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호는 하숙방에서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다듬고 있다.
후리후리한 키에 수직으로 줄무늬가 쳐진 푸르스름한 양복을 입은 준호의
모습은 모든이에게 호감이 갈 수 있는 타입이었다.
빗으로 머릿기름을 발라 넓은 이마가 훤히 드러나 보였으며 헤어 스타일은
이목구비가 선명한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으며 날카로우면서도 작지않은
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소평가를 할 수없게 하는 위엄이 있었다.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며 준호는 심호흡을 한다.
ㅡ 내 일생의 운명을 좌우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는군.ㅡ
준호는 웬지 마음속으로 떨리는 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린다.
"총각 있수?"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 목소리가 방안에 흐르는 라디오 음악을 밀고 들어온다.
"녜 아주머니."
문이 열리고 하숙집 여주인 얼굴을 내민다.
준호의 모습을 본 여주인은 깜짝 놀래서 묻는다.
"총각, 좋은 일이 있는가 부지?"
"좋은 일은 뭐, 누구좀 만나러 가는거죠."
"아니 누굴 만나는데 이렇게 쫙 빼입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난리입니까?"
"그럴 일이 있습니다."
"아가씨라도 만나러 가는가 부지."
"아주머니도 참 제가 방세가 몇 달씩 밀려있는 판에 아가씨하고 연예하게
됐습니까?"
"빨리 장가를 가야지 언제까지 하숙생활을 하려고 그래?
벌써 우리 집에서 5년이 넘었는걸. 나는 아무래도 알 수가 없어요?"
"뭐가 말입니까?"
준호는 넥타이를 와이샤쓰에 맞게 교정하면서 묻는다.
"아니 총각같이 미남에다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왜 장가를 삼십이
넘도록 안가는지 알다가도 몰라서 하는 말이지."
"아주머니도 참, 아니 불알 두쪽 만 가지고 갑니까?
요즈음 여자들이 얼마나 약아 빠졌는데 고생하려고 나 같은 놈한테 미쳤다고
시집을 온 답니까?"
"쯧쯧, 저러게도 순진하다니까. 일단은 여자 마음을 꽉! 사로잡고 그리고 동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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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면 그집 부모가 죽일거야, 아니면 살릴거야, 결국에는 여자측에서 시집을
안보내고 견딜수가 있을까?"
준호는 아주머니 말을 듣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아주머니 딸이 그러면 사위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시집을 보낼 겁니까?"
"안보내면 어떻할꺼야, 이미 몸과 마음이 망거졌는데 다른 남자에게 보내나?
그러면 딸만 더 상처받지."
"아주머니 말씀도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장가 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설사 그렇게 했다선 치더라도 부모가 불알만 두쪽
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결코 시집보내지는 않을겁니다.
우리나라도 성이 개방되어서 요즘 처녀를 찾아보라 하면 그놈은 미친놈 소리를
듣고도 남습니다.
그런세상에 돈많은 집에서 뭐가 아쉬워서 불알만 달랑 가지고 있는 저같은 사람에게
애지중지하는 딸을 주겠습니까? 보십시오 선경그룹도 물태우 딸과 결혼을 해서
정략적으로 사업에 득을 보려는 야심이 있어 혼사가 성립되고 또
대기업 오너들을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집안끼리 서로 부족한 것을 메우기 위해
결혼을 시키는 겁니다.
돈이 있으면 권력이 필요해서 사둔을 삼고, 또 권력이 있는 집은 돈이 필요해
재벌,대기업 회장과 줄을 대기위해 마담 뚜쟁이를 동원하지요.
상류생활을 하려면 고급관료 봉급만 가지고는 도저히 안되니 설사 딸이 처녀가
아니더라도 진정시켰다가 시집을 보내는 것 아닙니까?"
"저런, 남자가 한 번 해보지도 않고 저러니 장가가기는 틀렸지.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서 장가를 가누?, 벌써 삼십대 중반인걸."
"못가도 팔자고 할수없죠 뭐."
"근데 오늘은 왜 이렇게 빼입고 가는거야?"
하숙집 주인은 궁금해서 다시 묻는다.
"회장을 만나러 갑니다. 그래서 옷에 신경을 쓰는 거죠,"
"회장 ? 그럼 밀린 방세는 오늘 다 갚겠네."
"글쎄요, 가봐야 알겠지요."
준호는 마음속으로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인데 회장을 만나러 가는거야?"
주인은 더욱 궁금해서 묻는다.
"제가 방세가 밀린 이유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하고는 검은 색 007가방을 들고 나간다.
"잘 다녀와요."
하숙집 아주머니 말을 뒤로하고 대문을 나서는 준호.
강남으로 가는 좌석버스를 기다리며 준호는 하늘은 바라다본다.
ㅡ 진인사 대천명이라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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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출근시간을 지나서인지 막히지 않고 한남대교를 건너고 있다.
준호는 점점 강남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답답해서 창문을 연다.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이 보기좋게 떠 가고 있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어느새 차거움을 안고 있었다.
준호는 정말 걱정이 되었다.
내일 모레가 추석인데 주머니는 텅 비어있고 어디가서 손을 내민단 말인가.
정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모아놓았던 돈을 다 쳐박고 그것도 모자라 은행빛까지 썼으니 더군다나 내일이
추석인데 방세는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하면 할수록 지난 일이 떠 오른다.
하지만 준호는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 프로젝트는 반드시 해야하는 절대적인 것 이라고.
만일 자신마저 하지 않으면 영영 황금알을 낳는 거위 탄생을 이웃 일본이라도
개발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천추의 한이요 순국선열들 앞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수있단 말인가?
시간이 촉박하건만 과연 회장이 자신을 만나줄런지도 아니 가면 없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가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사람이 어디 보통회장인가 국내 최대그룹의 회장 조카인데 일개 영업사원인
자신을 만나 줄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 아닌가.
만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그동안 쌓아놓은 탑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착찹했다.
한강물은 지나온 수많은 역사의 사건들을 밀어내듯이 유유히 흐르고 햇빛은
하류로부터 불어오는 강바람에 잔 물결을 일으키며 반짝이고 있어 준호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한다.
버스는 한남대교를 지나 강남대로를 들어서자 서초동으로 방향을 틀고는
신호에 대기하고 있다.
준호는 검은색 007가방을 열고는 서류를 꺼내어 다시한번 타이핑 한 것을
검토하고 회장이 잘 볼수 있도록 굵게 크게 인쇄한 것을 확인하며 뒤로
넘기고는 가방에 넣고 찰칵하고는 닫는다.
가방을 들고 회장이 있는 사옥으로 가면 갈수록 준호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순서를 머리속에 그려본다.
국내최대그룹의 위성그룹인 한성그룹 사옥 앞에는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고
지하에는 사우나 시설을 나타내는 간판도 눈에 띤다,
정문을 들어서니 보안을 담당하는 경비가 책상에 앉아있다가 준호가 안내 앞에서
회장실을 찾고 있으니 다가와 묻는다.
가방을 들고 있는 폼이 세일즈 맨으로 판단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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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문을 들어서니 보안을 담당하는 경비가 책상에 앉아있다가 준호가 안내 데스크
앞에서 회장실을 찾고 있으니 접수담당 여직원이 다가와서는 준호를 보며 묻는다.
가방을 들고 있는 준호는 당당했으며 아무리 보아도 세일즈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옷차림이 체격과 어울려 바이어 정도로 생각하게 하였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회장님을 뵈려 왔읍니다만."
"녜? 회장님을요?"
"그렇습니다."
"약속은 돼셨습니까?"
"아니, 뵐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선우 인터내셔날에서 왔습니다."
"여기는 한성그룹인데..."
여직원은 말에 여운을 남긴다.
"아, 선우는 회장님께서 그룹과는 별도로 법인을 만드셨습니다."
"아, 그러시면 잠시 기다리십시오"
여직원은 말하고 나서 인터폰을 누른후, 통화를 하고 있다.
"비서실인데 전화 받아보시죠."
여직원은 말하고는 수화기를 준호에게 내민다.
"오준호입니다."
"선우는 회장님이 관리하시지 않고 그 회사 사장님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계시는데 그쪽으로 가보셔셔 말씀하시죠."
비서실에 있는 여직원의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다.
"저도 그건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꼭 좀 회장님을 뵈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 실례지만 직책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 영업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 영업문제는 천우 담당책임자에게 말씀하십시오. 저희는 전혀 관계하고 있지
않습니다."
"영업문제 같으면 제가 왜 회장님을 찾아오겠습니까? 이건 회장님께 꼭 드려야
할 서류가 있어서 그럽니다."
"서류요?"
"그렇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비서는 말한다.
"저희 직원을 바꿔주십시오."
전화를 받던 직원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준호에게 말한다.
"8층으로 올라가셔서 왼쪽 복도 끝에가 회장님 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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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엘리베이터로 가서 버튼을 누르고 기다린다.
회장실이 8층이라는데 하필 왜 8층일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난다.
하긴 뭐 취향 나름이겠지만... 4층을 통과하는 신호가 떨어지고 내리고
타는 직원들의 모습에는 밝기만 하다.
ㅡ 하긴 대 기업인데 뭐 걱정이 있을까? 때가 되면 봉급이 나오고 명절이면
상여금이 꼬박 꼬박 나올텐데... 지금 쯤 중소기업들은 월급주랴 상여금을
몇%로 지급해야 하나 사장들은 고심을 하고 있을터인데... ㅡ
준호는 수년동안 중소기업에 찾아다니면서 실상을 훤히 파악하고 있는 터였다.
안에서 층수가 바뀔 때마다 올려다 보니 4층에는 F로 표시되어 있다.
4자가 동야에서는 염라대왕의 심부름꾼인 사자이니 F층으로 고쳐놓은 것을
여기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8층을 회장실로 사용하는 회장은 왜 더 높은 층을 놔두고 굳이 8층을
사용하는지 궁금해진다.
아라비아 8자는 오뚜기, 즉 다시 일어난다 또는 불굴의 의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다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고 준호는 생각이든다.
아니면 동심으로 돌아간다면 눈사람을 나타내는 것인데 소위 재계 30위안에는
들지 못하는 위성그룹이라지만 매출액이 1조가 넘고 순익이 600억 정도는 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것은 한국기업평가 (주) 에서 자료를 받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룹 회장의 둘째아들이 동심에 젖어 8층을 사용할 리는 없는 것이다.
준호는 궁금해졌다. 물론 부모를 잘 만나 유학을 다녀오고 최고급 승용차에 최고의
값비싼 시계와 양복 그리고 모두가 굽실굽실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인사를 받는 지위에
있는 것은 능력보다는 우선 부모를 잘 만나서 된 것이 아닌가?
그래도 30대 중반 나이에 자신의 아버지 계열사를 경영하는 것만 으로도 만족하지않고서
200억을 투자해서 회사를 설립한 것은 주관이 뚜렷하다고 밖에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경영일선에 나서지 않고 전문경영인을 두고 맡기는 것은 자신이 있어서 일까? 준호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엘리베이터는 8층에 멈추고는 문이 스르륵 열린다.
준호는 나와서는 복도를 걸어간다.
표시판이 있지만 회장실이라는 안내판은 없다.
준호는 여직원이 말한대로 왼쪽으로 걸어간다. 근무중이라 아무도 없어 조용하기만 할뿐
단지 준호 자신의 구두소리 만 들릴 뿐이다.
창가에 다가가 베이지 색 문을 노크를 한다. 똑 똑 똑.
안에서 무어라 하는지 들을 수 없다. 철문이라서 방음이 잘된 탓일까.
준호는 둥그런 손잡이를 잡고는 돌리자 무거움이 느껴지는 쇠문은 소리도 없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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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 실내에는 어여뿐 비서가 책상에 앉아 뉴스위크 영문잡지를 읽고 있었고
조그많게 흘러나오는 라디오 음악은 아늑함과 지적인 느낌을 단번에 갖게 하였다.
왼쪽에는 쇼파용 의자가 6개가 놓여져 있었으며 여비서 뒤편에는 냉장고와 접대용
찻잔과 접시가 테이블 위에 비치되어 있었고 그외의 공간은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카페트가 깔려 있었으며 앞쪽에는 폭4미터에 길이에 6미터 길이의 카페트 깔린 공간이 더욱 넓게 느껴졌다.
ㅡ 비서실이 꽤 크군. ㅡ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여비서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준호를 바라보며 묻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 조금전에 용건을 말씀드린 오준호라고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희 회장님은 선우 인터내셔날에는 전혀 관여를 하시지 않고 계십니다. 여기서 아무리 말씀을 드려봤자 아무런 소용이 안됩니다."
여비서는 조금전에 인터폰으로 말한 것을 다시 번복하며 말한다.
"물론 회장님께서 저 같은 일개 영업사원을 만나주실 만큼 그렇게 한가한 분아 아니라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허지만 이건 긴박한 상황이라 제가 그쪽 경영진을 거치지
않고 올 수밖에 없었던 점을 저는 어필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희가 어뗳게 말씀을 드릴수가
있겠습니까?"
준호를 바라보며 말하는 여비서의 눈은 호소하는 듯한 간절함이 있는 것 같았고 갸름한
얼굴에 하얀 피부는 청순함을 돋보이게 하였다.
또렷한 이목구비는 한 눈에 미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준호는 붉고 깨끗한 카페트와 넓은 공간속에 잔잔히 속삭이듯이 흘러나오는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와 책상에 펼쳐져있는 영문잡지 그리고 중역들이 결재받기 위해 대기할 때 앉는 고급의자등이 더 이상 준호로 하여금 머물게 하지를 못했던 것이다.
"준호는 검은색 007 가방을 열고 서류를 꺼내어 비서에게 건네준다.
"이게 뭔가요?"
"제가 수년간 시장조사와 새로운 모델을 기획한 서류입니다. 이것을 회장님께 보여드리고
브리핑할 수 있는 시간을 저에게 주셨으면 하는 거지요."
"참, 미스 어떻게 되지요?"
"미스 박 인데요. 이것 여기다 놓으셔도 소용이 없어요. 보나마나 회장님께서는 보지도 않으시고 선우로 가져다 주라고 하실 것입니다."
"미스 박께서도 회사에 근무하니까 하시겠지만 기밀서류라는 것이 있어요, 그렇지요?"
준호는 미스박의 맑고 검은 눈동자를 보며 묻는다.
"그렇지요."
"바로 그겁니다. 그 기밀서류가 라이벌 회사에 가면 어떻게 되지요? 그것은 불을 보기보다도 더 뻔한 결과가 벌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