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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예배자가 되라. 롬 12 : 1 – 2
한 사람이 크리스천 친구와 주일에 골프를 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 친구가 1시간이나 늦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왜 늦었느냐고 묻자. 예배 빠지는 것이 거림칙해서 동전을 던져서 앞이 나오면 교회가고 뒷면이 나오면 골프치러 가기로 하고 던졌는데 자꾸만 앞면이 나와서 뒷면이 나올 때까지 던지다가 늦었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앞면이 나올 때까지 던지고 예배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ㅎㅎㅎ 오늘은 예배, 그냥 예배가 아니라 영적예배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즘 가나안 성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나안성도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있지만 현재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즉 교회를 ‘안나가’는 기독교인이라는 단어를 거꾸로 칭해서 ‘가나안’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가나안성도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니 그들의 숫자가 200만명 이상 될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한국 전체 교회성도의 20%에 육박하는 수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교회를 안 나가는 이유 중 제도적인 교회가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친밀한 공동체가 되지 못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편리함이라고 합니다. 요즘 TV 나 인터넷에서 예배가 넘쳐 나기 때문에 집에서 드리는 예배가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헌금은 온라인으로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오늘 날 성도들이 기독교 예배에 대한 엄청난 오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기독교의 예배는 제도나 형식에 머무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들처럼 형식적인 예배를 통하여 마음에 위로를 받고 복을 받기 위한 목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예배를 통하여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공동체 예배에 임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함께 모일 때 예배의 지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부터 예배는 공동체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성경적이고 올바른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가 우리 삶에 왜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맞선 대영제국은 승산 없는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상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윌리엄 템플(Wiliam Temple) 목사에게 대국민 연설을 부탁했습니다. 그때 템플 목사님은 "국민 여러분, 전쟁이 큰일이지만 예배는 더 큰일입니다. 하나님만 바라고 예배할 때 우리가 예배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자 이튿날 영국 전역은 예배드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결국 대영제국은 불가능해 보였던 승리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에게 주시는 승리였습니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신앙생활과 인생이 회복됩니다.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예배를, 교회에서만 드리면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세상에까지 연장선상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또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은 그러한 예배를 영적예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적 예배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고 우리의 예배가 교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연결된 예배, 즉 삶이 예배가 되는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들이 되어 인생에 승리자가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참된 예배자는 영적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유기성 목사님의 삶을 복음으로 살아내자는 영성일기 중에 나오는 글입니다. 선교사 출신인 목사님 한 분이 오지에서 12년 동안 사역하다 보니 설교다운 설교를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분이 재교육 받는 중에 설교 순서가 되어 준비하여 설교 크리틱을 받았는데, 한 목사님이 ‘대공사가 필요하다’고 말하더랍니다. 다시 말씀을 붙잡고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아 이틀을 꼬박 잠도 못자고 새로 원고를 쓰다가 울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목사님의 설교가 어느 목사 보다 귀한 설교라고 여겨졌습니다. 12년 동안 오지에서 살아낸 것만으로도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는 선교하다가 알게된 고승 한 사람으로부터 달라이 라마가 준 선물을 받고 당황했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던가? 불교를 도와준 것인가?’ 그러나 그 승려가 선교사에게 선물을 준 이유는 진실한 친구로 여겨 고마움을 표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경계하고 싫어하는 기독교인에게, 어떻게 이렇게 고마워할 수 있었을까요? 주님이 주신 애통함의 마음으로 그들을 만나 함께 울어주고 기도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마을을 한번 가려면 11시간을 쉬지 않고 길도 없고 험난한 고산의 절벽 길을 가야 했는데, 4년 동안 2주에 한번꼴로 다녀왔다고 합니다. 함께 했던 한족 사역자는 변하지 않는 그들을 왜 그렇게 신경쓰고 시간을 낭비하며 고생하느냐며 화를 낼 정도였습니다. 그것을 그 승려가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 사랑에 반응해서 마음을 연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제자를 소개해 주었고, 그 청년들이 변화되었고 티벳 기독교인들이 되어 티벳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12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강력한 설교는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강력하게 사나?’ 고민이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한결 같으셨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라!” 그렇습니다. 가정이든 일터이든 교회에서든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 가장 강력한 삶입니다. 라고 영성일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너희 몸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영적예배를 드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삶을 예배로 드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공동체 예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도 예배가 되는, 즉 삶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복음을 말씀 선포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온 인류의 대속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죽음이라는 행위가 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도 이렇게 행위가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것은 세상 다른 종교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려 신을 섬기는 것으로 끝나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길을 가는 자입니다. 나를 통하여 예수님을 살아내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내 힘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작은 예수로 또 하나의 예수를 사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예수를 살려고 하니 예수는 어떻게 사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 예수는 어떻게 사셨는가요 “우리 예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로 가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시며 사신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시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살아내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깨달은 많은 사람들은 선교사를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꼭 선교사만이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내 주변의 사람을 어떻게 하면 사랑할까 고민하면서 내 주변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한 가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 가는 삶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 안에서 사랑을 충만히 공급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 나타나도록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음을 항상 잊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주님 내 능력으로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나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길 원합니다. 할 때 [고후]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하는 말씀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새소망 지체들은 이렇게 예수님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 삶이 예배가 되는 영적 예배자들이 다 되어, 인생을 승리하는 이 시대에 참된 예배자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2. 참된 예배자는 이 세대를 분별하여 본받지 않는 새로운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롬]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어떤 사모님이 기도를 부탁하는데, 시집을 간 딸이 제발 아기를 가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모님들이 왜요 아기가 안들어서는가요 하니까, 그게 아니라 딸이 공무원이고 사위도 직장이 좋은데 아이를 안낳고 자기들만 재미있게 살기로 결정하고 휴가내서 여행이나 다니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모님들이 헐~ 하고 말문을 닫았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트랜드라고 할까요~ 세상적이고 비 성경적인 잘못된 문화인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또 꼰대소리 한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자기네들만 재미있게 잘먹고 잘살겠다는 것은 너무나 비성경적입니다.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도 딸을 하나 밖에 두지 못해서 할 말이 좀 없습니다만 결혼은 건강한 자녀를 생산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잘 양육하라는 하나님의 창조원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대의 문화를 우리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이 세대를 본 받지 않는자들입니다. 다시말해 이 세대의 가치를 거부하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분별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대를 잘 분별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 가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건강한 결혼관은-> 부부가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니라, 거룩한 자녀를 생산하고 예배자로 잘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섬기며 사랑하는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본 결혼관입니다.
그리고 버닝썬 사건으로 터져 나온 연애인들의 성적 일탈은 온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깨끗한 외모에 노래와 춤실력, 자작곡의 능력을 겸비해서 세계적인 호평을 받던 아이돌 세계의 이면에 어두움의 민낯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크게 놀랄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이 세대가 추구하는 정욕을 만족하고자 하는 문화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이고 깨끗한 삶을 통해 우리가 세상에 성경적 거룩한 문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로 살아가면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러한 문화를 세상에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익숙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로 사는 삶을 적용하면 됩니다. 그래서 유기성목사님은 영성일기를 쓰면서 거룩한 삶을 관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외모지상주의도 우리가 분별해야 할 세대의 문화입니다. 2017년 다니엘 기도회에 나온 이효진 소장은 화상을 입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를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결혼해서 37년을 살았지만 배우자의 외모는 결혼생활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오히려 외모가 출중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외모지상주의는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분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언급하면 물질 즉 돈에 대한 이 세대의 문화를 분별해야 합니다. 미국의 부자병 소년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법원의 보호관찰 명령을 어기고 잠적했던 미국의 `부자병` 소년 이선 카우치가, 17일 만에 멕시코에서 붙잡혔다. (2015년 12월 기사입니다)
멕시코 수사당국은 휴양지인 푸에르토 바야르타에서 카우치와 어머니 토냐를 체포했다며, 미국 정부에 인도하겠다고 밝혔다. 카우치는 지난 2013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시민 4명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지만 삶이 너무 풍요로워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일명 `부자병`을 호소해 징역형 대신 보호관찰 10년 형을 선고 받았다. 카우치는 운전을 할 수 없고 술도 복용해선 안되지만 최근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동영상이 공개되자 그의 어머니와 함께 잠적했다. 카우치는 보호관찰 명령 위반 혐의로 최대 징역 10년형을 받을 수 있다. 또 음주운전 살인 사건 후에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경찰과 검찰의 주장에 따라 만 19세가 되는 내년 4월쯤 청소년 법정에서 성인법정으로 재판이 이관되면 원래 검찰의 구형량보다 많은 최대 징역 40년의 새로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태런트 카운티 수사 당국은 29일 기자회견에서 "카우치 모자의 도주가 우발적인 행동이 아닌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확한 도주 시점과 법원 명령 위반 여부를 집중적으로 캐겠다고 밝혔다. 아들의 도주를 사실상 기획하고 지원한 모친 토냐를 체포 방해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세우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돈 많이 벌고 자신의 향략을 위해 돈 잘 쓰는 것을 큰 자랑으로 알고 있는 우리나라에 젊은이들에게도 경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물질은 하나님이 잠시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어야 할 때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우리는 물질을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물질에 대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적 물질관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여 물질을 올바르게 사용하게 하실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17절이 이 세상에 대해서 잘 이야기해 주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우리 새소망교회 지체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이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새로운 마음을 가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비성경적인 가치관이 만들어낸 이 세대의 문화를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성경적 가치관의 문화를 이루어내는 자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대의 악한 문화를 잘 분별하기만 하면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이 세상을 정화하는 세상의 빛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참된 예배자는 삶이 예배가 되는 영적예배자가 되는 것임을 되새겨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새소망지체들은 예수님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 삶이 예배가 되는 영적 예배자들이 다 되어, 인생을 승리하는 이 시대에 참된 예배자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안에 있으며, 내 안에 예수가 계시는, 성경적 가치관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비성경적 가치관이 만들어낸 이 세대의 악한 문화를 잘 분별하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성경적 가치관의 문화를 이루어 세상에 빛을 밝히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사용해 주심으로 인생을 승리하는 참된 예배자들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