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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너무나 비참하고 가련하게 살아가는 독립운동가 후손들- 우리나라 근대사와 함께한 알려지지 않은 한씨집안 이야기(1편)
한흥교 [韓興敎, 1885.11.25~1967.7.1]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
의사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부산 동래
주요수상 건국포장(1977), 건국훈장 애국장(1990)
1885년 11월 25일 부산 동래(東萊)에서 태어났다. 일본 오카야마[岡山] 의학전문학교에 다니던 1910년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이듬해 10월 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뒤 상하이(上海)에서 중국혁명군에 입대하여 구호의장(救護醫長)의 신분으로 여러 전투에 참전하였다. 1912년 북벌혁명군(北伐革命軍) 홍십자회(紅十字會) 대장이 되었으며, 항저우(杭州), 베이징(北京)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또한 상하이에서 신규식(申圭植), 조성환(曺成煥)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결성하였고 독립운동가들을 치료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뒤 베이징에서 신채호(申采浩)와 함께 중외통신사(中外通信社)와 전광신보사(展光新報社)를 창립하여 러시아, 미국, 중국 등지에 신문을 배포하였다.
1925년 6월 베이징에서 원세훈(元世勳), 송호(宋虎) 등과 '선두자사(先頭者社)'를 조직하고 기관지 《앞잡이》를 발행하였다. 1935년 베이징,톈진(天津)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에 정착한 뒤에는 대동병원(大同病院)을 열어 의료활동을 하며 항일운동을 도왔다. 1967년 7월 1일 세상을 떠난 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한형석(1910. 2. 21~1996.)
일제강점기 광복군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부산 동래
주요수상 건국훈장 애국장(1990)
1910년 2월 21일 부산 동래(東萊:지금의 부산직할시 동래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 한흥교(韓興敎)와 함께 중국으로 가, 상하이(上海)의 신예(新藝)예술대학에서 작곡 등을 공부하였다. 1939년 10월 충칭(重慶)에서 조직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의 예술조장을 맡아 일하였다.
그뒤 《한국행진곡(韓國行進曲)》 《항전가곡(抗戰歌曲)》 등의 군가를 작곡하였고 시안(西安) 등지에서 서사시 《국경의 밤》과 《아리랑》을 공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40년 중국 중앙 전시(戰時) 간부훈련 제4단 특과총대학원대(特科總大學員隊) 한청반(韓靑班)의 교관을 지냈다. 이듬해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되자, 《광복군가집》 1,2집을 발간하고 《국기가(國旗歌)》 《광복군 제2지대가》 《압록강행진곡》 《조국행진곡》 등을 작곡하였다. 1944년 10월 광복군 제2지대 선전대장으로 복무하면서 작곡과 가극활동을 계속하여 침체된 무장항일투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한 인터넷에 소개된 프로필이다. 대략적으로 봐도 부자(父子)간인 이 두 분은 명문가 집안츨신으로 우리 나라를 바로 세우는 독립 광복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셨던가를 잘 알수가 있다. 요즘 내가 이 두 분에 대한 관심을 열렬히 가지게 된 동기가 있다.
실력있는 재야향토 사학가인 김재승 선생께서 그동안 조명되지 못한 한형석 선생의 놀라운 업적을 추적하는 일에 고군 분투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나도 동참하게 되면서 부터다. 수 년간 자비로 중국을 몇 차례 드나들기 까지 하면서 묻혀져 있는 한형석선생의 독립운동가로서의 발자취를 어렵게 집대성하게 된『평전(評傳)』이 출판비가 없어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쨌든 우리 출판사에서 만들어 보겠다고 약속하였다.
아직 고증이 미진한 부분을 김선생님과 찾고자 가끔 인척들을 함께 만나는 일에 동참하면서 이 위대한 명문가(名文家) 부자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너무나 비참함 생활고에 헤메이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기만 하다. 언제부터인지 독립운동을 하면 3대(代)가 망한다고 하는 말이 회자되고 있지않은가. 그런데 2대째 독립운동을 한 집안이니 지금 그 후손들의 현주소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아직도 부산 아미동 산복도로 허름한 집에서 한형석 선생의 부인은 겨우 독립운동가 후손이랍시고 매달 50~60만원 안팎의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있다.
정부 기관에서 조사한바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60%가 겨우 고교졸업이라는 사실 그대로 이 집안의 경우도 대학 문앞에도 못가본 그 자손들이다 보니 반듯한 직장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부친인 한흥교 선생의 경우 당시 의사로서 얼마던지 안락한 생활을 누릴수 있었을텐데, 독립운동을 하던 임시정부 인사치고 동해 한흥교 선생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그 많은 상해 임시정부 인사들의 재정적인 뒷바라지에 병원 수입 전부를 쏟아 붙다시피 하였으니 남은 재산은 전무할 수밖에 없다.
오직 남은 것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생명을 걸고 희생하였다는 자긍심만이 이 가문의 역사 가운데 희미하게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 마져 지금껏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가 고대 총장을 역임한 김준엽경우처럼 몇몇 서울을 중심으로 유명해진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지나치게 자신들과 선조들의 독립운동사를 미화하거나 부각시키다 보니 이 두 부자의 훌륭한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상은 그동안 거의 묻혀져 있었던 것이다.
조국을 찾는 독립운동에 거의 반평생인 35년을 헌신한 부친 한흥교나 7년을 광복군에서 눈부신 활동을한 아들 한형석 선생과 같이 겨우 1년2개월 굉복군에 참여하였을 뿐인데도 김준엽은 같은 동급의 건국훈장 4등급 ‘애국장’ 포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참 씁쓰레하기만 하지 않은가. 우리 역사에서 바로 이 한흥교 선생가문처럼 아버지와 아들 2대째 독립운동가로서 큰 족적을 남긴 집안을 찾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 문제는 아직도 이런 훌륭한 분의 족적이 대한민국 역사속에 제대로 평가받기는커녕 사장된채 잊어진지 오래이고, 너무나 비참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그 후손들에게 아직도 우리들은 엄청난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지난 일제시대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대표적 친일인사 백명중 한명인 김모목사의 경우 그 후손들은 여태껏 호의호식하면서, 그 후손인 장손(長孫)은 일류 고등학교 명문 대학을
뒷문으로 들어가고 그 종손(宗孫)의 경우 위대한 친일 할아버지를 둔 덕에, 지금 그가 세운 대학의 총장자리를 염두에 두고 유학중에 있는걸 본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역사청산은 무엇이란 말일까. 그래서 나는 미력한 힘이지만 내가 할수 있는 위치에서 온갖 박해와 위험, 고초속에 오직 조국 광복을 염원하면서 자신과 가족의 안락함을 버리고 홀연히 만주벌판을 부지런히 달려갔던 위대한 한씨 부자(한흥교,한형석)의 삶을 제대로 한번 조명하는 책을 만들어 내고싶은 것이다.
첫댓글최 수경 님, 반갑습니다. 글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민족 문제 연구소 회원이신지요? 먼저 민족 문제 연구소 (minjok.or.kr) 정회원이 되셔야 여기 부산 지부 카페(cafe.daum.net/minjokbusan)에서도 정회원이 됩니다. 답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회원 아니셔도 셋째 목요일 모임에 오셔도 됩니다)
최수경씨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부 회원으로 가입하여 주시고 함께 힘을 모아 부산지역의 독립운동가로 묻혀 있는 사람을 발굴하여 그 빛을 널리 알리고 또 청상하지 못한 친일분자는 하나하나 밝혀 가도록합시다. 이러한 것이 우리 후손을 위해 우리가 할 일입니다. 힘써 동참을 바랍니다.
첫댓글 최 수경 님, 반갑습니다. 글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민족 문제 연구소 회원이신지요? 먼저 민족 문제 연구소 (minjok.or.kr) 정회원이 되셔야 여기 부산 지부 카페(cafe.daum.net/minjokbusan)에서도 정회원이 됩니다. 답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회원 아니셔도 셋째 목요일 모임에 오셔도 됩니다)
네, 서울에 등록이 되어 있는데 집은 부산이고 사무실은 서울이라 오르내리고 있씀다.
최수경씨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부 회원으로 가입하여 주시고 함께 힘을 모아 부산지역의 독립운동가로 묻혀 있는 사람을 발굴하여 그 빛을 널리 알리고 또 청상하지 못한 친일분자는 하나하나 밝혀 가도록합시다. 이러한 것이 우리 후손을 위해 우리가 할 일입니다. 힘써 동참을 바랍니다.
최 수경 님, 잘 알겠습니다. 카페 정회원으로 올려드렸습니다. 그런데 닉네임 vincent 를 vincent-최수경 또는 이와 비슷하게 닉네임에 실명을 포함시켜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최수경님, 글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김경석님 저도 정회원으로 올려주세요....
구 성태 님, 민문연 회원이신지요 (어느 지부?)? 부산 지부 밖의 회원은 회원 확인에 시간이 걸리구요. 또한 회원 가입 때 질문이 있는데 답변이 명확하지 않아서 정회원으로 올려드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