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일)
-.평소와 같은 5시 반에 일어났다. 아내는 벌써 일어나 오늘 면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이 민첩하지 못한 아내는 능률적으로 일을 하지 못한다. 내용보다 모양에 신경을 쓰는 듯, 20여년 살림의 피크닉용 도구는 다 등장시켜 놓고 있었다.
그릇, 짐 수가 많아 손이 열개 쯤 되어야 다 들 수 있을 하였다. 내가 나서 갯수를 줄이자고 했지만, 듣지 않고 갯수 늘리는 작업만 한다. 6시 반이 넘어 집을 나설 시간이 다 되었다.
막상 들고 가려고 하니, 황당했는지 배낭에 넣어 가짓수를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배낭 3개를 동원하여 준비한 것들을 다 넣었다.
두번째 진주행이어서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휴일이이어서 도로에는 차들이 많지 않았다. 군에 간 원석이 덕에 아내와 같이 여행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금년은 4월임에도 추웠다. 오늘은 평년 날씨를 회복하여 따뜻할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자대배치에 대해 원석이에게 전해 줄 말이 많다며 아내는 인터넷 공군까페에서 연구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자신에 관한 연구에는 소홀하지만 원석이와 관련된 건에 대해서는 참 열심히 연구한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작은 처남 가족,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오늘 진주로 오신다고 한다.
어제 원석이에게서 전화 온 바로는 종교활동으로 12시부터 면회가 가능하단다.
3/23일 때와는 달리 산천은 봄으로 많이 진행해 있었다. 특히, 금년 봄은 화신이 늦어 릴레이 하듯이 피는 꽃들이 한꺼번에 피는 듯하였는데,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 등이 같이 피어 있었다. 이젠 계절도 중간 경계인 봄, 가을은 짧아지고 화끈하게 덥거나 추운 여름, 겨울로 양분된다.
진주 교육사령부에 도착하였다. 진주교육사령부는 영내에 만개한 벚꽃을 지역민에게 공개하는 벚꽃잔치 일이어서 군 부대는 잔치 마당처럼 붐볐다. 예년보다 늦게 피는 벚꽃은 아직 꽃봉오리 수준이었으나 예정된 벚꽃잔치는 열리고 있었다.
면회객 주차장은 만원이어서 연병장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였다. 아내는 배낭 한개를 지고, 나는 두 개의 배낭을 지고, 안았다.
11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으나, 규모가 큰 면회실은 면회온 가족들로 만원이었다. 인터넷 카페에서 도상연습을 많이 한 아내는 면회소 어귀에 있는 배달음식 코너에서 원석이가 먹고 싶다고 하는 닭튀김을 주문하였다. BBQ는 통화가 잘 안되고, 굽네치친이 통화가 되어 굽네치킨을 주문하였다. 40분 뒤에 배달된다고 한다.
좀 있으니, 처가 식구들이 도착하였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처남부부, 조카 은규 등 5명이었다.
기존 면회소로는 다 소화할 수 없어 임시 면회소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부대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임시 면회소로 자리를 옮겨야 하였다. 나는 굽네치킨을 받아가야 하기에 가족들보다 늦게 갈 수 밖에 없었다.
부대 입구에서 주문한 음식(주로 치킨, 피자)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도착을 하면 주문한 가족들은 오토바이로 가서 받아 온다. 굽네치킨이 온다는 40분이 오늘 따라 길게 느껴졌다.
기본군사훈련을 마치고, 특기병 교육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면회인 만큼 면회객들이 많았다. 원석이는 군수학교에서 특기교육을 받는데, 군수학교에서도 운전병으로 분류되었고, 운전병 중에서도 대형버스 운전병이 되어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굽네치킨을 받아 임시 면회소로 가는 버스를 탔다. 운전대에 앉아 있는 버스 운전병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임시 면회소에 도착을 하니, 원석이가 먼저 도착한 가족들과 같이 있다가 벌떡 일어서더니 경례를 한다. 2주전보다 얼굴이 많이 탔다. 운전을 하느라고 얼굴이 많이 탔다고 한다.
요즘 군대는 점수제가 되어 가점, 감점으로 훈련병들을 평가하고 있었다. 점수를 잘 받으면 원하는 곳으로 배치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군인의 꿈은 집 근처로 가는 것일 것이다.(나 역시 집인 부산 근처로 가는 것이 훈련병 시절 꿈이었다.)
원석이는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이번에 다시 '근무'(당번)를 신청하였고, 이번에는 선발이 되어 식당에 갈 때 인솔, 보고 등을 하면서 고함을 많이 쳐서 목이 쉬어 있었다.
한두명 온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우리는 7명이 면회를 와서 식탁을 두개 붙혀 식사를 하였다. 아내는 배낭 3개에 뭘 가득 넣었으나 별로 먹을 게 없었다. 장모님께서 가져 오신 불고기, 김치, 깻잎 등의 반찬에다 찰밥이 맛있었다. 아내는 유부초밥, 과일 등을 주로 가져 왔다.
원석이는 다른 것은 다 제치고, 배달 받아 온 굽네치킨을 열심히 먹었다.
초교 5학년인 은규가 "형, 군대생활 재미있나?"라고 진지하게 묻는다. "은규야, 소년병으로 지원해 봐라."라고 답하여 우린 폭소를 터트렸다. 원석이와 아내와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성 정보를 아내는 전해 주었고, 정보를 접하지 못하고 물정을 모르는 원석이는 열심히 듣고 있었다. 자대 배치가 노력의 영역일까? 나는 운빨의 영역으로 여기고 별 관심도 없었는데, 원석이는 노력하면 집 근처로 갈 수 있다고 확신을 하고 있다.
점심을 먹고, 후문 앞 면회소로 이동을 하였다. 날씨가 좋아 잔디 밭에 있는 벤치에 전 가족이 앉아 원석이의 군대 생활을 듣고 지켜 보았다. 원석이는 면회 온 가족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군 생활을 재미있게 말 해 주었다.
시간은 흘러 면회 종료 시간이 되었다. 4시가 종료 시간이었으나, 반시간 전에는 가 있어라고 우린 말했으나 원석이는 늦장을 부렸다. 거의 4시가 다 되어 집결지로 갔고, 우리도 집결지로 가 보았다.
이미 다 모여 있었고, 원석이는 늦게 도착한 편이어서 뒷 줄에 있었다. 집결한 병력 뒤에 가족들이 서 있자, 인원 점검을 하는 병사가 가족여러분들이 빨리 가 주셔야 병력 통제가 가능하다고 한다. 자식을 위한 마음이 강한 가족들은 말을 잘 들었다.
모두 주차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고, 나도 가려고 하였다. 아내가 원석이가 가면서 "엄마, 시간 있으면 내가 부대원들을 인솔해서 가는 모습을 보고 가라."고 하였다며 떨어져서 보자고 한다.
웬 걸!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4명의 군인이 오리걸음으로 기합을 받는다. 시력이 좋은 아내는 보더니 4명 중에 원석이가 있다고 한다. 다른 병력들은 흩어져 면회실 주위에 떨어진 휴지 등을 모아 정리를 하였고, 이 들 4명은 뒷편으로 사라졌다.
처남이 웃으며, "내 같으면 완장 안 차고, 평범하게 종이 줍는 게 편하겠다."는 말을 한다. 처가 식구들이 먼저 부산으로 떠났다.
아내에게, "병력 통솔에 도움이 되려면 완장을 찬 근무자가 중간에서 어려움이 많다는 걸 연출한다. 그 과정에서 기합을 주는 것이니 별 것 아니다."고 해설했지만 아내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혹시, 감점이 되어 자대배치에 불이익이나 당하지 않을까 가 아내의 걱정이었다.
정리정돈하고 병력이 다시 모였다. 기간병 눈에 띄지 않게 차 안으로 갔다. 군가 소리가 들리더니 완장을 찬 원석이가 200명의 병력을 인솔하여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원석이의 음성이 하나, 둘, 구령 소리로 들려 온다.
나서기 좋아 하는 원석이다.
교육사령부 중앙로를 통과하여 정문으로 향했다. 벚꽃도 좋고, 정돈된 부대가 아름답다. 정문 옆에 있는 디지털 온도계가 2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24도이니 오늘은 참 따뜻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