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내에서 교수에 의한 제자 성추행 의혹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로 인한 고통
을 호소하는 피해자만 있을 뿐 정작 관련 교수는 “제자에 대한 애정” 혹은 “친근감의 표
현”이라고 주장하며 성추행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성희롱이나 성추
행의 개념이나 범주 등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는 교수들도 적지 않아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예방교육 등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서울의 대학 영상대학원에서도 재학중인 한 학생이 지도교수에 의한 성추행 문제를
제기해 파문이 일고 있다.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씨(30)는 지난 7일 자신이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한 인터넷 사이트
에 지도교수의 성추행 사실을 공개했다. 처음에는 구체적 상황보다는 복잡한 심경을 묘사했
던 씨는 12일에는 사건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밝혔고, 같은 내용을 대학 홈페이지 게시
판에도 띄워 네티즌과 재학생들이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교수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당일 동석했던 학생들이ㅅ씨의 피해사실을 확인해준 서명용지.
씨의 전언에 의하면 지난 10월 31일 영상대학원 원장과 대학원생들은 간담회를 가진 후
식사를 겸한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식사 후 이어진 1차 술자리에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폭
언을 하거나 젓가락과 고기집게를 집어던지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하여 상당수의 학생이 자리
를 떴고, 장소를 옮긴 2차 술자리에는 교수와 씨, 그리고 여학생 1명과 남학생 5명만이
참석했다.
“ 교수는 나를 옆자리에 앉히고 내가 요즘 살이 많이 빠졌고 얼굴이 예뻐졌다는 등 계속
해서 나를 화제로 삼았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고 귀 뒤로 넘겨주면서, “얘가 얼굴이
많이 예뻐졌는데, 허리도 가늘어졌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하면서 내 손을 잡거나 팔을
교차시킨 채 마시는 ‘러브샷’을 강요하는 한편 앞에 앉은 남학생과 여러 차례 악수하게
했다. 그러다 교수는 나에게 “너를 여인으로 만들어주고 싶다”“너를 안아주고 싶다”
“너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말을 하며 뺨에 입을 맞추었다. 너무 놀란 나는 화장실을 핑계
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사건 직후부터 1주일 가량 씨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갈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자책감으로 바깥출입도 거의 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시간이 좀 지나고 자신을 추
스린 10일에야 씨는 그날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고, 교수에게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1차 메일을 띄웠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교수의 반응이 없자 13일 현재 자진사퇴를 요구하면서 15일 오전 12시
까지 답변하라는 내용의 2차 메일을 보낸 상태이다. 이를 거부할 경우 씨는 총장과 학교
당국에 책임을 묻는 한편 여성단체 등과 힘을 합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킬 계획이다.
이에 대해 교수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황상 그랬을 리 없다”는 입장이
다. “2차 술자리를 가진 호프집은 홀이 트여있는 데다 다른 남학생들도 있는 자리에서 자
신이 그렇게 행동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교수는 또 “만약 약간의 실수가 있었어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것이었거나 친근감의 표현이었을 뿐 씨를 제자가 아닌 여성으로 생
각한 적은 없다”며 “도대체 어디까지가 성추행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2차 자리에 끝까지 남아있었던 한 남학생은 씨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전한다.
“2차에 가기 전에 교수는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선배가 교수 옆
자리 그리고 내가 선배의 옆자리에 앉았는데 교수는 한참 동안 선배의 손을 잡고 주무
르거나 얼굴과 머리를 계속 만졌다. 교수가 선배에게 아주 가깝게 밀착하고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까지 보다가 더 이상 보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조금 후 선배가 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 때까지는 무슨 일인지 모르고 있었는데 다른 선배가 전화를 받더니 선
배의 가방을 조용히 가지고 나갔다. 겁에 질려 상기돼 있는 선배를 보내고 다시 술자리로
돌아왔는데 교수님은 술집에서 여자를 찾는 것처럼 계속 선배를 찾았다.”
이날 회식 자리에 함께 했던 대학원생들은 씨가 작성한 경위서에 사실을 인정하는 서명을
한 상태다.
1차에만 참석했던 한 여학생은 “학생들이 진로에 대한 고민을 풀어보려고 간담회를 마련했
고 회식자리도 회의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참석했는데, 교수는 계속해서 남학생과 여학생을
짝지어주려고 하거나 지나친 성적농담으로 모두들 기분이 나빴다”며 “ 씨에 대한 일도
충분히 그랬을 것이라고 본다”고 얘기했다.
씨는 “처음에는 누구한테 말하기도 부끄러워 조용히 감추려 했지만 생각할수록 예전에
이해할 수 없었던 얘기들이 그런 뜻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아찔하다”면서 “박사과정 3학기
에 지도교수에게 이런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이 거의 학위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지만 다음
에는 어떤 요구를 해올지 모르겠고 또 이렇게 덮어두면 다른 후배들도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씨는 또 평소 여학생들이 교수에 대해 “성적인 농담이 지나치다”거나 “여학생에 대
한 태도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왔음에도 별 생각 없이 넘긴 것을 후회하고 있다.
“올 초 대학원총학생회 게시판에 교수의 문제를 지적한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수업
이 부실할 뿐 아니라 술자리에서 여학생들을 성희롱 한다더라는 내용이었는데 교수가 그
글에 대한 반박문을 써달라고 요구했다. 교수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없었던 나는 잘 모르
기도 했지만 구체적인 증거도 없는 상태라 섣부른 판단이라는 내용의 글을 써서 올렸다. 그
때 내가 그걸 안썼으면 학교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나왔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안
타깝다.”
한편 씨가 문제를 제기한 이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주장하는 여학생이 추가로 나오고
있어 이 문제는 대학원 전체로 확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