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10월6일 [(녹)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제1독서 욥기 42,1-3.5-6.12-17
복음 루카 10,17-24
◈ [서울]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2018년 나해 10월6일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12년째 같은 차를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85년에 출시된 차종입니다.
33년째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장수 브랜드입니다. 이름도 부르기
좋고, 성능도 개선되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차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계속 사랑을 받는 것은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찾아냈고, 기능과 디자인을 계속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교부들의 사제 영성’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메말라있는 현대인들에게,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에게 교회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사람들이 다른
곳을 찾지 않고 교회로 돌아 올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복음의
기쁨은 무엇일까?
욥 성인은 많은 고난과 아픔이 있었지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주셨을 때 감사했다면, 하느님께서
나쁜 것을 주신다 할지라도 감사드린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순명은 하느님의 축복으로 돌아왔습니다. 욥 성인은 재물의 축복을
받았고, 자녀의 축복을 받았고, 건강의 축복을 받았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살았습니다. 욥 성인은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72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권한을 받았고, 충실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아픈 사람을 고쳐주었고, 마귀 들린 사람들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고 돌아온 제자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영들이 여러분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십시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고, 예수님과 함께 했기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회의 보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상의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주고, 기쁨을 줄 수 있는 교회의 보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첫째는 기도입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은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매일 기도하는 가정은 가난할지라도 웃음이
멈추지 않습니다. 매일 기도하는 가정은 소중한 것을 먼저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선행입니다. 아픈 이, 가난한 이, 외로운 이의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선행을 늘
말씀하셨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하셨습니다. 벗이 오리를 가자고하면 십리를 가주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는 말씀입니다. 물질과 자본의 힘에 의해서 세상은 돌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능력에 의해서 세상은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한 경쟁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교회에 묻혀있는 많은 보물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닐 수 있습니다. 수도회나 교구에서
마련한 피정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을 가까운
성당에서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많은 신심단체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안에 묻혀있는 보물을 보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보물을 찾는 것 같습니다. 주말입니다. 교회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아보는 것은 어떠실는지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의 행복, 자아의 행복
2018년 나해 10월6일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나의 행복, 자아의 행복>
복음:루카 10,17-24
북방 라마교의 고명한 라마에게 남방 라마교의 라마로부터 불교
수행자들을 가르칠 슬기롭고 거룩한 스님 한 분을 보내주십사는
간곡한 전갈이 왔습니다. 뜻밖에도 북방의 대사는 스님을 한 사람이
아닌 다섯이나 떠나보냈습니다. 그때 모두들 그 까닭을 묻자 대사는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합니다.
“다섯 가운데 하나만 끝내 남방 라마에게 당도해도 다행스러운
일이지.”
다섯 스님이 길을 가던 중 산속 외딴 오두막에 이르렀습니다. 그
집에는 아리따운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처녀는 불심이 깊어 스님들을
극진해 대접했습니다. 산적들에게 양친을 잃고 혈혈단신으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가장 젊은 스님이 말했습니다.
“난 이 처자와 함께 있겠습니다. 내 진정 불자이건데 마땅히 자비심을
궁행해야 할 것입니다.”
며칠 뒤, 일행은 왕궁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네 스님 중 한 스님이
유난히 왕의 눈에 들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딸과 혼인하여 자신이
죽거든 왕위를 계승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스님은 ‘이 나라
억조창생에게 좋은 감화를 끼치기에 왕 노릇보다 더 지름길이 있으랴.
우리의 신성한 종교를 위하여 공헌할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라고 생각하여 그 스님도 빠졌습니다.
세 스님이 길을 가던 중 마을의 한 심부름꾼이 달려와 길을
막았습니다.
“우리 마을 절의 주지 스님이 입적하셨는데, 후임자가 꼭
있어야겠습니다.”
한 스님이 말했습니다.
“내 진정 불자일진대, 마땅히 여기 남아 이 마을 사람들을 섬겨야겠지.”
두 스님이 어느 불교도 마을에 이르렀는데, 알고 보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불교를 버리고 힌두교 구루의 세력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난 여기 남아 이 가엾은 중생을 참 종교로 되돌아오게 할 의무가
있다고 느끼고 있네.”
결국 남방 라마에게 이른 스님은 한 명 뿐이었습니다.
엔소니 드 멜로 신부의 ‘종교 박람회’에 실린 예화입니다. 신부님은
이 예화에 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 해 전에 나는 하느님을 찾는 길에 나섰다. 이따금씩 나는 그
길에서 옆길로 빠지곤 했는데, 으레 이유는 더없이 그럴듯했다.
전례를 혁신하겠노라고. 교회 구조를 개혁하겠노라고. 성서 연구를
현대화하겠노라고. 신학을 현실에 적응시키겠노라고. 애석하게도,
꾸준히 하느님을 추구하기보다는 무슨 행업이든지 종교적 행업에
몰두하기가 더 쉬운 법이다.”
우리는 하느님께 빠져있습니까, 아니면 종교에 빠져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예수님이나 성모님의 음성을 들었다고도 하고, 어떤 분들은
신기한 체험을 해서 주님의 사랑을 가슴 뜨겁게 느꼈다고도 하며,
어떤 분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본당이 매우 활성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기쁨은 내가 느끼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아가 느끼는 것입니까?
가장 큰 문제는 나와 자아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다섯 스님
중의 네 스님은 자아를 기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한 스님만이 라마의
뜻만을 참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참 기쁨을 어디
두어야하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귀를 쫓아내는 등의 기적을 하고
온 것에 대해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으로 기뻐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우리가 기쁠 이유는 주님 나라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만약 내가 뱀의 소굴에 갇히게 되었다고 생각해봅시다. 뱀은 다행히
독은 없지만 매우 사나워서 내 온 몸을 물어뜯고 휘감으며 나를
괴롭힙니다. 이때 이 사람에게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요? 그
상황에서 명예나 쾌락, 인정이나 돈 등이 참 행복일까요? 참 행복은
그 뱀에게서 나와 사람들 사는 곳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뱀에게
사로잡혀 있는 한 다른 어떤 것도 그 사람에게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뱀을 자신이라고 믿으면 그 사람에겐 희망도 없습니다.
파라오의 지배하에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파라오라는 뱀으로부터 구해주셔서 가나안 땅에
살게 해 주시려고 했는데 그들이 찾는 행복은 여전히 파라오가
좋아하는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광야에 나오기는 했지만 모두
뱀에 물려죽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려는 유일한 행복은 뱀과
함께 살고 있는 나를 당신과 함께 살게 해 주시려는 것뿐입니다.
기적을 일으키고 신비한 체험을 하는 모든 것들은 다 자아를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그런 기쁨을 우리가 느끼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오로지 당신의 유일한 뜻, 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만을 기뻐할 수 있는 자녀들을 찾으십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도회] 어린이처럼 단순해지고 소박해지는 것을 더없는
행복으로 여겨야겠습니다!
2018년 나해 10월6일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어린이처럼 단순해지고 소박해지는 것을 더없는 행복으로
여겨야겠습니다!
저희 집에 어린이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로 만민의 사랑을 받고
계시는, 천사표에다가, 상뚜스 원로 신부님이 한 분 계십니다. 스페인
출신 선교사로, 한국 오신지가 50년도 더 지난 왕요셉 신부님입니다.
만 88세이신데도 아직도 88하십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시는 등 건강 관리도 철저하십니다.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하루 해가 짧습니다. 호출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십니다. 관구 문서고 담담자로 로마 총본부와 주고 받는 제반
서류들을 깔끔하게 번역하십니다. 여러 공동체 고백지도 신부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두살 위 환자 신부님의 지도 신부로도 활약하고
계십니다. 노인 수도자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일본을 거쳐서 한국에 오셔서 그런지, 한국말은 아직도 어눌하십니다.
한번은 공동체 식탁에서 한때 아재 개그의 단골 메뉴셨으며, 요즘도
‘한국인의 밥상’ 같은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계시는 최불암 선생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왕신부님께 여쭈었습니다. “신부님, 최불암 선생님 아세요?”
한참동안이나 고개를 갸웃갸웃거리시던 신부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선생님은 잘 알고 있지만, 최브라함
선생님은 잘 모릅니다^^.”
며칠전 한 수녀원 가족의 날 행사에 모시고 갔다가, 수녀님들께 덕담
한 마디 하시라고 초대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왕신부님께서 가슴
뭉클한 감동적인 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얼마 전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한쪽 귀가 완전히 고장 났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다른 쪽 귀는 아주 조금
들립니다. 그래서 보청기를 끼고 아주 조금 들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크게 실망했습니다. 더 이상 운전도 못하게 되었고,
수녀원 미사도 못 다니게 되었습니다.
많이 슬펐지만, 그런데 기도를 계속하면서 마음을 바꿔먹게
되었습니다. 주님 은총 속에 평생을 건강하게 잘 살아왔습니다. 이
나이에 잘 안들리는 것,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견딜만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귀는 잘 안들리고, 그래서 형제들과 소통도 잘 안되고,
인간적으로 외로워질 때도 있지만, 대신 좋으신 주님이 계시고,
성모님도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좋은 사람들,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수녀님들, 내게 없는 것들, 내게서 사라지고 멀어지는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대신 아직 남아있는 많는 것들에 감사하며,
그렇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저뿐만 아니라 함께 했던 많은 수녀님들께서 왕신부님의 깊은 신앙과
탁월한 성모 신심에서 우러난 한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신부님을 뵐 때 마다 우리가 기쁘고 충만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어린이와 같은 단순성과 순수성이라는 확신을 갖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공적인 복음선포 작업 후에, 잔뜩 들뜬 얼굴로 돌아온
일흔두 제자들을 맞이하셨습니다. 스스로의 능력에 깜짝 놀란
제자들은 신명 난 목소리로 보고드립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루카 복음 10장 17절)
예수님께서는 함께 기뻐하시면서도, 동시에 제자들이 부여받은
은사나 능력 때문에 교만해지지 말것을 당부하십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복음 10장 20절)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루카 복음 10장 21절)
철부지처럼 되는 것을 슬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밑으로 내려서는 것을
민망스러워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어린이처럼 단순해지고 소박해지는
것을 더없는 행복으로 여겨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 21) 한상우 바오로 신부|한상우 신부 강론
2018년 나해 10월6일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루카 10, 21)
우리의 여정은 철부지들의 철 없는 여정들의 반복입니다.
철부지는 철부지일때 아름답습니다.
철부지들이기에 풍성한 여정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철부지들과 아버지의 따뜻한 관계입니다.
살면 살수록 자만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게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강조하십니다.
순수한 철부지들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하늘을 보게됩니다.
신비는 요란하지 않습니다.
철부지들의 소중한 여정안에서 순수한 겸손을 배웁니다.
가장 귀한 것은 겸손과 감사의 마음입니다.
감사의 마음안에선 보잘것없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비와 감사 철부지와 은총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여정이 감사와 은총의 여정이길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삶이란 좌충우돌하는 철부지들의 행복임을 믿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기타] 10월6일 (토) - 진짜 크리스천입니까?
오늘은 “진짜 크리스천입니까?”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 말씀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최고의 대통령 기준에 꼽힌 사람이
존 F.케네디입니다. 그는 명문가의 태생이었고 하버드 대학을
나왔으며 막대한 재벌가의 아들이었지요.
이와 반대로 대통령 평가 기준에서 모두 미달인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미국의 대통령은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대통령 케네디보다 아브라함 링컨이라는 여론조사가 나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통령의 전기를 쓴 작가들은 “링컨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을 충실히 배우고 실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크리스천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누가 진짜 크리스천입니까?
교회만 다닌다고? 무늬만 크리스천이라고?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따라 살아내려는 크리스천, 주님을
닮으려고 하는 성도! 진짜 크리스천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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