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성상파괴 운동의 흐름이 두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주후 8-9세기에 있었던 비잔틴 제국의 성상파괴 운동이고, 다른 한 번은 16-17세기에 있었던 개혁교회의 성상파괴 운동입니다. 이 둘은 형식적으로는 십계명의 제2계명을 따라 교회 내에 존재하는 성상과 성화, 즉 이콘(icon)을 배제하고자 했던 신앙 운동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배경이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비잔틴 제국의 레오 3세로부터 촉발된 교황-황제 제도 권위의 확립(1차 성상파괴 운동)과 이슬람 제국의 침략으로 말미암은 3대 대교구의 소실로 인한 종교적 자정의 움직임(2차 성상파괴 운동)이 그 배경이고, 후자는 개혁교회가 주창한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과 과거의 구(舊) 교회 시대(가톨릭, 정교회)에 정착되었던 제의(ritual)적 신앙생활과의 갈등이 그 배경입니다. 이 배경은 두 번의 성상파괴 운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전제가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결국 두 번의 성상파괴 운동은 결론적으로는 실패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전자의 운동은 비잔틴 제국에 반발했던 서방 교회(로마 가톨릭)에 더 많은 이콘 제작과 숭배가 활성화 되는 계기가 되었고 심지어는 비잔틴 제국(정교회) 내에서도 결국 이콘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콘신학(the theology of the icon)이 공식적으로 채택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로 인해 중세유럽 사회에서는 도상학(iconology)이라는 중요한 분야가 성립되었습니다.
후자의 운동 역시 칼뱅과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중심으로 한 때 활발한 성상 파괴 작업이 이루어졌으나 후대로 갈수록 흐지부지 하다가 결국 현대에 들어서는 루터교, 성공회 등의 교회들은 과거 가톨릭 시대와 별 다를 바 없는 이콘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고 다른 종파들 역시 여러 형태의 이콘 도상을 교회 내에 사용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의 초상화, 비둘기 모양의 성령 부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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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두 번의 성상파괴 운동이 일어났고 또 모두 결국 실패하게 되었는지를 찾아 보는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교회 역사 2천년의 시간 동안 결국 교회 내에 유입된 성상들을 추방하지 못했던 역사는 과거 이스라엘 왕정이 히스기야와 요시야 등이 주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던 산당을 허물지 못했던 역사와 정확히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한 교훈과 기준들을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특히 신명기). 그 핵심은 겉으로 보이는 이유가 아무리 거룩할지라도(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과 핑계가 있을지라도) 결국 '성상'(icon)들은 인간의 욕심과 탐욕을 채우거나 만족시키는 수단이 되며 결국 변질과 부패의 상징이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교회 내에 각종 상징물, 무엇인가 거룩해 보이는 조형물들이 자꾸 늘어가고 그것들을 신자들이 좋아한다면, 이는 신앙의 부흥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변질과 부패의 신호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이 이것(교회 내의 '성상')을 제하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애하심이 길고 크시지만 심판이 영원이 유예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신상과 형상과 상징'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함의를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이 잘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권영진 목사(정언향 교회)
첫댓글 산당을 허물지 못했던 역사와 정확히 겹쳐있다는 말씀에 밑줄을 긋습니다.
산당과 신상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부패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을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이 깨달아야 하는데 실제는 그 반대로 가고 있는 경향이 뚜렷하니 큰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