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을 잊어버려야 수필이 창작문학으로 거듭 날 수 있다 / 이 관 희

[오기환]

피천득을 잊어버려야
수필이 창작문학으로 거듭 날 수 있다
- ‘｢인연｣은 수필이 아닌 소설이다’의 문학 이론적 의미

이관희(본지발행인․문학평론가)

  다음 인용문은 <서울신문> 인터넷 판에서 복사 해 온 글이다. 문학평론 행위에 목적이 있는 복사․전재이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다음은 ‘Daum’에서 카피한 기사임.

  [김문이 만난사람] ‘수제자’ 석경징 서울대 명예교수, 스승 피천득을 말하다.

  “아사꼬 사랑하고 질투한 청년, ‘영원한 소년’인 선생님과 달라. 출판사가 ‘인연’ 수필로 펴내.”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5월 속에 있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금아 피천득이 생전에 읊었던 ‘5월’이라는 시의 한 대목이다. 금아는 ‘영원한 5월의 소년’이라고 할 만큼 5월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1910년 5월 29일 태어나 2007년 5월 29일 97세에 땅에 묻혔을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야.”라고 늘 말했다.

  금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소설가 최인호씨는 “전생의 업도 없고, 이승의 인연도 없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하늘나라의 아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고(故) 박완서씨는 “그분은 연세와 상관없이 소년처럼 무구하고 신선처럼 가벼워 보였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 스승의 날과 피천득 선생의 4주기를 앞두고 지난 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앞뜰에서 만난 석경징 교수가 스승 피천득 선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편집자주 : 사진은 복사해 오지 않았음)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문득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금아는 2002년 월드컵 때 실로 오랜만에 시를 썼는데 제목이 ‘붉은 악마’였다. ‘붉은 악마들의/끓는 피 슛! 슛! 슛 볼이/적의 문을 부수는/저 아우성! 미쳤다. 미쳤다/다들 미쳤다 미치지 않은 사람은/정말 미친 사람이다.’라고 했다.

  돌아가시기 1년 전 5월 금아의 자택을 찾았을 때 그는 “허허,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 줄까. 영국의 버나드쇼가 채식주의자였어요. 나이 들어 죽었는데 이때 ‘런던타임스’에서 사설에 뭐라고 했냐 하면 ‘버나드쇼 장례 행렬에는 염소와 소, 양떼들이 울면서 뒤를 따랐다.’라고 했지. 평생 동안 육식을 안 했으니깐 그놈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어. 어쨌든 사설에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해.”라고 했다.

  금아는 또 “5월이 되면 환갑이 넘은 늙은 제자들이 자주 찾아온다.”면서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웃었다. 당시 제자들 중에는 문인도 있었지만 정년퇴직한 대학교수들이 더 많았다.

  사실 금아는 생전에 ‘제자’라는 말을 함부로 안 썼다. 또한 ‘스승’이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사람은 예외였다. 여러 제자들 중에 석경징(75) 서울대 명예교수한테는 ‘수제자’라는 말을 썼다. 그것도 직접 얘기하지 않고 아들 피수영씨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석 교수는 1955년 서울대 사범대 영어과에 입학할 때 금아에게 ‘영문학사’와 ‘영시’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었고 4년 전 돌아가실 때 가족 외에 유일하게 임종을 지켜본 제자였다. 특히 그는 “영문학사를 배울 때 문학사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샘플링하는 독특한 강의법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회고했다. 대학원 때에는 금아가 지도교수 역할을 했다. 또한 대학 4학년 때 금아의 권유로 제물포고와 서울고에서 잠시 영어 교사를 했다.

  스승의 날과 금아의 4주기를 앞두고 지난 9일 오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앞뜰에서 석 교수를 만났다. 비 오기 직전의 흐린 날씨였지만 스승을 말하는 노제자의 얼굴빛은 무척 밝아 보였다. 우선 석 교수의 근황부터 물었다.

  “서울 강남문화원에서 영미소설을 강독하고 있습니다. 수강생은 가정주부와 대학원 다니는 사람 등 다양합니다. 다들 문학에 대한 갈망이 깊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4년이 됐군요. 원래는 서울대 현직에서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문으로 강독하고 한글로 풀이해 주는 작업이다. 그동안 단편소설의 경우 400여편, 장편인 경우 6권 정도 강독했고 지금은 ‘다 읽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20세기 대표작 제임스 조이스의 장편 ‘율리시스’를 강독하고 있다. 그는 “2년 반 동안 아직도 3분의1 정도밖에 진도를 못 나가고 있다. 뭘 그리 꾸물대는지.”라면서 웃었다.

  이어 금아 얘기가 나오자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20년 동안 거의 매주 한 차례 이상 자택(서울 반포)으로 찾아뵈었다.”면서 “제자들이 식사를 대접하려고 해도 선생님은 ‘인세 받는 것도 있는데’ 하시면서 항상 먼저 밥값을 내셨다.”고 회고했다. 석 교수는 금아가 운명하기 직전 3일 동안 병상을 지켰다. 이때 금아는 석 교수의 손을 잡으며 “석 선생이 제일 무서워.”라고 말했다. 평소 있는 그대로 스승한테 진언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생애는 말 그대로 무소유의 삶이었습니다. 사치와 낭비를 가장 싫어했지요. 돌아가실 때 많았을 것 같은 책도 200여권에 불과했고 평소 그 흔한 옷장도 없이 살았습니다. 누군가 내다 버린 책상을 갖다 쓰고 사모님이 피란 때 싼 보따리를 옆에 놓고 지냈지요. 선생님 정도의 명성이면 문학단체 등에서 명예로운 직함을 가질 법도 한데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지요. 제자들한테 뭘 받는 것도 싫어해 이사할 때 벽걸이 시계를 선물한 것이 유일합니다.”

  석 교수가 잠시 허공을 바라보더니 ‘중요한 얘기’를 꺼냈다. 다름 아닌 금아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수필 ‘인연’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인연’은 수필이 아닙니다. 소설이지요. ‘아사꼬’의 상대역인 그 청년은 한낱 소설 속의 주인공인데 수필로 분류되는 바람에 피 선생님이 수필 속의 청년으로 잘못 인식돼 있습니다. 생전에 선생님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아무려면 어떠냐’ 하는 식으로 그냥 웃어넘기셨지요.”

  석 교수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인연’에 나오는 청년은 약간 치졸하고 질투심 많은데 금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선생님은 서울 YMCA를 통해 도쿄 YMCA 관계자를 만나 기숙할 집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때 잠시 보게 된 것이 수필 ‘인연’에 나오는 아사꼬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저 잠시 봤을 뿐인데 마치 선생님이 아사꼬를 사랑하고 질투한 것처럼 묘사가 됐습니다. 수필이 아닌 소설이지요.”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됐을까. 석 교수의 회고는 이렇다.
  “1959년입니다. 출판사 일조각에서 ‘금아시문선’을 발간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쓰신 글을 함께 묶어 책을 내면서 소설로 쓴 ‘인연’도 ‘문선’이라는 수필로 나왔지요. 그 후 정정이 안 됐고, 그게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석 교수는 서울신문 인터뷰를 통해 금아의 대표 수필로 알려진 ‘인연’은 소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몇 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금아의 수필 중에 소설인 것이 더 있다.”고 했다. ‘은전 한잎’의 경우 통렬한 사회비판 소설인데 수필로 돼 있는 것도 모순이라고 했다. 아울러 ‘시골 한약방’도 소설이며, ‘수필은 청자연적’이라고 한 작품 ‘수필’은 수필이 아닌 시라고 말했다.

  석 교수는 이어 금아가 일제 때 중국 상하이로 간 까닭을 얘기했다.
  “선생님은 춘원 이광수와 친했습니다. 그 집에서 3년 동안 살면서 영어를 배웠지요. 춘원은 선생님한테 일본으로 가지 말고 중국으로 가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때는 일본으로 가면 장래를 보장받는 분위기였지만 춘원은 중국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 1995년 10월 제주 여행때 석경징(왼쪽)교수와 피천득 선생이 호텔 로비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편집자주 : 사진은 복사해 오지 않았음)

  석 교수는 다시 스승을 그리워한다.
  “선생님은 인디언처럼 흔적 없이 살았습니다. 사모님이 지난달 돌아가셨는데 평소 ‘저 사람보다 내가 먼저 가면 안 되는데’라고 하셨지요. 정신고녀 출신인 사모님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모님한테 베토벤 음악을 들려주시고 셰익스피어의 시를 읊어 주셨습니다.”

  그는 또 금아에 대해 “낭만주의 시와 스피노자를 좋아했고, 명석하고 군더더기 없는 삶을 사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하고 치장이 없는 금아의 글은 영원불멸이라고 말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석경징 서울대 명예교수는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55년 서울고, 1959년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63년 서울대 대학원(영문과)을 나온 뒤 1965∼1966년 미 인대애나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1973∼1975년 미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 박사과정에서 언어학, 현대영문학, 일본문학, 언어철학 등을 공부했다. 1968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대 인문대 영문과 교수를 지냈으며 1980년부터 1990년대에 걸쳐 ‘서술이론연구회’를 주재했다. 현재는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서울 강남문화원에서 영미소설을 강독하고 있다.

  서울신문 2011-05-13 25면
  사진설명 : 스승의 날과 피천득 선생의 4주기를 앞두고 지난 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앞뜰에서 만난 석경징 교수가 스승 피천득 선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편집자주 : 사진은 복사해 오지 않았음)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513025003
故 피천득의 소설 '인연'을 이야기 하다
2011.05.2

  다음은 naver에서 카피한 기사임.

  “故피천득 ‘인연’ 수필 아닌 소설”
  “아사꼬 실존… 연인은 아냐” 제자 석경징 서울대명예교수

  수필가로 알려진 고(故) 금아 피천득의 대표작 ‘인연’은 수필이 아닌 소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울러 ‘인연’에 등장하는 ‘아사꼬’라는 여인은 금아가 애타게 보고 싶어했던 연인이 아니며 단지 소설 속에 등장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인연’은 교과서에 등장할 만큼 유명했으며 여주인공인 일본의 아사꼬와는 세 번 만나면서 연민의 정을 흠뻑 담은 자전적 수필로 묘사됐다.

  ▲ 故 금아 피천득(편집자주 : 사진은 복사해 오지 않았음)  

  스승의 날과 오는 25일 금아의 작고 4주기를 앞두고 그의 수제자 석경징(75)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생님의 대표적 수필 ‘인연’은 문학사적으로 소설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면서 “아사꼬의 상대역인 그 청년(피천득)은 약간 치졸하고 질투심 많은 것으로 돼 있는데 어디까지나 허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석 교수는 이렇게 된 까닭에 대해 “1959년 모 출판사에서 ‘금아문선집’을 발간할 때 시가 아닌 작품은 모두 수필로 분류하면서 소설로 쓴 ‘인연’도 그렇게 됐다.”고 해명했다.

  또한 그는 “선생님 생전에 ‘인연’을 소설로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드렸지만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성격상 그냥 넘기셨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서울대 영문과 재학시절 ‘금아문선집’ 출간 때 금아의 원고를 교정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또 금아의 수필로 알려진 ‘수필은 청자연적이요∼’하는 것은 시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서울신문 2011-05-13 25면

  위의 기사는 2011년 5월에 작성된 것으로 되어 있다. 기사 내용은 문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자료를 제공한 사람은 영문학 교수이며 피천득의 수제자라고 한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오늘날짜는 2012년 9월이다. 만약에 이처럼 중요한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인터넷 상에 그대로 방치해 두었겠는가? 더군다나 그 기사가 게재되어 있는 곳은 공신력을 생명으로 삼는 유명 신문의 인터넷 판이다. 만약에 이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 아닌 대담자 석경징 교수자신이 기사를 인터넷에서 내리도록 어떤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아무 변동 사항 없이 대담 기자 이름과 작성된 날짜까지 그대로 찍혀있는 것으로 보아 기사 내용을 사실로 믿어도 되지 않는가 생각한다.

  다음의 글은 ‘｢인연｣은 수필이 아닌 소설이다’에 대한 필자의 문학 이론적 판단이다.

  ‘｢인연｣은 수필이 아닌 소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수필이란 무엇이며, 소설이란 무엇이기에 석경징 교수는 스승의 사후에까지 ‘｢인연｣은 수필이 아닌 소설이다.’라고 밝히고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는가? 더구나 “생전에 선생님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아무려면 어떠냐.’ 하는 식으로 그냥 웃어넘기셨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스승의 뜻이 그러하니 끝까지 잠자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많은 제자들 중에 수제자라는 분이 어찌하여 굳이 가만있어도 될 일(?)을 가지고 ‘｢인연｣은 수필이 아닌 소설이다.’라고 꼭 밝히고 나섰어야 되었단 말인가?

  ‘가만있어도 될 일’이라니? 수필을 소설이라 해도 괜찮고, 소설을 수필이라 해도 괜찮은 것이 문학이란 말이냐?

  괜찮지 않으면 뭐가 문제란 말이냐? 수필가들이 글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수필의 날>에 단상에까지 올라가서 ‘수필은 수필이면 된다.’라고 외치고 있는 그대로 ‘글은 글이면 되는 것’이지 굳이 이건 소설이다, 저건 수필이 아니다, 하며 편을 가를 필요가 뭐 있느냐? 사람들이 읽어서 좋으면 좋은 것 아니냐? 요즘 수필가들이 소설을 써 놓고 수필이라고 발표하고 있는 것도 못 보았느냐?

  과연 석경징 교수에게 수필이란 무엇이며 소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는 수필이란 무엇이며 소설이란 무엇이기에 이리도 통한의 심정으로 졸필을 쓸 수밖에 없게 되었는가?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수필과 소설에 대해서 각각 다음과 같이 뜻풀이를 해 놓고 있다.
  수필 : 생각나는 대로 형식 없이 써 나가는 산문의 하나.
  소설 : 상상력과 사실(寫實)의 통일적 표현으로써 인생과 미(美)를 산문체로 나타낸 예술.(민중에센스국어사전)

  필자는 이미 필자의 창작문예수필 이론 전개를 통해서 누차 국어사전의 수필 뜻풀이에 동의하지 않음을 밝혀두었다. 그러나 본고에서 국어사전의 뜻풀이를 참고하는 까닭은 국어사전은 ‘소설도 수필이고, 수필도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위의 뜻풀이는 ‘소설도 수필이고, 수필도 소설’이라는 뜻인가?

  국어사전에 의하면 수필은 첫째로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형식이 없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산문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수필에 대한 뜻풀이는 문학 이론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생각나는 대로’라는 말의 뜻은 첫째는 사실에 대한 일을 의미하고, 두 번째는 구성법이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특별히 이 두 번째 의미 때문에 수필에 대한 국어사전의 뜻풀이를 오류로 여긴다. 무릇 글이란 시, 소설 같은 창조적 구성법이 아니더라고 구성이 필요 없는 글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성 작업을 할 필요 없이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이란 곧 수필은 잡문이라는 뜻인 것이다.

  ‘생각나는 대로’ 중에는 상상도 있을 수 있고, 공상과 망상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수필은 공상과 망상까지도 생각나는 대로 써 놓으면 문학이 된다는 뜻인가? 물론 그런 뜻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상상은 어떤가? 수필은 상상의 문학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세 번째 뜻풀이인 ‘산문의 하나’라는 뜻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산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소설의 뜻풀이 중에 나오는 ‘산문체로 나타낸 예술’로서의 산문형식이라는 뜻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수필의 뜻풀이도 소설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수필과 소설이 다르다는 것이다.

  국어사전은 왜 수필의 뜻풀이와 소설의 뜻풀이를 다르게 해 놓았는가? 그 이유는 수필이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할 때의 그 ‘생각’의 대상은 소설처럼 상상적 허구 세계가 아닌 사실의 세계이기 때문인 것이다. 즉 수필이란 사실에 관한 생각이나 느낌을 적는 글이라는 뜻인 것이다.

  두 번째, ‘형식이 없다’는 뜻은 무엇인가? 무릇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사물 쳐 놓고 모양이 없는 사물은 한 가지도 없다. 미생물까지도 각기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 글이란 짓는 것이다. 모양 없이 무엇을 지을 수 있는가? 글에 모양이 없다면 짓는 일 자체가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수필에는 ‘형식이 없다’라고 할 때의 ‘형식’은 글(문장)의 모양이 없다는 뜻이 아닌 문학이론적인 뜻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소설의 뜻풀이를 보니 ‘산문체로 나타낸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세 가지 단어에 의해서 그 뜻이 명확하게 규정되고 있다. 첫 째는 ‘체’라는 말이고, 두 번째는 ‘나타낸’이라는 말이고, 세 번째 결정적인 단어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문학에서 ‘체’란 곧 형식을 의미한다. ‘나타낸다’는 것은 구성 혹은 형상화를 의미한다. ‘예술’이란 창조적 행위의 결과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필은 ‘형식이 필요 없다’고 할 때의 형식의 의미는 무엇이 되는가? 소설과 같은 예술 작품으로서의 창조적 형식이 필요 없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왜 수필은 창조적 형식이 필요 없는 글인가? 수필은 시, 소설, 희곡 같은 창작문학이 아닌 일반산문문학이기 때문인 것이다. ‘수필’의 뜻풀이 중에 ‘산문의 하나’라는 뜻은 바로 이 일반산문 가운데 한 가지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일반산문이란 무엇인가? 현대인이 가장 많이 대하는 일반산문은 신문기사일 것이다. 그 다음은 회사의 기안설명문일 것이고, 학생들에게는 교과서 문장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일반산문문장이다. 신문기사가 시, 소설, 희곡 같은 창작문학인가? 회사의 기안설명문이 시, 소설, 희곡 같은 창작문학인가? 교과서가 시, 소설, 희곡 같은 창작문학인가?

  필자는 일 년 열두 달 동안 단 한편의 시도, 단 한 편의 소설도 읽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들을 수 없이 보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신문기사와 기안설명문과 교과서가 시, 소설, 희곡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데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 일반산문이 무엇이고, 창작문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수필가라는 사람들이다. 저들은 오늘도 수필을 ‘창작문학’이라고 하면서 ‘수필창작’, ‘창작수필’ 운운하고 있다. 그런데 국어사전은 수필은 창작문학이 아닌 일반산문들 가운데 한가지라고 뜻풀이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기존의 수필은 국어사전의 한 줄 뜻풀이만큼도 문학이론을 모른다는 뜻인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소설의 뜻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으므로 생략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위에서 언급하지 못한 ‘상상력과 사실(寫實)의 통일적 표현’이라는 말의 뜻에 관해서는 잠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먼저 상상력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줄 안다. 상상력이라는 말이 사실에 대한 사실적인 일이 아니라는 뜻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寫實)’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실(寫實)’이라는 단어의 뜻풀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사물을 실제 있는 그대로 그려냄”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이 문학용어로 사용될 때 일반인들이 사진을 찍듯 사실을 복사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가? 사실(寫實)’에 대한 뜻풀이 밑에 보니 ‘사실주의의 예술을 지향하는 한 파’라는 말이 눈에 띈다. 그러니까 소설의 뜻풀이에서 말하는 ‘사실(寫實)’이라는 단어의 뜻은 ‘복사’가 아닌 예술적 방법의 한 가지로서의 뜻이었던 것이다. 소설은 상상력에 의한 예술작품이라는 뜻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산문문학’의 하나인 수필과 ‘창작예술’로서의 소설은 같은 것일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수필도 소설이고, 소설도 수필이다’는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일은 문학적 무지가 되는 것이다.

  피천득의 수제자인 석경징 교수는 왜 스승의 생전의 뜻을 거스리면서까지 진실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에게 문학적 진실이란 스승의 뜻을 거스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인가? 그래서 고인이 되신 큰 어르신께 외람되게도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대체 문학이란 무엇인가? 석경징 교수의 문학관은 물어보지 않았으므로 무엇이라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에게 문학은 유사 이래 인류가 먹고 성장해 온 정신적인 객관적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문학의 객관적 진실성이 훼손된다면 그날이 인류문명의 종말이 시작되는 날이 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문학에 대한 신념이다. 생각해 보라. 예를 들어 인류의 영원한 베스트셀러라는 성경이 ‘수필도 소설이고, 소설도 수필’이라는 식의 문학적 오류에 의한 기록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세익스피어가 ‘수필도 소설이고, 소설도 수필’이라는 식으로 저작된 것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필자가 만약 석경징 교수 입장에 있었다면 필자도 당연히 스승의 사후에라도 ‘｢인연｣은 수필이 아닌 소설이다.’라고 밝혔을 것이다. 나는 나의 제자들이 나의 사후에라도 내가 쓴 글들 중에서 문학학문상 잘못된 점이 발견될 시는 즉시 추호도 주저하지 말고 그 잘못된 점을 공개하여 바로 잡아 주기를 바란다. (그대들이 진정으로 나를 스승으로 여긴다면 선생을 오류의 무덤 속에 묻어두지 말라!)

  석경징 교수는 ｢인연｣이 수필이 아닌 소설이라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인연’에 등장하는 ‘아사꼬’라는 여인은 금아가 애타게 보고 싶어했던 연인이 아니며 단지 소설 속에 등장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란 소설적 허구의 인물이라는 뜻이다. 두 번째는 아사꼬의 상대역 청년은 피천득이 아닌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인연’에 나오는 청년은 약간 치졸하고 질투심 많은데 금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선생님은 서울 YMCA를 통해 도쿄 YMCA 관계자를 만나 기숙할 집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때 잠시 보게 된 것이 수필 ‘인연’에 나오는 아사꼬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저 잠시 봤을 뿐인데 마치 선생님이 아사꼬를 사랑하고 질투한 것처럼 묘사가 됐습니다. 수필이 아닌 소설이지요.”>

  ｢인연｣은 수필이 아닌 소설이라는 석경징 교수의 말이 진실이라면 피천득은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대한민국 수필독자를 우롱한 셈이 된다. 필자도 그에게 속은 피해자 중에 한 사람이 된다. 필자는 2007년에 출간한 졸저 󰡔창작문예수필이론서󰡕 중에 ｢인연｣을 수필로 믿고 ｢인연｣이 왜 소설이 아닌 수필인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 일이 있었다.

  필자는 그 글에서 “｢인연｣의 구성법은 평소의 피천득과 많이 다르다.”고 썼다. 그 이유는 “피천득 문장의 특징을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상현달이나 하현달 같은 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연｣의 구성은 상현달도 하현달도 아닌 보름달의 문장 구성법이다. 떠오름도 있고서녘으로 지는 것도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로 달이 떠올라서, ‘수십 년 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으로 중천 가까이 떠올라서, ‘그 후 십년이 지나고 삼사년이 더 지났다.’와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라는 중천의 하늘을 지나, ‘십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으로 서녘으로 기울기 시작하여,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로 달이 지고 있다. 작품 ｢인연｣은 이 같은 보름달의 떠오름과 중천의 하늘을 둥실 떠 흐름과 서녘으로 지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썼다.

  이 같은 소설적 구성법으로 되어 있음에도 “‘수십 년 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이라는 서두로 시작되는 ｢인연｣의 소재가 허구가 아닌 ‘있었던 일’임에 틀림없다면 피천득은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있었던 이야기’를 불러내서 그 코(마음)에 문학적 생기를 불어 넣어 살려낸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은 소설이 아닌 수필이다.”라고 썼다. 즉 ‘수십 년 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으로 시작되는 ｢인연｣의 소재를 수필가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으로 믿는 ‘사실의 소재’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인연｣의 아사꼬와 상대역 청년은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어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허구의 인물이라면 그 작품은 아무리 잘 된 수필형식의 작품이라도 소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피천득은 <‘아사꼬’의 상대역인 그 청년은 한낱 소설 속의 주인공인데 수필로 분류되는 바람에 피 선생님이 수필 속의 청년으로 잘못 인식돼 있습니다. 생전에 선생님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아무려면 어떠냐’ 하는 식으로 그냥 웃어넘기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피천득의 ‘웃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피천득의 <‘아무려면 어떠냐’ 하는 식>의 웃음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영문학자인 그가 수필과 소설의 다름을 국어사전적인 뜻만큼도 몰랐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필자는 피천득이 고의적으로 대한민국 수필독자들을 우롱하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석경징 교수의 질실 고백 대담 기사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의 웃음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과연 그것은 대담기사 내용대로 피천득의 성격 탓으로 벌어진 일이었는가?

  <“선생님 생전에 ‘인연’을 소설로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드렸지만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성격상 그냥 넘기셨다.”>고 한다. 그것이 과연 피천득의 성격이었다면 피천득은 성격적으로 거짓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작가였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우리는 피천득의 웃음을 어느 쪽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대담 기사 내용대로 소설 ｢인연｣이 수필로 둔갑한 사연이 피천득의 성격 때문이었다고 볼 것인가? 그렇게만 볼 수 없다면 다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공부하여 온 수필문학의 <이론적 혼돈․이론부재> 현상에 의하면 남은 대답은 피천득의 문학관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 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즉 소설 ｢인연｣의 수필 둔갑 원인을 성격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면 피천득의 ‘웃음’은 ‘문학 이론적인 웃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천득은 ｢인연｣의 허구 부분에 대한 액자수법이나 수필로 빠져나오기 등의 문학적 장치도 하지 않고 있다. 피천득이 찬양한 찰스 램은 ｢꿈속의 아이들｣에서 액자수법과 수필로 빠져나오기 두 가지 문학적 장치를 다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얼마나 피천득 문학을 사모하였는가? 위에 소개하고 있는 서울신문 대담기사 중에 나오는 소설가 최인호씨는 “전생의 업도 없고, 이승의 인연도 없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하늘나라의 아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고(故) 박완서씨는 “그분은 연세와 상관없이 소년처럼 무구하고 신선처럼 가벼워 보였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그대로 대한민국 수필독자 모두의 심정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분이 알고 보니 <성격적으로 거짓이 있는 분>이었거나 <국어사전만한 문학 이론적 분별력도 갖추지 못했던 분> 둘 중에 하나 일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이런 통한의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문학이란 수필도 소설이고, 소설도 수필이고, 시도 동화고, 동화도 시라고 할 수 있는 막가파식의 일이 아니다. 인류 최고의 지성적인 일이다. 오직 기존의 수필에만 ‘隨筆은 隨筆이면 된다’는 망발이 있다. ‘隨筆은 隨筆이면 된다’는 말과 ‘소설은 소설이면 된다’는 말은 같은 양식의 어법일 수 없다. ‘隨筆은 隨筆이면 된다’는 곧장 ‘隨筆은 잡문이면 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隨筆이라는 단어의 뜻 자체가 지난 1백년간 수필의 유일무이한 개념이 되어 온 ‘붓 가는 대로’라는 바로 그 말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隨筆은 隨筆이면 된다’는 곧장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면 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붓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이 잡문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붓 가는 대로’와 ‘생각나는 대로’에 창조적 구성법이 끼어 들 작은 틈새라도 있느냐?

  소설은 ‘小說’이라는 한문자의 본래 뜻인 ‘시정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소설의 개념으로 삼고 있지 않다. ‘小說’이라는 이름만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소설은 소설이면 된다’라고 말 할 때는 지난 수 백 년 간 소설문학이 쌓아올린 소설 창작 이론이 다 따라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수필은 ‘隨筆은 隨筆이면 된다’는 말 그대로 지난 1백년 동안 처음부터 ‘여기의 문학’, ‘서자문학’ 소리를 듣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신변잡기’ 비난을 못 면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므로 저들 기존의 수필가들에게는 피천득의 ｢인연｣이 수필이 아닌 소설이라는 사실이 조금도 놀랄 일도 이상할 일도 아닐 것이다. 수필도 소설이고, 소설도 수필이며, 시도 동화고, 동화도 시인 것이 저들의 ‘붓 가는 대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들은 소설을 써놓고 수필이라고 하고 있지 않느냐!

  문학이론에 작가전기적 비평이라는 것이 있다. 필자는 그 같은 비평방법에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참고삼을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인연｣처럼 한 나라의 문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작품의 진위에 관해서 그것이 그렇게 된 과정에 작가의 성격적 특징이 작용하고 있었다면 이는 무심히 넘길 일이 아닐 것이다.

  수필은 무엇이며 소설은 무엇인가? 위에서 살펴 본 국어사전적인 뜻만 가지고도 수필과 소설을 ‘글은 글이면 된다’는 식으로 말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허구의 인물에 의한 허구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문학이고, 수필은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아 사실적인 언술을 하는 문학이다. 기존의 수필에 대한 비평행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수필비평은 수필작품이라고 발표한 작가의 ‘발표행위’를 믿는 데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맹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발표행위’를 믿는 데서 출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왜 기존의 수필비평의 맹점이 될 수밖에 없는가? 작가가 참으로 ‘사실의 소재’를 작품의 제재로 삼은 것인지, 소설적 허구를 수필이라고 발표하였는지 확인 할 길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소설적 허구를 수필이라고 발표한 수필작품을 놓고 이렇쿵 저렇쿵 하는 것은 속칭 얼마나 ‘빙신’같은 짓인가. 작가는 그런 비평가들을 바라보며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 것인가? 시중의 말을 빌린다면 “얼마나 재미있어 할까”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석경징 교수에 의하면 피천득의 ｢인연｣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59년 󰡔금아문선집󰡕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난 50여년간 대한민국이 ｢인연｣ 한 편을 놓고 벌여온 <명작수필 잔치>를 바라보며 피천득은 어떤 미소를 짓고 있었을까? 세상에 이 보다 더한 희대의 거짓 문학 잔치가 또 있을 수 있는가?

  문학이 왜 창작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창작이라는 ‘허구’>와 <‘사실의 소재’의 ‘왜곡’>은 본질적으로 다른 성질의 것이다.

  시, 소설에 대한 졸작이냐, 아니냐, 시비는 항상 있지만 문학적 거짓이냐, 아니냐, 시비가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니 시, 소설은 그 자체가 상상력의 허구형식으로 된 창작문학이기 때문인 것이다. 소설작품 중에 실명소설이라는 것도 있고, 종종 작가의 전기적 소설이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실이냐, 아니냐, 시비가 일지 않는 까닭은 실명소설이란 실명의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허구적 형식에 담았다는 뜻이고, 자전적 소설이란 자전이라는 사실을 소설이라는 허구적 형식에 담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인 것이다. 즉 형식상의 허구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필(에세이)은 본질상 ‘실명수필’이나 ‘자전적(的)수필’이라는 말이 성립이 안 된다. 수필은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는 것이 본태생적 특징이기 때문인 것이다. 수필에 나오는 이름은 인명이든 지명이든 모두가 사실일 수밖에 없고, 자전수필일 경우 그냥 ‘자전수필’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지 ‘자전적(的)수필’이라고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는 문학이면서 창작론적 방법론이 전혀 없는 기존의 수필작품 중에 피천득의 ｢인연｣ 같은 문학 이론적으로 거짓이 되어버린 작품이 이 한 편뿐이겠는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수필은 수 없이 많은 거짓말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독자가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수필의 <허구도입>이라는 희한한 발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허구도입’이라는 말의 이론적 배경은 창작문학의 허구서사창작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소재의 일부 거짓말’을 허용하자는 데에 있다. 즉 일제강점시대에 사정상 일본사람을 조선사람으로 표현한 경우를 그 구체적인 예로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사람이 일본사람을 ‘주먹으로 한 대 후려갈기고 싶었다’고 하면 곤란해질 테니까 조선사람이라고 거짓말을 쓰자는 것이다. 다른 말로 예를 들면 맑은 날 산보 나갔다가 겪은 일인데 그렇게 하면 재미가 덜 할 테니까 비오는 날이었다고 거짓말을 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창작 이론적 근거가 없는 사실에 대한 왜곡은 글자 그대로 거짓말일 뿐인 것이다. 위에 소개한 ‘소설’에 대한 국어사전 뜻풀이에서 ‘통일적 표현’이라는 말의 뜻은 소설은 창조적 구성법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예술작품이라는 뜻인 것이다. 소재 자체의 어떤 일부분을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의 소재인 것처럼 쓰는 것하고는 본질상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거짓말을 써 놓고 ‘사실의 소재’를 작품의 제재로 삼은 수필작품이라고 발표하면 그것은 글자 그대로 문학적 거짓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다. 기존의 수필의 이론 아닌 이론에 보면 ‘수필과 인품은 일치해야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는 글들도 볼 수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어림잡아 약 만 편 이상의 수필작품을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필자는 아직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수필가의 수필작품을 읽어 본 기억이 없다. 대한민국 수필가들은 모두 인격적으로 완전한 사람들뿐인가? 발표해서 괜찮을 소재, 발표해서 좋을 소재만 골라서 발표하면서 ‘수필과 인품은 일치해야 된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문학적 자기 미화이며, 거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피천득이 수필집 [수필] 발간 이후 사망 시까지 사실상의 절필을 하였다는 사실에도 또 다른 문학적 감동을 느껴왔다. 그런데 자신의 소설작품이 수필로 여겨지고 있는데도 이를 웃음으로 방치한 것이 그의 성격 때문이라면 그의 오랜 절필도 문학적 이유 때문이 아닌 성격 탓이 아니었을까, 라는 의문을 아니 가질 수 없지 않은가.

  기존의 수필은 몽테뉴 본래의 일반산문문학으로 돌아가거나 이제라도 현대문학 이론의 창작론에 근거한 <창작․창작적>인 문학이 되어야 한다. 시, 소설이 사실이냐, 아니냐, 시비가 생길 이유가 없듯 몽테뉴의 에세이도 사실이냐 아니냐 시비가 생길 이유가 없다. 다만 작품 내용이 말하고 있는 정보가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에세이냐, 소설이냐, 시비는 생길 까닭이 없는 것이다. 몽테뉴의 에세이는 사실의 소재에 대한 ‘생각을 짓는’ 일반산문문학 형식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수필은 몽테뉴의 그 같은 분명한 일반산문형식을 벗어난 소위 경수필에 속하는 문학이라고 한다. 경수필의 소재는 객관적 주제이기 보다 주관적 주제를 다룬다. 주관적 주제란 어차피 작가의 정서일 수밖에 없다. 정서를 소재로 삼아 글을 쓸 경우 자연히 창작적인 표현기법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나 기존의 수필에는 수필창작이론이라는 것이 아예 없다. ‘붓 가는 대로’ 뿐이다. ‘붓 가는 대로’에서 무슨 창작이론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수필가들은 무슨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어떤 문학적 방법으로 정서를 글로 표현하고 있는가? ‘붓 가는 대로’밖에 없으니 ‘붓 가는 대로’ 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붓 가는 대로’ 쓰다 보니 소설을 써 놓고도 수필이라고 발표하는 일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수필가는 소설가가 되려다 미끄러진 3류 문사들이란 말인가? 소설을 써 놓고 수필작품이라고 발표 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무엇인가? 이론적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샛빨간 문학적 거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사 다음 세대에서는 소설을 써 놓고 수필이라고 발표 할 수 있는 문학 이론적 근거가 마련된다고 할지라도 그때까지는 소설을 수필이라고 발표하는 일은 문학 이론적 무지이며 샛빨간 문학적 거짓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석경징 교수 대담기사에서는 소설 ｢인연｣이 수필로 둔갑하게 된 이유를 출판사의 실수와 이를 묵과한 피천득의 성격에 의한 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문학이론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가 공부한 문학이론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본지 금호 중 ｢김광섭은 뚜껑을 열었고 피천득은 쏟아 부었다｣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로 ‘써지는 글’, ‘플롯이 필요 없다’,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글’ 등의 문학 이론적 오류에 있다고 본다. 소설 ｢인연｣이 수필로 둔갑하고 있는 것을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자의 고언을 웃음으로 넘기고 만 피천득의 수필관이야 말로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글’, ‘구성이 필요 없는 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글’ 문학관의 실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어찌 피천득 한 사람만의 일이겠는가? 중국산 가짜 문학 ‘隨筆’에 취한 대한민국 기존의 수필 전체의 문학적 추태가 아닌가?

  기존의 수필은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글쓰기도 아니고, 고전문학의 맥을 잇는 글쓰기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홍매의 잡문론 ‘隨筆’에 근거한 잡문일 뿐이다. 개개의 작품들 모두가 잡문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 문학 이론적 배경이 잡문론에 있다는 뜻이다.

  중국산 온갖 가짜 상품으로 세상 민심이 흉흉하다. 그것도 모자라서 중국산 가짜 문학까지 들여와 세상을 우롱해야 되겠단 말이냐?

  나는 지금 이 말을 일선 수필가들이 아닌 수필계 지도자라는 바로 당신에게 하고 있다. 당신의 ‘붓 가는 대로’에 대한 침묵은 곧장 문학적 가짜 상품 판매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시는가? 당신 한 사람의 침묵으로 대한민국 수필가 모두가 ‘신변잡기’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을 못 보는가? 인생은 짧은 것이다. 잠시잠깐 후면 우리 모두는 이 땅 위에서 사라진다. 후세들이 ‘붓 가는 대로’에 대해서 끝까지 문학적 양심 고백을 하지 않고 죽은 당신의 문학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평할 것 같은가? 피천득이 그 생전에 <｢인연｣은 수필이 아닌 소설이다.>는 문학적 양심고백이 있을 것을 내다보았겠는가?

  기존의 수필 ‘붓 가는 대로’는 지금 즉각 폐기처분해야 되는 문학적 쓰레기일 뿐이다.

  ｢인연｣은 <수필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어야 하는 작품이었다. <수필소설>은 아직 독자적인 문학 장르로 학문적 논의와 이론체계가 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적지 않은 수필작가들이 <수필형식의 소설작품>을 발표하고 있고, 문단 일각에서 이를 <수필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하여 부르고 있다. 필자가 현재까지 이해하고 있는 <수필소설>의 이론적 해석은 <수필형식 안에 담아낸 소설적 허구 작품>이라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수필소설>이 문제가 안 되는 까닭은 그것은 분명하게 <소설>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수필형식의 소설>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문학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양식으로 진화하게 된다. 문학의 진화현상이야 말로 문학이론적 근거가 있는 변화이어야 된다. 아무 이론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막가파식으로 소설을 써 놓고 수필이라고 하는 것은 문학적 폭력일 수밖에 없다.

  ｢인연｣이 만약에 처음부터 <수필소설>로 발표되었다면 영원히 아름다운 문학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창작문학작품과 작가는 동일한 것일 수 없다고 확신한다. 창작된 것이 어떻게 실존 인물인 현실의 작가와 동일 할 수 있단 말인가? 작가와 작품이 동일하지 않은 것이라면 설사 작가가 도둑놈이라 해도 그의 작품은 창작문학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작가의 어떠함에 따라 작품도 그렇게 취급하는 것은 바른 문학비평으로 여기지 않는다.

  다음세대는 피천득에게서 아름다운 수필문장법을 배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시대에 시급히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수필문체에 앞서 수필의 창작문학화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여기서 그만 피천득을 잊을 수밖에 없다. 피천득을 잊어버리지 않고는 수필이 창작문학으로 거듭날 수 없기 때문이다.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글’, ‘플롯이 필요 없는’ 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글이 어떻게 창작문학이 될 수 있겠는가?

  그동안 소설 ｢인연｣을 수필로 잘 못 알고 비평한 나의 모든 글들을 취소한다. 4천만이 같이 속은 일이지만 한 사람의 비평가로 사실을 바로알지 못하고 비평한 것은 본인의 책임이다.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언젠가 ｢인연｣을 <수필소설>로 바로잡아 비평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이 고인과 석경징 교수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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