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셔츠
서 옥 선
어머니의 기일이다. 줄무늬 셔츠를 걸치고 길을 나선다. 아버지 제삿날에 어머니 제사를 붙인 후부터 어머니 기일에는 산소를 찾는다. 산소 들머리에서 하얀 백합이 짙은 향기로 우리를 마중한다. 남편은 준비해 온 낫으로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이 무심하게 잡풀 몇 가닥을 쓸어낸다. 집에서 우려 온 따뜻한 꽃차를 제단에 올린다.
어머니는 지리산 아래 첩첩산중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사는 곳이 깊은 산중이었지만 먹을 것은 푼푼했다. 외할아버지는 곱게 키운 딸을 당신의 눈에 든 신랑감, 진주 시내 근교에 사는 훈남에게 시집을 보냈다. 어릴 적 조실부모한 아버지는 더부살이하고 있던 큰댁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어머니는 농사일로 하루하루 끼니 잇기에도 터덕거리는 큰댁에서 일손을 보태야 했다. 농사일은커녕 집안일까지 서툰 어머니는 어둑새벽부터 쉴 틈 없는 들일과 부엌일이 힘에 부치어 온몸이 늘 후줄근했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새 생명을 품는다. 달라진 몸은 흰쌀밥이 당긴다. 무뚝뚝한 아버지를 졸라 간신히 친정 나들이를 허락받고, 주린 배를 채우려는 기대에 설렌다. 꿈에도 그리던 향긋한 이밥이 눈앞에 있지만 심한 구역질로 입에 넣을 수가 없다. 가슴이 먹먹하다. 아버지께서 다른 식구들 몰래 사다 준 사탕은 먹을 틈이 없다. 서랍에 꼭꼭 감추어 두고 들일을 나갔다가 오니 사탕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먹기 싫어서 안 먹은 것으로 알고, 혼자서 흔적도 없이 가무려 버린다. 어머니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은 세월 중에 맏딸을 얻는다. 부모님은 행랑을 꾸려 진주 시내에 사는 고모댁 뒷방으로 살림을 난다.
도시의 삶이라고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고모댁 뒷방살이도 녹록지 않고 식구는 늘어나는데 자유분방한 아버지는 틈만 나면 노름판을 드나들었다. 아버지는 밤마다 화투짝을 섞고 모아서 능수능란하게 두들기거나 돌리는 연습을 하였다. 나는 집 구석구석에 돌아다니는 화투장으로 동생과 화투놀이를 하며 놀았다. 어느 날 밤, 사그락사그락 지폐 헤아리는 소리에 잠깨어 보니, 많은 돈이 포대 자루 옆에 흩어져 있고 포대 안에도 가득한 듯 보였다. 잠결인데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기실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동네에 노름 돈을 꾸러 다닌 적이 더 많았다. 어머니는 장사로 번 깨알 같은 푼돈을 뜯어 계를 붓고, 목돈을 찾으면 집으로 가져오지 않고 노름빚 갚을 곳으로 향하곤 했다.
허기진 생에도 봄날이 온다. 한 번도 당신을 위해 살아보지 못한 어머니는 나비 애벌레가 허물을 벗듯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삶의 주인이 된다. 꿈도 못 꾸었던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생긴다. 어머니는 늦깎이 노인 대학생으로 노년의 배움도 즐긴다. 예술회관 무대에서 어깻짓을 해가며 힘차게 북채를 휘두르는 손끝에는 신바람이 난다.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 동네 분들과의 지르박 스텝에서 터져 나오는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는다. ‘저런 에너지가 어디에 숨어있었을까.’ 지난했던 세월에 대한 보상을 누리는 듯한 어머니의 날갯짓이 어엿하다. 그러나 어머니의 봄날은 오래 가지 못하고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어머니에게 말기 암 진단이 내려진다. 가슴 속에 꽁꽁 묻어둔 간난의 찌꺼기들이 암 덩어리가 된 것일까. 어머니의 몸은 거듭되는 항암치료와 수술로 나날이 삭정이 같이 말라간다. 아버지의 정성과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암 씨앗들은 불꽃에서 퍼지는 불씨같이 여기저기 번진다. 그 와중에 어머니의 치열한 삶의 이유였던 아버지를 잃으신다. 어머니는 생을 내려놓고 더 이상의 치료나 투약을 거부하신다. 급기야 붉은 핏덩어리를 아래위로 쏟아내신다. 눈물도 메마르고, 텅 빈 천정도 바라볼 수 없게 되어서야 고요히 눈을 감으신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고통을 거두어 가신 하늘에 감사의 눈물을 쏟아낸다. 어머니는 어떤 세상을 살다가 이렇게 비통하게 가셨을까.
내 거울 속의 어머니는 손재주가 좋으셨다. 죽어가는 꽃이나 다육이도 어머니의 손길을 거치면 생기가 돋아나고, 마당과 화분에는 목단과 백합꽃, 매화, 장미, 작약, 국화 등이 앞을 다투며 피어났다. 바느질 손이 좋아 한복과 아이들 옷도 손수 지으셨다. 자수에 능하여 딸의 중학교 가정 교과 수예 숙제를 도맡아 처리해 주곤 하셨다.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에도 한과나 팥죽, 도넛 같은 간식을 만들어 이웃에 나누는 것도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의식이 이울어가던 어느 날 세 딸을 불러들이셨다. 옷가지 몇몇을 내어놓으신다. 밍크 윗도리는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늘 돌본 셋째에게, 모직 코트는 몸집이 약간 있는 둘째에게, 맏이인 내게는 당신이 가장 아낀다는 줄무늬 셔츠를 내민다. 내가 한사코 싫다고 손사래를 치니 옆에서 셋째가 슬쩍 눈치를 준다. 나는 슬며시 옷을 끌어당겨 단추를 여미고 팔을 벌려 한 바퀴 돌고는 거울 앞에서 뒤태까지 살핀다.
“엄마, 이 셔츠 정말 예쁘다. 내 몸에 꼭 맞아. 내가 입을 게, 고마워요.” 어머니의 야윈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번진다.
나는 어머니의 줄무늬 셔츠와 일상을 함께한다. 내 안의 거울 속에는 영락없는 어머니가 계신다. 뜨락에는 어머니 정원을 채웠던 백합, 수국, 석류, 민들레, 채송화들로 엄마의 숨결이 오롯이 담겨있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오,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어머니의 해사한 미소에 백합 꽃 향 에두르니 어깨춤이 절로 난다. 어머니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셔츠의 줄에 줄줄이 매달려 어우렁더우렁하며 손길과 마음눈을 보탠다. 정원의 푸나무들도 바람결에 고개를 흔들며 응원을 보낸다.
“어머니, 꽃대 곧추선 하얀 백합꽃 같은 당신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