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일- 고린도전서 15:42-49
시편 74:12-17/ 찬송 165장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바울은 부활의 몸이 어떠한지 깊이 있게 설명합니다.
지금 우리 몸은 약하여, 병들고, 쇠약해져, 죽으면 결국 흙으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42).
바울은 부활을 씨앗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땅에 묻히는 것은 연약한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시는 것은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입니다(43-44).
현실의 몸은 한계와 죽음을 지닌 몸이지만, 장차의 몸은 하나님 생명 안에서 완성된 존재입니다.
바울은 이를 “육의 몸”과 “영의 몸”으로 대비합니다(44).
여기서 육의 몸은 단지 죄 된 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한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 전체를 가리킵니다.
반대로 영의 몸은 성령으로 새롭게 된 존재이며,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이루는 몸입니다.
그것은 육체가 사라진 영혼만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롭게 변화시키신 존재의 완성입니다.
바울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을 대조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흙에서 난 존재로서 죽음 아래 놓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45).
아담 안에서 인간은 죽음의 형상을 입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흙에 속한 아담의 형상을 입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49).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단순히 죽은 뒤에 존재가 이어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부활은 단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새 창조로 완성하시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그리스도를 닮은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49)을 입는 일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생명을 입는 일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완전한 변화입니다.
☀ 바울 앤솔로지
16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9)
인간은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흙에 속한 인간의 삶은 본래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늙고, 병들고, 약해지며 결국 죽음에 이르는 인간을 가리켜 바울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아담 안에 있는 인간의 현실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죽음 가운데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금 비록 연약한 육신 가운데 살아가지만, 장차 하늘에 속한 생명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 3:2).
즉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는 믿음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죽음 이후의 위로가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부활은 단지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샬롬샬롬
첫댓글 주님, 하늘에 속한 새 형상을 입고 새롭게 창조될 부활의 소망을 품고 기뻐하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 되게 하소서.
" 부활은 단지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이라는 단어를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봅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단어, 이제 끝이라는 그것이 두려웠지만 다시 소망을 주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운 삶을 상상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