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클어진 군상들이 화면처럼 겹쳐와서
간밤에 쏟은 소식 신문귀를 들춰가면
레일 위 달리는 하루 바코드를 삼킨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상록마을 우성아파트 312-701
해춘(解春)
김무성
생강나무 꽃망울에 햇병아리 놀다 갔나?
재잘재잘 까르르 봄물은 신명났고
덩달아 포로롱포로롱 멧새들도 달뜨고.
충북 충주시 용산동 1678 주공아파트 2단지 207동 1001호
<뽑는 글>
대체로 시의 경향에서 볼 때 사물시와 관념시로 구분지어 생각할 수 있다. 사물시라는 것은 어떤 사상이나 의지를 배제하고 사물의 이미지를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의 제시를 통해 선명함과 생동감을 보여 주려고 하는데 있는 것이다.
반면, 관념시란 사물의 이미지보다는 어떤 관념의 세계를 나타내어 독자를 설득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는 시다. 즉 인생이나 인간이 처한 세계를 어떤 철학적인 관념으로 파악하여 표현한 시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지보다는 관념의 독백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박솔아의 <지하철>과 김무성의 <해춘>은 신인 답지 않게 앞의 사물시의 예시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박솔아의 <지하철>은 하루를 분주하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힘겹고 어려운 삶의 모습을, 비좁은 지하철 안에서 신문을 보면서 희망찬 하루를 설계하고 있는 작품이다. 초장 중장 종장에서 보여 주고 있는 보다 선명하고 생동감 있는 감각적 표현이야 말로 시조가 자꾸 새로워지고 크게 발전하고 있는 징후로 삼을만 하다. 다만, '바코드'란 용어가 거부감을 갖게도 한다.
김무성의 <해춘>은 정형이라는 시조의 형식에서 오는 구속성을 눈부실만큼의 영롱한 언어와 동심의 세계에서 발현되고 있는 동화적 수법을 통하여 완전히 자유롭게 극복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감상적 서정에서 벗어나 신선한 새로운 국면을 보여 준다는 데 큰 의의를 갖게 한다.
첫댓글 아주 좋네요..참신하고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