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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經의 資料分析 比較硏究(10-4)
天道敎書 / 筆寫本의 刊行年度를 가늠해볼 관련 자료를 紹介.
『天道敎書 抄錄本』의 解說.
/ 천도 교서(필사본) 동학 교주 연대기 담은 교리강습 교재
김성근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사전편찬실
이 책은 1920년에 있었던 천도교청년회의 임시 교리강습회를 개최할 당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편찬됐다. 장정은 한장본(漢裝本)으로 되어 있으며 미농지를 사용해 등사판으로 출간되었다. 출간연도는 나와 있지 않다. 표지에는금암(錦菴)’ 이라는 도호(道號)가 묵으로 쓰여진 것으로 보아 천도교 구파의 원로인 황생주 장로의 수택본으로 여겨진다. 다음해인 1921년에 이 등사판을 저본으로 하여 천도교 4대 교주인 춘암 박인호 상사 명의로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신활자본으로 발행된 적이 있다. 이 책은 국한문혼용으로 주내용은 한문으로 쓰고 조사부분은 국문으로 달았다. 모두 130쪽으로 되어 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두 3편에 29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편부터 3편에 걸쳐 각각 동학의 교조인 수운 최제우의 출생(1824년) 과정과 천도교 제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의 출생과정까지를 다루고 있다. 제1편은 6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 최제우의 출생부터 어릴 때의 환경과 득도과정, 그리고 대신사(大神師)로써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연대별로 서술되어 있다. 그는 갑신년 1824년10월28일에 경주 가정리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의 이름은 옥(鋈)이니 문장도덕(文章道德)으로써 일도(一道)에 저명했다고 출생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제2장에서 4장까지는 득도과정이 나와 있고 제5장에서 6장까지는 포교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제2편은 18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2세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출생배경과 포덕(佈德) 2년 6월에 입도식을 하고 포교하는 과정이 연대별로 나와 있다. 제3편은 5장으로 나누어 제1장에는 의암 손병희의 출생과 포덕 23년에 성사일도(聖師一道)에 들어가고, 포덕 38년12월24일에 의암 손병희 성사가 해월 최시형 신사로부터 전발(傳鉢)을 받아 제3대 교주가 되었다고 쓰여있다. 제2장에는 천도태원설(天道太元說), 3장에는가르침은 하늘의 큰 정신이니 사람은 이 정신범위내에서 생장하는 자이니라고 설명하고 있는 대종정의설(大宗正義說), 제4장에는 무체법설(无體法說), 제5장에는 성령출세설(性靈出世說)이 서술되어 있다. 초판본인 등사판은 희귀본이 되었고 이 자료는 《천도교 창건사》를 출판하는데 토대가 되었다. 이 책은 1940년7월에 치안 출판법 위반으로 금서 처분을 받았다.
■ 김성근의 『天道敎書 抄錄本』의 解說에 대한 筆者의 見解.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미농지에 쓴 필사본과 등사본의 한장본(韓裝本) 표지 안쪽에 일본신문의 일부가 발라져 있는 데, 어떤 신문인지 어느 날자의 것인 지 확인할 수가 없다. 기사 중 남대문에서 수색간 시운전 기사가 있는 데 수색역(전화. 02-305-7788.)에 확인한 결과 일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은 있으나 남대문에서 수색간 시운전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담당자의 대답이었다.
1904년 3월 12일. 용산 개성간 노반공사 시작.
1904년 8월 12일. 용산 수색간 건축열차 운전.
1905년 3월 10일. 용산 신의주간 영업개시.
1905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개시를 한 날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의 신문인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한 후, 일본의 어떤 신문이며 몇 년도 몇 월 며칠의 신문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일차적인 판단은, 이 필사본은 1919년 이후의 필사본으로 추정되어 신구갈등으로 인하여 구파계열에서 교화용으로 편집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三心觀의 마지막 부분 (무체법경 원본 p.56.참조) “三曰自由心이니 天亦不空이오物亦不斷이니道何止空이며物何止斷이러오”에서 “三曰自由心이니” 는 원본과 천도교회월보 게재분에는 없다. “三曰自由心이니”는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원본이 누락하여 인쇄한 잘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三曰自由心이니”가 처음 사용된 것은 <천도교서>와 <천도교서 초록본>의 간행의 선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无體法經 比較分析 硏究./<무체법경>이 게재된 천도교 각종 교서 비교 분석연구. 에서. 일부 수정. - 2007.12.01천도교 자유게시판에 게재.
그 후 『天道敎書 抄錄本』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 결과, 無體法經의 (一) 性心辨 (二) 性心身 三端 (三) 神通考 (四) 見性解 (五) 三性科 (六) 三心觀 (七) 極樂說 (八) 聖凡說 (九) 眞心不染 등의 9 篇의 글 중 (三) 神通考 와 (九) 眞心不染을 除外하고 모든 글들이 性, 心, 身에 관련된 글로, 후경을 이해하는데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無體法經과 『後經一』과 『後經二』는 교의적(敎義的)인 측면에서 상호 보완관계(相互 補完關係)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無體法經을 이해했다면 『後經一』과 『後經二』를 이해하기 쉽고, 『後經一』과 『後經二』를 이해했다면 無體法經을 이해하기 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勘案하여 두 편의 글을 연결해 놓은 것으로 推定된다. 이러한 敎義的인 側面을 고려하여 舊派側에서는 初期에 無體法經과 『後經一』과 『後經二』를 任意로 調整하여 편찬한 것으로 思料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舊派側에서는 後經一과 二의 敎義가 無體法說과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고 判斷한 것으로 類推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單行本으로 간행되었던 敎書를 題目을 따로 붙이지도 않고 任意로 無體法說과 구분하지 않고 이어서 編纂했다는 이유를 달리 찾아볼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 天道敎書 / 筆耕本; 구파에서 청년들과 전 교역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講材로, 정확한 간행년도는 未詳. 등사본은 제 1편이 25매(50p.) 제 2편이 23매(46p.) 제 3편이 17매(34p.)로 총 65매 130p.되어 있고 가로 세로가 19.0cmX 25.2cm이고 이 크기로 접어 원본과 같이 양면이 되게 했다, 이 초록본의 원본에는 「무체법설」이 제 3편 8p.에, 등사본에는 제 3편 7p.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초록본의 원본에는 붓글씨로 <天道敎書>라고 써있지만, 등사본에는 황색표지에 아무런 글씨가 없는 白 表紙이다. /无體法經 比較分析 硏究./<무체법경>이 게재된 천도교 각종 교서 비교 분석 연구. 에서.
일반적으로 ‘敎書’ 라고 할 때의 의미는, 교서(敎書)부터 교지(敎旨), 단자(單子), 완문(完文), 윤음(綸音), 서간(書簡) 등등의 多樣한 文書型式들 중의 하나로 보지만 宗團(종교단체)에서는 敎理書를 의미한다. 가톨릭에서는 특별히 ‘敎皇의 敎書’를 의미한다. 原來의 다른 의미로는 國王이 내리는 명령서(命令書)· 훈유서(訓諭書)· 선포문(宣布文)의 성격을 가진 문서를 의미한다.
위의 天道敎書/筆寫本과 筆耕本은 敎理書란 형식에 局限하여 본다면, 다른 형식의 글로 編年體(또는 紀年體)의 敎團의 歷史書이다. 水雲大神師와 海月神師 編과는 特異하게 義菴聖師 編에는 4篇의 敎理書가 編輯되어 있다. 天道敎書의 編纂體制를 보면 다음과 같다.
天道敎書
第 一編 / 六章으로 構成 編纂.
第 一章 / 筆耕本 P. 1.
수운대신사의 이름과 탄생일자, 탄생지 그리고 탄생신화와 家系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득도한 포덕 1년 4월 5일 이전까지의 성장과정과 수도과정이 기술되어 있다.
第 二章 / 筆耕本 P. 3.
득도과정과 내용 水雲大神師의 심정 등으로 시작하여 「大神師 l 於是에 守心正氣하사 天道의 大原을 覺하시고 此를 受하시다.」로 得道 當年을 記述하고 있다.
第 三章 / 筆耕本 P. 5.
포덕 2년부터 포덕 3년 3월 이전까지의 수운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呪文과 懺悔文의 제작으로부터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 실린 일부의 법설들이 기술되고 있다.
第 四章 / 筆耕本 P. 14.
포덕 3년 3월부터 포덕 4년 8월 이전까지의 수운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五章 / 筆耕本 P. 18.
포덕 4년 8월 이후부터 12월 이전까지의 수운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六章 / 筆耕本 P. 23.
포덕 4년 12월 이후부터 殉道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龜尾山下 龍潭 前麓에 葬하시다.」로 기술을 마치고 있다.
第 二編 / 十九章으로 構成 編纂.
第 一章 / 筆耕本 P. 1.
해월신사의 이름과 탄생일자, 탄생지 그리고 家系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포덕 2년 6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二章 / 筆耕本 P. 1.
포덕 2년 6월 이후부터 포덕 3년 1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三章 / 筆耕本에는 第 三章의 分章標示가 漏落됨 P. 2.
포덕 3년 1월 이후부터 포덕 4년 7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四章 / 筆耕本 P. 2.
포덕 4년 7월 이후부터 포덕 5년 2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五章 / 筆耕本 P. 3.
포덕 5년 2월 이후부터 포덕 8년 3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六章 / 筆耕本 P. 4.
포덕 8년 3월 이후부터 포덕 12년 末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七章 / 筆耕本 P. 5.
포덕 12년 末 이후부터 포덕 14년 10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八章 / 筆耕本 P. 8.
포덕 14년 10월 이후부터 포덕 16년 8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九章 / 筆耕本 P. 9.
포덕 16년 8월 이후부터 포덕 19년 7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十章 / 筆耕本에는 第 十章의 分章標示가 漏落됨. P. 9.
포덕 19년 7월 이후부터 포덕 21년 5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十一章 / 筆耕本 P. 10.
포덕 21년 5월 이후부터 포덕 24년 3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十二章 / 筆耕本 P. 11.
포덕 24년 3월 이후부터 포덕 26년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十三章 / 筆耕本에는 第 十三章의 分章標示가 漏落됨. 筆耕本 P. 11.
포덕 26년 이후부터 포덕 28년 1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十四章 / 筆耕本 P. 14.
포덕 28년 1월 이후부터 포덕 29년 1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十五章 / 筆耕本 P. 15.
포덕 29년 1월 이후부터 포덕 31년 3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十六章 / 筆耕本 P. 16.
포덕 31년 3월 이후부터 포덕 33년 12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十七章 / 筆耕本 P. 17.
포덕 33년 12월 이후부터 포덕 36년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十八章 / 筆耕本 P. 20.
포덕 36년 이후부터 포덕 38년 4월 이전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第 十九章 / 筆耕本 P. 21.
포덕 38년 4월 이후부터 포덕 39년 6월 해월신사의 순도때까지의 해월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이에 李相夏 山에 葬禮를 行하다.」로 끝을 맺고 있다.
註 00; 第 二編은 十九章으로 構成 編纂되었는 데 김성근은 第 十八章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第 三編 / 五章으로 構成 編纂.
第 一章 / 筆耕本 P. 1.
義菴聖師의 이름과 탄생일자, 탄생지 그리고 家系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포덕 38년 12월 24일에 聖師 l 神師의게 傳鉢을 受하야 第 三世敎主가 되시다.」와 庚子說法인 庚子降書로 義菴聖師와 敎史의 史蹟의 끝을 맺고 있다.
第 二章 天道太元說 / 筆耕本 P. 1. / 현재의 경전에서는 天道太元經이라 함.
第 三章 大宗正義說 / 筆耕本 P. 2. / 현재의 경전에서는 大宗正義이라 함.
第 四章 無體法說 / 筆耕本 P. 4. / 현재의 경전에서는 無體法經이라 함.
第 五章 性靈出世說 / 筆耕本 P. 15. / 현재의 경전의 법설 명과 동일함.
註 00 ; 편년체(編年體) - 기년체에서 넘어온 역사 기술 방식의 하나. 편년체(編年體)는 한자 문화권에서 역사책을 쓸 때 사용되는 체제이다. 역사적 사실을 연, 월, 일 순으로 기록하는 것으로 동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이다. 현전하는 편년체 사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공자(孔子)가 노나라의 역사를 쓴 《춘추(春秋)》이다. 한자 문화권에 한정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순서대로 기록한 책을 가리켜 연대기(年代記)라고 부른다.
특징 ; 역사적 사실을 날짜 순으로 기록한다. 연도 및 날짜를 기록하는 방법에 따라 형식이 조금씩 달라진다.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연호(年號)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왕의 재위년이 연도를 세는 기준으로 사용되었다. 재위 년 및 연호와 별도로 육십갑자가 연도의 기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재위 년 또는 연호와 육십갑자가 병기된다.
기전체(紀傳體) 사서의 〈본기(本紀)〉나 〈세가(世家)〉는 대부분 편년체로 기록되었다. 또한 사관(史官)에 의해 기록되는 모든 1차 사료는 편년체이다. 특히 수(隋), 당(唐) 때에는 각 왕의 실록(實錄)이 편찬되었는데, 실록도 대부분 편년체로 기록된다. 북송 때 사마광(司馬光)은 주(周)에서 오대십국 시대까지의 통사(通史)를 편년체로 기록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하였고, 남송(南宋) 때 주희(朱熹)는 《자치통감》을 편년체의 일종인 강목체(綱目體)로 다시 쓴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하였다. 편년체는 《자치통감》으로부터 대중적으로 읽히는 사서로 널리 사용되었다.
편년체는 특별한 주제가 없이 모든 사건이 날짜 순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특정한 사건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연대가 확실하지 않은 자료를 싣기 어렵다. 또한 모든 사건을 동등한 순위로 다루기 때문에 기록이 복잡해지는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는 체제로 볼 수 있는 것이 강목체이다. / 위키 백과사전.
註 00 ; 紀事本末體 - 紀事本末體는 기전체(紀傳體), 편년체(編年體)와 함께 동양의 3대 역사편찬체제 중 하나다. 기전체는 인물 중심의 서술방법이고, 편년체는 사건 발생시간 중심의 서술방법이며, 기사본말체는 사건경과가 중심이 되는 서술방법이다. 기사가 분산되는 기전체, 편년체와 달리 사건의 발단, 전개, 결말을 한 번에 기술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사건의 명칭이 제목이 되며, 그 사건과 관련된 글을 모두 모아 사건의 발단과 결말을 함께 기술한다.
남송(南宋)의 원추(袁樞)가 <통감기사본말(通鑑紀事本末)>에서 처음으로 기사본말체를 사용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기사본말체가 사용되었다. /백과사전과 관련자료 종합
■ 역사를 기록/기술하는 방식들.
기전체(紀傳體) : 역사를 인물 중심으로 서술한다.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를 시작으로, ‘고려사(高麗史)`,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이 기전체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유사(類似) 기전체라고 할 수 있다.
편년체(編年體) : 시간 순서대로 연/월/일 순으로 이어서 계속 기록하는 연대기(年代記, Chronicle)이다. 孔子(공자)의 `春秋(춘추)`― 魯나라 역사 ―가 최초이며, `조선왕조실록`이 대표적이다.
강목체(綱目體) : 편년체의 일종으로 연대기 순으로 기록하되, 명분과 정통을 중시하여 구분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 포폄(褒貶) ― 正否/善惡을 판단한다.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 역사를 사건 중심으로 발단부터 결말까지 기록하는 방식이다.
위의 열거된 역사를 기록/기술하는 방식들은 그 나름의 특색이 있다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인물 중심의 기전체는 일종의 위인전이나 소설로 써먹기는 좋지만, 개인의 생애와 그 개인의 시기적/지역적 활동 영역 이외의 역사는 생략될 수밖에 없다.
연대기로 적는 편년체는 그 어마어마한 방대한 분량이 그 자체로 단점일 수 있고, 사건이나 인물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에는 허술하다는 약점이 있다.
편년체의 일종인 강목체는 정통성이니 명분이니 하는 것부터 옳고 그름이나 선악을 판단하는 것까지 유독 많은 주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기사본말체는 역사적 사건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인물에 대해 깊이 알기 어렵고, 이 역시 큰 틀에서 자칫 전체적인 흐름을 놓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것이고, 저책은 저런 것이다. 라고 딱 부러지게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는 역사서들이 그 자체 내부적으로 기록 방식이 뒤섞여 있기도 한 탓이다. 각각의 서술 방식의 한계를 그 저자나 편찬자들 모두가 그 장단점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기도 하다. 따라서 역사 기록 방식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며, 역사란 이미 지나간 오래 전의 일이므로 정확한 사실(史實)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서들, 국내는 물론 주변 국가들의 것까지도 포함하여 크로스 체크가 절대적으로 꼭 필요하다. /인터넷 미즈넷 게시판과 관련 자료들의 종합.
※ 天道敎會史 抄稿; 포덕 71(1930)년에 구파에서 독자적으로 기술한 구파계열의 입장을 밝힌 최초의 교사의 초고로 미 간행됨. 책의 체제는 본문 5편과 부록 천도교 총서로 되어 있고 서술의 중심내용은 기존 교사와 별 차이는 없으나 4, 5편은 박인호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 편향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포덕 103(1962)년 4월에 李種海의 주도하에 간행된 天道敎史 附 叢書가 바로 天道敎會史 抄稿를 底本으로 삼았다. P. 1에 天道敎會史 草稿 라 하고
“天道敎(東學)는 距今 百有餘年前 庚申 四月 五日 朝鮮 慶州 龍潭亭에서 第一敎祖 崔水雲 大神師 天命을 受하여 无極大道를 刱明하옵신 後 第二世敎祖 崔海月神師 第三世敎祖 孫義菴聖師 第四世敎祖 朴春菴上師 ㅣ 이 法統을 傳受하여 今日에至하였나니 四世神聖師의 歷史를 天統, 地統, 人統, 道統編으로 區分하여 大略 추려보면 下記와 如하다.”
라고 설명하고 一 天統編을 기술하기 시작하였다. 이 簡略한 기술로 보면 天道敎會史 草稿는 수운의 탄생으로 부터 포덕 70(1929)년 12월까지 인 P.129. 까지 로 보면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포덕 71(1930)년부터 포덕 102(1961)년 말까지 30여 년간의 기록은 서문의 설명에 따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 天道敎史 附 叢書; 1930년경에 구파에서, 崔俊模, 鄭廣朝, 李鍾麟, 三長老와 李敦化, 李仁淑의 자료 제공으로 소량 출판되어 광복과 6,25동란을 거치면서 稀貴本이 되었다. 포덕 103(1962)년 4월에 李種海의 주도하에, 포덕 71(1930)년부터 포덕 102(1961)년 말까지 30여 년간의 구파의 입장을 반영한 敎團史를 추가하여 프린트(등사)본으로 간행되었다. 그 후 1970년대 접어들면서 舊派의 一群이 천도교와 訣別하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포덕 131(1990)년 4월에, 위 등사본의 내용 일부를 修訂補完하여 龍潭淵源의 名義로 인쇄본으로 간행했다.
/筆者의 카페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의 김용천 자료실 254번 천도교서의 이본에 대하여 를 참고바람.
■ 原文 以外의 모든 本의 直譯의 差異를 하나하나 比較 提示하지 않고 重要한 部分만 註를 달아 설명하였기 때문에, 설명이 없는 直譯部分에 대해서는 독자 여려 분들께서 직접 對照 比較하여 살펴보시고 서로간의 直譯의 差異와 잘못된 直譯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참고사항
1. 『後經一』과 『後經二』와 關聯된 資料로 追加的으로 參考할 것은, 1963年 五月에 出刊된 『亞細亞硏究』通卷에 게재된 『天道敎書』 謄寫本에서는『無體法經』과 『後經一』과 『後經二』이 漏落이 되어 있다. PP. 451下段. /謄寫本으로는 PP.38-58.생략됨. 그리고 1996년에 전체 30권짜리로 나온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사운연구소 간행) 28卷에 全文이 게재되어 있다. 또 2000年 一月 三十日에 國學資料院에서 간행된 影印本인 『韓末 天道敎 資料集』 Ⅰ(韓國史資料叢書ↀ)에『後經一』과 『後經二』가 蒐錄되어 있다 PP. 465-584. 다만 한 가지 留意해야 할 것은 ‘問曰大道至此盡矣歟’의 句節이 두 번 記述되어 있다. 그 이유는 影印過程에서 PP.20-21.가 重複 影印되어 印刷되었기 때문으로 編輯 印刷過程에서의 錯誤인 것이다. PP.20-22. 참조.
2. 『亞細亞硏究』와『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에 揭載 收錄된 『天道敎書』 謄寫本의 내용 중 相當數의 誤,脫字와 句, 節이 있으므로 引用에 注意하시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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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經』(一)과 (二)의 比較分析資料의 標示.
新派關聯 比較分析資料의 標示.
1. 1912年 後經一과 二 天道敎中央總部./後經本/印刷本.
2. 1920年 天道敎書 /謄寫本/ PP. 50-55.
3. 1933年 天道敎創建史/創建本/ 第 三編 義菴聖師 PP. 50-55.
4. 1961年 天道敎經典/三部本/ PP. 274-286./ 下段에 한글 번역이 있다.
5. 2001年 天道敎經典/經典本/ PP. 488-509./ 下段에 한글 번역이 있다.
舊派關聯 比較分析資料의 標示.
1. 天道敎書 /筆寫本; 1920년 전후로 추정됨 정확한 刊行年度는 未詳. 印札紙에 먹지를 대고 筆寫하여 複寫한 자료로 페이지 표시가 없다. 표지에 天道敎書라고 붓글씨로 써 있다. 筆耕本의 底本이다. 전문에 페이지 표시가 없다. 推定 - 第 三編. PP. 15장-18장.
2. 天道敎書 /筆耕本; 1920년 전후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表題名이 없다. 정확한 刊行年度는 未詳. 1921년에 간행된 인쇄본의 저본으로 추정. 第 三編. PP. 13장-15장.
3. 天道敎會史 抄稿/抄稿本; 포덕 103(1962)년 4월에 李種海의 주도하에 간행된 天道敎史 附 叢書가 바로 天道敎會史 抄稿를 底本으로 삼았다. 구파가 後經을 대하는 태도는 愼重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단행본인 후경을 무체법경 뒤에 後經(二)라 하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어 붙인 것과 일부를 임의로 생략한 점들이 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더욱 唐慌케 하는 것은 후경을 원문대로 게재하지 않고 漢文體의 直譯本을 揭載한 점이다. 이미 천도교서에 漢主國從體의 직역본이 있었는데도 難解한 漢文體의 直譯本을 揭載한 것이 理致에 거슬린다고 할 수 있다. 原文으로 誤解할 수 있어 교서 자료로서의 貴重한 價値는 없다. 天道敎叢書編. PP. 153-155./이 編의 페이지 표시는 101번부터 시작됨.
4. 東學 天道敎f略史 附 叢書/叢書本; 1970년대 접어들면서 舊派의 一群이 천도교와 訣別하고 獨自的인 活動을 하면서 포덕 131(1990)년 4월에, 위 謄寫本의 내용일부를 修訂補完하여 龍潭淵源의 名義로 印刷本으로 刊行했다. PP. 249-252.
참고사항 ;
1. 위의 『後經』의 舊派關聯 比較分析資料들은 한글 번역문이 없이 원문만 실려 있다.
2. 아세아연구 통권 제11호에는 천도교사 등사본에 수록된 후경Ⅰ,Ⅱ의 글이 생략되어 있다./ 등사본 PP. 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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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後經』(一)과 (二)의 比較分析 硏究.
後經一
上篇
後經一/印刷本/聖師曰其性如月落隱萬頃蒼波、
後經一/謄寫本/其性如月落隱萬頃蒼波、
後經一/創建本/其性如月落隱萬頃蒼波
後經一/三部本/其性은 如月落隱萬頃蒼波요、
後經一/經典本/其性은 如月落隱萬頃蒼波요
後經一/筆寫本/ 省略
後經一/筆耕本/ 省略
後經一/抄稿本/其性 如月落隱萬頃蒼波、
後經一/叢書本/ 省略
註 ; 天 은 모두가 한울이나 한울님이 아니고, 문장 속에서 空間的 槪念인 하늘(天)과 땅(地)을 의미할 때는 하늘로 해야 하고, 신앙의 대상이나 大宇宙의 의미가 있을 때에는 한울로 번역해야 한다. 혼동을 하면 전체 문장의 의미가 달라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 또는 만물의 성품은, 달이 만경창파에 떨어져 숨은 것 같이 감춰져 있고, / 사람 또는 만물의 성품이란 한울님의 성품을 의미하기도 한다.
※ 만경창파(萬頃蒼波)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바다.
註 ; 後經一/筆寫本과 後經一/筆耕本은 後經 二의 十三觀法 뒤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後經一에서 다른 文章들은 모두 省落하고 아래 文章만 토도 없고 띄어쓰기도 없이 아래와 같이 이어져 수록되어 있다. 後經一/抄稿本에서는 무체법경 말미에 이어 後經一/筆寫本과 後經一/筆耕本보다 후경 一 과 二를 밝히지 않은 한 행만 띠고 全文을 수록하고 있다. 後經一/叢書本에는 後經 一 의 全 文章이 省略되었다. 구파에서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後經一의 全文을 수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도 없기 때문에 그 眞意를 알 수가 없다.
後經一/筆寫本/其性如月落隱萬頃蒼波其心如火起燒千里長風月隱蒼波海國朗火燒長風雲天晴海朗雲晴一色空空收色燒夜無語暗中生風天復活、/上篇의 一部
後經一/抄稿本에 追加된 法說 全文.
空空本無空心爲空寂界我性本來天我心身後天我性我亦無我心我方在世法百年苦聖法萬年愁/中篇
明中生暗 暗中生明、 明中生暗 暗中生明/ 暗中生明 明中生暗의 誤記
道過三天心自昏風動細波空作喧白雲以上白雲下上以也聽下以論聽不聽聽天心處知不知知我心邊浮花埋天脫萬劫虛舟駕波載百年、
遍踏法界故家歸五色花葉簷外飛 淸虛月色澹泊味空使主翁自足肥、
上帝默默天久虛風動空竹初心生道必一貫也無二對物精神各有情無量大天寸心低風雲忽然里蹄 枕上覺魂登中宵月下俱瞰也東西人如日月非分時斷然不作百年悲男兒留心天不休其壽必作百年知,/下篇
後經一/印刷本/聖師曰其心如火起燒千里長風、
後經一/謄寫本/其心如火起燒千里長風、
後經一/創建本/其心如火起燒千里長風、
後經一/三部本/其心은 如火起燒千里長風니라、
後經一/經典本/其心은 如火起燒千里長風이니라、
後經一/筆寫本/ 省略
後經一/筆耕本/ 省略
後經一/抄稿本/其心如火起燒千里長風
後經一/叢書本/ 省略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그 마음은 불이 천리장풍에 일어나 활활 타는 것과 같다. 고 할 수 있다.
※ 천리장풍(千里長風) - 멀고 먼 곳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
後經一/印刷本/聖師曰月隱蒼波海國朗、
後經一/謄寫本/月隱蒼波海國朗、
後經一/創建本/月隱蒼波海國朗、
後經一/三部本/月隱蒼波海國朗이요、
後經一/經典本/月隱蒼波海國朗이요、
後經一/筆寫本/ 省略
後經一/筆耕本/ 省略
後經一/抄稿本/月隱蒼波海國朗、
後經一/叢書本/ 省略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달이 푸른 물결에 숨으니 넓은 바다가 밝고
後經一/印刷本/聖師曰火燒長風雲天晴、
後經一/謄寫本/火燒長風雲天晴、
後經一/創建本/火燒長風雲天晴、
後經一/三部本/火燒長風雲天晴이라、
後經一/經典本/火燒長風雲天晴이라、
後經一/筆寫本/ 省略
後經一/筆耕本/ 省略
後經一/抄稿本/火燒長風雲天晴、
後經一/叢書本/ 省略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불이 강한 바람에 타오르니 구름에 가린 하늘이 푸르게 개이는 구나.」
後經一/印刷本/聖師曰海朗雲晴一色空、
後經一/謄寫本/海朗雲晴一色空、
後經一/創建本/海朗雲晴一色空、
後經一/三部本/海朗雲晴一色空이오、
後經一/經典本/海朗雲晴一色空이요、
後經一/筆寫本/ 省略
後經一/筆耕本/ 省略
後經一/抄稿本/海朗雲晴一色空
後經一/叢書本/ 省略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사께서 또 이어서 말씀하시기를「바다가 맑고 구름이 개이니 바다와 하늘이 한 가지 푸른 색깔로 어울려 텅 빈 것 같고.
後經一/印刷本/ 聖師曰空收色燒夜無語、
後經一/謄寫本/空收色燒夜無語、
後經一/創建本/空收色燒夜無語、
後經一/三部本/空收色燒夜無語니라、
後經一/經典本/空收色燒夜無語니라、
後經一/筆寫本/ 省略
後經一/筆耕本/ 省略
後經一/抄稿本/空收色燒夜無語、
後經一/叢書本/ 省略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텅 빈 것을 거두고 푸른색을 지워버린 밤에 온 세상이 말이/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없어 고요하구나.」
後經一/印刷本/聖師曰暗中生風天復活
後經一/謄寫本/暗中生風天復活
後經一/創建本/暗中生風天復活、
後經一/三部本/暗中生風하니 天復活이로다、
後經一/經典本/暗中生風하니 天復活이라、
註00 ; 각 편 각 행마다 聖師曰로 시작되고,「正義」라고 구분하고 설명을 하고 있다. 첫 행의 예를 들면
聖師曰其性如月落隱萬頃蒼波、
「正義」帝,以性之大胚胎,生天地天地內之森羅萬物,乃性之第三世也,-----
註00 ;上篇/謄寫本은 각 편 각 행마다 聖師曰을 빼고 「正義」의 해설도 없다. 그리고 행갈이를 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계속 이어쓰기를 했다.
其性如月落隱萬頃蒼波、其心如火起燒千里長風、月隱蒼波海國朗、火燒長風雲天晴、海朗雲晴一色空、空收色燒夜無語、暗中生風天復活、
後經一/筆寫本/ 省略
後經一/筆耕本/ 省略
後經一/抄稿本/暗中生風天復活
後經一/叢書本/ 省略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둠 속에서 바람이 일어나니 하늘이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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