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렁이 인생
아 네모네 이현숙
설 명절이 돌아오면 동생들 카톡방에 불이 난다. 만두를 한다, 전을 부친다 하며 힘들다는 넋두리가 쏟아진다. 나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망우산 가서 찍은 사진 올리면 언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보다고 난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전에 사는 조카네 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는데 차를 폐차 시킨 후에는 가지도 않고 집에서 놀고먹는다. 아들은 미국 살고 딸은 시집에 일하러 가니 우리 집에는 손님도 오지 않는다.
설날 저녁에는 딸네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딸은 시집에서 가져온 전과 고기로 저녁상을 차려온다. 나는 손녀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가지고 가서 세배 받고 세뱃돈 주면 할 일 끝이다.
설 다음 날은 동생들과 친정집에서 모이는 날이다. 이 날은 외식을 하므로 음식 준비가 필요 없다.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를 위해서 동생은 전과 나물 등을 가져다주며 집에 가서 먹으라고 한다. 게으른 년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아무 것도 안 한다고 나발을 불고 다녀서 그런지 주위에서 잘도 준다.
딸이 어렸을 때 송편을 해보자, 만두를 해보자 하면 네가 시집가서 하라고 하며 한 번도 안 했다. 남편이 음식에 대해서 한 마디 하면 시범을 보이라고 윽박지른다. 거기서 한 마디 더 하면 당번을 바꾸자고 협박한다. 남편은 빨래 당번이고 난 음식 당번이다. 빨래는 일주일에 두 번만 하면 되지만 음식은 매일 해야 한다. 빨래는 세탁기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지만 음식은 뭘 할까 생각해야하고 재료도 사야하니 훨씬 힘들다. 남자라고 손이 없냐? 발이 없냐? 하고 들이대면 불평이 쏙 들어간다. 이건 껄렁이 수준이 아니고 완전 막가파 인생이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다니고 결혼해서는 일하는 할머니가 다 해주니 사실 난 거의 아무 것도 안 하고 살았다. 평생 주둥이만 놀리며 산 꼴이다. 일하는 할머니는 모든 일을 알아서 했다. 김장도 내가 출근한 다음에 동네 아줌마와 다 해치웠다. 아이들 병원도 데리고 다니고 된장 고추장 모두 혼자 담갔다.
한 번은 할머니가 외출한 후 저녁상을 차려야했는데 어느 것이 우리 김칫독인지 모르겠다. 그 때는 단독 주택에 살아서 마당에 김칫독을 묻었다. 세 사는 사람도 같이 묻었는데 아무 거나 꺼내 먹은 후 나중에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세 든 집 김칫독이란다.
친정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같이 여행 다니는 의사 부부가 문상을 왔다. 나는 남편에게 같이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날 의사가 집에 가서 부인에게 말하더란다.
“이현숙씨 남편은 키도 크고 잘 생기고 교장을 할 정도로 능력도 있는데 왜 그런 여자하고 결혼했지?
얼굴이 예쁜 것도 아니고 요리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혹시 밤일을 잘 하나?”
나중에 부인에게 이 말을 듣고 배꼽 잡고 웃었다. 의사 부인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예쁜데다가 요리도 엄청 잘 한다. 같이 여행 갈 때면 밑반찬을 맛깔스럽게 해 와서 다들 맛있게 먹는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내 남편은 잘못 골라도 너무 잘 못 골랐다. 가구는 한 번 선택이 십년을 좌우한다고 하는데 배우자는 한 번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선택 한 번 잘 못해서 평생 제대로 얻어먹지도 못하고 마누라가 박색이라 어디 데리고 다니지도 못하는 남편이 좀 안 됐기는 하다.
그래도 자기가 선택한 것이니 어쩌겠는가? 예쁜 여자는 술집에 가면 많고, 맛있는 음식은 식당가서 먹으면 된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껄렁한 인생이 참 편하다. 못 한다고 낙인이 찍히면 아무도 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남편도 오랜 시간 길을 들여 놓았더니 세뇌가 되었다. 딸은 시집에 가서 시어머지와 김장해서 갖다 먹고 며느리는 친정 가서 친정어머니와 김장해서 먹는다. 며느리는 김장하면 우리 것도 한 통 갖다 준다. 이렇게 길을 들여 놓으니 며느리가 미국 살아도 친정 엄마가 김장을 하면 매년 한 통씩 보내준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너무 한 거 같다.
그래도 이 편한 생활을 버릴 수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점 점 심해지는 거 같다.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껄렁함과 뻔뻔함이 내 컨셉이 되었다. 그저 아들, 딸 잘 해먹이고 싶어 결혼 후에도 열심히 해 나르는 엄마들을 보면 안 됐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이 껄렁한 인생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나대신 누군가가 수고하는 것은 확실하다.
지금까지 진 빚 다 갚으려면 내생에서는 무지 고생할 것 같다. 밤잠도 못 자고 날밤 새우며 일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 부터라도 조금씩 갚는 연습을 해야 하려나?
미국 사는 아들 내외가 방학 때 우리 집에 와서 한 달 정도 머문 적이 있다. 부전자전이라고 하더니 아들도 빨래 당번이다. 세탁기를 돌리기 전 며느리에게
“뭐 빨 것 없어?” 하고 묻는 순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스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시어머니인가보다. 우아하고 심술궂지 않은 멋진 시어머니가 되고 싶었는데 역시 나는 신물 나는 시어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