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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 총리가 사임한 뒤에도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자기자신의 일에 열중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정치적 상황은 이전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흄 총리의 사임과 함께 그가 위태롭게 진정시키던 근왕당내 파별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 갈등은 근왕당의 분열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연결되고 말았다.
"해럴드 맥밀런과 레지널드 모들링*. 우리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잉글랜드 통합당의 창당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잉글랜드는 더 이상 현상 유지에만 머물러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잉글랜드도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이러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 Reginald Maudling(1917년 3월 7일 ~ 1979년 2월 14일), 현실에서는 보수당 소속 정치인으로 2차 맥밀런 내각에서 식민장관을, 에드워드 히스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해럴드 맥밀런 재무장관은 레지널드 모들링 원내대표와 함께 근왕당 내 개혁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을 데리고 나가 보수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 빅 텐트 정당인 잉글랜드 통합당을 창당했다. 이들은 다가올 총선에 출사표를 내고 근왕당에 대한 전쟁을 선언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국가전선의 창설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더욱 강력하고 위대한 잉글랜드를 위해 저희에게 표를 주십시오."
물론 근왕당 강경파의 리더인 아서 케네스 체스터턴 내무장관도 강경파들과 함께 근왕당을 탈당해 파시즘 정당인 국가전선을 창당했다. 근왕당에 잔류한 온건파 정치인들은 탈당해 딴집살림을 차린 이들을 비난하고선 저들에 대항해 잉글랜드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다가올 8월 총선은 이제 근왕당(온건파, 개혁파, 강경파)과 일부 무소속의 싸움이 아닌, 근왕당 VS 잉글랜드 통합당(맥밀런파&자유파) VS 국가전선의 3파전으로 자리잡았고. 근왕당의 분열은 '왕실 이혼'이란 별명이 붙게 되었다.
오랜시간을 동료로 지낸 이들이 이제는 근왕당과 통합당, 국가전선으로 갈라져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게 되었다. 근왕당 내의 당직자들과 정치인들은 이제 근왕당에 남을 것인지, 아님 통합당에 합류할 것인지에 대해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런데 왜 국가전선이 없나고? 그 이유는 체스터턴은 정계에서 완전히 왕따취급을 당했고, 이들의 대의에 동참하는 이들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같이 일했던 윌리엄, 캐롤, 앤 등 몇몇 동료들이나 친하게 지내던 당직자들인 데이비드, 마크, 필립, 엘리스, 조지 등이 근왕당을 탈당해 통합당으로 빠져나갔다. 나도 근왕당 잔류나, 통합당 합류냐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했고.
이러한 왕실 이혼의 혼란 속에서 신임 근왕당 당수가 된 마거릿 대처 대표는 근왕당 내의 혼란을 잠재움과 동시에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나섰다. 그리고 나도 결정을 내렸다. 나는 근왕당에 남기로 결정했으며, 추가로 내 인생에서 아주 주요한 선택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전부터 조금씩 고민하던 거였지만.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네."
나는 이번에 다가오는 8월 총선에 근왕당 후보로 입후보하겠다고 대처 당수를 만나 말했다. 그녀는 나의 결정에 놀라워하는 얼굴을 한 뒤, 나에게 되물었다.
"흐음. 출마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선거 준비와 운동이 힘들텐데. 감당할 수 있겠나?"
"전 이미 굳게 다짐한 상태입니다. 그정도는 각오했습니다."
"그런데 자네의 경력이 좀... 걱정되는군. 대학은 프린스턴을 나왔지만 그것도 자네 세계에서 한거지 여기에서 졸업한게 아니잖나. 그리고 전임 총리의 비서로서 일하고, 국가 통합을 호소하는 캠패인을 주도했다는게 전부인데. 이정도론 당선되기 어려워. 그래도 출마하겠나?"
"괜찮습니다. 전 이미 모든걸 감수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녀는 몇 초간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고 말했다.
"어디에 출마할건가?"
"런던에 출마하고 싶습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이니까요."
"런던이라... 알겠네. 자리가 있으면 연락 주겠네."
대처 대표의 말을 듣고 나는 대표실을 나왔다. 그리고 2일 뒤 연락이 왔다. 공천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기뻐서 집 안을 폴짝 뛰며 돌아다녔고, 바로 선거관리위원회로 가서 후보 등록을 한 뒤 선거 운동을 준비했다. 내가 공천을 받은 지역은 흑인, 화교, 인도계 등 유색인종 비율이 높은 지역이었다. 아주 적은 수지만 한국계와 일본계도 거주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저항군의 수괴이자 잉글랜드를 내전에 빠뜨린 주범인 클로드 오킨렉에 대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말은 제대로 해야지. 누가 잉글랜드를 내전에 빠뜨렸다는거요? 그게 당신들의 자기소개라면 맞는 소리겠지만."
옥스포드 재판의 첫번째 대상자는 저항군의 지도자 클로드 오킨렉 원수였다. 그는 검사들의 질문과 청중들의 비난에 답했다. 그러나 그의 죄는 그정도로 덮어지지 않을 정도로 명명백백했기 때문에(협력정부의 기준에서), 재판부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었다.
"아니, 왜 저 사람이 저기서 나와?"
그리고 정부는 좌익 계열 저항군의 지도자인 빌 알렉산더*를 찾기 위해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국경지대를 샅샅히 뒤졌지만 찾질 못했다. 그러던 중, 잉글랜드인들은 그가 미국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았다. 잉글랜드인들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TV에 집중했다.
* Bill Alexander(1910년 6월 13일~2000년 7월 11일), 영국 공산당의 일원으로 스페인 내전 당시 국제여단에 동참했고. 그 후에는 샌드허스트에 입학해 장교로서 복무했다.
"저 사람 말려! 어서!"
그러던 중 재판장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재판부는 클로드 오킨렉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그가 갑자기 일어나 몸에 숨겨온 독극물을 먹고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의 유언은 "신이여 여왕 폐하를 지켜주소서"가 전부였다고 한다.
"여러분! 맥없이 밀려서 런하는 맥밀런 당수에 비하면 대처 잘하시는 대처 대표님이 잉글랜드의 총리에 걸맞지 않습니까!"
"옳소!"
마거릿 대처 대표가 왕실 이혼으로 혼란스러운 근왕당을 하나로 결집시켜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만든 뒤에야 근왕당은 본격적으로 총선에 임했다. 곳곳에 근왕당 후보들의 현수막과 포스터가 걸리고, 유세 차량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근왕당과 각 지역구의 후보들을 선전했다. 나도 곳곳에서 마이크를 들고 가두 연설을 하거나 지역구민들을 만나며 선거 운동을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려준다는게 좋았다.
선거 운동을 끝낸 후에는 하원의원에 알맞은 매너나 말하기 등을 배우기 위한 과외를 받았다.
"그 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잉글랜드에서 매국노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었을겁니다."
빌 알렉산더는 미국 방송에 나와서 자신이 어떻게 잉글랜드를 탈출했는지 썰을 풀기 시작했다. 그가 미국으로 무사히 망명할 수 있던 이유는 국가진보당 좌파의 수장 거스 홀의 도움을 받아 떠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협력정부의 일원들은 인터뷰를 보고 길길이 날뛰었다.
그와중에 저항군 코만도의 지도자 데이비드 스털링은 스코틀랜드의 도움을 받아서 잉글랜드를 탈출했다. 수비대와 수색대를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국경에 평소보다 많이 배치했는데 빠져나가다니. 참 신촐귀몰한 자였다.
"역시 이탈리아 놈들은 싸움을 못해. 그건 자명한 사실이야."
"싸움 못하고 나발이고. 왜 남의 신성한 영토에서 싸우고 (검열)이야! 그리고 니들이 뭔데 우리 영토를 할양한다 마다임?"
"뭐~어? 군없찐은 좀 짜져있지?"
알제리 전쟁의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이베리아 연방이 지원하는 알제리 군사사령부가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는 알제리 군사 구역을 알제리에서 몰아내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베리아에 감사의 뜻으로 오랑 주변 지역을 이베리아에 할양한다고 선언했다. 물론 프랑스국 정부는 항의했지만, 이들은 콧방귀만 뀌면서 무시로 일관했다.
"저희 근왕당이 지난 20년간 이룬 성과들을 보십시오. 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저들이 이런 성과들을 이룰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저들은 이것도 말아먹을 것입니다!"
근왕당의 다음 선거 전략은 20년간 근왕당이 이룬 성과들과 선례를 선전하는 것이였으며, 통합당과 국가전선이 이러한 길을 따라가지 않을 거라는 주장을 퍼뜨리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효과적으로 작용해 근왕당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클로드 오킨렉의 다음으로 재판을 받을 자는 저항군의 경제 총책인 해럴드 윌슨이었다. 나는 그의 재판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운 좋게 얻었는데. 그는 자신이 공산당원이 아니며,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하려는게 어떻게 반역 행위냐고 열렬한 웅변을 쏟아놓았다. 허나 그러한 것들로는 전세를 역전시키기엔 부족했으며, 재판관 전원의 만장일치로 윌슨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그에게 질문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얌전히 경제학자로 살 것이지. 왜 저항군에 가담해서 목숨을 버리는거야?"
윌슨의 사형은 판결 이후 며칠 뒤에 집행되었다. 그는 사형 직전에 노래를 불렀다.
https://youtu.be/N5z-ds-bkhg
그가 부른 노래는 적기가였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조금 지나지 않아서 끊기고 말았다. 윌슨은 다른 저항군 가담자들처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놈은 우리의 반역자니 송환해주셈."
"엿이나 먹으렴, 이 자식아."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에 스털링의 송환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스코틀랜드는 스털링의 송환 요구를 거부했다. 이걸 들은 잉글랜드 정부는 나중에 스코틀랜드를 손봐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해,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비상 군사정부를 조직했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정부는 비상 정부로의 역할만을 담담할 것이며 조국의 위기가 끝나는대로 민주주의를 회복해 문민 정권에 정권을 이양하고 군 본연의 업무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남미에서 온 뉴스가 신문 1면을 채웠다. 내용은 브라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과 부통령을 실각시킨 뒤 군사정부를 조직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브라질 시민들은 쿠데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지만 군부는 총칼을 앞세워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브라질의 민주주의에는 먹구름이 가득 끼었다.
클로드 오킨렉, 해럴드 윌슨에 이어서 재판을 받을 이는 저항군 왕당파의 지도자 조지 젤리코* 백작이었다. 그러나 그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잴리코 재판은 결석 재판으로 이루어졌다. 그를 찾기 위해 경찰들이 잉글랜드 전역을 아주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나 사람은 커녕 흔적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 George Jellicoe(1918년 4월 4일 – 2007년 2월 22일), 존 젤리코의 아들로 현실에서는 귀족원 의원으로 지냈으며 에드워드 히스 내각에서 국새상서(왕실 국새 관리인)으로 지내다가 매춘부 스캔이 터지면서 공직에서 사임했다.
"이렇게 발견될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며칠 후 젤리코가 검거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살아있는 상태에서 잡힌 것이 아닌, 어느 시골 펍의 카운터에서 그의 친필 유언장과 함께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비록 그가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죽은 자를 욕보일 수는 없었으니 장례식을 치뤄주었고, 그의 유언대로 부친의 옆에 매장되었다.
"차라리 통합당에 패배하고 말지, 체스터턴이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돼!"
그러던 와중에도 선거는 한창이었고, 근왕당은 체스터턴의 국가전선이 승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잉글랜드 통합당과 이 문제에 한해서 협력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두 정당이 지금은 서로를 욕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공동의 적이 있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욱 많은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것이라 믿습니다."
마거릿 대처와 해럴드 맥밀런은 근왕당이 소유한 런던 외곽의 한 연립주택에서 만나 국가전선에 대한 문제에서는 두 정당이 서로 협력하며, 체스터턴에 대항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휴전한다는 합의를 맺었다. 체스터턴이 사라지기 전까지라는 전제 조건 하에.
https://youtu.be/nCKz8x48hXw
"닉슨 이 인간은 여기서도 도청으로 인해 사임하는구만. 달라진거라곤 포드 대신 JFK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 뿐이지."
내가 사무실에 출근해 오늘 배달된 신문을 보니, 대서양 반대편인 미국에서 온 뉴스가 1면을 장식했다. 기사의 내용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국가진보당의 경쟁 후보들을 도청하다가 딱 걸려서 사임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워냑 멀리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왜 손을 더럽혀서 이 사단을 내는거죠? 손을 깨끗하게 유지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건데 말입니다."
그리고 다음 장을 넘겨보니, 그 면에는 내전이 끝난지 꽤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저항하는 저항군 잔당이 남아있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외국으로 도주해서 잡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수의 잔당을 생포하고 남아있던 무기와 물자를 압수했다는 것이다. 기사의 아래쪽에는 아서 해리스와 킴 필비를 잡지 못해 아쉬웠다는 수색조 대장의 인터뷰도 실려있었다.
"지난 20년간 잉글랜드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오고 내전에서 조국을 구해낸 정당이 어디입니까! 다시 한번 저희 근왕당을 밑어주십시오."
근왕당의 다음 선거 전략은 왕실 이혼으로 인해 흩어진 근왕당의 지지 기반을 회복하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것이었다. 대처 당수는 지지 기반을 회복하기 위해서 잉글랜드 전역을 돌아다니며 근왕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으며, 나 또한 지역구 내에 있는 근왕당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었다.
"잉글랜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다가오는 총선에서 근왕당에 투표해 주십시오!"
이제 옥스포드 재판도 종장에 다달았다. 마지막 대상자는 의회 내부에서 암약하며 저항군에 협력한 두 명의 하원의원이었다. 그리고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잉글랜드 전역의 감옥과 구치소가 한계에 다다르며 치안당국이 어려움을 호소하자, 재판이 마무리되어갈 쯤에 정부는 법정에 저항군의 수뇌부 또는 고위층에 속해있었거나. 내전 이전, 또는 내전 당시 매우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 않은 단순 협력자, 가잠자에 대해서는 벌금 정도의 가벼운 처벌이나 무죄 등으로 죄를 사해주라고 지시했다.
그 두명의 하원의원이 모두 무죄 처벌을 받게 되자 옥스포드 재판은 끝이 났다. 이 두명은 앞으로 계속 살아갈 수는 있게 되었지만 남은 인생을 평생 일반인 1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옥스포드 재판이 끝나고, 총선 또한 막바지에 다다랐다. 근왕당의 마지막 선거 운동은 런던, 서머싯, 글로스터셔 등 근왕당의 세가 강한 남잉글랜드의 보수적인 지역들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이들 지역들을 주로 공략한 것에 대한 성과는 금방 나타나, 남잉글랜드 지역에서 근왕당 지지율이 엄청나게 상승했다.
그리고 멕시코에서도 소식이 들려왔는데. 루이스 에체베리아*가 멕시코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에체베리아 대통령은 선거 당시부터 멕시코의 주권을 필사적으로 지키겠다는 것을 끊임없이 내세웠고, 이를 이제 행동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 Luis Echeverría(1922년 1월 17일 ~), 맥시코의 제 50대 대통령. 대통령 재임시기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지원했다.
"닉슨은 도청 대상이 달랐을뿐 여기서도 도청으로 인해 사임하고, JFK도 암살당하네. 비록 암살자가 미국인에서 가이아나인으로 바뀌었을 뿐이지만."
변함없이 아침에 일어나 선거 사무실로 출근해서 배달온 오늘자 신문을 보니 1면에는 큰 글씨와 함께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댈러스에서 암살당했다는 기사가 쓰여 있었다. 기사를 계속 읽어보니 케네디 암살 이후 헌법에 따라 새 대통령으로는 존 매코멕* 하원의장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닉슨 사임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케네디 암살이란 대형사고가 미국을 덮치면서 마국 사회는 심각하게 분열되었으며, 2차대전 종전 이후 최악의 상황이 미국에 닥첬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과연 미국이 이 위기를 이겨내고 '"Make America Great Again'을 이뤄낼 수 있을까?"
* John McCormack(1891년 12월 21일~1980년 11월 22일), 현실에선 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제45대 미국 하원의장을 역임했다.
이제 준비한 선거운동은 모두 끝이 났고, 투표 당일이 되었다. 잉글랜드 전역에서 수백만명의 투표인들이 투표소로 향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했으며 한표 한표가 서서히 투표함 속에 싸여갔다. 특히 이번 선거는 비공개로 개표되던 이전과는 달리 TV로 생중계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이전 선거들에 비해서 더욱 투표율이 높았다.
그리고 선거 종료 시간이 다가오자 근왕당의 당직자들과 후보들은 각자의 사무실, 또는 런던에 있는 근왕당 당사에 모여 TV에서 나오는 선거방송에 집중했다. 모든 이들이 근왕당의 승리를 자신했다. 왜냐하면 선거 전날 나온 여론조사에서 근왕당이 통합당과 국가전선에 월등히 앞섰으며, 대처를 총리로 선호한다는 여론이 맥밀런, 모들링, 체스터턴에 비하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거 결과는....
"이번 선거 역시 근왕당의 단독 과반으로 나왔습니다. 변함없이 근왕당이 다우닝 가를 지킬 수 있을것이라 예상합니다."
당연하게도 근왕당의 승리였다. 출구조사 결과에서부터 근왕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결과가 발표되자 당사는 환호성에 뒤덮였으며, 개표가 진행될수록 출구조사 결과보다 근왕당이 앞서자 근왕당 당사는 행복으로 가득찼다. 그에 비해 통합당과 국가전선 당사는 침묵과 절망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되었냐고? 나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귀중한 한 표를 주신 모든 유권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5년간 지역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번에 저에게 표를 주시지 않은 분들도 다음 선거에서는 저를 찍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개표 동안 결과가 몇 번이나 바뀌는 접전이 이어지면서 마지막에서야 상대와 401표 차이를 벌려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내 앞에 있는 기자들의 질문 세레와 카메라의 플래시를 모두 받아주며 당선 소감을 밝혔으며. 나는 당당한 웨스트민스터의 일원이 되었다. 눈을 뜨니 아무것도 모르는 장소에 떨어진 20대 아시아계 청년이, 이제는 지역구 하나를 대표하는 하원의원이 된 것이다.
근왕당의 승리와 함께 대처 당수 또한 잉글랜드 왕국의 총리가 되었다. 대처 총리는 당사에 모여준 기자들에게 가벼운 감사 인사를 한 뒤 승리 소감과 연설을 한 뒤 자택으로 돌아가 다우닝 가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다우닝 가에 입성한 모든 총리는 버킹엄 궁에 들려 왕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에드워드 8세는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시종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말했다.
"폐하, 제1당 당수 마거릿 대처 의원입니다."
그 말과 함께 대처 대표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폐하."
그 말과 함께, 대처는 왕에게 한쪽 무릎을 굽혀 인사를 하고 일어섰고. 왕은 그녀에게 답했다.
"근왕당이 다시 한번 국민들의 선택을 받았구려, 축하하네. 나는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으로서 그대에게 내 이름으로 내각을 꾸리는걸 윤허하오."
그 후 에드워드 8세와 마거릿 대처 두 명은 선거 결과와 선거 당시 했던 활동. 그리고 내각 구성원 등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https://youtu.be/7z-cRevUOPo
화창한 월요일, 총선에서 선출된 464명의 하원의원들은 모두 웨스트민스터에 모여 의회 개원에 참석했다. 물론 나도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고 웨스트민스터에 등원했다, 나는 다른 의원들에 비해 빨리 온 덕분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다른 의원들도 한두명씩 도착하며 의사당 안의 자리들이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다른 의원석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의원석들을 돌아보면 흑인이나 인도계는 약간 보이는데 아시아계(정확히 말하자면 동아시아)는 나 혼자인것 같네."
그러던 중, 옆에 앉은 동료 의원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거 아나? 마이클? 자네가 이번 의회에서 가장 젊다는걸?"
"그래요? 나 말고도 다른 젊은 의원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요."
"자네는 26살이잖나, 저번 의회에서 가장 젊은 의원은 32세의 윌리엄 버튼 의원이었다네."
"변화와 개혁을 부르짓던 통합당에는 20대 의원이 좀 있을 줄 알았는데. 거기도 없나보네요?"
"통합당? 거기는 말로만 변화를 부르짓지. 변화는 사실상 거의 없어, 저기 보이나? 저쪽에 앉은 로버트 챈들러 의원이 통합당 최연소 의원이라네. 나이는 31세고."
그렇게 그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하원의장이 출석해 의장석에 앉았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신임 총리입니다!"
그 말과 함께 의사당의 문이 열리며 신임 총리가 된 마거릿 대처 대표가 의사당 안으로 들어왔다. 또각또각, 그녀의 하이힐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의석 사이에 있는 단상 앞에 서서 자신이 가져온 종이를 잠시 정리한 후. 심호흡을 한 뒤, 그녀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일단 이 자리에 모여주신 모든 의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포함한 464명의 하원의원들은 지난날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잉글랜드는 지난 20년간 수많은 위기를 겪어왔고. 그러한 위기들을 모두 극복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앞에는 아직도 산적한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과거의 방식입니다.
20년이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이제는 낡아서 전부 녹이 쓸어버린 구시대의 방법을 사용하며 잉글랜드가 가진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저해하고 묵혀두고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기존에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아주 새로운 방식을 사용해 이 나라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입니다.
시장은 앞으로 더 자유로워질 것이며, 그만큼 다양한 기회들이 생겨날 것이고, 경쟁 또한 더욱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와 경쟁에서 떨어진 이들에게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기술이 없는 자들은 새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취업의 기회가 없으면 새로운 기회들을 창출해 지방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희망이 없이 절망에 빠진 이들은 새로운 희망이 다시 마음속에 가득 차게 되도록 도와 잉글랜드를 위해 힘차게 일할 역군으로 다시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앞으로 잉글랜드가 갈 방향은 단 세 단어로 요약드리겠습니다. 자유 시장, 규제 완화, 작은 정부. 우리의 방향은 그 어떠한 시련이 오더라도 굽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잉글랜드를 굴복시키려는 이들에게 이 자리에서 당당하게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옳은 길로만 갈 것입니다. 그대들이 아무리 방해를 하더라도, 우린 다시는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분열이 있는 곳엔 화합을, 오류가 있는 곳엔 진실을, 의심이 있는 곳엔 믿음을. 그리고 절망이 있는 곳엔 희망을."
그녀의 연설이 끝나자 모든 근왕당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를 흔들며 환호했다. 물론 나도 그랬고. 그러나 통합당 의원들과 국가전선 의원들은 그냥 뚱~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마거릿 대처, 철의 여인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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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화가 좀 어색하거나 허술하다 느껴지신다면 제 필력이 많이 부족해서 염치불구하지만 여러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