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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서 날아오르리라"
[예레미야 29:10~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어느 날 새가 하나님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다른 동물들은 다 특별한 무기가 있습니다.
뱀은 독을, 사자는 날카로운 이를 가지고 있고, 하다못해 당나귀는 뒷발차기라도 하는데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새에게 날개를 주셨습니다.
새는 매일 그 날개를 등에 메고 힘겹게 걸어 다녔습니다.
“내게 좋은 걸 주신다더니 짐만 주셨구나. 하나님, 날개가 너무 무겁습니다. 도로 떼어 주세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새야, 네가 소중하고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음을 모르는구나.
날개를 활짝 펴서 하늘로 높이 날아 오르거라. 높은 곳에서 만나는 자유와 희망을 마음껏 누리거라...”
그러나 새는 날개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무겁고 힘들고 짐처럼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길 벼랑 끝 100미터 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새를 밀어내셨습니다.
새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여기 데려오셨지? 왜 나를 자꾸 미시지?’
10미터 전... 하나님은 계속 새를 밀어냅니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
‘더 나아갈 데도 없는데.. 하나님이 설마 사랑하는 나를 더 미시진 않을 거야..’
드디어 벼랑 끝ᆢ
'아니야 하나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새를 아래로 밀어 내셨습니다.
새는 떨어지면서 ‘아~ 이제 죽는구나.. ‘ 하면서 엉겁결에 날개를 폈습니다.
그제서야 새는 알았습니다.
그에게 마음껏 하늘을 날아 올라 자유를 누리는 날개가 있다는 것을….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우리도 이 새처럼 주님이 주신 날개를 짐이라 생각하고 날아오르는 기쁨을 누리지못한채 버겁게 살고있지는 않나요?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무거운 짐 때문에 벼랑 끝에서 주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리고 주님만을 붙잡는다면,
그 짐은 우리를 살리는 날개가 될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치지 않는 영적 에너지를 주시는 분입니다.
독수리처럼 날개치고 올라가는 힘을 주시고, 아무리 달음박질하여도 피곤치 않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 길은 때론 가파르고 미끄럽고, 때론 넘어지고 쓰러질 수 밖에 없는 힘든 길이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다간 하나님의 사람 유석경 전도사님ᆢ
많은 분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그분의 이야기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라는 책 내용 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까?
이는 제가 암에 걸린 것 알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암이 내 생애에서 두번째로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축복은 열두 살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이고 암은 내 생애 두 번째로 큰 축복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원망해 본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제가 왜 암에 걸렸는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면 이미 신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신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신뢰합니다.
저는 암이 왜 생겼는지 모릅니다.
제가 몸 관리를 잘못했을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원인 때문이든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라면 그것이 제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습니다.
만약 절벽 끝에 우리가 서 있고 절벽 밑에 예수님이 서 계시다고 생각해보십시요.
예수님이 손을 벌리며 “내가 받아줄 테니 뛰어내려”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네 주님 저는 주님을 신뢰해요" 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 기어서 내려갑니다.
그러는 동안 피도 나고 상처도 입습니다.
사실 우리가 손을 놓고 뛰어내린다면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경험을 할 뿐 아니라 다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98%만 놓았고 2%는 놓지 못했습니다.
내가 스스로 뭔가를 해보려고 붙잡고 있었고, 제 인생을 모두 주님께 맡기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여전히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사에게 “암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절벽에서 손을 탁 놓은 저를 발견했습니다.
10년을 기도해도 안된 일이었는데 곧바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절벽에서 손을 놓으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절벽에서 비상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암이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암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고로 죽는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갖지 못한다면 회개할 시간도 없고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죽음 앞에서 준비할 시간이 있으니 정말 큰 축복이자 감사할 일입니다.
죽음을 생각해보고 계획도 하고 인사도 하고 미안했던 사람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고 고백도 하고 내 사랑을 진심으로 표현할 수 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암이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인 이유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그 동안 너무 바쁘고 힘들게 사느라 주님께 집중할 시간이 없어서 주님을 더욱 친밀하게 경험하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암에 걸린 후 신학교때보다 백만 배 더 주님과 가까워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 고통의 시간을 통해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암에 걸리기 전에도 움직이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그 때는 이 고통을 통해서 더 주님께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일이 잘되면 주님을 간절히 찾지 않고 도리어 고난을 당할 때 주님을 찾게 되고 작은 것도
주님께 감사하며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암에 걸린 후 새롭게 깨달은 것은 아버지께서 제가 고통당하는 걸 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고통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고통당하는 것을 허용하시고,
제가 고통 당할 때 저보다 더 아파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에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들 자신의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아픈 사람은 빨리 건강해지기를, 결혼 못한 사람은 빨리 결혼하기를, 자식이 없는 사람을 빨리 아이를 낳고, 사업이 망한 사람은
빨리 돈을 벌고, 공부하는 사람은 빨리 합격하거나 학위를 따길, 직업이 없는 사람은 빨리 취직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현실은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니 하나님은 날 사랑하신다면서, 해결해줄 능력도 있으시다면서 도대체 왜 내 문제를 당장 해결해주시지 않는 거야?”
정말 왜 당장 해결해주시지 않을까요?
암에 걸린 저를 위로해주기 위해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해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께서 너도 살려 주실거야”
사람들은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신 것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이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듣고 당장 가지 않으셨다는 부분에 더 주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틀을 더 유하셨고 그 사이에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장 고쳐주실 능력이 있음에도 왜 나사로를 당장 고쳐주시지 않았을까요?
◆첫째, 예수님께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나 자는 자를 깨우는 것이 똑같기 때문에
죽기 전에 빨리 가실 필요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런데 우리는 보통 거꾸로 합니다. 모든 것을 염려하면서 기도는 안합니다.
이 말씀은 무조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저는 의사가 얼마 못산다고 이야기했을 때 전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절망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 병에서 낫는 것이 필요하다면 고쳐주실 것이고, 죽는 것이 더 좋다면 천국에 데려가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고 죽어서 천국에 가도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을 병이든 것이 나에게는 절망할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도 지금은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께는 너무 쉽습니다.
능력의 예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당신자신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아뢰십시오.
아버지께서 당신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당신에게 가장 좋은지 다 아시기에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나사로를 당장 고쳐주시지 않았던
◆ 두번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예수님은 나사라가 죽게 되었을 때 그 현장에 안계신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왜 일까요?
우리의 믿음이 연약한 걸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 정도는 봐야 예수님을 믿을 정도로 연약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말씀을 믿는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 실제로는 믿지 않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9:23) 라고 하셨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걱정합니다.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의 말씀이 나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이 연약하여 우리가 보기에 불가능한 문제들이 해결되고 고난이 기쁨으로 바뀌는 것을 봐야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게 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고난을 잠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끝이 있습니다.
그 고난의 끝에는 결국 고난을 끝나게 하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의 믿음이 생기게 하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우리의 고통을 이용하시는 걸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1:33~35]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주님은 내 눈물을 보시고 내 아픔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이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눈물을 흘리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허락하시지만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고통을 안 당하도록 대신 그 고통을 지고 싶으신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착각합니다. 주님을 요술램프 지니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면 인간은 불행해집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살때에만 행복합니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유석경 전도사님의 삶을 다 닮아갈순 없을지라도 조금이나마 배우고 닮도록 노력하길..
주님의 임재 가운데 서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걱정 불안 두려움과 죄를 벗어버리고 날개를 활짝 펴고
주님을 향해 날아올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길 기도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주신 축복의 선물인 날개를 짐이라 불평불만 하지 않게 하시고, 범사에 감사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제 등의 십자가는 제 자신에게 선물이고, 스승이고, 조련사이고 날개임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날개가 때로는 무거운 짐으로 여겨질지라도, 우리의 신음조차 들으시는 주님을 믿고 주님께 부르짖으며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십자가를 지고 갈 때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시고,
불평과 원망의 마음과 목소리가 제게서 사라지게 하소서.
제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무겁고 힘들지라도 주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히려 기뻐하게 하시고, 앞으로 경험하게 될 영적 부활과 영광을 바라보며 독수리 날개치듯 날아올라
자유와 참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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