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프렌치 수프>
1. 인간의 관계, 특히 남녀관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매혹적이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며, 강렬한 인상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저 일상적이며 담담한 행위 속에서 뜨거운 열정을 웅축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 <프렌치 수프>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20년 이상 동료 쉐프로서 공동의 작업을 한 두 남녀는 결국 남자의 청혼을 여자가 수락하면서 결혼을 약속한다. 그동안 여자는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같이 하는 사람과 굳이 ‘결혼’이라는 관계를 통해 제도적 틀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유와 인간적 존중이었다.
2. 하지만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여자는 숨을 거두고 남자는 심한 공허와 슬픔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결국 남자는 여자와 함께 하기로 했던 특별한 만찬 준비를 다른 누군가와 계속 하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작업을 진행한다. 그것은 두 사람이 생전에 나누었던 삶에 대한 생각과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여자는 뜨거운 여름처럼 살다가 사라지길 원했고, 남자는 모든 계절이 각각의 새로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이다. 서로 다른 개성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 매일같이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서로에게 완벽하게 스며들어 있는 사람들, 그럼에도 사회적 제도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서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묘한 긴장과 관계에 대한 절제가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 특별한 사랑을 완성했는지 모른다. 뜨겁고 육체적인 열정에 빠지는 모습과는 다르면서도 요리에 대한 정열을 공유하면서 이루어진 냉정하지만 신뢰하는 사랑의 전개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각자의 삶의 형식을 존중하게 해준다. ‘결혼’으로 결말나는 관계가 아닌, 열려있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관계의 모습이다. 어쩌면 그것은 한때 내가 꿈꿨던 일과 애정을 공유하지만, 제도에서 자유롭고 서로에게 의무를 강요하지 않는 남녀관계와 유사한지 모른다.
3. 영화 <프렌치 수프>의 남녀관계는 특별한 모습이지만,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음식의 풍성함이다. 영화는 프랑스 요리의 다양한 레시피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순서를 따라 진행하면서 요리가 완성되는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프랑스 요리가 담고 있는 정신과 문화 그리고 음식에 담겨진 기억에 대한 존중을 보여줌으로써 요리가 인간을 서로 연결시켜 주고 인간을 결합시키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 중 하나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보다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이 더 많이 더 자세하게 화면에 등장한다. 그것은 특별한 문화와의 만남이며 먹을 것에 대한 원초적 욕망을 확인하는 즐거움이다. 이 영화를 통하여 알게 된 점 하나, 한국의 프랑스 코스 요리는 너무도 음식양이 적어 불만이었는데, 영화 속 프랑스 음식은 충분히 푸짐하고 많은 양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며 음식의 질뿐만 아니라 양에서도 풍성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많은 프랑스 식당은 프랑스의 이미지만을 판매하며 폭리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댓글 - 어쩌면 그것은 한때 내가 꿈꿨던 일과 애정을 공유하지만, 제도에서 자유롭고 서로에게 의무를 강요하지 않는 남녀관계......... 서로 다른 개성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 그럼에도 사회적 제도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