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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랑북이랑 더불어 살기 위한 통일 운동 소식지
♠ 만든사람: 이 재 봉
♠ 주 소: (570-749) 전북 익산시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전자우편: pbpm@wku.ac.kr ♠ 홈페이지: www.pbp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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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문제와 죽고사는 문제: 비행기 안에서의 단상
12월 19일 인천발 애틀랜타행 비행기 안에서 기장의 특별 방송을 통해 대통령선거 결과를 들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압도적으로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기대와 너무 딴판이기에 엄청 실망스럽고 무척 충격적이다. 득표율이 거의 50%에 이를지라도 투표율이 겨우 60%를 넘었으니 전체 유권자의 약 30% 지지로 당선된 셈이라며 당선의 의미를 깎아내릴 수는 있겠지만,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데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BBK 특검 결과에 따라 범죄자로 몰리면 청와대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지만, 선거를 다시 치른들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것 같지도 않다. 속이 좁아 그의 당선을 축하해주지는 못할망정 좋으나 싫으나 인정은 해야지.
그래도 현재에 대한 아쉬움과 분노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절망과 불안으로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심란함을 떨치기 어려웠다. 부패와 비리의 ‘종합세트’라고 할만한 부도덕한 사람을 최고 권력자로 뽑을 만큼 유권자들도 썩었단 말인가. 도둑질을 하든 속임수를 쓰든 배부르면 된다는 뜻인가. 이른바 BBK는 워낙 복잡하니 제쳐두자. 치사하게 세금 몇 푼 떼어먹자고 자식들 위장 취업시키며 금세 들통날 거짓말을 늘어놓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워놓으면, 정치인들의 부패는 어떻게 단속하고 관리들의 비리는 무슨 수로 처벌할까. 그래도 수많은 지식인들은 그러한 구린내나는 권력의 언저리에나마 빌붙어보자고 무슨 연줄이라도 찾아 나서겠지.
하기야 선거 운동이 시작되면서 도덕성보다 능력을 따지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능력. 어떻게 하든 잘 살게 되면 좋다는 뜻일텐데, 목적이나 결과가 수단이나 방법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은 이상일 뿐일까.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경제가 정말 좋아지게 될까?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마 전두환 정권 때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나라 경제를 규모나 양으로 따진다면 세계 약 200개 나라 가운데 11-12위 정도 되니 상위 5-6%에 속한다. 엄청 잘 사는 축에 낀다는 뜻이다. 얼마나 더 성장해야 두루 만족할 수 있을까? 우리 경제에 진짜 문제가 있다면 양보다 질에 있는 게 아닌가. 이른바 양극화 현상에서 벗어나 서민들도 잘 살기 위해서는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대기업과 부유층을 대변하는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 아래서 잘 될지 의문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경제가 나아질 거라고 믿으니 나도 그렇게 생각해보자. 나이 50을 넘기도록 돈 한 푼 모아놓지 못했어도 65살까지 쫓겨날 걱정 없는 직장에서 먹고사는데 별 지장 없을 만큼 월급을 받고 있어서 어려운 경제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경제 문제는 그렇다 치고 대북 정책은 어떻게 될까? 흔히들 평화와 통일 문제는 일상생활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특별한 사람들만 관심을 갖는 분야라고 여기는 것 같다. 경제가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면 평화와 통일은 ‘죽고사는’ 문제에 관한 것이어서, 경제 관련 정책보다 평화와 통일 관련 정책이 더 중요한 것 같은데. 거듭 말하지만 내가 이른바 ‘친북 빨갱이’ 소리 들어가며 평화와 통일 운동에 조그만 힘이나마 쏟고 있는 까닭은 북녘의 지도자를 좋아해서도 아니요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가 바람직해서도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 전쟁의 가능성을 1%라도 낮춰 전쟁에 따른 개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다. 김정일이 밉고 북한 체제가 못마땅하더라도 무시하고 비난하며 갈등과 긴장을 조성하는 것보다 인정해주고 도와주며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게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남북 사이의 갈등과 긴장을 줄이고 전쟁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을까.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3일 전 금강산에서 원광대 학생들 170여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데 한 학생이 물었다. 통일이 언제쯤 될 것 같으냐고. 통일과 관련한 강의에서는 가장 흔하게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자본주의로든 사회주의로든 체제를 하나로 합쳐 하나의 정부를 만들고 한 사람의 대통령을 뽑는 이른바 ‘완전 통일’을 가리킨다면 나나 여러분이 죽기 전에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남쪽에서 제기해온 국가연합이나 북녘에서 주장해온 낮은 단계의 연방제, 또는 내가 바라는 대로 남북 사이에 통신과 어느 정도의 자유 왕래가 보장되는 ‘21세기형 통일’은 빠르면 5년 안팎 늦어도 10년 안팎에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물론 이에는 조건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지속되면서 남북 관계가 후퇴되지 않는다면.” 대략 이렇게 대답했는데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과 비슷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지만 정반대로 갈등과 긴장 그리고 전쟁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전개되지는 않을까 불안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금강산으로 떠나기 4일 전 광주 호남대에서 학생들 100여명을 앞에 두고 북미 관계에 관해 발표하는데, 한 지정 토론자가 남한의 대통령 선거 이후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가 어떻게 변할 것 같으냐고 질문하기에, 대략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은 이명박 후보로, 그가 집권하더라도 북미 관계나 남북 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게 북핵 문제 해결인데, 미국이 북핵 문제에 긍정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나 그가 아무리 ‘반북’적일지라도 ‘친미’와 ‘한미공조’를 더 중시하기에, 부쉬 정부의 유화적인 대북 정책에 결코 딴죽을 걸지는 못할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의 당선에 따라 부쉬 정부의 대북 정책이 다시 강경하게 바뀌지는 않을까? 미국이 오래 전부터 북한 체제의 붕괴를 선호해왔지만 중국과 남한의 대북 지원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자 방향을 바꾼 것 같은데, ‘상호주의’를 내세우며 강경한 대북 정책을 주장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부쉬 정부의 속셈이 바뀔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은 1990년대 초 일본 및 남한과 손잡고 북한을 무너뜨리려 했지만 중국의 견제로 성공하지 못했던 경험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한국-미국-일본’ 공조는 ‘조선-중국-러시아’ 공조를 불러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불안과 긴장을 불러올 게 뻔한데 미국의 위정자들이 그렇게 멍청하고 무분별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고 북미 관계가 꼬인다면? 그러면 북한을 달래고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며 한반도 안팎에서의 갈등과 긴장을 완화시키는 게 바람직할텐데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친미’와 ‘한미공조’를 앞세우며 이참에 북한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나설 것 같다는 말이다. 북미 관계가 꼬이는데 남북 관계마저 험악해진다면 전쟁으로 치닫는 그야말로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지 생각만 해도 머리끝이 쭈뼛 서는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대통령 당선자는 북핵 폐기가 이루어져야 대북 지원이나 교류를 하겠노라고 했는데, 1990년대 초부터 20년 가까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북핵 문제가 금세 완전히 해결될 수 있을까.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대북 지원이나 교류를 늘리며 북한을 어르고 달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이상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대북 지원이나 교류를 끊고 봉쇄나 제재를 가하여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얼마나 현실적일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평화를 위한 우리의 과제: 세계문명사의 대전환을 위하여
김낙중 (평화운동가)
평화를 위해 기도하시는 친애하는 여러분께:
밝아오는 무자년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댁내 두루 평안하셔서 만사형통하시기를 축원하오며, 새해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겨레는 망국 100여년, 분단 60여년의 아픔을 겪고, 이제 다시 2008년 새해를 맞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동포 형제간의 상쟁으로 세월을 허송한 것이 아닐까요?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남과 북이 화해하여 평화롭게 상생하는 길을 찾아 가야만 할 때가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는 미국 제2기 부시정부조차도 이제는 세계적 패권 추구의 한계를 느끼면서 평화의 길을 찾는 중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한평생 고민해온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고민하는 가운데 글 한 편을 썼습니다. 민족의 문제란 어차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공통 과제라 생각하기에 감히 쓴 것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셔서 겨레의 평화 통일 위해 더 많은 일 해주시기를 기원하오며,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1. 세계문명사의 발전 방향
2007년이 다 저물어간다. “21세기”란 화두도 벌써 내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오늘의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가 Corea민족의 평화통일을 말하는 것도 19세기나 20세기의 “민족통일”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다. 21세기 세계사 속의 민족통일을 말하는 것이다. 흘러가는 역사,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통일 민족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뜻은 같을 수 있으나,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은 결코 같은 것일 수 없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의 역사적 상황, 세계사적 환경을 살펴, 21세기 우리 민족이 가야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놓고 우리는 ‘발달’이니 ‘발전’이니 하고 말한다. ‘발달’이든 ‘발전’이든, 그것이 모두 사회적 상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한데, 과연 ‘발달’이나 ‘발전’이란 말은 어떤 방향으로의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까? 특히 세계문명사의 발달이란, 지구촌에 사는 세계인들이 ‘문명’을 어떤 상태에서 어떤 방향, 어떤 상태로 바뀌는 것을 의미했을까?
사회학자들은 ‘문명’(civilization)과 ‘문화’(culture)를 구분하여, ‘문명’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물질문명’을 의미하고, ‘문화’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정신문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쨌든, 역사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부단히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발달’이나 ‘발전’이라 말하려면, 즉 정체나 후퇴와는 구분되는 변화를 측정할 어떤 가치 기준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 동안 사람들은 물질문명의 발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사람이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힘’의 크기가 커지는 것을 ‘발달’이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이나 다른 인간 집단을 정복대상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정복할 수 있는 살상 파괴의 ‘힘’이 커지는 것을 발달 또는 발전이라고 말해왔다. 그래서 인류 문명사는 사람들이 대자연 속에서 인간에게 힘의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의 발달과 또 인간 집단들의 싸움에서 더욱 큰 살상파괴의 힘을 발휘하게 하는 무기의 발달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온 과정이었다. 도구의 발달은 자연을 정복하는 수단이고, 무기의 발달은 다른 사람들을 정복 지배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2. 21세기 문명사의 한계
그런데 21세기 인류 문명사의 발달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있어서나,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어서나, 힘에 의한 지배나 정복이 한계에 부닥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정복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자연이 인간에 대해 저항을 시작했고, 또 강자들에 대한 굴종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던 약자들이 드디어는 굴종을 거부하고, 피차간에 생사 결단을 요구하는 극한상황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무한한 욕망과 지구촌의 유한한 자원은 서로 모순관계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자원의 고갈, 환경의 오염, 지구 생태계의 파괴 등이 바로 인간에 대한 자연의 저항을 의미한다. 그리고 9.11테러가 보여주듯 무력적 약자 집단들은 ‘자살폭탄’ 테러로 강자에 저항하며, 북핵문제가 보여주듯, 굴복을 강요당하는 약소국가도 핵무기 개발에 열중하는 나머지, 사람들이 개발한 극한 무기인 핵무기가 약소국가를 포함하는 전 지구촌으로 확산하는 현상을 막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집단들 사이에서도 끝없는 약육강식을 더 이상 계속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자연’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아우성치게 되었으며, 또 정복의 대상이었던 약자집단들이 스스로 핵무기를 개발하여 결사 항전하는 상태를 나타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수천 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분명히 인류의 문명사는 생산력 발달에 기초한 자연 정복의 역사였고, 무기의 발달에 기초한 약육강식의 역사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가고 있는 21세기의 역사는 지난날 문명사가 추구했던 문명발달의 길을 방향 전환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강한 인간집단과 약한 인간집단, 그들은 결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그런 상태를 언제까지나 지속할 수가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힘이 센 동물이나 힘이 약한 동물, 강대국들이나 약소국가들이 하나의 지구촌에서 평화롭게 함께 더불어 사는 길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21세기의 역사는 자연과 사람 사이, 인간집단들과 인간집단들 사이에서, 약육강식의 논리를 계속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러 방향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3. 고려민족과 세계의 3대문화권
지난 수천 년의 인류문명사를 돌이켜 볼 때, 지구촌에서는 크게 분류하면 3대문명권이 존재했었다. 갠지스, 인더스 강변에서 발생 발전한 인도문명권, 황하, 양자강 유역에서 발생 발전한 중국문명권, 그리고 이집트,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에서 발생 발전한 지중해문명권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 3대 문명권은 각기 특징을 갖고 인류문명사를 주도해왔다.
이들 3대 문명권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면, 인도문명권의 특징은 둥근 원으로 표시되고, 중국문명권의 특징은 네모난 사각형으로 표시되며, 지중해문명권은 무한으로 열려있는 열십자로 표시될 수 있다. 그래서 인도문명에서는 영구회귀, 영원, 윤회, 숙명, 금욕 등이 사람들의 체념을 요구했다. 이에 비해 중국문명에서는 천지, 음양, 군신, 남녀, 동서, 남북 등 많은 대개념들로 현실 중심의 삶을 설명했다. 그리고 지중해 문명권에서는 사람들이 무한으로 열려있는 시간과 공간이 십자로 교차된 가운데에서, 그 시작을 유신론과 무신론, 유물론과 관념론을 가지고 다투며,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지구촌에서 가장 큰 대륙 유라시아대륙의 동쪽 끝, 그리고 지구촌에서 가장 큰 대양 태평양의 서쪽 끝에서 대륙의 양기와 대양의 음기를 함께 아울러 받으며 살아온 Corea 사람들은 지난 세월 공교롭게도 이들 세계 3대 문명권의 열매들을 충분히 맛보면서, 반만년 넘게 이 땅에서 살아왔다. 이들이 고려시대에는 인도문명의 핵심인 불교를 가지고 살았고, 이조시대에는 중국문명의 핵심인 유교와 도교를 가지고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근대 이후에는 열심히 지중해문명을 받아들이며, 과학기술의 발달과 물질적 부를 무한히 추구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민족은 대륙세가 지배하는 북과 해양세가 지배하는 남으로 분단되고, 무신론과 유물론이 지배하는 좌익과 유신론과 창조론이 지배하는 우익으로 분열되어 이념적 골육상쟁을 하며 반세기를 넘겼다. 그리고 남북 쌍방은 서로 적대적인 상대방 보다 우수한 무기를 가지려 정신을 팔아왔고, 드디어는 동족상잔의 핵전쟁으로 말미안마 언제 함께 더불어 떼죽음을 당할 지도 모르는 절대적 위기 앞에 세워진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반만년 동안 인류가 추구해온 문명 발달사,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중해문명이 제공한 무한 한 욕망 추구를 따라 가고 있는 우리는 과연 이대로 무한한 욕망을 따라 계속 자연을 정복하고, 또 이웃 인간집단에 대한 정복 수단인 힘을 추구하는 문명발달의 길을 이대로 계속 가도 좋은 것일까? 아니면 자연과 이웃을 정복대상으로 생각하고 추구했던 지난날의 발전 방향을 바꾸어, 욕망을 자제하고,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 집단 상호간의 관계를 ‘약육강식’의 길에서 ‘화해 상생’의 길로 바꾸어야만 되는 것은 아닐까? 멈춰 서서 조용히 생각해야만 할 지점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만약에 앞으로의 인류 역사도 과거와 같이 계속 약육강식의 길로 갈 것이라면, 지구촌에서 소수자이며, 약자에 불과한 Corea 사람들이 내일을 살길은 세계에서 군사 경제적 힘이 가장 센 강자인 미 제국에 붙어,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잘 순종하며, 그들을 따라 가는 것밖에 딴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민족은 지구촌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이웃 나라를 침략 지배한 일이 없이 평화롭게 살면서, 세계3대문명권의 참맛을 체험하며 살아온 평화애호적인 백성이다. 그리고 인류의 문명사가 21세기에는 어떤 전환점을 돌아야만 하는 것이라면, Corea 사람들은 지금 분명히 전환기 세계문명사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선구적 역할을 맡아야 할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4. 민족의 평화통일과 세계사적 임무
신분계급제를 유지한 봉건왕국들 또는 봉건적 제후들이 할거한 공국들이 지배적이던 전근대 국가들이 통합되어 근대적 통일 국민국가(modern nation state)를 수립하는 과정에서는 무력 혁명 또는 무력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을 이룩한 경우는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21세기의 Corea 사람들에게 있어 무력통일이냐 평화통일이냐 하는 문제는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난 반세기 이상 남과 북의 Corea 사람들이 추구한 적대적 군비경쟁은 상대방에 대한 무력적 타도의 추구가 곧 쌍방의 공멸을 의미할 뿐, 일방적 승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한계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통일” 그것은 남과 북, 여와 야를 막론하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요구로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평화적 통일”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상으로는 상대방의 타도를 꿈꾸는 사람들이 아직도 꽤 많이 있다. 왜냐하면 남과 북의 경제적 격차는 독일식 흡수통일, 즉 무력이 아닌 경제의 “힘”에 의한 통일을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에는 근100년 동안 근대적 국민국가로서 국민통합을 이루고 살았었다는 경험을 배경으로 했던 것이며, 또 제2차대전 후 서독 내부의 굳건한 사회통합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독일과 비교할 때 남북으로 분단된 Corea의 경우에는 20세기 초엽 근대적 국민국가를 수립하려 한 중요한 시기에,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같은 민족이면서 ‘친일파’와 ‘항일파’가 갈리었으며, 또 남한 사회는 서독에 비하면, 지역간, 계층간 국민통합의 수준이 너무도 낮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남북간은 말할 나위도 없고, 우선 남한 사회 내부의 국민통합이 시급한 과제로 되어 있다. 국민통합의 기초가 없는 근대적 통일 민족국가 수립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Corea 사람들에게 있어서 민족통일이란 남북통일에 앞서, 우선 지역간, 계층간 국민통합을 이룩하여 근대적 국민국가 건설의 기초를 마련할 뿐 아니라, 약육강식이 지배하던 인류문명사가 과거와는 달리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모두 ‘화해상생’하는 평화의 길을 찾아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는 세계문명사의 일대전환을 선도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세계사적 사명임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