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6장23-24절)
바울 정도 되면 그 축복의 기도가 득담 수준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를 끝낼 때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통(고후113:13)의 축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종종 상기시킨 바 있습니다. 그게 우리의 구원과 복의 알파와 오메가이니까요. 사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생명을 주셨고 주시는 분)이고, 예수그리스도가 주가 되시면 그게 다입니다. 더 없습니다. 거기에 평안이 있고, 믿음에 의한 사랑이 있을 테니까요.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 승천하실 때에 나를 사로잡고(엡4:8) 올라가셔서 하늘에 앉히신 그리스도, 성령으로 임마누엘 하셔서 만유의 주재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가 되신 사실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입니다.
그로 인해 내 영이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상태를 평안(에이레네, Join)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경지에 오르려면 그리스도의 비밀 곧 진리의 지식의 계시를 가진 사람이 전파하는 말씀을 듣고 믿어 성령의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 한 영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믿음에 의한 사랑인 겁니다. 당연히 그리스도 안에 지체인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의 형제들입니다. 한 영, 한 생명을 가진 지체들입니다. 그 형제인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 형제들에 대한 사랑도 저절로 되겠지요. 만약 사랑이 안 되면 본인이 아니든가 그 사람이 아니겠지요. 이 사랑은 바로 불멸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말하길 처음 사랑을 놓쳐버렸다고 말하는데 그런 풋사랑은 원래 사라지는 법입니다.
그건 맛보기일 뿐입니다. 광야에서 먹은 꿀 섞은 맛이 나는 만나와 같은 것이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맛보기인 셈이죠. 그 처음 달콤한 감동이 그치면 말씀을 들어야지요. 근데 그 말씀이 아주 희귀합니다. 그게 참 괴롭습니다. 어쩜 당신이 그런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끝낼 수도 있음을 각오하십시오. 성경과 성령 외에는... 모름지기 주의 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무조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불멸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사랑은 사랑입니다. 죽어가면서도 사랑은 사랑입니다. 전기스위치도 끌 수 있고 모든 생각도 나의 뇌리에서 지울 수 있지만 내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그 스위치는 도저히 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멸입니다. 이 사랑에 은혜가 항상 머뭅니다. 또 평강입니다. 그리고는 또 사랑입니다. 이게 바로 복입니다.
첫댓글 아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햇빛도 비도 주시는 일반적인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참 사랑과 착각을 합니다.
그 사랑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이 이루어고 또한 성령을 통해서 그 사랑이 부어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