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삶 위에 세운 샤넬 제국, 여성에게 자유를 입힌 혁신가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은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1923년 드미트리 대공과 결별 후 샤넬에게 반한 영국 왕족 웨스트민스터 공작이 선물공세를 펼쳤습니다.
그러나 샤넬은 받은 선물의 가격만큼 그대로 돌려주었으나 결국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작의 친구 윈스턴 처칠과 만나 각별해 지기도 했고, 공작과는 1929년 임신 문제 등으로 결별했습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의류사업을 중단시켰고, 조카를 찾기 위해 독일군 장교 딩클라게를 만난 것을 계기로 연인이 되었으나 샤넬의 독일 스파이 의혹을 불러왔습니다.
1944년 8월 독일군이 점령한 파리가 해방되는 순간 독일에 협력한 여성들은 머리가 깎였고 샤넬은 숙청위원회에 불려갔습니다.
그러한 비난을 피해 1945년 스위스 로잔으로 향한 샤넬은 패션에서 멀어져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 1954년 71세의 나이로 파리 패션계에 복귀하여 1955년 샤넬 가방을 선보였습니다.
지금도 오픈 런으로 이슈가 되는 가방은 어깨에 걸칠 수 있는 긴 끈이 특징입니다.
그 당시 상류층 여성 가방에는 짧은 손잡이만 존재하였다니 처음으로 손에 자유를 준 샤넬의 핸드백입니다.
패션으로 세상을 바꾼 샤넬도 1971년 87세로 세상을 떠날 즈음 뇌졸중과 오른 손 마비 그리고 심해진 몽유병으로 몸을 꽉 묶고 잤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장례식을 열고 애도했지만 정작 시신은 스위스 로잔에 묻혔습니다. 나치의 스파이였다는 설 때문에 고국에서 외면당한 것입니다.
여성들에게 자유를 입힌 디자이너 샤넬은 화려한 사교계와 그를 스쳐간 유명 인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첫댓글 아오시발~~
정치하는개새끼들
프랑스보고배워라
심히 노여워 하지 말고
오늘 남산 산행에
빨대 꽂으로 오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