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현몽 수필】
“그대로 살아, 그대로가 좋아!”
― 꿈속에 갑자기 나타난 ‘安分知足과 知足常樂’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간밤에 신기한 꿈
일선 경찰서 재직 시절로
돌아갔다.
어느 날 너무 힘들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하나?
맡은 일이 지겨웠다.
무언가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고민 끝에 결론을 냈다.
그래, 상사에게 사정해 보자.
힘들다고 하소연해보자.
부서를 옮겨 달라고 해보자.
드디어 상사와 면담했다.
사정을 털어놨다.
그런데 상사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사정을 말하는 방법이 문제였다.
목소리가 떨려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메모지를 꺼냈다.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표현하자
상사가 감을 잡았다.
눈을 내리깔고
내가 쓴 메모를
들여다보았다.
“저 힘들어요.
다른 부서로 좀 보내주세요.”
메모 쪽지를 보고 상사가 웃었다.
그리고 달랬다.
당신 없으면 우리 부서 어떻게 해?
아, 이번엔 상사가 내게 사정했다.
일당백 하는 당신이 어딜 간다고?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원이 어딜 가겠다고?
메모지에 썼던 나의 하소연은
박박 조각내어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상사가 말했다.
달래기 위해 상사가 내게 한 말
“그대로 잠자코 있어.
좋을 일이 있을 거야”
잠에서 깼다.
아, 힘든 전방에서 고생스럽게
군대 생활한 사람이
평생 군대 꿈을 꾼다더니
경찰관으로 퇴직한 지
15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현직 꿈이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현실과 다르지 않구나!
꿈이 현실이구나!
오늘을 살아가는 내게
이런 과거가 현몽하는 뜻은
어디 있을까?
힘든 치안 현장이,
고단했던 군대 시절처럼
자꾸 꿈에 보일까?
그렇다.
지금 뭔가 힘들고 어렵다고
바꾸려고 하지 마.
지금 고생스럽다고
쉬운 자리 찾지 마.
더 편안한 자리 찾지 마.
힘든 시간이 지나면
좋을 일이 생기는 법
그 당시 부서를 옮기지 않은 당신
그 당시 그 자리에서
꾹 참고 열심히 일한 당신
특진했잖아.
직무평가 전국 1위 성적.
당신의 눈물겨운 노고로
영예로운 보상을 받았잖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도
서운한 일이 많아도
하늘이 다 보고 있었던 거야.
70대 백발 할아버지가 되어
더 무슨 욕심이 있다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하나?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당신 선한 마음
하늘이 보고 있어.
힘들게 살아온 당신
가족이 알아주잖아
손자가 기쁨 주잖아
묵묵히 그대로 살아가는 게 좋아
지금에 와서 새로운 것 찾지 마
더 좋은 것 찾지 마.
더 높은 것, 더 행복한 것,
애써 찾지 마
이대로 만족하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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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향(同鄕)인 청양 출신 서예가 이계선 선생이 대전 서구 갈마도서관 ‘가훈 써주기’ 교실에서 필자에게 써준 ‘안분지족(安分知足)’(2011.) -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이라는 뜻이다.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요, 고독의 철인(哲人)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다.” 이양하 교수의 명수필 『나무』에도 등장하는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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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한평생 좌우명처럼
즐겨 써온 붓글씨가
‘안분지족(安分知足)’이잖아.
당신의 문단 활동 36년
수필 문학에서 한평생 다뤄온 주제가
‘지족상락(知足常樂)’이잖아. ♧
2025. 12. 25.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윤승원, 간밤 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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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과 감상평 ▣
문학평론가의 시각에서 윤승원 수필가의 새로운 문장 실험인 ‘현몽 수필’이라는 장르적 시도를 중심으로, 작품이 담고 있는 문학적 성취와 생활철학, 사회‧교육적 메시지를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1. ‘현몽 수필’이라는 장르적 파격 ― 꿈과 성찰의 접경지대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현몽(現夢)’이라는 개념을 수필 장르로 끌어들였다는 점입니다.
꿈은 보통 비현실의 영역으로 취급되지만, 윤승원 수필가의 꿈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합니다. 이 작품에서 꿈은 환상이 아니라 기억과 양심, 삶의 태도가 스스로를 찾아오는 통로입니다.
꿈속 장면은 극적인 장치가 아니라
과거의 자아가 현재의 자아를 훈계하는 구조
이는 전통적인 수필의 회고적 서술을 넘어
자기 성찰의 서사극으로 확장됩니다.
문학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현실 → 꿈 → 다시 현실’
이라는 원형적 순환 구조를 취하며, 내면 독백과 교훈 서사의 중첩이라는 고난도 형식을 자연스럽게 소화합니다.
2. 간결한 문장, 누적되는 울림 ― 시와 산문의 경계
이 작품은 외형적으로는 산문 수필이지만, 실제 독서 체험은 자유시에 가깝습니다.
짧은 행
반복되는 질문
점층적으로 쌓이는 자각
이는 윤승원 수필가가 오랜 세월 다듬어온 ‘생활시적 문장 감각’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특히
“지금 고생스럽다고 / 쉬운 자리 찾지 마.”
“묵묵히 그대로 살아가는 게 좋아”
이와 같은 문장은 격언도, 훈계도 아닌 ‘삶의 속삭임’으로 다가옵니다.
독자는 가르침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경험과 겹쳐 ‘떠올리게’ 됩니다.
3. 직업 서사가 아닌 인생 서사 ― 공직 윤리의 문학적 승화
이 작품은 경찰 공무원 시절의 에피소드를 다루지만, 결코 직업 수필에 머물지 않습니다.
부서 이동을 고민하던 순간
상사의 한마디
결국 그 자리를 지켜낸 선택
이 모든 것은 ‘자리’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여기서 ‘자리’란
직무의 자리
책임의 자리
인생에서 주어진 몫의 자리
입니다.
이 작품은 조용히 말합니다.
“도망치지 않고 감당한 시간은, 언젠가 삶의 신뢰가 된다.”
이는 오늘날 쉽게 포기하고, 빨리 옮기고, 더 나은 조건만을 좇는 사회에 던지는 매우 절제된 윤리적 질문입니다.
4. 安分知足과 知足常樂 ― 노년 문학의 깊은 미덕
이 작품의 철학적 중심축은 단연 ‘안분지족’과 ‘지족상락’입니다.
그러나 이 사자성어는 교과서적 교훈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윤승원 수필가의 경우, 이것은 삶으로 증명된 언어입니다.
젊은 날의 고단함
중년의 책임
노년의 절제와 감사
이 모든 시간이 축적되어
“더 좋은 것 찾지 마 / 이대로 만족하고 살아”
라는 문장이 체념이 아닌 평안으로 읽히게 합니다.
특히 “70대 백발 할아버지가 되어”라는 자기 호명은 노년의 자기 성찰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지점이라 평가할 만합니다.
5. 사회‧교육적 메시지 ―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
이 작품이 지닌 사회 교육적 가치는 매우 분명합니다.
① 젊은 세대에게
고생의 의미를 단순한 실패나 착취로만 보지 말 것
묵묵히 버틴 시간의 가치가 존재함을 일깨움
② 중장년에게
지금의 자리에서 흔들릴 때,
‘왜 여기까지 왔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거울
③ 노년 세대에게
새로운 욕심보다
지켜온 삶을 긍정하는 용기의 중요성
이 작품은 훈계하지 않지만,
읽고 나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교육적 힘을 지닙니다.
6. 종합 감상 ― “그대로 살아도 충분한 삶”에 대한 문학적 증언
윤승원 수필가의 《그대로 살아, 그대로가 좋아!》는 한 편의 꿈 이야기이자, 한 사람의 직업 회고이자, 동시에 한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의 내면 연대기입니다.
이 ‘현몽 수필’은 말합니다.
“행복은 새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삶을 신뢰하는 데서 온다.”
문학적으로는 노년 수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고,
내용적으로는 지금 이 사회에 가장 부족한 덕목인 ‘만족할 줄 아는 지혜’를 조용히 건넵니다.
소란한 시대에,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깊은 울림을 주는 수필은 흔치 않습니다.
이 작품은 분명, 윤승원 수필 문학의 한 정점을 이루는 의미 있는 성취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 (📚 裕花,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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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네이버 ‘청촌수필’ 블로그 댓글
◆ chkb43(낙암 정구복. 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5.12.25. 12:05
좋은 글 읽었습니다. 이계선 선생이 가훈으로 써준 ‘안분지족’을 다른 말로 한다면 ‘무소유’의 한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족상락’은 ‘常, 樂. 我, 靜’과 맥이 닿습니다. 꿈은 과거의 인연이 노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인연에서 자유로움을 가지는 마음가짐은 날으는 새의 양 날개에 묻은 흙덩어리는 털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많은 인연의 고리를 벗어남을 ‘무 집착’이라고 합니다. 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가 느낀 소감의 일단을 편안하게 표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깊은 思惟의 고견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지족상락’은 ‘常, 樂. 我, 靜’과 맥이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 대전 선화동 충남도청(도경)에서 근무할 때, 도청 뒤 단골 음식점 벽에 ‘知足常樂’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정보과 동료 직원들과 ‘知足’에 관한 뜻풀이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알 知’에 왜 ‘다리 足’이 붙느냐는 농담도 나왔습니다. 한 직원이 ‘알 知’는 ‘지식’이라기보다 ‘깨달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교수님이 언급하신 ‘무 집착’도 ‘무소유’도 결국 ‘知足’으로 가는 길입니다. 함께 가르쳐주신 ‘我, 靜’도 참 멋스럽고, 품격 있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귀한 소감으로 저의 졸고의 의미가 더욱 풍부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