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석 공께서는 함창 김씨 직장공파-건통파 37세손으로, 1920년 8월 12일 건통파의 집성촌인 구향리에서 아버지 김순진(金順鎭) 공과 어머니 평해 황씨 황복희(黃福姬)의 차남(독립운동인명사전에선 장남이라 함. 사실 확인이 필요해 보임)으로 태어나셨다. 함창공립보통학교(현 함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4월 공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다가 일제의 강요로 김원한석(金原漢奭)으로 창씨개명 했으며, 뜻이 맞는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웠고, 비밀결사인 명랑회(明郞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40년 2월 졸업을 앞두고 공주읍 교외의 웅진강(熊津江) 부근에서 명랑회 회원 이용준(李鎔俊)·김용(金容)·김용갑(金溶甲)·김해인(金海仁)·최낙권(崔洛權)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나서자고 결의하며 활동 방향에 대해 논의하였다.
우선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강대국인 미국과 영국의 원조가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그리고 미국·영국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그들에게 반일 의식을 주입해 우리 민족의 독립을 지원하는 세력으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미국·영국계 기독교 선교사에 접근하거나, 다수의 한인을 기독교 신자로 모집하는 방법을 계획하였다. 또한 훗날 지도자가 되어 하층 계급의 지식 향상에 힘쓰고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자고 다짐하였다.
1940년 3월 공주공립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4월 일본 도쿄(東京) 소재의 사립학교인 니쇼가쿠샤전문학교(二松學舍專門學校)에 입학하였다. 니쇼가쿠샤전문학교 3학년에 재학 중 공주공립중학교 시절 비밀결사 조직과 활동 사실이 드러나 1942년 8월 12일 도쿄 경시청에 붙잡혔다가 국내로 인도되었다.
1942년 9월 30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3년 7월 22일 풀려나셨으며, 1950년 6월 8일 돌아가셨다. 밀양인 박선애(朴仙愛)와 슬하에 자식 넷을 두었다.(족보에 독자만 올라간 것으로 보아, 독자로 추측되는데, 다른 딸들과 그 후손을 족보에 기입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훈전자사료관에 2024년 11월 24일, 외손이 외할아버지의 사진이라며 사진을 제공한 기록이 있는데, 외손이 있다는 뜻이니 몇없는 함창 김씨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만큼 기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관련자료
https://search.i815.or.kr/dictionary/detail.do?searchWord=&reSearchWord=&searchType=all&index=1&id=4645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50297
https://sangju.grandculture.net/sangju/toc/GC09100980
이상의 내용이 족보에 추가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댓글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은 김한석 애국지사.
민찬군
참으로 아름답다
조상의 훌륭한 업적을 찾아
족보에 수록할 자료를 제공해 주니 고맙다
독립운동가 김한석
함창 김씨 직장공파-건통파 37세손으로
상주시 함창읍 구향리에서 아버지 김순진(金順鎭) 공과 어머니 황복희(黃福姬)의
차남(독립운동인명사전에선 장남이라 함. 사실 확인이 필요해 보임)으로 태어나셨다
공훈전자사료관에 2024년 11월 24일, 외손이 외할아버지의 사진이라며 사진을 제공한 기록이 있다는데 더욱 사료 자료을 수집 하여야 겠다
훌륭한 애국지사를 둔 가문의 영광을 영원히 친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