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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서정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가 주연한 「레인 멘 Rain Man」에는 제목과 달리 비오는 장면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제목을 비雨로 특성화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굳이 해석을 해보면 이렇다.
평생 자폐증을 앓고 있던 호프만이 동생의 애인과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아이 같이 천진한 중년 남자의 태도가 귀여웠던지 여자가 달려들어 키스를 퍼붓는다. 남자에겐 첫 키스였다. 뒤에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첫 키스의 느낌이 어땠느냐고.
"촉촉해 Its wet."
관념이 배제된 물 자체에 대한 느낌이다. 여기서 It은 키스에 대한 느낌을 받는 지시대명사이지만 동시에 It rains라고 할 때의 비인칭 주어 it이다. 즉, '촉촉하다'는 키스의 느낌과 비에 대한 느낌이 같은 차원에서 수감隨感 되고 있다. 키스에 부과된 과장된 관념을 덜어냄과 동시에 비를 서정화하고 있다. 이것은 호들갑떠는 관념이 개입되기 이전의 감성이다.
이러한 원초적 감성은 -쉴러의 어법을 빌리자면- '나이브naive'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이 오십 된 우리의 감성은 결코 나이브할 수 없다. 비를 맞는 우리의 감성은 만감의 교차로 나탄다. 이걸 쉴러는 나이브와 대칭 개념으로 '센티멘털 sentimentalisch'이라고 불렀다. 센티멘털은 시간에 따라 사색되고 굴절된 느낌이다.
대명동 캠퍼스로 동창들을 만나러 가던 날, 비가 줄기차게 쏟아졌고 난 어쩔 수 없이 센티멘털해졌다. 촉촉하다는 말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이 교차하며 부유했다.
마침 버스 안의 라디오에서는 M. Albert의 「Feelings」란 노래가 흘러나왔다. 70년대에 나온 팝송지만 80년대에도 다방을 풍미하던 노래다. feelings of love라는 주제어. 추상명사에 붙은 저 s는 사랑의 느낌이 얼마나 복합적인가를 말한다. 게다가 그 느낌은 서로 배반적이기도 하다. "결코 상실하지 않았다 I've never lost you"는 느낌과 "다시는 품지 못할 거라는 I've never have you again in my life" 느낌이 같은 연 안에 배열되어 있다.
비사관(구 외국학대)가는 내리막길, 저 아줌마들 80년부터 4년 동안 꼬박 걸어다녔던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창을 만날 때의 감정은 어린이처럼 순정해진다. 세월 따라 뒤엉켜있는 센티멘털한 굴절 감정들이 일시에 사라져버린다. 늙을수록 옛 동창들이 그리운 이유가 여기 있지 않나 싶다.
어느 가을 해거름에 백발의 노신사가 산책에서 돌아온다. 모자를 벗고 안락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창으로 달빛이 들어온다. 달빛을 따라가던 노인의 시선이 벽에 걸린 조그만 액자 속의 사진에 멈춘다.
"엘리자벳! 노인이 나직이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시간은 바뀌어 버렸다. 노인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Elisabeth! sagte der Alte leise; und wie er das Wort gesprochen, war die Zeit verwandelt – er war in seiner Jugend."
이로서 같은 동네에서 자란 라인하르트와 엘리자벳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전개되고 이것이 『Immensee』의 전체 스토리를 이룬다. 19세기 중엽에 나온 저 독일 Novelle 하나가 80년대 우리들의 정서에 크게 어필했던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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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선배들 참 멋있다~. 이 글 읽으면서 우린 참 가난한 시대를 살았지만 참 따뜻한 감성의 시대를 누렸구나 참 감사하게 되네요. 저 시절엔 방학때 후배들에게 독일어 가르치던 텍스트조차 문학작품을 선택했는데 독일어 학원 강좌처럼 바뀐 오늘의 독문과 커리큘럼이 얼마나 메마른지... 앞도 안 보이게 쏟아지는 장맛비를 가르고 27년이 지난 옛 캠퍼스 동산을 서성대게 하는 동인은 바로 25년전 함께 읽었던 저 슈토름, 괴테, 헤세, 토마스 만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독일문학 작품 한 줄의 감동조차 공유하지 못하는 지금의 후배들이 과연 30년 후 선배들과 같은 심정으로 추억을 더듬어 교정을 서성일 수 있을까, I am not sure!
당시 시업이 선배, 정말 세련되고 멋있었지. 1-2년 밖에 차이가 안 나는 우리들을 모아놓고 <Immensee>를 가르쳤는데, 서울 말씨에 독일어 발음은 거의 이국적으로 들렸지. 거의 모든 단어를 사전에서 찾은 뒤에야 번역(uebersetzen)을 시도할 수 있던 우리에게 해석(interpretieren)까지 해 주었지. DLF(Deutsche Literaturforum)는 나중에 나도 리더를 좀 했는데, 이정길 교수님이 만드셨다두만. 그 교수님은 소설까지 쓰시며 문학에 열정을 보이셨는데 안타깝게도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독일문학으로 doktor까지 한 나도 문학을 논하지 않는지 천문학적인 세월이 흘렀는데, 저 때 읽은 책은 왜 이리 생생히 기억나는지. Carpe diem!
대학때 읽은 문학텍스트의 위력은 그것이 평생을 간다는 겁니다. 추억의 교정 곳곳에 함께 한 그리운 얼굴들에 대한 회한과 사연들이 서려 있지만 또한 우리가 함께 읽었던 텍스트의 선명한 기억이 함께 공존한다니 우린 참 멋진 삶을 살았지 않나요? 지금의 독문과 말고 그 옛날 우리 독문과 참 멋지다~ 우리 선생님들 참 보고 싶고,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 참 보고싶네.... 시업이 형 보고시퍼요~~~
시업이 선배, 등치는 작은 편이었지만 날렵해서 탁구도 잘 쳤지. 당시 독문과에 탁구 고수들이 꽤 있었는데 랭킹 3-4위 되었던 걸로 기억. 난 그 보다 아래였지만 지금 붙으면 진다고 장담은 못해. 문제는 아래 쪽에 고수들이 더러 있다는 소문이 있어 전체 랭킹은 오히려 하향 조정되어야 될 듯. 시업이 선배 그 사이 골프의 고수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역시 작은 공에 소질이 있는 모양. 여자와 공은 부드럽게 다루되 마지막에 액센트를 주라는 말이 있는데, 여자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었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