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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KBS 가요대축제'에서 MC를 맡은 방송인 김신영, 배우 나인우, 걸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왼쪽부터)이 레드카펫 행사 사진을 촬영하는 장면. ⓒKBS kpop Youtube 동영상 캡처
공영방송 KBS가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요즘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합니다. 여러분의 KBS’라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데, 광고엔 KBS를 대표했던 드라마 중 하나인 ‘연모’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국민 건강이나 일상 삶의 질 증진을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생로병사의 비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도 KBS를 대표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K-콘텐츠의 위력을 보여준다던가, 국민 각자를 위한 내용을 알려줘 수신료의 가치가 체감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며, TV를 가진 국내 거주 세대라면 한 달당 2500원의 수신료를 내야 하며, KBS 전체 재원의 약 40%를 차지하는 건 수신료를 통한 재원이다. 공영방송이니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방송을 만드는데 수신료가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공영방송 KBS에서 연말 특집방송인 ‘가요대축제’를 일본 사이타마에서 개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가요대축제’는 한 해를 빛낸 K팝 가수들이 무대를 꾸미는 장이고, 연말에 이걸 일본에서 개최한다는 것인데 이를 반대하고 분노하는 네티즌들이 적지 않다. 나도 네티즌들처럼 분노가 일고 일본 개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연말 축제라면 보통 대한민국 내의 국민들과 함께 즐기는 게 상식이지만, 이를 일본인과 함께 즐긴다는 건 필자가 생각하기엔 상식에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역사, 정치, 경제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한·일 관계에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겐 굴욕적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소식으로 좋지 않은 분위기에 가요대축제 일본 개최 소식은 일본인을 위한 방송으로 느껴져 분노가 솟구치려 한다.
네티즌 반대에 대해 KBS 측은 ‘뮤직뱅크 월드투어 – 글로벌 페스티벌’(가제)로 확대하고 이를 국내와 해외에서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파급력을 해외에 알리는 동시에 국내 팬들을 위한 K-팝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답변했다. 그런데 뮤직뱅크는 다양한 장르의 대증음악과 최신 음악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이고, 연말에 시상식을 하는 가요대축제와는 성격이 다르기에, 답변으론 궁색하다.
일각에선 국내에서 개최되는 시상식 입장권 가격은 최대 2만 원이나, 해외에서 하면 이보다 몇십 배 되는 가격으로 표를 팔 수 있기에 이런 배경이 있다는 지적이 있고 이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 이득만 추구하지 않고, 국민을 위한 방송을 만드는 게 수신료의 가치란 점을 생각하면, 이번 결정은 수신료를 일본에 바치는 등 수신료 가치란 관점에서 회의감이 들게 만든다.
회의감이 드는 순간은 또 있다. 한국방송 50년- 즐거운 챔피언이란 동영상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장애를 극복하고 다른 비장애인들하고 같이 생활하는 것에 있어서 저는 자랑스럽게 생각해요’라고 이야기한 부분이 있다. 그 얘기를 듣는 사람이라면 장애란 극복해야 하는 나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장애를 부정적인 뉘앙스로 바라보며 다양성이 아닌 손상으로 보는 거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장애에 관해 조금이나마 깨닫기 전까진 무조건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 나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알고는 절망감이 들었지만, 너는 뛰어나다는 가족들의 말에 위안을 얻곤 했다. 그래서 나의 가족은 1%만 고치면 완벽하다 했지만 없애려 할수록 정체성을 부정하다 보니 힘들어졌다. 조금 더 배우다 보니 장애가 특성이자 다양성임을 알게 됐을 땐 더 이상 그걸 숨길 필요도 없고 오히려 나 자신의 장애에 긍지를 느끼게 된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도 수신료의 가치 중 하나가 될텐데, 이런 걸 보면 국가가 운영하는 공영방송에서 장애를 부정적으로 느끼도록 만드니, 장애인차별을 조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그런 방송을 한다면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KBS에 역시 회의감이 들게 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최종회 영화관 상영행사에서 자폐인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주인공 우영우 역의 배우 박은빈 모습. ⓒKBS 시사직격 동영상 캡처
1년 전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화제가 되면서 자폐성 장애인의 현실에 관해 KBS 교양프로그램 시사직격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던 일이 있었다. 제작진들은 필자를 포함해 자폐성 장애인 자조모임 동료들에게 등록/미등록 자폐인 현실에 관해 물어보았는데, 우리들은 지능이 뛰어나거나 돌봄 요구가 큰 자폐성 장애인 관련 서사를 뛰어넘어 권리의 주체로 자폐인을 묘사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인터뷰가 수록된 시사직격이 8월 26일 방영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26일 당시 나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제2·3차 심의로 인해 제네바에 있었던 상태였다. 하지만 자폐성 장애인은 돌봄이 상당히 많이 필요한 권리 주체가 아닌 객체요, 치료의 대상으 묘사하는 내용을 시사직격 프로그램으로 방영하고, 우리들 의견은 약간만 다뤄졌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자폐성 장애인은 돌봄이 많이 필요한 불쌍한 존재로만 묘사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랬다. 그런데 장애인권리협약 5조 일반논평에 보면 비생산적이면서도 사회에 경제적·사회적 짐 등의 의존적인 돌봄 객체로 장애인을 묘사하는 건 해로운 것이라며, 협약에 맞게 이를 수정할 조치를 취할 것을 당사국에 촉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사직격 내용은 사실 협약 위반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KBS ‘시사직격’측에선 이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었다. 자폐성 장애인 등 장애인에 관련한 자립 및 수용성 제고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기에,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이해는 가면서도, 자폐인을 돌봄 객체로만 묘사하는데 대부분 할애하는 건 협약에 위배되고, 당사자 입장에선 모욕적이다. 이걸 통해서도 공영방송이 수신료 가치를 실현한다는 말에 회의감이 든다. 장애인 당사자가 동등한 시민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이와 같은 내용을 방영할 수 있었을까?
자폐성 장애아동을 응용행동분석(ABA, 행동치료 기법의 일종)한다는 한 교사의 인터뷰 모습. ⓒKBS 시사직격 동영상 캡처
이번 주엔 KBS에서 했던 토론 프로그램인 생방송 심야토론이 작년 12월에 폐지된 걸 알게 됐다. 다양한 생각을 접하는 기회 중 하나가 토론인데, 그것을 폐지했다니 다양성이 말살됐단 기분이 든다. 이도 수신료의 가치를 외치는 공영방송에 회의감과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사례라 본다. MBC는 100분 토론이라는 것을 통해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으려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외에도 KBS 주말드라마 하면 가족이 보는 드라마로 따뜻함과 삶의 희노애락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드라마로 인식되곤 했는데, 얼마 전 기억을 잃어버리거나, 약역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게 주말드라마의 소재로 나오는 걸 봤다. 시청률을 위해서 자극적인 내용을 주말드라마에 넣었는지는 모르나, 가족 간 정을 나누기도 각박한 현실에 이런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삶이 삭막해진단 느낌에, 수신료의 가치 실현이란 말에 회의감 드는 건 물론 그 말이 무색해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공영방송이 국민을 분노하게 하거나 다양성을 죽이는 등의 사례를 접할 때면,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합니다’라는 말은 체감은커녕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이런 사례들을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애, 성적 지향 등의 다양성 증진에 좀 더 신경 쓰는 등, 진정 국민의 방송으로 KBS가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하는 공영방송이니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그래야 한다.
그래서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합니다’라는 말이 더 이상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 진정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 가치가 체감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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