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일기(21) - 역답사(경북 상주의 <옥산역>, <청리역>)
역답사를 시작하면서 진짜 ‘간이역’을 만났다. 경부선에 속한 <이원역>이나 <남성현역> 등은 간이역이지만 다만 매표만 하지 않을 뿐, 직원들이 근무하면서 사람들의 입출입을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 이유로 역에서 느껴보는 플랫폼의 아련한 추억을 경험할 수 없었다. 불과 3분 전에야 개방을 하였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하는 경북선 답사 첫날 진짜 간이역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기차에서 내려 <옥산역> 역사로 들어가자 아무도 없었다. 역은 비워있고 벽에 열차시간표만 게재되어 있었다. 텅 빈 공간이 주는 공허함은 폐역에서만 맛보게 되는 오히려 낯선 풍경이다. <청리역>의 적막함은 옥산역 이상이다. 역사에는 빈 의자만 설치되어 있었고 MBC <간이역>에 등장했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플랫폼 출입은 자유로웠다. 열차 시간보다 약 1시간 이상 일찍 도착해서 제대로 플랫폼의 낭만을 만끽했다. 저녁 반주로 마신 이과두주의 취기가 몽롱하게 몸 전체로 퍼질 때, 플랫폼을 왕복하고 막히고 탁한 목소리로 감상적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오랜만에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허무감에 빠져 보았다. 초록의 세상 속에서, 낡은 플랫폼의 단단한 질감을 밟고 서서히 저물어가는 석양의 매력적인 붉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이게 진짜 간이역이지.’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이다.
<옥산역>과 <청리역>은 모두 비슷한 분위기와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역 앞에 나서면 면거리가 이어지고, 지방의 행정기관 및 약국이나 음식점 같은 필수적인 가게들이 들어서있다. 다만 특별한 것은 <옥산역> 주변에는 유독 다방과 이발소(미용실)가 많다는 점이었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의 농사가 대부분 비닐 하우스를 이용한 특용작물인데 비하여, 여전히 전통적인 논농사가 중심이었다. 곳곳에 펼쳐진 새로 심어진 벼모종들이 싱싱한 모습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주변의 산도 적당한 무게감으로 지역을 감싸고 있고, 그 사이에 난 길들은 특별하게 가꾸지는 않았지만 평안하고 따뜻한 온기를 품고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길은 충분히 길었고 좋은 장소로 연결되어 있었다. 초록의 에너지가 강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초여름의 모습이었다.
<경북선> 답사의 시작이 순조롭다. 천안에서 김천역까지 이동하여 시작하는 ‘경북선’ 답사는 상주, 예천, 영주 지역을 지나는 역들을 찾는다. 영주에서 다시 강원도와 경북 해안 쪽으로 이동하지만, 천안에서 가기에는 너무 멀다. 우선은 경북선의 종점이 영주가 답사의 끝이다. 다른 지역은 ‘제천’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추진해야 두 번째 역답사 프로그램 때 시행하려고 한다. 경부선의 끝도 가까워진다. 천안 지역을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는 2023년 역답사에서는 기본적으로 전라선, 호남선, 장항선에 이어 경부선과 경북선의 역들을 답사하려고 한다. 7월까지는 어느 정도 마무될 것같고, 남은 기간에는 그중에서 특별한 기억을 주었던 역들은 다시 방문하고 싶다.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언제든지 다시 꺼내고 활용할 수 있는 마음 속의 재산을 품고있는 것과 같다. 앞으로 10년은 그런 무형의 재산을 여전히 탐색하고 수집하고 싶다.
1. <옥산역>
2. <청리역>
첫댓글 - 마음에 든다! = 소중하다! = 기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