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화폐와 무역을 통해 소련을 달러화 제국의 판도에 편입시키려던 미국의 꿈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냉전의 시대가 막을 열었다. 장장 40년 넘게 지속된 이 냉전에 무려 8조 달러가 낭비되었다. 또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백만 가구 역시 이산가족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소련은 미국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달러화 제국’에 대항하는 ‘루블화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 p.177
20세기의 패자 미국의 어려움은 경제에 있다. 또 유럽의 위기는 정치에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을까. 과거 역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와 비슷하다. 과거에는 원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돈 관계처럼 가깝고도 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60여 년 동안의 경제 발전 상황을 살펴보면 ‘전반전’에는 일본이 앞섰다. 그러나 ‘후반전’에는 중국이 위력을 과시하면서 기염을 토하고 있다. 지금은 쌍방의 실력이 거의 비슷한 상태에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최종적으로 일본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면 일본이 20여 년에 걸친 경제 침체를 극복하고 다시 기적을 발휘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이렇게 될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붙는다. 그만큼 중국의 실력이 커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 p.318
유럽 통합은 지난 반세기 동안 간난신고를 겪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 설립에서부터 ‘베르너 플랜’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스네이크 체제 가동에서부터 유럽통화연맹 출범까지, ‘들로르 보고서’에서부터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이르기까지, 유럽통화단위(ECU) 제정에서부터 유럽중앙은행 설립에 이르기까지 격동기의 모든 사건을 체험했다. 그러다 마침내 유로화라는 경제적 통합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유로화 출범도 유럽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초래했다. 유로화가 당면한 위기는 이른바 ‘유럽 단일 재무 당국’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 재무부를 창설하지 않는 한 해결할 방법이 없다. 또 ‘유럽합중국’을 만들지 않는 한 유럽 통합의 궁극적인 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 유로화는 지금도 진화 중에 있다.
--- p.394
소련과 미국이 무너지자 중국은 졸지에 스승을 잃은 학생처럼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담했다. 중국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글로벌화 조류의 선두에 서서 리더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운명을 부여받았다. 경기 침체의 소용돌이에서 허덕이는 미국, 채무 위기로 몸살을 앓는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무역 상대국들까지 전 세계가 중국만 바라보고 있다. 중국이 호쾌하게 돈주머니를 열고 재차 경기를 부양시켜 도탄에 빠진 세계를 구제하기만 기다리는 형세가 된 것이다. 중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p.530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인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은 각자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중국의 최대 약점은 경제, 일본의 최대 약점은 정치, 한국의 최대 약점은 군사 분야에 있다. 3개국의 약점은 모두 미국으로 인해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일본, 한국이 뭉친다면 각자의 약점 따위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 한중일 삼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공동 시장을 결성해 유럽과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 이것이 모든 아시아 국가들의 소망이 아닐까 싶다.
국가 간 분쟁은 결국 이익 다툼이다.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 제로섬 게임을 하느니 차라리 기존의 이익을 함께 공유하는 편이 낫다. 덩샤오핑은 일찍이 “주권 문제는 토론을 보류하고 공동 발전을 도모하자”는 이념을 제시했다. 이는 아시아 각국의 근본 이익에 부합하는 전략적 원칙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 이념을 구체화하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https://youtu.be/Xn0CeDhhEX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