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분이 기다려주신 독창회 후기입니다.
(에.. 말러 3번은 며칠간 참 골치아프게 하네요. 계속 썼다 지웠다 보류중,,,)
독창회 후기만 쓰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여러모로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저는 성악 레슨 받기 시작한지 2년 정도 되었답니다.
중간에 하도 많이 빼먹어서 2년이라고 얘기하기도 부끄럽군요.
개인적인 얘길 좀 하자면...
3년전에 20대 청춘을 몽땅 바쳤던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몹시도 방황했더랬습니다.
신념으로 시작한 일이어서 무보수여도 상관없었고 가족 친척에게 욕을 먹어도
그저 나중에는 다 내 마음을 알겠지...이렇게 참고 기다렸습니다.
나 혼자 잘먹고 잘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을 줄여야 결국은 내 가족도 행복해지는 거라고 믿고 버텼거든요. 그런데...
끝까지 같이 갈수 있는 동지라고 믿었던 사람들이(실은 저보다 다 연배가 많은 어른들이었지만)
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 후에
스스로 다 정리했어요.
그 10년간의 시기엔 제겐 음악도 제가 낼 수 있는 목소리도 없었습니다...
광장 속에 뛰어다니던 그 시기가 지나고 난 다음
뒤늦게야 나를 찾으려고 보니
정말 기가 막히게도 건질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어요.
어디서부터 출발해야할지도 막막하더라구요.
그러다..정말 마음 깊이 숨겨놓았던 꿈이랄까. 노래를 배워보자 싶었습니다.
중1때 담임선생님이 음악선생님이셨는데 당시에 광주시향 호른주자셨어요.
(다루는 악기도 5개쯤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성함이 기억나면 참 좋겠는데...^^
겉으론 무뚝뚝하신데 부족한 저를 티안나게 챙겨주고 생각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엄마한테 저 성악이나 피아노를 시켰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는데
우리집 형편도 그렇거니와 엄마는 예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이라...
그건 아주 잠깐의 에피소드로 지나갔네요.
물론 제가 배우고 싶었으면 대학 들어가서라도 어떻게든 배웠겠지요.^^
근데 전공보다 더 중요했던 연극반 생활에서도 사상이 우선이다보니...
그저 공동체 속에 어울려 굵직한 문제 해결하는 것으로 대학시절이 그렇게 지나갔답니다.
아주 가끔... 동경하고 좋아했던 조수미 씨가 학창시절 다녔을
음대 건물 앞을 배회하는 것이 그 조그만 꿈을 떠올리는 것의 전부였어요.
암튼...
너무나 오랜시간 억눌려 있던 목소리였던 걸까요.
처음 레슨 받는데 8살 아래의 선생님한테 참 야단 많이 맞았답니다.^^;;
그 선생님은 아주 쨍쨍한 소리를 내는 고음가수인터라...
선생님에겐 너무 당연하고 쉬운것인데 설명은 추상적이기만 하니
확신을 할수 없는 상태에서 노래들을 정신없이 배우면서 지나갔어요.
일주일에 한번 있는 레슨 시간은 그저 두렵고, 소리를 어떻게 내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고...
사실 음악회는 그동안 가기도 어려웠고 갈수도 없었는데...
직접 들어야 감이 잡힐 것 같아서
선생님 소개로 혹은 라디오 이벤트 그런것에 성악연주회가 있으면
찾아가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대중적으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분들 중에도 정말 향기나는 좋은 소리를 가진 분도 있었지만
역시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던 건 홍혜경&김우경 두분의 리사이틀이었어요.
홍혜경씨의 아주 성숙한 음악성과 표현력, 김우경씨의 맑은 미성이 너무 좋았고
그날 연주회장은 행복한 열기가 충만했었답니다.^^
서두가 길었는데 이번에 다녀온 김선정 님의 독창회는 그때의 기억에 버금가네요.
프로그램은 스페인을 주제로 한 곡들이었습니다.
볼프의 스페인 가곡집에서 종교가곡 세곡, 세속가곡 세곡,
라벨의 오페라 <스페인의 시간>에서 아리아 한곡 (저도 처음 들어보는 오페라 제목이지만)
인터미션 후 2부에선 팔야의 7개의 스페인 민요.
그리고 비교적 잘 알려진 들리브의 <까디스의 여인들>.
흔히 들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제가 독창회에 다니기 시작한 후에 한정해서 보았을때
사실 성악가가 자신만의 독특한 컨셉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연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듯 합니다.
음악이 청중과 상호교감하는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저 상투적인 말만 적힌 팜플렛, 의무처럼 치러야 하는 귀국독창회...들을 접할때면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전날 말러교향곡 연주에서도 느끼셨겠지만 김선정님의 목소리는
성(聖) 스럽자면 한없이 성스러운 소리입니다.
또 매혹을 드러내자면 또 한없이 유혹적일 수도 있는 그런 소리더군요. 그래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는 게 참 놀랍습니다.
물론 처음 가본 IBK 체임버홀의 음향 상태가 너무 좋아 다른 연주자가 서도 이럴까 싶습니다만
마스께라를 제대로 울려서 내는 것 같고
몸통이 자연스럽게 열려서 나는 것 같은 그런 목소리는 참 오랫만에 들어본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피아노반주가 내내 드라이하게 들렸던 것을 참고해보면 홀의 음향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볼프의 가곡을 부를땐 아주 자연스럽고 노래에 녹아들어있는 연기가 좋았고
가사에 대한 몰입과 표현이 훌륭해서
중간중간엔 정말 뭉클하고 눈물이 글썽이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아..나도 저렇게 부를수만 있다면...뭐 이런거지요.^^
피아노 반주에 스페인풍의 리듬이 실려있긴 합니다만 그것은 추억을 환기시키는 그런 정도이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독일어권 음악은 감정을 싣는다고 확 무너질 순 없는 것 같아요. ㅎㅎ
라벨의 아리아는 피아노 반주자가 먼저 나와 연주시작한 뒤에
문이 열리고 부채를 들고 정말 오페라의 한 장면처럼 등장하셨답니다.
뒤에 들리브의 노래 부를때도 캐스터네츠를 치며 돌리고 발을 구르고...
과감하고 정열적인 노래와 연기에 객석의 호응도 대단했습니다.
앵콜로 까르멘의 하바네라를 부르기도 하셨지만 진짜 이분의 까르멘과 데릴라가 너무 기대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공연하긴 어렵겠지만 만약 <장미의 기사>를 올린다면
옥타비안으로도 딱 좋을 것 같아요. (이 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소원^^)
이렇게 노래 연기 외모가 다 되는 성악가 찾기가 어려운데
(개인적으론 요즘 뜨는 엘리나 가랑차보다 노래와 섬세함이 훨씬 좋습니다. )
정말 세계무대에서도 많은 명성을 얻으셨으면 해요.
만약 전날의 말러 3번과 볼프의 가곡을 듣지 않았으면 아무리 정열적인 노래와 연기를 보였어도
그냥 잘하네..였을 것 같거든요. 슬픔과 비통함, 고통의 승화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해석하신다 믿어지기에
쭉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렇게 가끔씩 좋은 연주를 보고 오면 많은 자극이 됩니다.
저도 이제 연습하러 가야겠네요.^^
아, 두달전부턴 선생님이 바뀌어서 요샌 좀더 즐겁게 노래부릅니다.
연극반때 친했던 성악전공한 선배 언니가 오랫만에 연락이 되서...시간내서 봐주시거든요.
(너무 감사해서 업어드리고 싶은 심정)
처음 선생님의 호된 훈련이 있었기에 부족한 점에 대한 의문을 가질수 있었고
경험이 많은 선배가 알려주는 한가지 한가지가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래보았자 아직 갈길이 멉니다만...
얼마전 고클에서 <베르사이유의 장미> 만화가가 47세에 음대입학했다는 글을 보고
새로운 희망이 생기기도 했는데...그렇다고 많은 것을 바랄순 없고,
언젠가 정말 마음맞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서 살게 되어 소박한 음악회라도 할수 있다면-
그때 제가 부를 노래는 사랑으로 충만해서 모든 이를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상록수님은 참 사연이 많으시네요.^^
하지만 부럽기도 해요.음악을 배우고 계시니..
저도 소리가 좋지 않아서 올해는 꼭 성악을 배워보리라 했었는데,지금도 생각만 하고 있네요.ㅋ
정말 찬양을 잘하고 싶거든요..나도 저분처럼 저렇게만 부를수 있다면 하는 것...
제 바람입니다. ^^
지금이라도 시작하셔요^^ 저도 레슨 처음 받을때 암것도 없는 무일푼인데 일을 저지른거거든요. 여러가지 계산하다 암것도 못하겠다 싶어서요. ㅎ 쉽게쉽게 듣고 넘겼던 성악의 세계가 배우기 시작하니 가시밭길입니다^^
아.. 상록수님.
글을 읽는 내내 가슴 깊은 슬픔이 전해져서 줄곧 좋다고 방방 뛰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지네요.
그래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드는 건 힘든 과정속에서도 치유받을 수 있는 그 무엇.
그것을 음악을 찾으셨음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다 제 몫인걸요^^ 처음의 마음가짐대로라면 아직까지도 간절해야되는데, 현실은... 처음 선생님이 과제로 내주시는 이태리가곡은 아무 감흥도 안느껴지는 그저그런 사랑노래들 뿐이었는데 헨델 Ombra mai fu 하고 슈베르트 An die musik 부르면서 정말 위로를 받고 음악에 감사하게 되었어요..
상록수님~!!
이렇게 가슴 깊은 사연으로 희망을 시작하고 계시는 줄 차마 몰랐었네요~!!
무대급 외모에 아름다운 얼굴이시던데, 연극도 성악도 넘넘 잘 어울리실 거 같아요~^^*
앞으로의 행진에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저도 김선정 소프라노의 성스러운 소리에 반해버렸어요..
정말 IBK홀 전체가 공명이 되었을 생각에 읽는 내내 흥분이 되는군요~~
성악은 그래도 가장 늦게 시작할 수 있는 악기라고도 들었어요~~
넘 늦지 않게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넘넘 기대됩니다.!!
파이팅~!!과 함께 그 꿈을 펼치시는 날까지 같이해요~!!
다시 한 번 연주회 후기에, 감사드립니다.
에헴... 레지나님은 원체 칭찬이 후한 분이라는걸 알고 있었지만, 저에 대해서는 좀..^^;; 제 이름이 아닌게 아니라 그 '희망' 이어요. 학교다닐땐 너무 튀어서 숨고 싶었고, 커서는 이름에 대한 기대치에... 그리고 이름처럼 풀리지 않는 삶에 부담이 컸답니다. 때로 신이 제게 끝까지 그 이름을 지킬것이냐고 시험하신다는 생각이 들고.. 어쩜 이건 평생을 갈지도 모르겠어요.^^
상록수님~!!이름 정말 멋져요~~^^'희망!!"ㅎㅎ자꾸자꾸 불러보고싶어지잖아요~~"희망씨~~희망샘~~희망님~~소프라노 희망님~!!ㅋㅋ죄송해요...실은,이름 때문에 저도 컴플렉스있어요..ㅠ이름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다.'의 지나처럼 흩날려질까봐요..그래서 요즘에는 세례명을 더 자주 쓰려고해요.물론 순교자이지만..여왕 뜻이니까.ㅎㅎ저도 아빠께 말씀드려 개명하고싶다고 했는데, 아빠가 제게는 이 이름이 좋다고 하셔서..못바꾸고 말았죠~ㅋ아빠 회사 은퇴하시고 오래전 주역공부하시고,동양철학하셔서 지금은 아이들 이름짓는 일을 해주신답니다.쿄쿄..암튼 이름이야기가 나오니 말이길어졌네요~~정 개명의사가 있으시면 제게 말씀하셔요ㅋ
생생한 느낌 공유해 주셔서 뭉클하네요.
인생에서 헛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강물이 흘러 지나가더라도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니....
정말 그 무엇이 느껴지는 상록수님의 감성덕분에 직접 다녀온 것 같아요.
눈에 보는 듯 황홀하고 한편으론 짠하네요.
상록수님 하시는 모든일에 응원을 보냅니다.
하늘나리님 고맙습니다~^^ 참고로 김선정 독창회에 지휘자님도 오셨지요. 뒤의 뒷줄에서 전 뒤통수만 봤습니다. 허허... 애써 쿨한 척 하는 팬의 마음이란 ..ㅋㅋ 경기필 연주회날 하늘나리님 입고오신 옷이 아주 멋있었습니다. 짝꿍 있는 사람은 그래서 좋은거군요~^^
쿄쿄..구지휘자님 오셨군요~~^^말러3번 때, 그렇지 않아도 넘넘 잘해주셨다고 입에 칭찬이 마르지않으시던데..뒤통수님이라도 뵈었으니, 영광이셨겠어요~ㅋ
전, 개인적으로 구지휘자님을 처음 우연하게 만난, 광주문화예술회관 그 자리의 그소나무를 '구자범소나무'라 이름붙였다니까요~~호호..^^
짝궁없을 때 제 차림을 근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짝궁 덕에 내려가는 내내 좋은 티도 못내고 표정관리 했다는...
뒤통수님 쳐다보신 마음 이해, 공감, 샘. 모두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