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요즘 무슨 생각 하세요?
이영준(큐레이터, 김해문화의전당 예술정책팀장)
건축가 안용대 선배와 나와의 인연은 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 가야한다. 한국 최초의 대안공간인 ‘섬’에서 진행된 “인아웃전”전이 그 인연의 시작이다. 이 전시는 건축가들로 이루어진 전시였지만 기성 작가를 넘어서는 개념적인 설치미술을 선보였다. 그 이후 선배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도시와 미술” 전에 참여한다. 여전히 장르간 칸막이가 두터웠던 시절이라 공립미술관에서 건축가들, 그것도 젊은 신인 건축가들을 대거 초청한 경우는 아마도 전국에서도 처음있는 일이었다. 선배는 서서히 미술계와의 인연을 넓히기 시작했고 취미삼아 조금씩 그림을 사기도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많은 그림을 소장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워낙 호구조사를 싫어했던 터라 선배를 만나고 한동안이 지나서야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 후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선배는 내게 후배를 강요한 적이 없다. 늘 존대말을 썼고 일이 있으면 정중하게 부탁했다. 비록 글이지만 이렇게 ‘선배’라는 호칭도 처음 사용할 정도다. 그렇게 지내면서 하나하나 만들었던 선배와 나와의 콜라보는 제법 역사가 깊다. 선배는 건축과 시각예술의 경계를 애당초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건축적 실천에 미술적 행위가 더해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선배가 처음으로 건축행위에 미술을 끌어들인 사건은 1999년 용두산공원 공중화장실에서다. 자신이 설계한 화장실에서 “Rest-Room"이라는 주제로 인간의 배설과 욕망을 다룬 전시를 진행했다. 이 전시는 ‘장소성’의 의미를 재해석하며 당시 많은 화제를 낳기도 하였다.
선배는 건축과정을 하나의 미학적 실천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가림막이다. 지금은 도시환경을 고려해서 아름답게 제작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물로 만들어진 푸른색 혹은 짙은 회색 가림막이 전부였다. 지금으로부터 16년전, 놀랍게도 선배는 출력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에 황주리의 작품으로 19m×35m의 대형 가림막을 직접 그리는 실천을 감행한다. 인간의 내면과 일상을 화려하게 표현하는 황주리의 작품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공사가람막의 ‘아티스트 버전’을 제시했다. 그런 선배가 공사 펜스를 그대로 놔둘리 없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진주참조은산부인과에 이동기의 작품을 설치한다. 이동기는 ‘아토마우스’라는 대중적 캐릭터를 만든 한국 팝아트의 리더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다. 이동기가 직접 디자인한 진주참조은산부인과 공사펜스는 선배의 상상력 덕분에 건축기간동안 진주시민들에게 예술적 체험을 제공해 줄 수 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연산동 진여원 부산정사 현장 펜스에 구헌주의 작품을 설치한다. 규모도 더 커져 높이 4m에 길이 100m. 종교건축인 도시형 사찰의 공사현장에 관용과 이해라는 의미로 “똘레랑스”라는 제목의 작업을 선보였다. 이 외에도 선배의 예술적 실천의 사례들은 너무도 많다. 덕천동 미래로여성병원, 센텀 디오사옥, 하단동 미래아이여성병원에서는 건축주가 소장한 작품을 디스플레이 할 수 있도록 실내 디자인을 진행하였으며, 울산의 CK치과, 창원의 더 큰 병원에는 지역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을 제안하고 현실화 시켰다. “왜 돈 안 되는 일을 저렇게 열심히 하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나는 선배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 번도 맘이 상하거나 서운한 적이 없었다. 항상 먼저 상대를 생각하고, 보기와는 다르게(?) 섬세한 성품을 가진 선배의 배려 덕분이다. 안용대 선배가 초창기 가장 주목했던 작가는 박병제선생이었다. “산복도로 화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고, 달동네 삶을 인간미 넘치는 풍경으로 해석했던 작가였다. 안타깝게도 56세에 요절했지만, 선배는 박병제선생의 작품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선배가 그림을 만났던 초창기에 가졌던 박병제선생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어쩌면 매우 소중하고 순순한 기억일지도 모른다. 가끔 나는 안소장의 마음이 박병제선생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에 대한 남다른 애정 같은 것이었다. 선배가 작가를 대하는 태도나 일을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술값을 먼저 내는 사람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항상 선배는 밥값과 술값을 진심으로 먼저 내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건축을 하나의 예술적 실천으로 이해했던 선배, 요즘 무슨 생각하는지 갑자기 궁금해 졌다. 새로운 아트 프로젝트가 기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