 그 영적 어둠의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을 한다.
(1-2)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곧 음성도 잘 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상도 잘 나타나지 않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제사장인 엘리의 눈도 점점 흐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하는 것은 그의 육신의 눈만 아니라 영적 눈까지도 흐려졌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엘리 제사장 당시의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극명하게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을 때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고 말한다.
이것은 율법에 하나님의 등불은 제사장들로 하여금 성소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켜두라고 하셨고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라고 말씀하셨다.
(출 27: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따라서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을 때라는 말은 사무엘이 한참 잠들어 있을 때 곧 한 밤중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전 안에 누웠다고 하였는데, 이곳은 하나님의 궤가 안치 되어 있는 지성소가 아니라 휘장 바깥쪽인 성소이며 그곳에 촛대인 등불이 밝혀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엘리의 가문과 사무엘을 비교해서 지는 해와 떠오르는 소망의 해를 극명하게 분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등불, 하나님의 궤, 하나님의 전과 같이 하나님을 상징하는 단어들을 열거하여 사무엘이 하나님과 친밀성을 부각하고 있는 바 이는 흑암과도 같은 이스라엘에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젖을 떼고 엘리와 함께 실로의 성소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사무엘이 어엿한 소년이 되어 엘리의 심부름을 하는 아이로 자랐다.
그런 소년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부르신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귀에 들린 부름의 소리를 당연히 엘리의 부름이라 생각하고 세 번씩이나 엘리에게 달려갔다.
소년 사무엘, 가장 잠이 많을 때이지만, 그는 아직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은 가장 깊은 밤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엘리 제사장에게로 달려가는 그 모습은 엘리에게도 충성된 종이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종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세 번씩이나 자기가 부르지 않았음에도 사무엘이 어떤 음성을 듣고 자신에게 찾아온 것을 본 엘리는 그나마 그의 영적 시각이 흐려져 있긴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를 기억하여 사무엘에게 일러준다.
다시 한 번 너를 부르는 음성이 들리거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네 번째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사무엘은 엘리가 일러준 대로 하였다.
그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말씀해 주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한 가지 일을 행하실 것인데 그것을 듣는 자들이 두 귀가 울릴 것이다.
여기서 두 귀가 울릴 것이라는 말은 듣고 깜짝 놀랄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한 말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이 엘리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미 엘리도 아는 죄악인데 그것은 곧 그의 아들들이 저주와 심판을 자청한 죄악을 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의 집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나 어떠한 예물로도 속죄할 수 없음을 확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어제의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엘리 가문의 심판과 저주의 실상을 경고하셨다.
그리고 오늘은 어린 소년 사무엘에게 그 경고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증하신다.
사실 사무엘은 엘리의 가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가문 중에 한 사람인 아비아달을 살려두시고 그를 통하여 다윗 통치 시대에 제사장으로 세우신다.
그러나 그 역시 결국 솔로몬에 의해서 제사장직을 파면당하고 만다.
이를 끝으로 엘리 가문이 완전히 멸문지화가 종결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독과 그의 후손을 통하여 제사장직을 이어받게 하시고 그 계통을 통하여 완전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중단하는 것 같지만, 중단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나님의 행동하심임을 분명히 보게 된다.
나는 오늘 이 시대에 목사요 선교사로서 엘리 제사장과 같은 위치에 서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과 사무엘을 통하여 엘리의 가문을 멸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나 또한 심판을 받아 멸망당해야 할 자임은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왜냐하면 나야 말로 영적 눈이 흐려졌고 영적 귀는 어두워져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복음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여 그저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말만 전했고, 사시기 시대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씀처럼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자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복음과 생명을 몰라도 교회는 얼마든지 성장하고 부흥할 수 있다.
교회 성장은 아무튼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교회를 성장시키고 큰 교회를 이룬다 한들 도대체 그게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는가?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이 그저 나의 열심과 나의 의 말고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내어드릴 수 있냐는 말이다.
나는 교회를 개척하기 전,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나 교회를 개척한 후에도 목숨 걸고 사역을 하였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오직 교회 부흥과 성장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저 빨리 교회를 크게 키워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성공한 목사라는 인정을 받기 위함이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들 중 메가처치에서 행하는 프로그램이나 설교들을 벤치마킹 하여 내 것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내가 개척한 교회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던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을 행하셨다.
그것은 교회 내 분란이었다.
그 분란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썼다.
문제가 해결되는가 싶다가도 또 다시 그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더 커지기만 하였다.
이 문제로 인하여 나는 병이 생기고 폐암까지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순간에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복음생명캠프에 간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만지셔서 그곳에 마음이 끌리게 하셨다.
그렇게 그 복음생명캠프에 참석하여 복음을 듣는 첫 시간, 강의의 주제가 ‘영생’이었다.
나는 그 영원한 생명에 마음이 꽂혔다.
그리고 그동안 숱하게 들었던 영생이라는 말이 내 뇌에 꽂혀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매달 열리는 복음생명캠프에 참석하여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성도들에게 전하였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결코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는데 있지 않음을 듣고 목회의 방향을 전면 수정하였다.
교회가 성장되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이 보기에 비록 초라한 목회일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니까 그 복음이 어떤 이들에게는 생명의 복음으로 다가오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말로 들려 또 한 번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런 교회에 사임서를 내고 지금은 이렇게 베트남에 와서 아주 작은 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저 행복하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연약해 보이는 교회지만 사람의 생각이나 의가 드러나지 않는 교회요 하나님의 뜻인 생명의 복음이 증거될 때 그 말씀을 감사로 받는 이들이 있기에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다.
엘리와 같은 심판을 받아 마땅히 죽었어야 할 내가 오늘 이 시간 주님을 기뻐하며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으로 하늘의 기쁨이 내 심령을 가득 채우는 것을 보며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내가 전해야 할 복음이 나의 생명이며 양식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생명도 복음도 알지 못하던 때에 그저 육신적인 생각으로 교회를 크게 만들려고 했던 나를 돌아봅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마음은 뒷전이었고 그저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이 목회의 목적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내가 했노라’는 나의 의가 불덩이처럼 솟구쳐 올랐습니다.
나는 그것이 굉장히 좋은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나에게 힘이 되는 의지이며 나를 나 되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하여 더 많이 노력하고 애를 써서 교회를 크게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를 공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개척한 교회를 떠나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그런 외형적인 교회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며 나 자신 또한 주님의 거하시는 진짜 성전으로 존재하길 원합니다.
체격은 왜소하지만 온 우주를 담는 그릇보다 더 큰 그릇이 되어 그 우주를 만드신 보배되신 우리 주님을 담은 질그릇으로 서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없어지고 오직 주님만 드러나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하여지길 간절히 원합니다.
비천한 질그릇이지만 생명이신 우리 주님과 늘 교제하며 연합하게 하소서.
나의 의가 아닌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