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災難안전 심포지엄]
극단적 위기 땐 成人 IQ, 5세 수준으로 떨어져→理性的 판단 못해
재난 공포 속에서 인체는 팔다리 근육 등에 능력 집중
뇌로 가는 혈액량 줄어들어… 日초중고, 不時훈련 年 수차례
2004년 태국 지진해일서 100여명 살린 10세 소녀 "학교서 배운 대로 했을 뿐"
지난 30일 서울대에서 열린 '2014 재난 안전 스페셜 심포지엄'. 이날 모인 재난 전문가들은 전문 분야는 각기 달랐지만 결론은 한결같았다.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이 몸에 익을 정도로 돼 있지 않으면 실제 재난이 닥쳤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사전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반복적인 안전 교육을 통해 재난 대응 매뉴얼을 몸에 각인(刻印)시켜야 한다는 말이었다.
- 교육 통해 몸에 배도록…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깍지 낀 두 손으로 사람 모형의 가슴 부분을 누르며 흉부압박법을 실습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대한적십자사가 심폐소생술 교육을 위해 마련했다. /윤동진 기자
서울대학교병원 정신의학교실 권준수 교수는 "위기 상황에서 패닉에 빠지면 몸은 극도로 긴장해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은 가빠지며 심하게는 마비 증상이 나타나지만 훈련을 통해 대응 요령을 몸에 익힌 사람은 혼란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IQ 테스트를 한다면 성인도 지능이 5~6세 어린아이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건물에서도 불이 나면 많은 사람이 우왕좌왕하다가 희생을 당하는 이유인 것이다.
2011년 3월 지진해일이 닥친 일본 서북부 해안에서 겁에 질린 주민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지진 해일 경보가 울렸지만 공포로 판단 능력이 마비된 주민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 초·중·고교는 화재나 지진 발생에 대비해 불시 대피 훈련을 연간 수차례 되풀이한다. 마쓰오 다카유키 도쿄도(東京都) 총무국 종합방재부 방재대책과장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재 훈련에 참가하는 주민들의 열의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 정반대의 상황이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참사였다. 당시 방화범이 탔던 1079호보다 오히려 불이 옮아 붙은 1080호 쪽에 피해가 컸다. 사망자 196명 중 176명이 1080호 사망자였다. 평소 훈련을 받지 못했던 승객들이 위기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제대로 탈출·대피를 못 한 것이다.
심재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방재실장은 "재난은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어 가면서 생활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가 가장 약한 곳에 침투하는 바이러스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술 변화에 따라 새로운 종류의 재난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모든 재난을 미리 방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심 실장은 "모든 재난에는 재난이 발생한 때부터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의 간격이 있기 마련이므로 그사이는 각자 스스로 살아남아 주위 사람들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03/20140603001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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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들린 "삐이이"… 불 난 호텔서 1분도 안돼 대피
- 박순찬, 조선일보 산업부 기자
- 입력 : 2014.05.21 03:00
[CEO가 말하는 내 인생의 ○○○] 허성 삼화페인트 사장의 '사이렌'
네덜란드 페인트회사 다닐 때 모든 회의 前 안전교육 브리핑
"이걸 또 해?" 지겹기도 했지만
호텔 화재 때 비상벨 듣자마자 몸이 반응… 훈련의 힘에 놀라
"글로벌化 핵심 기준이 안전… 현장형 안전문화 만들겠다"
대학 시절 부모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올 3월 삼화페인트 사장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30년 넘게 해외 생활을 했다. 그동안 캐나다·미국·중국을 거치며 세 곳의 다국적 회사에서 일했다. 알루미늄, 철강자재, 페인트 회사였는데 모두 해외 업무가 많아 1년 중 150~170일은 늘 출장이었다. 출장을 다닌 국가만 70여 나라, 비행기를 탄 횟수도 어림잡아 1000번이 넘는다.
이 회사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SHE'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안전(Safety)·건강(Health)·환경(Environment)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가장 철저하게 'SHE'를 강조했던 회사는 올 초까지 몸담았던 세계 1위 페인트회사 '악조노벨(Akzo Nobel)'이었다.
- 허성 삼화페인트 사장은 “안전은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며 “비상시 모든 임직원이 본능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현장형 안전 문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김지호 객원기자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모든 회의 시작 전 반드시 안전 관련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는 것이 회사 운영의 제1 원칙이다. 회의에 앞서 비상시 대피로, 안전 표지판 읽는 법, 사고 시 행동 요령 등이 담긴 자료를 스크린이나 TV 모니터에 띄워놓고 5분여간 브리핑이 진행된다.
"지금 여러분이 위치한 회의실은 여깁니다.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지도에 그려진 경로를 따라 비상 탈출구로 대피하시면 됩니다. 오늘은 비상 대피 훈련이 없으므로, 만약 사이렌이 울리면 실제 상황입니다. 화재가 발생하면 이런 사이렌이 울립니다.(삐이~)"
6년간 이 회사에 근무하면서 같은 내용을 수백 번 넘게 접했다. 처음엔 감탄했지만, 횟수가 거듭되면서 지겨운 생각이 들 때도 잦았다. '어휴, 이걸 또 해'라며 혼잣말을 한 적도 있다. 해외 지사에 근무할 때도 이 같은 원칙엔 예외가 없었다. 외부인 없이 내부 임직원끼리 하는 회의에서도 이 안전 브리핑은 반드시 이뤄졌다.
그러다 작년 10월 중국 상하이(上海) 지사에서 근무할 때 글로벌 전략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애틀랜타로 출장을 갔다. 호텔에 도착해 시차 극복을 위해 간단히 운동을 하고 밤 12시쯤 잠이 들었다. 새벽 1시쯤 됐을까. "삐이이이이~." 잠결에 사이렌이 들렸다. 매일 회의 시간에 듣던 그 소리였다.
- 미국 애틀랜타의 한 호텔에서 한밤중에 비상 사이렌을 듣고 대피 매뉴얼에 따라 침착하게 밖으로 탈출한 허성(오른쪽) 사장과 동료. /허성 사장 제공
본능적으로 머리맡에 있던 여권과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4층에 묵었던 나는 비상계단을 따라 수십여 초 만에 건물 바깥으로 탈출했다. 밖에 나와 보니 내가 두 번째 탈출자였다. 2~3분이 지났을까. 15층 규모의 호텔에서 모두 10명이 밖으로 대피해 나왔다. 그중 7명이 악조노벨 임직원이었다. 그 호텔에 묵었던 악조노벨 임직원 전원(全員)이었다. 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인도·네덜란드 등 세계 각 지사에서 모인 악조노벨 임직원은 비상벨을 듣자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무사히 대피한 것이다. 소방차가 도착하기도 전이었다.
다행히 큰불은 아니었다. 1층 객실의 벽장에 있던 다리미에서 작은 화재가 발생했고, 스프링클러(sprinkler)가 작동해 불길은 금방 잡혔다. 그제야 "우리가 정말 훈련이 잘되긴 잘됐구나" 하고 스스로 감탄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소식을 접한 회사는 호텔에서 성공적으로 대피한 우리에게 '안전상(Safety Award)'을 줬다.
이날 재빨리 비상 계단을 찾아 대피한 비결은 평소 훈련과 더불어 회사가 나눠주는 '출장자 체크리스트' 덕분이다. 여기엔 '어느 호텔에 묵든 반드시 비상구를 먼저 파악하라'는 내용이 있다. 늘 그랬듯 이날도 호텔에 체크인하면서 대피도를 먼저 살폈고, 내 방에서 가장 가까운 비상구 위치와 이동 경로를 체크한 뒤에야 잠에 들었다. 다른 임직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올 3월 경기도 안산에 본사와 공장이 있는 삼화페인트에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부임해서 가장 먼저 한 일도 회사의 '안전수칙'을 챙기는 것이었다. 페인트 회사는 화학물질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자칫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 피해가 크다.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고, 앞으로는 안전 문제에 관한 한 절대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때가 세월호 참사가 나기 한 달 전이었다. 직원들 사이에선 "외국물 좀 먹었다고 너무 안전, 안전 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볼멘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갔다.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기 때문이다.
글로벌화란 우리 스스로의 스탠더드(기준)가 글로벌 수준이 되는 것이다. 그 핵심 기준의 하나가 바로 '안전'이다. 한국의 많은 회사가 대부분 안전수칙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뉴얼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연습해서 몸에 익혔느냐이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생각을 해선 안 된다.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조건 반복 연습하는 것밖엔 없다.
21일 경기도 안산 공장에서 열리는 회의는 자체 제작한 6장짜리 안전 프레젠테이션으로 시작한다. 현재 회의실 위치와 대피 경로, 비상 상황 시 행동 요령, 공장 내 화학물질·안전 표지 설명 등이 담겨 있다. 매뉴얼에만 있는 안전수칙을 임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익히고, 본능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모든 회의 시작 전에 이 같은 안전 브리핑을 실시할 계획이다.
나는 취임 첫날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고, 일이 끝나면 직원들을 가족에게 안전하게 돌려주는 것이 회사의 가장 큰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이다.
[전략·구매 전문가 허성 사장은]
허성(許城·53) 삼화페인트 사장은 알루미늄 제조, 철강자재 관련 다국적 회사를 거친 전략 및 M&A(인수·합병), 구매 전문가 출신이다. 서울대 사회대에 재학 중이던 1982년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캐나다 칼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캐나다 연방정부에서 경제분석관으로 1년간 근무했다. 2008년부터 올 초까지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세계 1위 페인트회사 ‘악조노벨’에서 생산성 향상 및 국제 공급망·구매 담당 부사장으로 재직했다. 올 3월 삼화페인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스카우트돼 32년 만에 귀국했다. 허 사장은 “COO의 ‘C’는 직원을 보살피고(caring), 업무를 독려하고(cheerleading), 방향을 정해주는(commanding) 사람이란 의미”라고 말한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5/20/20140520044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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