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암 님들이시여! 이 시국을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요.
여기는 아산입니다.
올해 3월에 저는 이곳 배방읍 한 의원에 있었습니다. 정형외과인데 환자가 소위 지역의 모든 환자들이 이곳으로 몰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일반 촬영이라서 손과 발이 정신이 없었지요. 휴식시간에 4층 베란다에서 보는 시가지는 코로나 여파로 한산하더군요. 그때, 늦은 오후의 어떤 정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너 명의 제 또래들이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한 음식점을 나오더군요. 코로나로 들썩일 텐데 그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하지 않고 박장대소하는 모습들이었지요. 얼마나 부럽던지. 웃음이 절로 나오더군요. 그 소박한 만남을 보는 마음 한구석이 속상도 하고요. 지금들 어떠신가요.
백신이 나오려면 아직은 멀고 국내외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위태롭기까지 합니다. 박쥐와 천산갑으로부터 인간에게 옮겨왔다는 이 바이러스로 세계는 정지한 지 이미 오래되었군요. 여행과 만남이 없어짐은 물론 이웃을 두려워할 정도로 대구와 성북구에서 폭발적인 확진자를 증가시켰고요. 점점 나이 들고 있는 저희 부부도 좀처럼 밖에 나가지 않고 그저 집콕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까지 연이어 올라온 태풍이 반도를 할퀴고 갔는데 양평 회장님 농막은 피해가 없으시겠지요? 그날 밤, 주인이 출타한 윗집 농가에서 닭들이 소란스러워 회장님께서 진정시키고 내려오는 그 모습이 선합니다. 저는 외부에서 침입한 짐승이 아닐까 의심하였지만요. 그 밤 세 분은 새벽이 오도록 훈훈하였지요.
제법 아침저녁으로 선선합니다. 베를린 큰형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34년 동안 저의 병원 생활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인 영등포 시립병원 시절이 가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영등포 시장 어느 길가 맥줏집에서 도란도란 술잔을 돌리며 음악과 문학을 풀어놓으신 큰형님의 은은한 목소리는 지금도 흐뭇하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가까운 서해와 산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칠갑산을 처음으로 올랐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이곳이 어머니의 산이라는군요. 저는 지리산이 그 명칭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콩밭 매는 아낙네야’로 시작하는 ‘칠갑산’ 노랫말에서 그 의미를 가져왔더군요. 지리산이 남한의 ‘어머니 산’이라면, 칠갑산은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산’ 같더군요. 서해로 나가는 여기 ‘곡교천’을 뜀박질하며 새로운 곳을 배우며 느껴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단지, 집사람은 어울리는 사람들이 없어선지 이곳에 정이 안 간다고 하니 약간 걱정도 됩니다.
서보암 식구님들!
조금 있으면 가을이 옵니다. 그러면 들은 노랗게 물들고 과일은 알알이 익고 하늘은 파랗게 열리겠지요. 그런 날을 위해 다시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숲속에서 풀벌레 소리를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아니면 차를 타고 가시다가 경치가 근사한 곳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답답한 기분을 날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가족과 친구가 있어서 세상은 살만하지만, 가끔 혼자서도 즐길 것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살려고 달려온 지난날을 복기하면서 무엇이 앞으로 가장 소중할까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쉬면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얼마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가끔 상상만이라도 하면 기분이 절로 환해집니다. 작년 가을날, 안나푸르나 한 능선을 지나며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에 그만 왈칵 눈물이 난 적이 있었지요. 다시 그런 느낌을 찾아 저는 돌아오는 가을에는 설악산을 넘어 동해로 떠나렵니다. 그곳을 걸으며 생각하며 푸른 바다를 본다는 생각에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려집니다.
식구님들이시여!
부디 이 코로나 이기시고 모두 만나서 회포를 푸는 그 날까지 건강하시길 빕니다.
아산에서 졸필 이만 줄이겠습니다.
2020년 9월 9일,
미둔 조순섭 드림
첫댓글 미둔은 인생을 복기하며 삶의 의미를 되세기는 것 같구려! 코로나19로 만나기도 힘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피차 힘든 세상이니.. 이번 태풍때문에 양평 농원의 그늘막은 갈기갈기 찢어 지고 잘 크던 고추마져 탄저병으로 망치고... 허망하긴 하지만 신선한 공기와 바람과 하늘과 별속에서 양평의 밤속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네!
그려셨군요.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곧 한가위도 다가오는데 속히 복구하심에 도움 줄 수 없어 죄송합니다. 그래도 자연을 닮아가시는 형님의 모습에 존경을 표합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에 유념하시길 빕니다.
성남집 옥상 고추밭에 고추가 모두 상해서 뽑아버리시고는 다른 야채를 심어서 매일 옥상으로 올라가시는 어머니, 대형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가 나와 매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달라고 아침, 저녁으로 문자 보내는 병원 감염관리팀, 짬짬이 모임을 하려고 애쓰는 직원들..
모두 자기위치에서 생활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존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방역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본부장도 건강에 유념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