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가량 쉼 호흡을 하고선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절대로 잔소리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결국 잔소리를 늘어놓고 말았다.
밥은 먹고 다니냐? 돈 헤프게 쓰지 마라. 믿을 만한 사람인지, 해칠 사람인지 늘 조심해라. 특히 남자?
천상 나는 꼰대인가 보다. ㅋㅋㅋ
4년 전 보육원을 퇴소하고선 알바에 나섰다가 사악한 식당 주인의 꼬임에 넘어가 퇴소적립금(디딤씨앗)은 물론, 보육원에서 녀석의 미래를 위해 꼼꼼하게 모아준 모든 것을 털리고 임금체불과 폭행까지 당했다.
경찰도 문제다. 검찰도 문제다. 4년이 지난 이제야 범죄인들을 기소했다. 그것도 지극히 제한된 범죄행위만..
당시 우리 후원자들은 상황을 접하고선 007을 방불케 하는 극적인 작전으로 녀석을 탈출시켰다. 하지만 고민은 깊었다. 녀석은 지능지수 45~60 발달장애아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립생활은 불가능하다고 조언했지만, 난 녀석의 독립생활을 지지했다.
두 달여간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다. 연거푸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발달장애인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녀석의 일탈이 커질수록 녀석을 가르친다는 명분 하에 호되게 몰아붙였다. 10여 년을 만나왔던 나의 믿음에 의지했다.
그럴수록 녀석은 자신은 장애인이 아니라며 완강하게 나를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부터 230m 거리에 LH전세임대를 얻어주고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했다.
늘 노심초사했다. 집은 찾아다닐 수 있을까? 버스는 탈출 알까? 지하철은? 밥은 할 줄 알까? 혹시 불이라도 내는 거 아닐까? 어느 누군가에게 또다시 속아 탈탈 털리는 것을 아닐까? 행여 남자 잘못 만나 아이라도 갖게 되는 것 아닐까?
혼자서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되뇌면 되뇔수록 모든 것이 염려됐고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녀석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적응을 잘하고 있다. 작은 월급 받아 적금도 넣고 장애인 수당 외엔 기초수급비로부터 독립했다. 녀석은 요양보호사 보조 일을 하고 있다. 독립생활이 불가능하다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스스로 깨쳐 나가고 있다.
“그런데 OO아! 왜 전화했는데?” “후원자님! 설 명절 인사가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그런 소리 하지마라. 괜찮다. ^^”
생각지 못한 인사가 당황스럽다. 녀석이 진짜 사람되어 가는구나! ㅋㅋ 대견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 챙기지 못해 진짜 미안한 사람은 나인데?
돌아오는 4월 달엔 LH기간이 만료되는데 직장 가까운 곳으로 갈까 싶단다. 그런데 후원자님 집에서 많이 멀어지는데, “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까요? 후원자님 많이 서운하실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OOO 너 별 소릴 다한다?” “쓸데없는 걱정말고 너 나 잘 살아. 아저씨는 너 안보고 살면 살판나지?” 맘에 없는 소리 한마디 냅다 쏘아붙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음 한구석이 왜 이리 허전하지?
상념도 잠시 집 알아보러 다녀야 한다. 이곳 서구도 마찬가지지만, 동구 쪽도 별 다르지 않을텐데 걱정이 앞선다. 국가에서 집을 만들어 놓고 입주자를 기다리는 게 아닌, 전세금액을 제시만하고선 수요자가 집을 구하는 형태라 집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금리도 낮은 지금 누가 전세를 내놓겠나?
또다시 잔소리로 일침을 가했다.
“OOO 너! 집 찾기 어렵다고 절대 월세 들어가지 마라. 보육원 친구들 개념 없이 월세 내다 허덕거리는 애들 부지기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