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또한 이순신이 왜 가토를 치지 않냐라면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기분 상콤하다라고 하고 있었지만, 막상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고보니 이순신이 처했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거기다가 기껏 공적을 세우겠다고 했다가 망신까지 당하니 겁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조정에선 부산을 치라고 득달같이 명했지만 원균은 이핑계 저핑계를 대면서 출전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닥달이 워낙에 심해 원균은 결국 출전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얻은 게 없었다.
원균을 비롯, 전라 우수사 이억기, 충청병사 최호, 경상 우수사 배설 등이 이끄는 169척의 조선 수군함대가 7월 4일 부산을 향해 출전했다. 일단 전력적 측면에서는 일본 수군보다 확실히 강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느릿 느릿 전진해 7월 7일, 겨우 다대포 앞에 도착한 조선수군은 일본 수군의 빈 배 8척을 불사르는 것까진 좋았는데... 대마도에서 건너오던 일본 수송선을 추격하다가 물살에 휩쓸려 판옥선 12여 척이 실종되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안습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7월 9일 서생포에서는 일본 수군이 공격하자 겁먹고 도망가다가 판옥선 20여 척 가까이 상실하는 패전도 겪는다. 이러자 잔뜩 뿔이 난 도원수 권율이 7월 11일 원균을 잡아다가 곤장을 치는 희대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래저래 녹초가 된 조선 수군은 겨우 가덕도에 이르렀지만, 나무하던 중에 가덕도의 일본군에게 습격을 받자 나무하러 내렸던 400명을 그냥 버리고 도망첬다.
결국 조선수군은 칠천량에 갔는데, 원균은 이미 그때까지의 경과로 인해 의욕상실 상태가 되어 술만 퍼마실 뿐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선 수군의 동태를 눈치 슬슬 봐가며 지켜보던 일본 수군은 기회를 눈치채고 칠천량으로 몰려갔다. 이순신에게 늘 캐발렸던 도도 다카토라와 와키자카 야스하루 등이 있는 배 다 긁어모아 칠천량으로 향했고,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이끄는 육군도 칠천량으로 향했다.
7월 16일 새벽 4시. 일본 수군은 조선 수군에 대한 포위를 했고 이후 대대적인 야습을 시작했다. 이때, 조선 수군은 경계조차 하지 않은듯 보인다.
밤중에 적이 가만히 비거도 10여척으로 우리 전선 사이를 뚫어 형세를 정탐하고 또 병선 5~6척으로 우리 진을 둘러 쌋는데, 우리 복병선의 장수와 군사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날 이른 아침에 이미 복병선은 적에게 불태워 없어졌다. 균이 놀라 북을 치고 바라를 울리고 불화살을 쏘아 변을 알리는데 문득 각 배옆에서 적의 배가 충돌하여 총탄이 발사되니 군사들이 놀라서 실색하였다. - 조경남 저. 난중잡록
일본 군이 조선군 진영을 휘젓고 다녀도 아무도 몰랐다는 소리다...
7월 16일, 의욕상실된 원균과 지휘체계가 무너져 막장이 되어버린 조선 수군 앞에 소수의 일본군이 공격을 가해왔다. 아직 전력 면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최고 지휘관이 워낙 막장이었던 탓에 일본군의 공격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허둥지둥 대면서 한산도 근처인 춘원포로 도망갔다가 원균이 지상에 내려서 도망치자는 결정을 내려, 이순신이 힘들여 쌓아놓은 조선 수군을 제대로 된 교전한번 없이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차라리 원균 명령을 듣지 않고 각기 도망치거나 아예 지휘권이 붕괴된 상황이 더 나았을 것이다. 견내량은 막히지 않고 한산도로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춘원포로 다 꼴아 박아 버렸으니...
가토 기요아키는 약간 뒤에 도착했는데 전투는 이미 한참 전 이었다. 요시아키가 창과 포로 무장한 한 척의 거함에 뛰어 올라 몇사람을 참수하자 적이 그를 공격하려고 했다. 요시아키의 조카 곤시치로 등이 분전하여 드디어 배를 뺏았았다. 요시아키는 또 적의 별선에 뛰어오르려 하다 발을 헛디뎌 바다로 떨어졌다. - 18세기초 정한휘보 권 4 30면
위와 같이 일본군의 전술은 군선의 돗대를 사다리로 이용해 전선에 올라타 백병전을 벌이는 것인데 이때문에 전라 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최호는 배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으며, 경상 우수사 배설은 자신의 휘하 함대의 7척만 이끌고 도망쳤다. 이후 배설의 판옥선 7척에 살아남은 다른 판옥선들이 합류해 12척까지 늘었고, 이들이 조선 해군 최후의 전력이 되었다.불행 중 다행
한편 원균은 아들 원사웅과 함께 육지로 도망쳤지만 소나무 아래 매복하고 있던 일본군의 공격으로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고 하는데 실상 원균이 죽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원균이 뛰기 힘들어 뒤쳐져 있는데 추격해온 왜군이 달려들더라" 정도 수준의 증언이 있을 뿐이라 어쩌면 누가 구해줘서(설마 원균이 칼을 들어 왜군을 쳐죽였을 리는 없으니) 살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걸 증언한 게 김식인데 이 인간도 원균이랑 딱히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서(…) 어쩌면 조선군이 원균에게 향하는 걸 잘 못 봤을 가능성까지 있다.
게다가 실록에 전투후 멀쩡히 살아있는 원균을 만났다는 도원수 권율 휘하 군관 최영길의 증언이 실려있다. 그 뒤로도 원균이 살아있으니 찾아내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논의가 조정 내에서 반복되지만 선조는 응하지 않으며, 결국 원균이 확실히 죽었는지 어쨌는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김경진, 윤민혁 등이 집필한 소설 임진왜란에서는 원균을 생존한 것으로 가정하고 순천부사 우치적이 평생 숨어 살도록 원균을 숨긴 것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당연히 이 전투가 묘사된다. 여기서는 칠천량에 정박해 있던 조선군이 일본군의 기습 포격전을 맞아 포 한방 제대로 쏘지도 못하고 처참하게 발려버렸고 일본군의 화포 사격과 접현전투로 대다수의 배를 격침당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당연히 사실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무적 무패 신화의 위용을 자랑하던 무적의 조선 수군이 정말 허망하게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짜피 전투전에 이순신 휘하에 있던 기존 지휘관들이 3명 빼고 다 사직해버리고 원균이나 새로 부임된 뭣도 모르는 신참들이 허벌나게 박살나는게 거봐 이순신 장군 말을 안들으니까 이렇게 되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꼴좋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베테랑이 된 병졸들이 허무하게 죽어가는게 안타까우면서도 분노를 느끼게 한다. 더구나 거북선이 불살라지며 조수창이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은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게다가 예고편에서 나오는 글귀가 찢어진 희망이 피로 흘렀다.(...) 말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