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 년대 나의 근거지였던 부천에 와서 옛날 분들을 다시 만났다. 모인 것은 내가 오래만에 왔다고 해서 모인 것이지만 단연코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원혜영 의원의 소식이었다. 검찰에 의하여 고무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되어 의원직 상실의 위기에 처해서 물어 볼 수도 없고 속으로만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당일 국회에서 새로운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원인 무효가 되어 다행히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자상하고 섬세한 원의원의 성격대로 자리를 파하는 시간에서야 그 소식을 전해주어 갑자기 축하 분위기가 되어버려 자연스럽게 2차로 호프집으로 가게되었다. 술을 못 먹는 나로서는 힘든 자리이지만 즐거운 자리에 빠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2 차를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부천의 고급 한정식집인 ‘예빈’의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아직도 최 선희 사장이 계속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보다 몇 살 젊은 최 사장은 안 것은 1985년도 였다. 부천에서 의사로 있던 고교 동창생을 만나 식사를 하러 왔다가 만난 최선희 씨는 30대의 품위 있고 고상한 화술을 구사 하는 여사장이었다. 최 사장은 요식업소를 운영하면서도 흔치 않게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해 나갈 줄 알아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 사장이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한정식 집으로 모임을 유치하고는 했었다. 당시 민주화 투쟁을 하는 운동권 목사인 나와 요식업을 경영하는 최 선희 씨와는 생각이 같을 수는 없었지만 서로 상대방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좋은 대화 상대였다. 최 사장과 내가 가까이 지낸다는 것을 알고 내 주변에서는 빈민운동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고급음식점을 하는 여사장과 친할 수 있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항상 나를 관찰하는 경찰정보과 형사들로서도 이상하게 여겼었다. 내가 이러한 최 사장과의 오랜 인연을 이야기하니까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하던 부천 희망 재단의 김범룡이사가 '전화 한 번 해 볼까요?" 하더니 최 사장에게 전화를 해서 나를 바꾸어 주었다. 최 사장은 너무 반가워 하면서 당장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 왔다. 물론 거의 20년 만에 뜻하지 않게 만났으니 나로서도 반갑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놀란 것은 그 다음부터였다. 시민사회 분야에는 나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던 최 사장이 물론 시대가 변해서 민주화 세력들이 사회의 중심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과거의 내 주위에 있었던 분들과 모두 친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날 나눈 최 사장의 이야기로는 나로 인해서 창문이 열려졌고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영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시류와 주변의 분위기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최 사장의 의식이 변한 것도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아마도 레스토랑에 나 혼자 가거나 내가 돈을 낼 일은 전혀 없었던 예빈에 드나들며 최 사장과 나누었던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짧은 대화들이 최 사장의 의식 속에 조금의 변화라도 줄 수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이 날의 대화 속에서 한정식집 마담과 운동권 목사와의 만남이 전혀 쓸모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었다. 일단 사람은 만나야 되고 만나서 대화를 해보아야 하는 일이다.
첫댓글 맞아요... 별 의미없을 줄 알았던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는 일이 그렇게 시나브로 된다는 것은 기적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