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낯선 여행..
난 그녀를 밤 열차에 태워 정동진으로 데려갔다.
밤을 꼬박 밝혀 달리는 열차 안에서 그녀는
두려움 반, 설렘 반, 그녀의 낯선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새벽 4시 50분에 정동진역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은 사라지고 새로운 날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새로운 시작처럼..
그녀는 난생 처음 보는 새벽바다의 여명을 신기해 했고,
하늘이 붉게 열리는 순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꿈이라 했다.
눈 앞에 펼쳐진 이 아름다운 환희의 순간을
자신이 본다는 것이 못미더워
현실이 아니라 꿈이라 여겼다.
내게 익숙한 일출이 그녀에겐 꿈이었고 환상이었다.
쉰이 넘도록 일출을 경험하지 못한 그녀는 다른세계의 사람이었다.
아니 대문 밖을 나와보지 못한 하나의 인형이었다.
인형으로 산 그녀의 삶이 내게 눈물로 다가왔다.
그녀는 지금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호흡하고 있다.
그녀는 붉은 해의 정기에 몸을 맡긴 것이 아니라
마음에 출렁이는 동해의 파도를 가슴에 처음으로 품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낯선 바다와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우린 바다와 놀았고
난 그녀에게 바다열차를 선물했다.
그녀의 이름 석자가 당당히 새겨진 바다열차 승차권.
강릉에서 삼척까지 전 구간을 바다를 바라보며 여행할 수 있는 바다열차.
그녀는 아이처럼 좋아했고, 유난히 맑고 초롱하게 빛나는 그녀의 눈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듯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우리는 게처럼 옆으로 흘러흘러 바다 이 곳 저 곳을 지났다.
한가하고 아름다운 창 밖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설레는 마음 뒤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세상을 향한 두려움과 근심..
아! 저 바다로 떠나보낼 수 있기를..
추암역에서 내려 몇 년 전 일출을 보러 왔던 촛대바위로 그녀를 안내했다.
새로 시작하려 하는 그녀의 삶에도 밝고 따뜻한 촛불이 밝혀지길 바라면서.
그녀는 내게 어둠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때로는 풍광에 지나치게 감탄하면서
때로는 폰카를 눌러대면서..
추암 백사장 바로 앞에서 우린 바다냄새가 나는 점심을 먹었다.
역시 낯설게 느껴졌을 최소한의 사치를 그녀도 즐겼다.
술을 입에도 못대는 그녀의 잔엔 사이다를
세상 속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나의 잔엔 소주를..
그녀의 용감한 도전에,
28 년만에 갖는 그녀의 화려한 외출에,
그리고 그녀의 새로운 시작에
우리는 웃으며 힘차게 축배를 들었다.
그래, 그렇게 세상과 맞서는 거야.
너도 이젠 못할 것이 없는 거야.
혼자 떠나기 위해 기차표도 사보고
너를 위해 사치도 부려보는 거야.
이젠 제발 너부터 생각하기를,
이젠 자신부터 사랑하기를,
부디 낯선 자유와 낯선 시간에 익숙해지기를..
그녀와 난 추암에서 무릉계곡의 신선이 되었다가
동해역에서 다시 밤열차를 타고 새벽 4시 50분에 청량리에 도착해
새벽 자판기 커피 한 잔 나누곤 서로 다른 자하철을 탔다.
마음만은 다시 진하게 묶어둔채..
지난 7월 16일~ 18일 기차여행기.. jajak^^
첫댓글 포토에세이란 이런 것이군요. 잘 배웠습니다. 2번째 구름사진이 환상적입니다.
내가 무릉계곡의 신선이 된기분입니다.좋은 여행 하셨네요.
새벽바다 여명, 일출, 게처럼 흘러가는 바다 구경, 추암 촛대바위..제게도 낮설지 않은 곳..다시보니 옛날 추억이 되살아나네요....가끔 낯선 곳으로 화려한 외출 좋아염 ㅎㅎㅎ
11장의 사진으로 단편드라마를 본듯한 느낌이 드네요. 사진은 이야기가 있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멋 지내요/여행은 언제나 우리 맘을 설레게 하지요/더구나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은 말로서는 표현할수가 없지요..
추암뱃사장 갈매기는 잘 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