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청량산(수어장대)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연주봉, 동쪽으로 남한산(벌봉과 한봉)을 포함한다.
해발 500m 내외의 자연지형을 따라 둘레 12km가 넘는 성벽을 구축하여 많은
병력으로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지리적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동아시아 성곽 건축술의 원형과 시대별 발달을 잘 보여주는 남한산성은 672년 신라 주장성으로부터 시작하여
1624년 본격적인 축성이 이루어졌으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개수축이 이루어졌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당시 청 태종의 10만이 넘는 대군에 맞서 인조가 47일간 항전하였던 전쟁터였으며,
동아시아 명, 청 교체기에 힘의 각축장이었다. 인조 2년(1624)에 축성한 이후 왕실의 보장처로서 역할을 하며,
300여 년이 넘게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경영한 세계사적으로 보기 힘든 초대형 산성의 사례가 되었다.
남한산성의 축성과 광주유수부 설치는 국토 방어와 주민 거주의 개념을 통합한 '산성거주론'을 실천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이다.
1896년 을미의병의 거점이 된 남한산성은 1907년 일제에 의해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1917년 성내에 있던 광주군청이 산성 밖으로 이전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54년 국립공원 지정, 1971년 도립공원 지정으로, 남한산성은 정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유원지로 알려졌던 남한산성은 1999년부터 시작된 경기도의 남한산성 복원 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2014년 6월에 1439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장경사에서 시작 장경사신지옹성 ~ 동장대 ~ 전승문 ~ 연주봉옹성 ~ 우익문 ~ 수어장대 ~ 영춘정 ~ 지화문 ~
남장대 ~ 좌익문 ~ 송암정 ~ 장경사로 돌아오는 코스다.
출발 전 장경사 전경을 담아본다.
장경사는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수축 시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위해 건립한 군막사찰로 성내에 존재했던 9개의 사찰 중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사찰로 망월봉의 남사면 중턱 완경사면을 이용하여 비교적 넓은 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장경사신지옹성이다.
옹성은 기존의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이중 성벽이지만 남한산성의 5개 옹성은 다가오는 적들을 3면에서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를 지키기 위해 성벽 외부에 덧대어 만든 시설물이다. 장경사신지옹성은 봉암성과 한봉성을 지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가운데 위풍당당한 뽕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데 우리가 자주 그 그늘에서 쉬어가곤 했던 곳이다.
옹성으로 통하는 남한산성 제2암문이다.
남한산성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암문이 마련되어 있는데, 모두 16개의 암문이 있다.
암문은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중 하나인 군사경관(암문)에 해당한다.
장경사신지옹성에서 상당한 비탈길을 오르면 동장대터를 만난다.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곳은 남한산성의 동북쪽 모서리 부분의 해발 501m 지점으로, 성 동쪽에 있다 하여 동장대가 위치하였다.
동장대는 인조 2년(1624) 산성 수축 시에 설치되었고 누각도 함께 건립되었으나, 18세기 초에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동장대터 성벽쪽에 울타리가 있는데 보수를 하지 않은 여장이 있다.
여장은 성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적을 향해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남한산성 여장은 다른 성곽에서 보기 힘든 전돌로 축조한 평여장이다. 일반적으로 하부는 석재로 상부는 전돌을 사용한다.
여장은 수평 되게 축조한 것이 기본이나, 급경사지에서는 계단식으로, 일부 완만한 경사지에는 지형에 따라 경사지게 조성하였다.
여장에는 중앙에 근총안 1개와 좌우에 원총안 2개 등 3개의 총안이 있고, 여장과 여장 사이에 활을 쏘기 위한 타구가 마련된다.
동장대에서 내려다본 봉암성 방향에 외로운 소나무가 성벽 아래 서있다.
성벽 안쪽 군데군데 군포지를 지나가는데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 건물로 기록에 따르면 남한산성 내에 125개소의 군포가 있었는데 현재는 한 군데도 남아있지 않다. 발굴조사 결과 군포는 약간 높고 평탄한 대지 위에 있었고, 전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건축했다.
건물의 모양은 맞배지붕에 기와를 얹고 토석 벽을 두른 형태로 초소 기능에 맞게 정면이 트여 있다.
동장대 아래 봉암성으로 통하는 암문이다.
벌봉쪽으로 통하는 제3암문위에 귀륭나무꽃이 만발했다.
경사가 심한 계단길을 한참 내려오면 하남 창사창동으로 갈 수 있는 제4암문(북암문)을 만난다.
제4암문의 바깥 모습이다.
비교적 완만한 길을 지나 북문 전승문으로 간다. 멀리 수어장대도 보인다.
전승문 문루를 지나간다.
5개 장대 중 북쪽에 위치했던 북장대터다.
전승문과 연주봉옹성 중간쯤에 바깥으로 돌출된 위치에 있다.
연주봉옹성이다. 제5암문으로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우익문 내려가기 전 약간 돌출된 성벽안쪽으로 매탄터가 있다. 유사시 필요한 숯과 소금을 묻어 두었던 곳이다.
성 바깥 서문 전망대 바로 위 성벽에서 바라보는 전망이다. 오늘따라 시야가 흐릿하다.
우익문 내려가는 길가에 철쭉이 만발하다.
우익문 문루를 지난다.
뒤돌아 본다.
수어장대 가는 길 성벽쪽은 여장보수공사로 칸막이에 가려져 있고 왼쪽길가에 철쭉이 조금 보인다.
수어장대 앞이다.
청량당 모습
수어장대와 무망루
제6암문(서암문)
가장 전망이 좋다는 영춘루를 지난다. 원래 남문 밖에 있던 것을 이전 설치했다고 한다.
지화문 가까이 왔다. 소나무숲 테이블에 앉아 간식을 하며 쉬어간다.
지화문 입구를 내려다 본다.
지화문 문루
지화문 옆 오름길에서 문루를 담아본다.
제1남옹성을 내려다 본다.
검단산 방향에서 오는 도로가 지나는 암문이다.
제2남옹성이다. 정면에 검단산이 보인다.
제2남옹성 안쪽에는 남장대터가 있고 제2남옹성 치가 있다.
남장대터에는 주춧돌이 남아 있다.
제2남옹성 치
치는 성벽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접근하는 적들을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치는 본성에 4개 봉암성에 1개가 있는데 지형적 특성상 남쪽으로 3개의 치가있고 그 중 가장 큰 규모(길이 30m 폭 19m)다.
남쪽 코스는 그늘이 많지 않아 뙤약볕에 걷기는 불편하다.
동쪽방향에서 북쪽방향으로 길이 바뀌면서 동장대터 아래 망월사가 눈에 들어온다.
장경사로 가는 성벽길이 가까이 보인다.
좌익문 가까이 오니 꽃들이 많다. 붉은병꽃나무다.
애기똥풀꽃이 화려하다.
철쭉꽃길 뒤로 좌익문이 보인다.
광주에서 올라오는 도로 옆 수문이 있다.
산성내에 80개의 우물과 45개의 연못이 있을 정도로 수원이 풍부했는데 대부분의 물이 이 곳 수문을 통해 흘러나간다.
가까이서 본 좌익문
성벽 외부에 송암정터가 있는데 일부를 파헤친 흔적이 있다.
바로 아래 장경사가 보인다.
장경사 주차장 한켠에 있는 남한산성의 제1암문의 모습이다. 현재는 위험지구로 판단되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도면상 거리 7.3km, 실재 거리 8.0km, 소요시간 3:40 소요되었다. 9년전에 비해 30분이상 더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