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카 성야의 모든 예식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거룩한 밤을 기념하여
교회 전례에서 가장 성대하게 거행한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날을 기념한다.
따라서 교회는 장엄한 전례로,
죽음을 이기시고 참된 승리와 해방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몇몇 여인들이
새벽 일찍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져 당황하고 있는 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한다.
여인들은 이 놀라운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린다(복음).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신앙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 위의 죽음은 어리석음이요,
수치스러운 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부활하셨기에
십자가는 하느님의 지혜이며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죄는 영영 저주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로 우리는 죄를 두고 ‘복된 탓’이라 부르며,
그 죄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다고 노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과 권력을 움켜쥔 이들만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는 것이
돈과 권력을 차지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로 진정 꼴찌인 사람이 첫째가 되며,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로 섬기는 사람이 참된 주인이 되었고,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관문이요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열 번, 백 번 부활하신다 해도
우리 자신이 부활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노예 생활이며,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신 것처럼
우리 또한 미움에서 사랑으로, 다툼에서 화해로,
불평에서 감사로 건너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학교 교리 시간에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한 어린이가 손을 들더니,
“선생님, 천국에 가려면 먼저 죽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했답니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맞는 말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기심을 죽이고, 욕심을 죽이고,
미움을 죽일 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부활은 건너감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감입니다.
향락과 재물을 섬기는 삶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건너감입니다.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사람에서 나누고 베푸는 사람으로,
미워하고 증오하던 마음에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건너감입니다.
이 건너감의 끝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부활입니다.
그분이 홀로서 가듯
- 구상(具常) 시인 -
홀로서 가야만 한다.
저 2천 년 전 로마의 지배 아래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의 수모를 받으며
그분이 홀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악의 무성한 꽃밭 속에서
진리가 귀찮고 슬프더라도
나 혼자서 무력(無力)에 지치고
번번이 패배(敗北)의 쓴잔을 마시더라도
제자들의 배반과 도피 속에서
백성들의 비웃음과 돌팔매를 맞으며
그분이 십자가의 길을 홀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정의(正義)는 마침내 이기고 영원한 것이요
달게 받는 고통은 값진 것이요
우리의 바람과 사랑이 헛되지 않음을 믿고서
아무런 영웅(英雄)적 기색(氣色)도 없이
아니, 볼꼴 없고 병신스런 모습을 하고
그분이 부활의 길을 홀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첫댓글 세 바구니로 삼위일체 예수님을 표현해 준 부활 꽃꽂이 성스럽네요. 정성과 사랑 덕분에 성전이 더욱 빛나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세 분이 바구니 하나씩 맡아서 해주셔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