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도나무집 풍경
김 영 현
3월이라 하지만 아직도 바람은 독기를 머금고 있었다. 강화 쪽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군하리에 덩그러니 그만 내려놓고는 성급하게 떠나버렸다. 서해 바다 쪽에서 벌판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매운바람은 얇은 봄 점퍼에 파고들어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올렸다. 그는 벌써부터 내복을 입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길가에 연해 있는 가게는 텅텅 비어 있었고 푸줏간 진열대에는 고기들도 걸려 있는 게 없었다. 그는 갑자기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개미처럼 서서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끝물 풍경에 잠겨 있는 동네를 잠시 훑어보다가 그리 멀지 않은 곳 얕은 언덕배기에 서 있는 흰색의 교회 건물을 발견하였다.
시계를 보았다. 박홍규 목사와의 약속시간이 아직도 거진 두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그는 김포읍에서 오늘 열리는 ‘농촌 현실과 교회 운동’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하고 네 시 반경에나 돌아올 거라고 그때 쯤 도착하면 좋겠다고 전화로 말했었다. 그런데 아직 두 시 반. 너무 빨리 도착해버렸던 것이다. 그는 이 황량한 풍경의 손바닥만 한 동네에서 두 시간을 쪼개야 할 일에 상당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더구나 그의 손에는 한쪽 어깨가 축 늘어질 정도로 무거운 가방이 들려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 한길에 직각으로 열린 골목 안쪽으로 작은 아크릴 간판이 결려 있는 게 보였다. 다방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박 목사를 처음 만난 것은 1980년 2월이었다. 그때 그는 간성 부근에서 포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등병에서 갓 일등병을 달 무렵이었다. 외출을 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울 때라 기독교 신자 병사들이 간성에 있는 민간인 교회로 예배를 가는 틈에 끼어 읍(邑) 구경 삼아 나왔다가 처음 박 목사를 만났다.
박 목사는 몸집이 곰처럼 크고 말투가 느려빠졌었는데 사람들은 마룻바닥에 깔린 담요에 앉아서 그의 설교를 들었다. 그는 비교적 군인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왜냐하면 성찬식을 할 때 형식적으로 맛만 보여주는 빵조각 대신 큼지막한 인절미 한 가닥씩을, 작은 잔에 감칠맛만 내는 포도주 대신 농주 한 사발씩을 준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느릿한 말투로 이런 변방에서 거의 듣기 힘든 ‘민주화’에 대하여 꽤나 열성적으로 설교를 하였다. 그는 고참병들에게서 박 목사가 이런 투의 설교로 그곳 교회의 장로들과 약간의 갈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사보다는 젯밥이라고 병사들에게는 이러한 설교보다는 예배가 끝난 후, “자, 군인 형제들. 여러분들을 위하여 소찬이 준비되어 있으니 다들 빠짐없이 식사를 하고 가시기 바랍니다”라는 소리에 더 귀가 번쩍 뜨였다.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민간인의 밥. 그리고 양념이 다 들어가 있는 김치. 그리고 식사 후의, 운수가 좋으면 한잔 걸치게 되는 막걸리. 이 모든 게 산길 이십 리를 걸어 일요예배를 나오게하는 유혹물이었다.
그날도 예배가 끝난 후 박 목사는 마음씨 좋은 시골 아저씨 같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자, 군인 형제들. 여러분들을 위하여 소찬이 준비되어 있으니 다들 빠짐없이 식사를 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병사들은 예배당 옆에 붙어 있는 커다란 마루방으로 몰려갔다. 저기에는 기다란 나무 책상 위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쌀밥이 양은그릇에 담겨 있었다. 다들 시장기에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지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체면을 차리는 체했다.
그때 박 목사는 우연히 그의 곁으로 와서 말했다.
“여보시오, 일등병 형제. 난로에 톱밥이 다 된 듯하니 나와 함께 톱밥을 가지러 가지 않겠소?”
“그러지요.”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지만 그는 겉으로는 쾌히 웃으면서 대답했다.
밖에는 또다시 눈이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겨우내 졸병들을 괴롭히던 지겨워터진 눈이었다.
박 목사는 그를 데리고 교회 건물 뒤에 있는 창고로 갔다.
“자, 이 부대를 좀 잡고 있으시오.”
박 목사는 그가 부대를 잡고 있는 동안 삽으로 톱밥을 퍼다 담았다. 내리면서 녹는 눈은 땅을 질퍽하게 적시고 있었다. 분위기가 조금 싱겁다고 생각하니 그는 무언가 말을 걸고 싶어졌다.
“목사님, 저도 이번에 복권이 되었답니다.”
“뭐요?”
박 목사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서 고개만 돌려 반문했다. 그는 조금 쑥스러워졌다. 하지만 이왕 뱉은 말이니 그냥 얼버무리기도 어색했다.
“저도 이번에 사면복권이 되었어요.”
“그래요?”
이번에는 박 목사도 분명히 들은 모앙이었다. 박 목사는 몸을 일으켜 뒤돌아보면서 놀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나서 곧 커다란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불쑥 잡으며 “아, 정말 반갑군요. 정말 반가워” 하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였다.
그들은 톱밥이 가득 담긴 부대를 서로 마주 들고서 병사들이 식사하는 곳으로 왔다.
“잠깐 주목 좀 해주세요. 이런 반가운 소식이 있나요.”
모두 무슨 일인가 하여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져서 박 목사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이 형제가 이번에 복권이 된 사람이군요. 유신 반대투쟁에 앞장섰다가 옥고를 치르고 이제야 겨우 그 굴레를 벗어났어요. 진리의 승립니다. 여러분 우리라도 축하를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약간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박 목사의 말에 병사들은 자세한 영문도 모르면서 일제히 박수를 쳤다.
“형제께서도 한마디 해주어야겠소.”
그는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경례를 한 다음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별로 자랑할 일도 아닌데 괜히 묵사님께서 말씀해주셔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어떤 축하보다도 이 변방에서 여러분에게서 받는 축하를 더 감사하게 기억하겠습니다.”
그는 두서없이 인사를 하고 앉았다.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졌다. 상대가 상대들인지라 함부로 말하기가 난처하기도 했고 또 한편 생각하면 예정에도 없이 엉뚱하게 벌어진 일이기도 해서 그는 속으로 조금 찜찜하였다.
어쨌든 그날은 몇몇 생각 있는 고참들이 중심이 되어 괜한 기분에 「우리 승리하리라」도 합창을 하였고, 인근 부대에서 왔다는 한 병사는 특별히 「금관의 예수」를 독창으로 불러주기도 했다.
몇 달 후, 5·17*이 터졌고 박 목사와 그는 각각 교도소와 보안대로 끌려가 눅신하게 얻어터진 다음 거기서 합동수사관들의 입을 통해 서로의 소식을 들었다.
대관령에 밤나무를 심고 공동체운동을 전개하겠다던 박 목사의 꿈은 그것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몇 년간 떠돌다가 이곳에 정착을 했는데 강물보다 더 빠르게 또 육 년인가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었다.
다방 안은 생각대로 한산했다. 한쪽 구석에 외출 나온 듯한 군인 두엇이 다방 아가씨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다가 그가 들어가자 담배를 뽑아 문다, 엽차를 마신다 하며 얌전을 떨었다. 하는 꼴로 보아 맨 젖가슴이라도 만지고 있었는가 보았다. 휴전선이 가까운 곳이라 여기서도 군인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그는 문가 쪽에 가서 앉았다. 가방을 던져놓고 일부러 그들을 외면한 채 담배를 뽑아 무는데 다방 아가씨가 눈웃음을 흘리며 엽차를 들고 왔다.
“커피.”
그는 감정없이 짧게 말했다.
판이 다 돌아갔는지 같은 소리가 앰프에서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가씨 한 명이 쫓아가서 판을 갈아 끼웠다. 그는 뒤통수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것을 귀로 체크하고 있었다. 밖에는 계속 바람이 부는지 문이 규칙적으로 덜커덩거렸다. 꽃샘바람은 언제나 가슴까지도 쓸어갈 듯이 먼지를 싸안고 휘파람을 불며 벌판이나 골목을 내달렸다.
“해바라기 꺼 없어?”
군인 한 명이 아는 체하고 말했다.
“없어요.”
앰프에서는 곧 주현미의 「영동블루스」가 흘러나왔다. 그는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했다. 그들은 그를 무시하고 다시 질펀한 농담을 하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편하게 느껴졌다.
“아저씬 여기 처음이세요?”
커피를 날라 온 아가씨가 앞의 소파에 얌전히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면서 말했다. 스물두서넛 되어 보이는 아가씨는 첫눈에도 예뻤다. 그러나 그는 그 여자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소.”
그는 존댓말을 써서 무뚝뚝하게 대답을 했다. 마치 그 여자가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지 못하도록 미리 쐐기나 박아두려는 듯이.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맹물 같은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서 가버렸다. 여자가 가고 나자 그는 괜히 속이 상하여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대통령선거 이후 그는 극도의 무기력과 패배감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80년의 대전환 때처럼 모든 게 짜증스럽고 우울했다. 무슨 일이건 도무지 신명이 나질 않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비판받아야 마땅할 태도이겠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조금은 학대해보고 싶은 기분이 되어 있었다.
그날 선거가 끝난 후, 그에게 부여된 임무는 ‘부정선거 자료집’의 원고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전날 뜬눈으로 새웠던 탓으로 온몸은 식초에 담근 것 같았다. 겨울 햇살이 뒹구는 거리는 온통 죽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말없는 사람마다 서로 눈길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조심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선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목욕탕 타일 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좀 붙였다. 깨끗한 바닥이었지만 눈을 감고 있으니 마치 시궁창바닥에 누워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도무지 자기가 자고 있는 것인지 깨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자조적인 목소리, 비난, 욕설 등이 귓가에 떠들썩하게, 그러나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울려왔다.
그러고 나서 공정감시단의 몇몇 친구들을 만나 체험담을 들었다.
“말도 마세요. 얼마나 살벌했던지 나중에는 가슴에 붙인 공정감시단 마크까지 다 떼서 호주머니에 넣고 있어야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봉고차에 실려 난지도로 보내졌고 카메라가 박살나기도 했어요.”
“컴퓨터 오펴레이터 아가씨 한 명이 양심선언을 했다는데 아직 자세한 사정 은 모르겠어요.”
그는 투표와 개표에 관련된 부정의 사례를 대충 모아놓고 정리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지만 도무지 글이 쓰여지지를 않았다. 정확한 상황 인식보다는 오히려 자꾸만 허탈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는 걸 느꼈다. 그는 책상에 엎드려 온갖 잡념에 시달리다가 밖으로 나와 아무데나 쏘다녔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비판적 지지, 후보 단일화, 독자 후보론, 그 모든 단어들이 그대로 비웃음소리가 되어 가슴 속에 맴돌았다.
그는 전자오락실에 들어가서 약 한 시간 동안 ‘벽돌 깨기’를 하다가 밤늦게야 책상에 앉아 단숨에 ‘부정선거 자료집’의 원고를 쓴 다음 모든 걸 다 잃어버린 사람처럼 잠에 빠져버렸다.
그다음 날 저녁에는 구로구청으로 갔다. 구로구청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현장 적발된 부정투표함이 시민들의 손에 확보되어 있었다. 구청 마당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담벼락에는 부정선거를 폭로하는 대자보가 하얗게 붙어 있었다. 선거용으로 사용되었던 중계차도 서 있었는데 그 중계차에 설치되어 있는 고성능 앰프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연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지방으로부터 분명히 약간은 과장된 듯한 속보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몸살기로 온몸이 열에 들떠 있었다. 자꾸만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자신을 동장이라고 소개한 사십 대 초반의 사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도대체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울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사내는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
“이게 도대체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도대체,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가 흥분하여 말을 잘 잇지 못하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분노에 찬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부정선거 원흉○○○를 처단하라!”
“군사독재 끝장내자!”
사내는 가까스로 연설을 마친 다음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내려갔다. 다음 날 신문에서 그는 사내가 집에 가서 석유를 뒤집어쓰고 분신자살을 기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내는 초등학교 다니는 딸애가 있다고 말했었다.
마당 구석에는 군데군데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모닥불은 온갖 표정의 사람들의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검은 하늘을 향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젊은이들이 각목을 들고 삼엄하게 지키는 속에 바로 문제의 부정투표함이 있었다. 빵 더미에 숨기어 옮기려구했던 부재자투표함이었다.
열 시가 넘었는데도 사람들은 계속 몰려오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곳을 벗어나자 세상은 얄밉도록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버스 타는 곳, 시계방 앞에서 그는 심하게 구역질을 한 다음 약방에 가서 아스피린과 소화제를 사 먹었다.
그날 밤 전쟁이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들을 건물 속으로 몽땅 몰아넣은 경찰은 무자비한 최루탄 세례와 쇠파이프 ‘공격’을 감행했다. 옥상의 기와가 튀고 사람들 뛰어내렸다. 그는 새벽 세 시에 후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가능한 대로 사람을 좀 모아서 구로구청 쪽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무리였다. 그는 무리라고 대답을 했다.
“형, 들리지 않아요! 지랄탄 쏘는 소리!”
전화기 속에서 다연발탄의 콩 볶아대는 듯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절망적으로 변했다.
“모두 죽일 작정인가 봅니다.”
그는 보지 않아도 그 광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전화를 끊고 다시 담배를 꼬나물었다. 처절한 패배감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가슴 속을 바늘처럼 후벼 파고 올라왔다.
그는 그곳에 가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줄곧 앉아서 어둠을 응시한 채 담배만 빨아대고 있었다. 지금 자기 혼자 달려가 본다 하더라도 상황에 보탬이 되어줄 거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왠지 비겁한 느낌에 가슴이 돌멩이를 단 것처럼 무거웠다.
구로구청이 깨지고 나자 부정선거 투쟁도 맥이 빠져버렸다. 부정선거를 따지기 전에 허탈감과 패배감, 그리고 배신감이 더 크게 사람들의 가슴을 차지하고 있었다. 선거 전략에 실패한 운동권은 나름대르 심각한 분열상을 겪고 있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에서도 의장단이 모두 인책 사임되고 수권위(受權委)가 그 권한을 대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다. 정국은 다시 국회의원 총선에 들어갔고 야당 통합 문제와 양 김 씨의 사퇴 문제로 시끄러웠으나 그는 관심이 없었다. 이런 상태로 가면 총선 싸움도 이미 결딴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몸과 마음이 다 짜증으로 부풀어 었읔 때, 어느 단체에서 80년대 운동사를 좀 강의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와 그는 그것을 정리한다는 핑계를 대고 이곳으로 훌쩍 떠나온 것이었다.
“무슨 바람이 이렇게 야멸차게* 분담, 원!”
그런대로 말쑥한 옷차림을 한 사십 대 두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을 따라 먼지를 싸안은 한 무더기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문 닫어!”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말하자 그 다른 한 명이 얼른 문을 닫았다. 문에 달린 양철종이 딸랑딸랑 하고 울렸다.
그는 다시 시계를 보았다. 그러고도 아적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씨 한 명이 얼른 카운터로 달려오더니 돈을 받았다. 아까의 그 아가씨는 아니었다. 그는 조금 실망하여 혹시 그 아가씨를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하여 뒤돌아보았지만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터라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다방을 나와 집과 집 사이, 텃밭 옆, 돼지우리 옆, 헛간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교회가 서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낮은 산으로 연결된 언덕에는 아카시아, 싸리 등의 볼품없는 나무들만 자라서 이제 막 옅은 연둣빛을 칠해놓고 있었다. 가방을 든 손이 뻐근하였다. 바람은 메말라서 자꾸 피부의 기름기를 갉아먹는 것 같았다.
예배당 옆으로 붙어 있는 목사 사택은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마루가 딸린 단층건물이었다. 그 뒤로 박 목사 자신이 손수 교회 젊은이들과 함께 지었다는 교육관 건물이 보였다.
사택을 빙 돌아 가꾸어놓은 초라한 화단에는 수종을 알 수 없는 말라비틀어진 일년생 화초들이 만지면 바스러질 듯한 모양으로 서 있었다.
뜻밖에도 박 목사는 집에 있었다.
“김 선생, 어서오시오. 오래간만이오:”
박 목사는 고개를 약간 외로 젖히고 예의 조금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큼지막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니, 집에 계셨군요?”
“응, 세미나가 연기되었어. 이유는 모르지만.”
박 목사는 베이지색 작업복 웃옷과 헐렁한 바지 차림에 캐주얼을 신고 있었다. 그는 가끔 서울에 올라올 때도 그런 모택동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다방에서 시간을 허비하진 않았을 덴데요.”
“그랬었나?”
박 목사는 별로 미안해하는 표정도 없이 그를 뒷방으로 안내하였다. 책꽂이와 책상 몇 개가 놓여 있는 뒷방은 널찍하였는데 널찍한 만큼 썰렁하였다.
“얼마 동안이나 있을 작정 인가?”
“예, 한 일주일 정도요.”
박 목사는 선 채로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여기서 멉니까?”
그는 책상에 기대어 서서 물었다.
“응, 조금. 차를 타고 이십 분 가량 들어가야 해. 포도나무집인데 겨우내 비워두었던 터라 조금 추울 거야. 청소를 하도록 부탁을 해두었다만.”
전화 연결이 되었는지 박 목사는 수고합니다, 감사합니다, 부탁합니다틀 섞어서 한참 동안 통화를 하였다. 박 목사가 통화를 하는 동안 그는 책꽂이에 꼭혀 있는 책 가운데서 아무거나 한 권을 끄집어내어 눈 가는 대로 읽고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자기가 가 있을 포도나무집에 대해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려보는 중이었다.
“자, 됐어.”
이윽고 박 목사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목사님.”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고맙긴…… 그런 소리 들으려고 하는 짓인가? 여기 잠깐만 있으라구. 가서 머물 동안 필요한 물건을 좀 챙겨 올 테니까.”
“사모님께 인사를 드려야 할 텐데요?”
“없어. 나 대신에 오늘 심방을 나갔거든. 감기에 걸려서 기침을 몹시 했는데……”
박 목사가 나가고 나자 그는 윙윙거리는 바람소리가 가슴께를 훑으며 지나가는 걸 느꼈다. 갑자기 외롭고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담배를 피워 물고 냉기가 느껴지는 방 안을 오락가락하며 오래간만에 마주친 이러한 텅 빈 낯선 느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온통 갈피를 잡흘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들뿐이었다.
조금 있다가 박 목사는 담요 한 장과 낡은 이불 한 채 그리고 전기담요와 냄비 하나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왔다. 보자기는 방금 창고에서 꺼낸 것처럼 색이 바래고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자, 대충 준비가 되었으니까 차를 알아보러 가자구. 내가 미리 이야기해둔 데가 있으니까.”
그는 박 목사를 따라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동안 박 목사는 그 언덕배기에 붙어 있는 밭에서 콩을 얼마나 수확했고, 그것으로 메주를 만들어 얼마의 수익을 남겼으며, 그것으로 공동 작업에 참여 했던 젊은이들에게 얼마만큼의 이익이 돌아갔는가를 설명했다. 그는 박 목사의 등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을 뿐, 바람이 그의 말허리를 중간중간 잘라먹었기 때문에 건성으로만 예, 예 할 뿐이었다.
“김 선생은 요즘 농촌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지 모를걸세. 나도 이제는 거의 지칠 지경이니까.”
그들은 그가 처음에 버스에서 내렸던 한길로 내려와 그 길을 따라 강화 쪽으로 다시 올라갔다. 아직 잎사귀를 달지 않은 벌거숭이 가로수들이 맨몸으로 윙윙 울어대고 있었다. 흙먼지가 날려 눈으로 파고들었다.
“저기야.”
박 목사는 휘발유 깡통들이 늘어서 있는 간이주유소를 시선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석유, 휘발유 등을 파는 조그만 기름가게였다.
유리로 된 여닫이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인인 듯한 사내가 소파에 머리를 뒤로 잔뜩 젖히고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탁자 위에는 그가 충실한 기독교인이라는 푯대라도 되는 듯이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다.
“정 선생, 자나?”
박 목사가 점잖은 목소리로 웃으면서 말하자 사내는 깜짝 놀란 듯이 눈을 떴다. 잠기가 묻어 있는 눈은 토끼 눈처럼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어? 목사님.”
“손님이 왔네. 내가 이야기했던 서울 손님 말이야.”
“아.”
사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어나더니 악수를 청했다.
“난, 정기정이라 합니다.”
그는 사십 대 초반의 사내였는데 인상이 매우 날카롭고 성깔깨나 있어 보였다.
“그래 차는 지금 좀 내어줄 수 있겠나?”
모두 소파에 앉자 박 목사가 말했다.
“차야 똥찬데요, 뭐. 차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마누라가 학교에 가고 없어서 가게 볼 사람이 없어요.”
“부인이 학교는 왜?”
“큰애 있잖아요. 개가 이번에 반에서 무얼 좀 맡았는가 봐요. 쓸데없는 짓 이라고 말렸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 씨는 약간 자랑스러운 표정 이 되었다.
“쓸데없는 짓이라니?”
박 목사는 짐짓 꾸짖듯이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언제쯤 돌아오실 건가?”
“모르겠어요. 다섯 시쯤 되면 될 텐데.”
정 씨는 긴장이 좀 풀리자 고양이처럼 길게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아 있었다. 여기에 온 이후로 모든 시간이 그냥 기다리는 일에 허비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막연하고 초조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박 목사나 정 씨나 남이 기다리거나 자기가 기다리거나 간에 이렇다 할 초조한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기다리는 일쯤은 그냥 예삿일처럼 여기는 기색이었다.
그들은 그 마을에서 얼마 전에 일어났던 청년들 간의 다툼에 대하여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그 다툼을 조정하고 화해시키는 데 정 씨는 자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가에 대하여 약간 자랑스럽게, 다소 허풍이 느껴지는 말투로 떠들었다. 그는 자신이 인천 출신의 짠물이며 옛날에는 주먹깨나 쓰던 건달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금식을 하여 성미(誠米)*로 인근에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를 찾아가 전달했던 이야기, 이러한 일을 위한 장기적 대책의 부재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정 찌는 밖으로 나가 근처 가게에서 맥주 두 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사 왔다.
“농촌문제는 농민들 자신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동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나는 감히 말하지만 농민들 자신의 내부가 썩어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맥주를 마시며 정 씨는 활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과가 아닐까요? 원인은 농촌을 피폐화시킨 우리나라 농사정책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냥 묵묵히 있기도 그렇고 하여 맥주값 하느라고 그는 가볍게 반론을 던져보았다. 그러자 정 씨는 눈썹을 찡그리며 손을 휘휘 저으면서 말했다.
“김 선생은 높은 데만 보아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걸 거요. 농촌에서 일 년만 함께 살아보시오.”
“지역에 따라 다소간 차이는 있겠지요.”
그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듯하자 박 목사가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다소 뭉뚱그려서 점잖은 말로 중재를 하였다.
“김 선생 말은 전반적인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고 정 선생 말은 주체가 되는 농민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인데 할 수만 있다면 둘 다 동시에 바뀌는 게 좋겠지.”
정 씨의 부인은 거진 땅거미가 밀려올 때쯤 하여 들어왔다. 원피스를 입고 위에 회색의 봄 스웨터를 걸친 부인은 아주 건강하고 쾌활해 보였다.
그녀가 돌아오자 그들은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정 씨는 가게 뒤로 쫓아가더니 검은색의 큼지막한 승용차를 몰고 나왔는데 차를 보는 순간 그는 혹시 정 씨가 폐차장에서 금방 빼내 오지는 않았나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손잡이는 떨어져 나가고 소파도 구멍이 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차를 정지시켰다가 다시 시동을 거는데는 상당한 기술과 끈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 차의 뒤 트렁크에 석유 한 통을 실은 다음 그들은 다시 교회로 가서 아까 박 목사가 준비해둔 물건을 싣고, 분명히 박 목사가 아껴쓰고 있는 듯한 석유난로까지 싣고서 앞으로 그가 일주일간 머물게 될 포도나무집을 향해 출발했다. 밤이 되자 바람은 더욱 맵게 소리를 질러댔다.
3월의 해는 아직도 짧은 탓인지 금세 어둠이 주위를 에워쌌다. 차는 내내 털털거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달렸다. 가다가 중간에 상점 앞에 차를 세워 라면과 밀감을 조금 산 다음 차는 다시 얕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헤치고 가는 길은 흙길이었지만 그런 대로 잘 닦여져 있었는데 정 씨는 이 길이 해변 부대로 가는 군사도로라고 설명해주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아 길가의 잡목들이 살아 있는 짐승처럼 하얗게 떠올랐다가 뒤로 사라졌다. 그는 무언지 모르게 외지고 황량한 곳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는 기분이 들어 괜히 긴장이 되었다.
“저 혼자 있는 겁니까?”
그는 약간 떨떠름한 목소리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박 목사를 향해 물었다.
“일꾼이 한 명 와 있다더군. 요즘이 포도나무 가지를 쳐주는 시기거든. 내일모레면 끝나고 간다지, 아마.”
“주인은요?”
“주인은 김포에 살아, 고생 많이 한 사람이지. 박 장로라고 젊은 시절에는 떠돌이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어, 아마 며칠 후엔 그도 가지치기를 하러 올 거야. 그때 인사를 하도록 하지. 그리고 김 선생 식사는 거기서 한 이십 분 가량 걸어가야 돼. 아침저녁 운동도 되고 좋지 뭐.”
그는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럴 때는 시간이 해결해줄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창문 밖 어둠을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낮은 구릉으로 포도나무들이 열(列)을 지어 서 있다가 차가 달리는 대로 열병식을 하듯 뒤로 쭉 밀려갔다. 그 포도나무의 열은 상당히 길게 계속되었다.
멀리 어둠 속에서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띄엄띄엄 불빛이 나타났다.
“다 왔어.”
박 목사가 말했다. 그는 어둠 속에 별빛처럼 밝혀져 있는 불빛의 수를 헤아려 저 앞에 조그만 마을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포도나무집은 그 불빛이 모여 있는 곳에서 걸어서 오 분쯤 되는 거리, 바로 포도나무밭의 중간에 영화에 나오는 유령의 집처럼 서 있었다. 현관 창문에 뿌연 형광등 불빛이 ˙비치는 걸 보아 박 목사가 설명해주었던 그 가지치기 일꾼이 안에 있는 모앙이었다. 그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차는 그 집 뒷마당에 가서 멎었다. 그러자 안에서 누가 킁킁 일부러 하는 기침을 하며 나왔다.
“거 누구요?”
그는 조용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머리 뒤로 불빛이 있었기 때문에 얼굴은 분명히 보이지 않았지만 덩치는 별로 커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시오, 나 목사요.”
“아, 낮에 전화하셨지요?”
그는 겸손하게 말하고는 웃었다. 희미한 불빛에 비친 그는 빼빼 마르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오십 대의 사내였는데 헐렁한 작업복 차림이었다.
그들은 그 집의 뒷문으로 들어갔다. 뒷문을 들어서자 터무니없이 넓은 부엌이 나왔는데 천장이 아주 높았다. 부엌에는 일꾼이 취사하던 것으로 보이는 간소한 식기류와 반찬류 들이 놓여 있었고 바닥엔 장독이 몇 개 놓여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독 속에는 피처럼 빨간 잘 익은 포도주가 담겨져 있었다.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 집은 지어진 지 몇 해 되지 않은 깨끗한 양옥집이었다. 방이 세 개고 그 사이에 마루가 있었다. 일꾼이 거처하는 방은 그 집의 안방 격인 현관 쪽 큰방이었고 그가 머물기로 되어 있는 방은 부엌에 연해 있는 작은방이었다.
창문을 여니 어둠 속에 줄을 서 있는 포도나무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 마을의 불빛이 몇 개 반짝이고 있었다. 그곳에서 돌아가는 소린지 탈탈거리는 엔진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대충 짐을 부린 다음, 그들은 다시 정 씨의 고물차를 타고 앞으로 그가 밥을 부쳐 먹을 집을 향해 떠났다. 그 집 주인이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으니 도착하는 즉시 오라는 전갈을 일꾼에게 해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몹시 배가 고팠다.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다 흘리고 다녔는지 벌써 아홉 시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집은 좁은 차도 아래로 비탈져 내려간 잡초가 무성한 언덕 밑에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쯤인가, 하며 대충 차를 세우고 두리번거리는데 아래쪽에서 여러 마리의 개가 한꺼번에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맞았어. 옳게 찾았군.”
박 목사는 만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 목사는 아래쪽을 향해 주인의 이름을 커다랗게 부르며 어둠 속에 발길을 더듬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밤눈이 어두운 그는 박 목사의 뒤를 조심스럽게, 박 목사보다 훨씬 더듬거리면서 따라 내려갔다. 자기 때문에 괜히 여러 사람이 고생을 하는 듯하여 미안한 생각이 슬그머니 마음 한구석에 짚였다.
“조심해서 내려와요! 목사님 이쪽 길루요!”
죽어라고 짖어대는 개 소리에 섞여 약간 갈라진 듯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저쪽 아래에서 커다랗게 올라왔다. 개들은 계속 어둠이 찢어져라 하고 짖어대고 있었다. 대충 잡아도 스무 마리는 넘을 것 같았다.
“주인은 보통 애견가가 아닐세. 자기 말로는 개를 키우고 싶어 이쪽으로 왔다는 말을 할 정도니까. 여기 오기 전에는 서울에서 버스운전사를 했다지, 아마.”
박 목사는 길을 더듬어 내려가며 빠른 어조로 설명해주었다.
개집들이 빙 둘러 놓여 있는 그 집으로 가까이 내려가자 그는 그것이 정식 집이 아니라 비닐하우스처럼 꾸며놓은 임시막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조용해! 조용하라구!”
키가 커다란 주인은 개를 나무라며 손전등을 켜고서 그들이 내려가는 길 앞을 비춰주었다.
“어서들 오세요.”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그들을 맞으며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주인 부부를 따라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랗고 넓은 온실처럼 생긴 막사 안에는 철제 침대가 여러 개 놓여 있었고 싱크대와 식탁, 그리고 몇 권의 책이 꽂혀 있는 책꽂이와 책상 등이 놓여 있었는데 얼핏 보기엔 팔자 좋은 피난민들 거처 같았다. 바닥엔 단단히 다져놓은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리루 앉으세요.”
“아, 이거 늦은 밤에 미안허우.”
박 목사는 약간 과장하여 걸걸하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진짜 미안한 마음을 감추기라도 하듯이 말했다.
“천만에요. 정말 저희로서는 영광인데요, 뭐.”
아주머니는 매우 싹싹한 말투로 인사를 하고는 식탁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키가 큰 주인 남자는 마음씨 좋게 미소를 지었지만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인지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난번 예배 때 권사님이 수고가 많았다지요?”
박 목사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들과 관련된 화제를 재빨리 끄집어내는 데 수완을 보였다. 그는 그들의 대화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조용하게 막사 안을 구경 하였다.
“인사하시우. 정 선생이야 잘 아실 테구 이쪽은 제가 말했던 서울에서 내려온 김 선생이오.”
박 목사가 소개를 하자 그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인 남자와 악수를 나누고 아주머니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누었다.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폐는 무슨 폐요. 그러나저러나 우리가 먹는 반찬이란 게 워낙 험해서……”
아주머니가 받았다.
“별말씀을 다 하세요. 아무런 부담 가지지 마시고 그냥 평소 자시는 대로 주시면 됩니다. 그것도 과분한 일이지요…….”
“그런데 이런 구석에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아……”
그가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충 얼버무려서 대답했다.
“작품을 좀 구상할까 해서요.”
“그러니까 작가 선생이구만요.”
“그렇소. 김 선생은 신문에도 나왔던 작가라우.”
박 목사는 신문에 나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랑스럽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잘됐군요. 좋은 작품 쓰시면 꼭 한 번 보여주세요.”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정말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곧 식사가 시작되었다. 반찬은 많지도 않았고 비싼 것도 없었으나 모두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배까지 고팠던 형편이라 그는 체면 볼 것 없이 숟가락질을 해댔다. 주인 남자는 주전자를 가지고 나가더니 피보다 더 빨간 포도주를 담아 들고서 들어왔다.
“목사님 앞에서 술을 마셔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주인 남자가 이렇게 겉치레로 말하자 박 목사는 황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무렴요, 음식인데 어때요.”
그들은 반주로 커다란 컵에 포도주를 한 잔씩 따라 마셨다. 화제가 자연히 개 이야기로 옮겨갔다. 개 이야기가 나오자 말수가 적어 보이던 주인 남자는 아연 활기를 띠고서 책꽂이에서 『애견(愛犬)』 이라고 쓰인 책을 들고 와서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컬러로 된 일본 책이었는데 주인 남자는 일본말루 줄줄 읽으면서 거기에 실린 기가 막히도록 멋있게 생긴 개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이런 놈 수캐 한 마리만 있으면 부자 소리 들을 겝니다. 한 번 교접 붙여주고서 받는 사례금이 기백만 원까지 이르니깐요.”
“개도 재미 보고 주인도 재미 보고 거 괜찮은 장산데요?”
정 씨가 뭉그적거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잘생긴 개라도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으면 값이 또 떨어집니다. 개 콘테스트에서 심사위원들이 그런 시험을 해본다더군요. 그러니까 갑자기 위협을 해본다는 거죠. 그러면 그 개가 어떻게 훈련을 받았는가 하는 표가 난다는 겁니다. “
“어떻게요?”
박 목사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맞으면서 훈련받은 개는 자기도 무르게 움찔한다는 거죠. 그러면 실격입니다. 품위가 없는 개라는 뜻입니다. 그런 개는 천상 씨받이로나 쓰일 뿐이지요.”
“양반 시험과 똑같군 그래.”
정 씨가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주인 남자는 그 외에도 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추거나 술을 마시거나 했다. 아주머니가 이야기의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더 이어졌을지 알 수 없었다.
“여보, 이제 개 이야기는 그만 좀 하세요. 괜히 자기만 신이 나서 떠들고 있으면서…….”
자기 마누라의 핀잔에 주인 남자는 비로소 자기가 너무 길게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 정말 재미있는 이야깁니다. 아주 재미있었어요.”
박 목사는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정 씨나 그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시간이 너무 오래 되었군요.”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 있던 그가 분위기를 살피며 말했다.
“아, 그래. 가야지. 갑시다.”
박 목사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더 노시다 가도 되는데…….”
아주머니가 말리는 체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목사는 다시 한 번 그의 식사 문제에 대하여 두 사람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보다 먼 길을 자기 혼자 밥을 먹기 위해 식사 때마다 걸어 다녀야 할 것을 생각하자 조금 떨떠름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나가자 개들이 다시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목에 걸린 쇠사슬이 팽팽히 당겨지는 소리, 발톱으로 개집을 긁어 대는 소리가 처음 온 사람에게 겁을 주었다.
“조용히! 쉭! 조용히!”
정 씨가 주인 남자의 흉내를 내어 그들을 달래려고 했지만 개들은 그 소리에 더욱 발광이나 하듯이 짖어 댔다.
그들은 그 집에서 차도로 올라와 다시 차를 타고 포도나무집으로 갔다. 거기서 그를 내려놓고 두 사람은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어둠 속에 떠가는 자동차 꽁무니에 붙은 빨간 미등을 지켜보다가 그것이 언덕 모퉁이로 돌아서 사라지고 나자 그는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밤하늘은 축축하게 젖어서 가는 빗발을 뿌리고 있었다. 소음이란 소음은 완전히 차단된 고요가 마치 질량이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온몸을 에워쌌다. 그것은 일종의 진공상태에 가까운 정적이었다. 그러한 진공의 정적은 방으로 들어왔을 때도 그대로 지속되었다. 아무런 가구도 없이 그대로 텅 비어 있는 방. 구석에 놓인 가방과 담요. 괜히 이곳으로 왔다는 후회가 가슴을 휑하게 파고들었지만 지금 와서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전기담요의 스위치를 켜고 석유난로의 불도 지펐다. 그리고 가방을 풀어 책과 펨플릿 등을 꺼낸 다음, 갈아입을 속내의 두 벌도 꺼내시 가방 위에 얹어두었다.
앞으로 일주일간 그는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된 것이었다. 자유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위한 자유란 말인가? 그는 도무지 기분이 나지 않았다. 마치 형사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처음 구치소의 독방에 들어갔을 때처럼, 비록 혼자가 되긴 했지만 무언지 모를 불안감으로 답답하던 그때 심정과 비슷했다.
밤이 깊었지만 굳이 시간을 따져 살아갈 필요가 없었으므로 그는 낮과 밤의 구별까지도 무시하기로 했다. 옆방의 일꾼은 자는지 기척이 없었다. 일주일간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그는 자기가 해야할 작업들을 머릿속으로 더듬어보았다. 80년대 운동사는 정리하는 방법에 따라 아주 간단할 수도 있었고 소설처럼 길 수도 있었다. 또 사건별로 정리할 수도 있었고, 논쟁과 논점에 따라 정리할 수도 있었다.
그는 벌렁 드러누워서 80년대의 격변기 동안 자기가 살아왔던 일을 회상하였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군대로 끌려간 그는 5·17*을 군대에서 일등병으로 맞았고 82년 1월 제대를 했다. 그리고 복학, 그때의 암담했던 기분들, 제 살을 깎아먹는 논쟁들, 길었던 연애의 끝, 졸업, 자취생활, 취직, 결혼, 청년운동, 실업…… 그가 그러고 있는 동안 자기를 둘러싸고 있던 사회·정치적 상황은 또 얼마나 숨 가쁘게 변화되어왔던가. 삼일불견(三日不見)이면 언어불통(言語不通) 일 정도였다. 운동권은 양적으로 엄청나게 확산되었고 새로운 인물들이 새로운 깃발 아래 속속 등장하였다. 혁명은 공공연히 주장되었고 땅 속에 묻혀 있던 녹슨 역사, 녹슨 말들이 다시 빛을 발했다. 50년 전쟁 이후, 가장 뜨겁고 감동적인 역사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부미방,* 구로연투,* 자민투와 민민투,* 5·5,* 뒤를 이은 대탄압, 건대사건,* NL과 CA의 논쟁,* 6월 민중항쟁, 7·8월 노동자투쟁……
그렇지만 그 용솟음치는 힘도 단 한 판의 목숨을 건 게임에서 자신의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악머구리처럼 뿌리로 팔로 온몸으로 버팅기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권력의 힘 앞에 맥없이 허물어지고 만 것이었다. 그는 선거가 끝난 후, 눈깔 빠진 벽보들이 바람에 날리는 서대문 뒤쪽 산동네를 오르내리며 한없는 무기력감에 시달려야 했다. 일하고 생산하는 민중들은 금세 기력을 회복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전선(戰線)이 형성될 것이고 인간의 삶을 옥죄는 무리들의 가면성을 벗겨 젖히고 다시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게 그에게 구체적인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엎드려 누워서 노트를 꺼낸 다음, 자료와 책을 펼치고서 10·26*과 5·17 사이를 먼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창문 밖에서 뚜닥뚜닥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 보니 창문에 벌써 형광등 불빛보다 더 밝은 빛이 차 있었다. 밤새 불을 켜두고 잔 모양이었다. 옷도 입은 채 그대로였다. 손목에 걸린 시계는 아홉 시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간밤에 정리하다만 원고와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가운데 난로가 그대로 빤히 타고 있었다. 기름 양을 알리는 표시가 영에 가까이 가 있었다. 비가 그쳤는지 밖은 신기할 만큼 조용하였다. 그는 담요를 젖히고 일어나서 칫솔과 수건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공기는 아직도 선뜻했지만 눈부시게 맑은 태양 빛이 온 들판을 유리조각처럼 덮고 있었다. 빗기에 젖어 있는 땅은 생기 있는 붉은 빛을 띠고서 바야흐로 봄의 생명을 탄생시킬 준비를 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는 기지개를 한껏 켜고서 근처 갈색의 마른 잡초 더미 위에다 색깔이 노란 오줌을 갈겼다. 어젯밤에 보았던 포도밭은 언덕을 타고 길게 이어져나가 있었는데 군데군데 철조망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덩굴을 지지하기 위해 받쳐놓은 시멘트 말뚝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게 마치 외국인 묘지의 십자가들이 줄 서 있는 모양처럼 보였다. 그 낮은 구릉 너머로 서해 바다가 슬핏 보였다. 철책이 서 있어 그곳으로는 바다에 나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어제 정 씨가 해주었었다. 낮은 땅 위로는 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는데 갓 닦은 유리창처럼 맑은 하늘은 따뜻한 봄의 숨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포도밭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 보았다. 굵은 본줄기만 T자 형으로 남아 있는 나무도 있었고 작년에 포도를 달고 있었을 잔가지들을 헝클어진 노인네의 머리칼처럼 이고 있는 나무도 있었다. 굵은 본줄기만 스포츠형으로 깎은 머리처럼 남아 있는 나무 들은 이미 전지가 된 나무들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젯밤에 인사했던 오십 세 가량 된 일꾼이 흰 등산모를 쓰고 수건을 목에 감고서 전지가위로 가지를 치고 있는 게 보였다. 따각따각 하며 가지 잘리는 소리가 선명하고 명랑하게 공기를 울렸다.
“일어나셨수?”
그를 발견하자 일꾼은 일손을 멈추지 않은 채 입으로만 커다랗게 인사를 했다.
“예.”
“춥지 않던가요?”
“견딜 만하던 데요.”
“밤은 아직도 겨울이나 매양 한가지지요.”
그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일꾼이 작업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구경하였다. 포도나무밭을 둘러싸고 있는 가시나무 넝쿨 속에서도 연한 연둣빛 속잎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내일이면 끝난다고 하시던데…….”
“그러우. 또 다른 밭으로 가야지요. 해마다 이맘때면 손 놓을 틈이 없다우.”
그는 오금에 쥐가 날 때까지 그렇게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다가 물통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서(펌프가 얼어 터졌기 때문에 좀 떨어진 인가에서 길어 와야 했다) 대충 세수를 마쳤다. 그러고는 게으르고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아침식사를 하러 어젯밤의 개 키우는 집을 향해 결어갔다.
비 온 뒤라 길은 온통 진흙투성이였는데 붉은 진흙이 구두 밑창에 떡처럼 잔뜩 올라붙어서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아침을 먹고 라디오를 좀 듣다가 포도나무집으로 돌아오니 뜻밖에도 박 목사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박 목사는 자기 말고도 몇 사람을 더 데리고 왔는데 한 사람은 흰머리카락과 검은 머리카락이 반반쯤 섞인 육십 세 가량의 말라빠진 할머니였고, 또 한 사람은 살이 좀 붙고 덩치가 큰 아가씨였다. 그 뒤에는 십칠팔 세 가량 된 청년 하나가 싱겁게 웃으며 서 있었는데 감색 점퍼의 지퍼를 목까지 채우고 있었다.
“자, 김 선생 인사 좀 하시지.” ,
박 목사는 그에게 그들을 소개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분들은 지역사회 소식지인 『푸른 언덕』을 만드시는 분들이야. 쉽게 이야기하면 비전문적인 문필가 겸 편집자들이지. 마침 김 선생이 여기 와 있으니까 글 쓰는 데 좋은 도움말 좀 받으려고 모시고 왔다네.”
박 목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박 목사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저야말로 비전문가지요. 무슨 도움말이고 드릴 처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박 목사는 그의 곤란해하는 반응 따윈 아예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먼저 할머니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김순이 할머닌데 처녀 시절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으셔. 올해 예순셋인데 건강도 하시거니와 아주 열성적인 분이지. 『푸른 언덕』에다 「농촌과 농민의 삶」이라는, 여기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록하여 연재하고 있다네.”
박 목사의 소개가 끝나자 머리가 반백인 김순이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밀어 세련된 동작으로 악수를 청했다. 그녀는 굵은 털실로 짠 잿빛의 재킷을 입고 손가락에는 큼지막한 홍석이 박힌 반지를 끼고 있었다.
“목사님은 우리 노인네들조차 부려먹질 못해 안달을 친다우. 우리 바깥양반도 예전에 출판사에 다녔는데 멀쩡하던 사람이 혈압으로 죽고 말았지 뭡니까. 그래서 난 이런 일에는 저절로 머리가 흔들어졌는데 목사님 덕분에 이번엔 내가 하게 되었지 뭡니까. 사실 난 글쟁이나 출판쟁이나 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할머니는 빠른 어조로 약간 수다스럽게 말했는데 나이에 비해 민첩하고 영 리해 보였다.
“아, 그렇군요.”
그는 괜히 꾸중을 들은 듯한 기분이 되어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그러나 오면서 목사님한톄서 김 선생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우. 그래 올해 몇이시우?”
“얼마 되지 않습니다. 겨우 서른넷인걸요.”
“한창 나이구먼.”
김순이 할머니는 노인네 특유의 호기심으로 그를 뜯어보고, 살펴보고 했기 때문에 그는 얼굴이 몹시 받혔다.
“자, 그리고 이쪽에 있는 아가씨는 우체국에 다니고 있다네. 이름 안미향이 구.”
덩치가 크고 눈빛이 서글서글한 아가씨는 가벼운 눈웃음으로 인사를 했다. 봄빛에 어울리는 환한 원피스 차림 이었는데 살이 탱탱하게 부풀어 있어 다소 육감적으로 보였다.
“그리구 이쪽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군데 한명구라고 앞으로 농민운동 쪽으로 뛰어볼 생각을 가지고 있다네, 김 선생의 지도를 각별히 요하는 친구지.”
젊은 사내는 박 목사의 소개에 조금 열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하였 다.
인사를 마치고 나자 그들은 그 집의 마루에 놓여 있는 낡은 소파에 가서 앉았다. 창문 밖으로는 포트나무밭 풍경이 길게 뻗어 있었다. 작업하던 일꾼은 보이지 않았다. 손님들은 커다란 병에 든 콜라와 과자 등을 사가지고 왔는데 그것을 바닥에 펼쳐 놓고 앉으니 무언지 모르게 풍성한 느낌이 되었다.
“이 김 선생으로 말하자면 이런 계통의 전문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동안 『푸른 언덕』을 만들면서 생겼던 의문점이나 개선점을 이 기회에 기탄없이 물어주시기 바랍니다.”
박 목사는 짐짓 폼을 잡으며 웅변조로 말했는데 그가 보기에는 그런 말투가 어쩐지 희극적으로 들렸다. 그래서 그 역시 조금 희극적인 기분이 되어 정말 전문가나 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콜라 한 잔을 마시고 귀를 세워 그들이 던지는 질문을 받았다.
맨 먼저 김순이 할머니가 말했다.
“전번엔 우리 동네에 사는 박덕삼이 영감을 잡고 이야기를 했었다우. 충남 홍성이 고향인데 자기 말로는 종자 씨만도 천석을 하는 만석꾼의 외아들로 태어났다는구먼. 지금은 손바닥만 한 밭뙈기 하나 없이 입 하나 달랑 가지구 먹구사는 처지면서 말이우. 형편없는 술주정뱅이 영감인데 술만 마시면 할망구를 그렇게 팬다우. 그래서 내가 잡고 이야기를 시키는데 이 영감쟁이의 말이 하두 두서가 없고 번번이 삼천포로 빠지는 바람에 나중에는 나도 뭔 소린지 몰라 헷갈리고 말았다우. 그래서 취재를 해 글을 써놓고 보니까 하루는 영감이 나를
보더니 화를 불같이 내는 게 아니우. 영감쟁이가 왜 저러나 했더니 글쎄 자기 나쁜 소리만 잔뜩 써가지구서 왜 훤해하는가* 하는 거지 뭡니까. 자식 수도 아들딸이 서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겠수?”
침을 튀기면서 젊은 여자처럼 활달하게 이야기하는 김순이 할머니의 이야기 끝에 모두 소리 내어 웃었다.
“인터뷰하실 때 녹음기는 안 가지고 가십니까?”
그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녹음기가 어디 있나요? 손으로 받아 적어서 읽어주고 확인을 받는 거지요.”
“녹음기가 한 대 있긴 하지만 별로 신통치가 않다네.”
박 목사가 변명하듯이 한마디 끼어들었다. 그는 잘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크게 두어 번 끄덕거렸다.
“인터뷰하기 전에 미리 무엇을 물을 것인가를 써가지고 가시나요?”
“그럼요. 하지만 그게 어디 생각대로 되나요? 처음에는 이런저런 것을 물어봐야지 하구서 생각해둡니다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두 내가 무얼 물어봐야 하는지 잊어버리기 일쑵니다.”
그 말에 다시 한 번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우체국에 다닌다는 아가씨는 무어가 그리도 우스운지 고개를 돌리고서 기침을 콜록콜록 해가면서 웃었다.
“저는 우리 고장의 역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한명구라는 청년이 그런 장난스런 분위기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우리 고장은 예로부터 강화로 들어온 외적이 서울로 진출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지요. 그래서 좌측 바다 쪽으로 있는 문수산에는 아직도 성터가 남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는 바로 지척에 남북으로 민족을 갈라놓은 철책이 서 있지요.”
그는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보고를 하는 사람의 표정이 되어서 자기가 미리 조사를 해왔음 직한 내용을 펴놓고 읽기 시작했다.
“김포군의 최북단인 보구곳리에 가보면 강 가운데 유토섬이라는 큰 섬이 하나 앉아 있는 게 보입니다. 그 너머가 바로 북한이지요. 전설에 의하면 섬 하나가 임진강을 따라 떠내려오다가 여기에 자리 잡고 앉았다고 합니다. 그렇데 이 유도섬에는 장마철 때마다 뱀이 떠내려오다가 기어올라 오는 바람에 뱀이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뱀이 많으니까 뱀을 잡아먹고 사는 학도 많이 번식하였고, 그래서 이 섬을 학섬이라고도 하지요. 뱀은 학 알을 잡아먹고 학은 뱀을 잡아먹고 그렇게 사는 거죠.”
한명구 청년의 설명 이 길어지자 우체국에 다닌다는 안미향이라는 아가씨가 그의 엉덩이를 살짝 꼬집었다. 그만 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부끄럼을 잘 타게 생긴 이 청년은 의외로 고집이 세었다. 그는 자신이 좀 더 인정받고 싶었는지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6·25 이전에는 이 섬에 민가가 두 채 있었다고 합니다. 한 집은 불원면에 사시다 돌아가신 고두영 씨 집이고, 한 집은 용강리에 사셨던 박정옥 씨 집이었지요. 전쟁이 끝나고 민통선*이 여기로 지나가는 바람에 모두 강 이쪽으로 넘어왔는데 이십 년이 지난 지금, 집은 다 허물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는 게 육안으로도 보입니다. 그 집의 우물물이 얼마나 맛있었던지 아직도 노인네들은 그 향수를 말한다고 합니다.”
한명구 청년은 이렇게 다 읽고 나서 마치 초등학생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구를 쳐다보았다.
“훌륭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한명구 씨의 그 기록은 단순한 지역소식을 넘어서서 우리 민족 전체의 역사를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그 작업을 더욱 열심히 하셔서 고두영 씨나 박정옥 씨의 삶이나 생각 같은 걸 자세히 좀 기록해두었으면 합니다.”
그의 칭찬에 한명구 청년은 매우 만족한 표정이 되어서 눈을 껌뻑거렸다.
“목사님, 오히려 제가 많이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가 박 목사를 향해 웃으면서 말하자 박 목사는 그 말을 자기에 대한 칭찬으로 들었는지 만족한 표정으로 따라 웃었다.
“『푸른 언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네. 중앙에서 나오는 말에만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 신기해하는 것이지. 지난번에는 문수산 문수사에 계시는 장태삼 스님의 이야기를 실었는데 올해 여든둘인 그 스님은 범패* 오십 가지를 하시고 있다네.”
“우리나라가 완전히 중앙집권적인 형태로 되어 있다는 건 여러 차원에서 문제입니다. 중앙집권적인 것이야말로 군대식 질서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한 군 같은 사람에게 기대가 크다네. 젊은 친구들이 도무지 이 바닥에 붙어 있으려구들 해야지.”
박 목사가 탄식조로 말했다. 우체국에 다닌다는 안미향은 남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남들이 웃을 때 그냥 따라 웃을 뿐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조그만 팸플릿도 내용과 함께 디자인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하면서 사진과 그림의 효과에 대하여 설명해주었다. 그의 설명에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김 선생도 바쁘신 분이니까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에 또 시간을 좀 내지요.”
박 목사가 대충 분위기를 정리하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는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좋은 글 많이 쓰세요.”
악수를 나눌 때쯤에야 안미향은 가지런한 이를 하얗게 드러내며 말을 꺼내었는데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고 남자 같았다.
그들이 가고 나자(그때가 두 시쯤 되었다), 그는 우선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기 위해 전기담요를 켜고 자리에 누웠다. 창문에 비치는 밝은 빛. 자신의 심 장에서 울리는 고동소리와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
그는 그 속에 잠겨 잡다하고 번잡한 그림자 같은 많은 꿈을 꾸면서 저녁 무렵까지 잠을 잤다.
비록 불규칙적이긴 했지만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금세 일주일의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그동안 포도나무 가지 치던 일꾼은 일을 끝내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그는 넓고 썰렁한 집을 혼자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밥을 대어 먹던 개 키우는 집의 여주인인 임숙자 권사는 언니(서울서 작은 가게를 하고 있다고 했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하여 그곳에 가버리고 없어서, 키가 큰 남자 주인이 해주는 밥을 하루 먹었다. 그녀는 타이탄트럭 뒤에 올라타고 가면서 “김 선생님 금방 갔다 올 테니 식살랑 잘하세요” 하면서 활짝 웃었었다. 오래간만의 외출이라 그런지 목에 하얀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갑자기 젊어보였다.
그런 일을 제외하면 매일매일의 생활은 포도나무가 있는 낮은 풍경처럼 그저 조용하고 변화 없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런 일이란 것도, 일테면 임숙자 권사의 언니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다던가 하는 일도, 그동안에 처음 발생한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인간이 생활하면서 늘상 일어나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그동안 대학노트 반 권 정도의 원고를 썼다. 80년대의 운동사를 정리해가는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이 현장에 있었던 격렬했던 상황을 만날 때는 잠시 동안 펜을 놓고 멍하니 그때 그 장면을 기억해내곤 했다.
봄이라 하지만 유난히 햇빛이 따가웠던 86년 5월 3일. 전국을 휩쓸고 올라왔던 직선제 쟁취 국민대회가 인천 시민회관에서 열렸던 그날도 그중의 하나였다. 전 운동권에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역 앞 거리는 아침부터 차 한 대 달리지 않는 텅 빈 거리가 되어버렸다. 주변을 포위한 채 열을 지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전투경찰들의 눈에도 긴장감이 돌았다. 길바닥은 온통 종잇조각들이 하얗게 가을날 낙엽처럼 깔려 마구 밟혔다. 각 단체에서 뿌린 유인물들이었다. 80년대 초부터 서로 질세라 상승작용을 하며 높아진 목소리들, 구호들이, 탄알처럼 박혀 있는 삐라들이었다.
각양각색의 플래카드를 든 대열이 역 앞에서 시민회관까지 어깨동무를 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결쳤다. “미제 축출! 파쇼 타도!” “미제 축출! 파쇼 타도!” 그들이 행진하며 외치는 소리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왔는가 보다 하고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였다.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주최의 국민대회가 시민회관 앞 네거리에서 진행 중이었다. 한복을 입은 놀이패들이 꽹과리를 치고 징을 울리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광주에서 올라온 정상용, 대구에서 올라온 이강철 등이 연단에 올라가 열렬하게 연설을 하였고 연설의 끝마다 청중들은 구호로써 응답을 하였다. 시민회관 내에서 진행 중인 신민당의 행사는 그 위세에 완전히 늘려버렸다. 김영삼 총재조차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네거리의 길목마다 시위대와 경찰 간의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다. 주로 노동자단체 소속인 전투적인 사람들이 그 전선에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돌과 하얀 최루탄 가투가 폐허처럼 깔려 있는 길모퉁이에 포니자동차 한 대가 검은 연기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사람, 비닐로 눈을 가린 사람, 치약을 코밑에 바른 사람, 각목을 들고 있는 사람, 짱돌을 들고 어슬렁거리는 사람…… 그들의 눈은 모두 어떤 해방감으로 붉게 도취되어 있었다.
다섯 시쯤 되어 드디어 경찰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다연발탄을 쏘아대며 아스팔트에 딱딱 구듯발 소리를 내며 진격하는 그들의 공격에 전선은 삽시간에 무너져버렸고 판은 순식간에 깨어져버렸다. 물이 빠져나가듯이 사람들은 골목에서 골목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봄의 하늘과 땅은 온통 최루탄 연기로 물들여졌다. 그곳을 빠져나오며 그는 자지러질 듯이 눈을 비비며 울어대는 어린 아기와 행상보따리를 인 사십 대의 어머니를 보았다. 그러나 그 근처에는 어디에도 최루탄 연기로부터 피신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떼의 젊은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다. 아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내내 그의 가슴을 후벼 파며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그런 장면이 기억날 때마다 그의 가슴은 세차게 뛰고 얼굴 근육은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피의 소용돌이가 세포마다 휩쓸고 흐르는 것 같았다. 5·3은 대중에게 복종해서는 안 되지만 대중에게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셈이었다. 모든 운동권은 그것으로 상당히 상처를 받았다.
87년 7∼8월까지 정리한 다음, 그는 펜을 놓았다. 그 뒷부분의 정리는 지금 당장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또 정리가 잘될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 밤에는 박 목사가 정기정 씨의 그 털털거리는 고물 자동차를 타고 함께 왔다. 아예 한잔을 할 요량이었던지 4홉들이 소주 한 병과, 2홉들이 한 병, 그리고 안주로 밀감과 오징어땅콩 등을 사가지고 왔다.
“김 선생은 수염이 자라니까 영락없이 촌늙은이 같소이?”
그의 겉늙은 모양을 허물 잡아 정 씨가 우스개 삼아 말했다.
“그래, 작품은 좀 쓰셨소?”
“좀 쓰긴 썼습니다만 이야기가 될랑가는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세상이야기 못 들었지?”
박 목사가 말했다.
“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전경환이가 일본으로다 도망치다가 잡혀 왔다네. 그리구 김대중이가 총재직 을 사퇴 했다더만.”
“정말 우리나라는 하루만 떠나 있어도 바보가 되고 마는군요.”
그는 어쩐지 씁쓰레한 기분이 되어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안미향이 말이야. 김 선생 장가가지 않았는지 묻더만.”
“안미향이라뇨?”
“왜, 그 『푸른 언덕』 만든다고 찾아왔던 우체국 다니는 아가씨 말이야.”
그러면서 박 목사는 놀리듯이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는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4홉들이 한 병이 금세 비었다. 그러나 술 걱정을 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부엌에 있는 항아리에서 그는 피보다 더 빨간 포도주가 반통이나 담겨 있는 걸 보아두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올 테면 여름에나 한번 오시우. 포도도 포도지만 우리 개 한 마리 끄슬립시다.”
술이 불콰해진 정 씨가 호기롭게 말했다.
“임 권사님네 똥개 한 마리만 잡으면 여남은 명은 보신할 수 있을테니깐.”
“임 권사님 네 개를요? 그 양반은 개를 끔찍하게 사랑하던데.”
“아, 사랑할수록 잡아먹어야지요. 식인종들 중 어떤 부족은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빙 둘러앉아 그 고기를 먹는다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속에 그대로 간직 한다는 표시라나요, 그게.”
“교훈적인 이야기로군.”
박 목사가 익살스럽고 엉뚱하게 받아주었다.
그런 자리의 대화란 게 특별한 주제가 있을 리 없었고 주장이 필요할 리 없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말이 끊어지면 술잔을 돌리면 되었다. 올해 농사 이야기에서 날씨로, 날씨에서 세계 기상 변동과 공해 이야기로, 공해에서 임진강의 석유 냄새 나는 민물회 이야기로, 민물회에서 바다회로, 바다회에서 인천에서의 정기정 씨 활동 이야기로, 그리고 넋두리로, 그것을 달래는 박 목사의 설교적 이야기로, 거기에서 박 목사와 그가 처음 만났던 시절의 이야기로, 거기에서 80년의 고생 했던 이야기로……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술은 술대로 돌면서 포도나무집의 밤이 깊었다. 정기정 씨는 자고 가야겠다면서 전기담요 위에 눕더니 금세 드브렁 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우리 바람이나 쐬고 올까?”
박 목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도 어지간히 취했는지 눈자위가 빨갛게 변해 있었다.
밖으로 나가자 기분 좋을 정도로 쌀쌀한 공기가 코끝에 닿았다. 사방은 잉크병처럼 어두운데 하늘엔 수도 없는 별들이 작은 등불처럼 매달려 있었다. 손을 내어 밀면 잡힐 듯한 거리였다.
“목사님, 별들이 저렇게 가까이 보이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는 경탄조로 말했다.,
“김 선생처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가끔 저런 별들을 볼 필요가 있다네.”
박 목사는 자기는 늘 저런 별들을 보면서 살고 있다는 표시라도 하듯이 말했다. 박 목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는 충분히 겸손해져 있었다. 마치 바다에 서서 그 광대함을 볼 때 느끼는 두려움과 같은 것이 그의 오줌보를 자극했다. 그는 바지춤을 끄르고 아무데나 오줌을 갈기면서 밤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별들을 쳐다보았다. 순결함이 통째로 느껴지는 별 이었다.
“어떤가, 그동안 여기서 지낸 생활이?”
그가 바지춤을 추스르고 있는데 뒤에서 박 목사가 말했다.
“겨울의 끝물이라 그런지 좀 춥더군요.”
그는 그게 박 목사가 요구하는 대답이 아닌 줄 알면서 적당히 대답했다.
“나는 또 김 선생이 괜한 감상에나 빠지고 있지 않나 걱정했지. 대통령선거의 패배 어쩌고 하치만 민중들은 금세 잊어버리고 말아. 우리도 이 지역에서 공정선거감시단을 만들고 한바탕 수선을 떨었었지. 물론 그 당서는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어. 죽을 맛이더군. 그때 우리 교인 한 사람이 말하더군. ‘아, 목사님 우리 국민이 보통 사람들인가요? 왜놈이다 양놈이다 온갖 놈들한테 밝히고 계엄령*이다 위수령*이다 긴급조치*다 온갖 법에 시달리면서도 입때까지 버티고 살아온 국민들이 아니던가요?’ 그러더란 말이야. 그러니 보통사람이 대
통령 되었다 하여 보통사람 아닌 우리 국민들이 기죽을 일이 아니란 이야기 지.”
박 목사는 굵고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는 역시 나지막한 소리로 웃었다. 어둠 속에서 흙길은 띠처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스포츠머리처럼 가지치기가 된 포도나무들이 어둠 속에 길게 이어져 나가고 있었고 그 너머로 마을의 불빛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찬바람이 얼굴에 닿아 술을 깨웠다.
박 목사는 계속 말했다.
“도시에서 온 놈들은 겨울 들판을 보면 모두 죽어 있다고 그럴 거야. 하긴 아무것도 눈에 뵈는 게 없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하지만 농사꾼들은 그걸 죽어 있다구 생각지 않아. 그저 쉬고 있을 뿐이라 여기는 거지. 적당한 햇빛과 온도만 주어지면 그 죽어 자빠져 있는 듯한 땅에서 온갖 식물들이 함성처럼 솟아 나온다 이 말이네.”
그들은 철책이 쳐져 있다는 바다를 향해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바람을 타고 대남방송의 스피커소리가 안개처럼 젖어왔다.
“진짜 훌륭한 운동가라면 농사꾼과 같을 거야. 적당한 온도와 햇빛만 주어지면 하늘을 향해 무성히 솟아 나오는 식물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이구. 일시적으로 죽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죽는 법이 없다네.”
박 목사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그에게로 향해 돌아서더니 말했다.
“이 발이 내가 처음부터 김 선생에게 해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말이었어, 김 선생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난 이미 김 선생이 몹시 지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
어둠 속에서 박 목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벌써 8년이 지났군. 우리가 만난 게…… 그땐 눈이 내렸었지.”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포도나무에 단물이 들 때 한번 찾아오게나. 개도 한 마리 잡고. 요즘은 모두 앞만 보구 사느라고 사람 사는 재미가 뭔지 잊어버리기 일쑤야.”
그렇게 말 맺음을 하고 박 목사는 길 옆 포도나무밭을 향해 돌아서더니 바지춤을 끄르고 요란스럽게 오줌을 갈기기 시작했다. 그는 박 목사의 굵은 오줌발 소리가 꼭 시골에서 듣던 소 오줌 누는 소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80년도 땐 김 선생도 고생 숱하게 했었지. 안미향이가 은근히 김 선생을 마음에 두고 있는 눈치더만.”
박 목사는 오줌을 누면서 앞뒤도 없이 혼자 구시렁거렸다.
그의 둥글고 널따란 어깨의 윤곽 너머로 별똥별이 하나 기다랗게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조그맣게 한숨을 지었다.
『실천문학』 12호(1988년 겨울); 『포도나무집 풍경』 (북폴리오 2003)
김영현(金永顯)
1955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창비14인신작소설집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에 단편소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운동권 지식인들의 고뇌에 찬 내면을 세밀하게 형상화하는 한편, 인간적 야성이나 본성을 환기하는 민중 열전 등을 써왔다.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의 망명정부』 『포도나무집 풍경』, 장편소설 『픗사랑』 『폭설』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