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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가지 힘 중 나머지 3가지는 닦아야 하는 것이다.
3. 출가자가 '참는 것'을 힘으로 삼는 이유는 '악행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사문·바라문은 출가를 통해 자신의 악행, 번뇌를 제거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다른 중생들의 제어되지 않아 넘쳐 흐르는 악행들을 맞닥뜨렸을 때에는 인내한다.
여기서 '바라문'은 혈통에 의한 바라문 계급이나 책을 짓고 베다를 외울 뿐 실제로 수행은 하지 못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출가하여 명상을 통해 번뇌를 제거하는 실제 수행을 하는 자를 뜻한다.
불교 밖에서 사문이란 일반적인 출가 수행자를 의미한다. 불교 안에서는 부처님의 아들이자 승단의 한 구성원인 비구를 의미한다. 이처럼 사문이라는 말은 잘 알려져 있으니 달리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바라문'이라는 말에는 보다 정교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 말은 팔리어로 '브라흐마나(brāhmaṇa)'라고 한다... 태초에서 여러 겁이 지나자 사람들 사이에는 악한 양상들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 사람을 선출하여 '위대한 선출자', 즉 마하삼마타 왕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통치하게 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세상은 악의 힘에 지배받고 있다. 타락하여 왕의 통치를 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지 않다. 우리는 숲으로 들어가 이러한 악의 방식들을 제거하고 씻어내자"라고 말하면서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명상에 들어 안지정에 머물렀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머물렀기 때문에 그들을 바라문이라고 불렀다.
바라문의 원어인 브라흐마나는 '악을 제거하는 사람'을 뜻한다. 바라문은 스스로 음식을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이나 마을에서 모아온 음식으로 살아갔다. 이처럼 그들이 브라흐마나의 말뜻을 그대로 지키면서 순수하고 성스런 생활을 했기 때문에 바라문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들은 '구나 브라흐마나', 다시 말해 '성스런 수행의 덕목에 의한 바라문' 이었던 것이다.
많은 겁이 지난 뒤 이 유덕 바라문들 중 몇몇은 명상에 들어 안지정을 지속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마을의 외곽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베다를 지으면서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들은 더 이상 악을 제거하고 안지정을 얻기 위한 명상을 실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바라문이라는 이름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더 이상 유덕 바라문은 아니었으니, 성스러운 수행의 자질을 구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자티 브라흐마나', 즉 '출생에 의한 바라문'이라고 불릴 뿐이었다. 그들은 선정을 얻기 위한 명상을 실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열등한 종성으로 간주되었다... 이 바라문은 선정을 연마함으로써 번뇌를 제거하거나 씻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속이려고 강물이나 흐르는 물속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그러한 기만행위를 '불순한 것을 정화하는 목욕'이라고 불렀다.
...부처님이 '인내는 사문이나 바라문의 힘이다'라고 말할 때는 오직 유덕 바라문만을 염두에 둔 것이다.
- 밍군 사야도 지음, 『대불전경』 2권 pp.411~413, (주)한언(2009)
바라문 집단의 출현
22. "와셋타여, 그 중생들 가운데 어떤 자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보시오, 사악한 법들이 중생들에게 생겼습니다. 참으로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비난이 알려지게 되었고 거짓말이 알려지게 되었고 처벌이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우리는 사악한 해로운 법들을 없애야 합니다.'라고. 그들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없앴다. 와셋타여, 사악한 해로운 법들을 없앤다고 해서¹⁵¹⁾ '바라문, 바라문'이라는 단어가 첫 번째로 생겨났다.
¹⁵¹⁾ 바라문(brāhmaṇa)의 어원을 bāheti(없애다)에서 찾고 있는데 bāheti는 bahi(밖으로)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동사이다. 그래서 '밖으로 한다, 밖으로 보낸다, 밖으로 끌어낸다'는 의미이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brāhmaṇa는 √bṛh(to shine, to be bright)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그들은 숲 속에서 초막을 짓고 초막에서 참선을 하였다. 그들은 숯불을 피우지 않았고 연기를 내지 않았고 절굿공이를 내려놓았으며¹⁵²⁾ 저녁에는 저녁식사를 위하고 아침에는 아침식사를 위해서 마을과 읍과 수도로 내려가서 걸식을 하였다. 그들은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숲 속의 초막으로 가서 참선을 하였다. 사람들이 이런 그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이 중생들은 숲 속에서 초막을 짓고 초막에서 참선을 합니다. 그들은 숯불을 피우지 않고...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숲 속의 초막으로 가서 참선을 합니다.'라고. 와셋타여, 참선을 한다고 해서 '자야까, 자야까(정려하는 자)'라는 두 번째 단어가 생겨났다.¹⁵³⁾"
¹⁵²⁾ 이런 단어들은 모두 제사와 관련된 것이다. 태초에 바라문들은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에 몰두했지 지금의 바라문들처럼 제사에서 헌공을 하기 위해 불을 지핀다든가, 소마 즙을 짜기 위해서 절굿공이로 찧는다든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혹은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고 걸식해서 먹었다는 의미도 된다.
¹⁵³⁾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바라문이라는 사제 계급도 신의 권위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사악한 법을 없애기 때문에 사제(바라문)이며 혹은 참선하고 정려(靜慮, 필자 주 - 고요히 생각하는 것)하는 데서 생겼다고 본경의 이 부분은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불선법을 제거하고 참선을 하는 수행자가 최초의 바라문이었다는 의미이다.
23. "와셋타여, 그 중생들 가운데 어떤 중생들은 숲 속의 초막에서 참선을 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마을의 경계나 읍의 경계로 내려와서 책을 만들면서 정착을 하였다. 인간들은 이런 그들을 보자 이렇게 말했다. '이 중생들은 숲 속의 초막에서 참선을 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 마을의 경계나 읍의 경계로 내려와서 베다를 만들면서¹⁵⁴⁾ 정착을 하였다. 이들은 이제 참선을 하지 않는다.'라고. 와셋타여, 이제 참선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앗자야까, 앗자야까(베다를 공부하는 자)'라는 세 번째 단어가 생겨났다. 와셋타여, 그 시절에는 이들이 저열한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최상으로 간주된다.
¹⁵⁴⁾ '베다를 만들다'로 옮긴 원문은 ganthe karontā인데 '책을 만들다'로 직역할 수 있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이러한 바라문의 일원이 이와 같은 태고적 세상의 기원과 관계된 단어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그들은 중생들로부터 생겨났으며 다른 것들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자들에 의해 생겨났으며... 법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왜냐하면 지금 여기에서도 내세에서도 법이 이 세상에서 최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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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집단의 출현
26. "와셋타여, 끄샤뜨리야도 자신의 법을 경원시하고 '사문이 되리라.'며 집을 떠나 출가하는 그런 시절이 있게 되었다. 와셋타여, 바라문도... 와이샤도... 수드라도 자신의 법을 경원시하고 '사문이 되리라.'며 집을 떠나 출가하는 그런 시절이 있게 되었다.
와셋타여, 이 네 가지 구성원들에 의해서 사문의 구성원이 형성되었다.¹⁵⁷⁾ 그들은 중생들로부터 생겨났으며 다른 것들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자들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법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왜냐하면 지금 여기에서도 내세에서도 법이 이 세상에서 최상이기 때문이다."
¹⁵⁷⁾ 즉 이들 네 계급의 구성원 모두가 사문의 구성원(samaṇa-maṇḍala)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 각묵스님 옮김, 『디가 니까야』 제3권 「세기경」 (D27) pp.175~178, 초기불전연구원(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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