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정 산
2009/12/27
범어사-북문-고당봉-북문-원효봉-의상봉-동문
차를 버리고 열차를 탄다. 부산은 내 나름의 작은 기억들이 조각조각 머리에 담긴 곳이기에
모든 걸 되새기면서 아침을 가른다. 기차카페가 딸린 3등 열차는 또 하나의 작은 이야기를
품겠지. 차창 밖으로 스치는 세상을 보면서 차 한잔으로 시간을 흘리고, 부산이다.
부산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금정산은 사방으로 길을 열고 숱한 사람들의 발을 잡아맨다.
부산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범어사역에 내려 간단히 점시식사를 한다.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집을 나선 터라 물병 두개만 베낭에 챙기고, 범어사행 마을버스로 범어사까지, 산
중턱까지 온 셈이다. 범어사는 절 규모만큼 많은 신앙인을 거느리고 있는 넉넉함이 베어있다.
사람들은 말없는 부처 앞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을 돌이키고, 앞날의 축복을 빌리라.
초파일이 아닌 데도 간구의 연등이 줄을 잇는다. 한겨울 절에 피는 꽃이 화려하다.
하늘높이 치솟은 굵은 왕대의 기상이 곳곳에 뭉쳐진 듯 사찰의 건물 하나하나가 당당한 모습
이다. 왜구란 이름의 옛 일본의 상륙시도가 가장 많았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금정산
오름은 범어사 돌아보기부터 시작이다.
범어사를 오른 쪽으로 두고 오르는 길은 집채만한 바위너덜이 이어지고, 잘 정비된 등산로
는 편안한 오름을 인도한다. 아이도 늙은이도 적당한 쉼터가 제공되어 행렬이 줄을 선다.
북문까지 오름은 마을 뒷산의 흐름을 닮아 꽤 친근하다.
북문 동문 서문 남문으로 이어지는 금정산성이 바로 등산로가 되어 등산객들은 옛날로 돌
아가 국경 수비대가 된다. 침략자나 방어자나 모두가 슬픈 이야기를 남기는 전쟁들이 숱하게
벌어졌을 산성은 오늘 사람들의 휴식과, 산행, 볼거리로서 부산의 명산이 되었지만, 성곽이
가진 역사는 아마 피로 얼룩지는 슬픈 사연들이 넘처나도록 새겨져 있으리라. 북문을 지나
고당봉에 오른다. 정상의 봉우리 옆 양지녘에 자리잡은 산신당은 지리한 싸움에도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집결되지 않았으랴.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부산의 부분들이
아름답다. 바다와 도시가 섞인 항구는 길게 금정산과 조화로운 선을 그린다. 바다, 도시
그리고 금정산 나는 한눈에 합성된 그림에 취한다.
고당봉을 벗어나 다시 북문으로 내려온다. 북문까지 들락이는 차의 모습과 콘크리트 건물로
변형된 주막이 아닌 상점에서 사람들은 열심히 하루를 삼키고 있다. 산이 산답다는 것은 산
그대로 두고 즐기는 게 아니랴. 성곽을 따라 동문으로 발길을 돌린다. 예매한 열차표의
시각에 맞춰 제한된 등산시간 때문에 원효봉과 의상봉을 거침없이 뒤로 돌린다.
길은 두가지다 성곽위이 길과 성곽을 비껴 난 대로. 나는 성곽을 따라 능선의 오르내림에
리듬을 탄다. 성은 산의 능선에 따라 구불구불하게 사행형으로 멋진 곡선을 그리기에
선따라 ㅁ음까지도 부드러워 지는데 전쟁의 아우성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처절한 몸부림
과 함께 역사에 잠들어 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성곽이 이루어낸 선은 아름답기 그지 없으나,
숨겨진 상황들은 얼마나 비참했으랴. 권력이라는 허울이 만드는 역사는 선일 수도 악일 수도
있는 양면에서 모다 선이라 불리었으리라.
밞ㅌ에서 산행로의 이정표로 이어지는 성곽을 따라 걸어걸어 동문에 선다.
산행 종점에 온 게다.
동문에서 잠시 내려오니 아스팔트 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배려로 만들어 놓은 공기분사기로 산먼지를 훑어내고 금정산 산행을
마친다. 오가는 버스가 만원이라, 광명사까지 내려오는 길은 아스팔트 길과 나란히 대조를
이루면서 잘 다듬어진 산책로이다. 하산 후 마시는 막걸리 한잔에는 금정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부산역은 이미 짙은 어둠이 묻어 밤꽃이 활짝 피어나고, 기차는 어둠을 가르면서 오늘을
삼키는 대신 의자에 몸을 묻어 달콤한 휴식을 즐기게 한다.
2009년 송년 산행 마무리로 금정산 산성을 한바퀴로.
사람들이 산을 등지고 삶터를 지키고 가꾼
흔적을 통해 나으 삶을 반추하는 것 또한 새날을 맞는 의미 아니랴.
거기에 삶의 모습이 각인되어 있으리니.
오늘을 사는 의미도 함께 묻어간다.
2010/01/06
문경 산북의 산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