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가는 길이 여러갈래이겠지만 A1 고속도로를 따라
대형 리무진을 타고 국경을 넘어갔다.
국경지대를 통과하는 절차는 운전기사가 버스의 시동을 끄고 혼자 내려서
(우리나라의 경우 톨게이트 사무실 직원을 잠시 만나는 정도인 5분 가량 ) 수속을 밟으면 그만이다.
총을 든 군인이나 바리케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유럽 국가들은 이렇게 마음을 터놓았으니 세계사람들이 몰려가서 여기 저기를 뛰어 다니며
관광을 하며, 돈을 쓰며 종횡무진해도 불편함이 없도록 해 둔 것이 너무 부럽다.
이미 EU국가들은 이렇게 국가와 국가간을 도시에서 도시로 넘나드는 정도의 절차만 거치면 된다.
화폐 또한 유로화를 만들어 통용하고 있는데 단지 영국은 파운드를 고집하고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동족임에서 처절한 상잔의 역사에 이어 아직도 휴전선을 치고,
뻐뜩하면 불바다 운운하며 공포분위기 남발에다 남북화해를 논할 때도
진지하게 실마리를 하나 하나 풀어나가는 게 아니라 밑도 끝도 없는 거친 분위기를 지속하고,
약속을 번복하고, 이산가족의 여망을 수시로 저버리니 아직 숨이 막힐 지경 아닌가.
스위스로 접어들자 이내 호수가 보이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산자락마다 안개가 뿌옜을 뿐 아니라 산 정상쪽에서 눈이 녹은 물이 내려와
개울물이 흘러 넘쳤고 산비탈마다 폭포같은 물줄기가 장관이다. 뽀얀 우유빛을 하고 흐르는 걸 보면
눈의 원색을 보는듯 시원하다. 안타까운건 시계가 좋지않아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없었다는 것.
스위스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쳐놓은 정도의 면적인데, 언어는 독일어(65%), 불어(18%),
이태리어(10%), 로만어(1%) 등 4개 언어를 사용하고 인구도 720만명이다.
그리고 자그마치 호수가 1,500여개나 된다니 산과 호수의 나라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찾은 날은 다행인지 요행인지 17Km나 되는 고타르도 터널을 가로질러 인터라켄으로 가면 빠른데
그 터널을 보수중인지 교통을 통제하여 산악도로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궂은 날씨에다 차창 너머로 찍은 탓에 사진이 선명하지 못하다.
위 사진은 브리니그 고개를 넘어 하산길에 찍었다. 터널을 이용하지 못하면 우리의 목적지인 인터라켄은 당연히
이 길 밖에 도리가 없다. 높은 산을 넘어야 하니 굽잇길은 어쩔 수 없는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마치 뱀이 기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어도 관광에는 오히려 여유로움이요 재미다.
위 사진에서 처럼 중간 중간에 보이는 지붕 아닌 지붕을 만들어 놓은 것은 폭설에 도로가 막히지 않게 대비한 것 같다.
긴 터널을 통과했더라면 올 수도, 볼 수도 없었을 경관이니 운수가 좋은 덤이다.
스위스는 요들송이 그네 특유의 목가적 민속음악이다. 태동은 산악지대 주민들 간에 의사소통 수단에서
출발했다고 들었다. 내 개인 느낌으로 요들송은 마치 종달새나 바지런한 숲새들의 지저귐을 닮은 듯 여긴다.
이 높은 지대엔 우리네처럼 보리밭이 있을 리 없고, 지저귈 종달새가 살 리 만무하다. 그러하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 몫을 하는구나 싶다. 요들송은 늘 도입부와 마침 부분은 별 의미 없는 구빗길 소리를 내니 말이다.
~~ 요를레이 ~~ 요이오이 ~~ 이히 ~~ 등 등
이곳 스위스의 가옥 지붕은 모두'ㅅ'자 모양이라 더 멋지다. 눈이 많이 오는 고장이라 그러할 것이다.
깊은 산자락을 지나면서 가파른 산정상 쪽을 올려다 보면 눈 덮힌 설산이 보인다.
홀로 '7인의 신부'라는 뮤지컬 영화를 떠올려 봤다. 산속 7형제가 읍내에 내려와 동네 처녀들을 봇삼해 가서
아내로 삼는 이야기 아닌가. 이를 추격하던 처녀 아버지 등 동네사람들은 눈사태로 더 이상 접근을 못하고...
이듬해에 그곳을 찾아냈으나 이미 아이를 낳고 사는 뮤지컬 영화임을 다 아시리라.
굽이굽이 내리막길을 달리다보면 좌측에 거대한 폭포가 걸린 마을 마이링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사진의 밑자락엔 비행장 활주로로 판단되는데, 비행장의 용도는 군사용인지 인명구조용인지 잘 모르겠다.
견고성이나 울타리가 없는 것을 보면 군사목적용이라기 보다 민수용 간이 비행장 같다.
위 사진은 라이헨바흐 폭포만 크게 확대해 본 것이다. 여기서 명탐정 셜록 홈즈가 죽었다.
사진상의 느낌보다 실제로는 규모가 큰 폭포다.
산이 높고 골이 깊으니 폭포는 저절로 걸리는 것이리라.
첫 눈에 볼땐 규모가 크고 수량 또한 거대하여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별로 크지 않은 자그마한 마을 곁에 저렇게 큰 폭포가 있으니 한 폭의 그림이다.
나는 겨우 설악산 대승폭포 정도만 본 지라 감탄할 수 밖에... 곁에 사는 사람들은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만 들어도 여름엔 냉기를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햇살이 고운날엔 무지개가 걸리고
흩뿌리는 물방울로 더위도 식히고 마음도 식힐 터이니 아마 인근엔 범죄자도 없을 법 한데.....
다음에 기회되면 그곳 마을 이장에게 물어봐야겠다.
물줄기를 사진에 멋지게 담고 싶었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버스안에선 쉽지 않았다.
멀어지는 절경에 대고 아쉬운 감탄사만 남겼다.
이 폭포를 거명하면 간과할 수 없는 스토리가 있다. 바로 명탐정 '셜록 홈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 추리 소설가 코난 도일의 소설에 등장하는 명탐정이 셜록홈즈 아닌가.
코난 도일은 1876년 에든버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 후 동 대학 부속 병원에 근무하게 되면서
외과 과장 조셉 벨 박사의 지도를 받았는데, 그의 예리한 관찰력과 추리력에 크게 매료되어
'조셉 벨 박사'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탐정 즉 셜록홈즈가 탄생한다.
소설 속 셜록 홈즈가 ‘범죄의 왕’ 모리아티 교수와 격투를 벌이던 중
홈즈가 목숨을 잃었던(후에 다시 부활)곳이 바로 라이헨바흐 폭포다.
이곳은 홈즈가 최후의 장소로 등장하기 전까지 별 볼일없는 도시였단다. 마이링겐이 소설에 등장하게 된 계기는
코난 도일의 별장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저자인 자신보다 홈즈에게 쏟아지는 인기가 불만스러워 마이링겐에
와 있던 중 근처에 위치한 라이헨바흐 폭포를 발견하게 되고 포효하는 물줄기, 그칠 줄 모르는 소용돌이와 굉음은
홈즈의 최후를 장식할 마지막 무대로 더할 나위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선지 작가는 여기서 홈즈의 죽음을 맞게하고,
이 지명이 거명되자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독자들은 실제 상황인양 마이링겐으로 몰려들었다 한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겨울연가'드라마 촬영지인 춘천과 남이섬 등지에 국내인사는 물론
일본, 중국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과 비교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저 작은 마을에 기차역이 생겨나고 곳곳이 셜록 홈즈 투성이란다. 셜록 홈즈 호텔, 셜록 홈즈 펍,
셜록 홈즈 동상, 셜록 홈즈 박물관 등. 그래서 영국에 있는 셜록 홈즈 재단의 공식적인 인정하에 1991년 문을
열었단다. 절묘한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얻어 명작을 낳고, 그로인해 다시 인간에게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다.
나도 여행 인솔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스위스를 한 번 와 보고서 자연경관이 너무 좋아 눌러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 생각처럼
늘 흥겨운 것 만은 아니라 보이는 것이 산이고 호수라서 우울증 환자가 많단다. 우리 말 중에 기분이 극치에 달하면 하는 말이 있다.
"좋아 죽겠다'라는. 그 말이 어쩌면 이곳 사람들에게 생겨나는 심리적 전환인 지도 모른다. 간간이 개 짖고 닭 울고, 지지고 볶는
생활이 사람 사는 맛인지도 모르리라.
보이는 것이 산이요, 맑은 시냇물이니 이방인에게는 탄성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우리네 시골의 경우 초가지붕을 벗겨낸 지가
몇 십년 되었는데 이곳 산자락마다 얹어놓은 건물들은 단층이 없다. 대부분 비탈지형이라 조망 또한 좋다. 모두가 풍광이 좋은
산자락 아니면 물빛 고운 호수옆이니 참. 그래서 세계적인 부호들이 별장을 짓고, 스위스를 찾게 마련인 복지(福地)인 것이다.
호숫가에 사는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발목도, 가슴속도 시원한 호수에 쉽게 담글 수 있으리라. 그래서 저토록 많은 이들이
물빛에다 시름을 씻으며 한가로울 것이다.
산자락이 저리도 평화로우니 얼룩송아지나 양떼가 보여야 마땅할 것이다. 내가 간 날 목동은 물론 양떼도 볼 수 없었다.
더운 시간대라서 일 것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이곳 스위스 인터라켄역까지 우리가 탄 버스는 4시간 이상을 거침없이 달려왔다.
그날 알프스는 비경을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지 비를 뿌리고, 안개를 둘렀다.
버스로 이동한지라 세세하게 스위스를 맛나게 기록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사진 위에다 요들송을 얹어 약간의 분위기를 낼 수 밖에...
글 사진/ 東川 이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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