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자들을 묵묵히 돕고 있는 개신교인들을 만났다. 사진은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원회 상임대표로 활동 중인 김용목 목사. ⓒ뉴스앤조이 김은실
"천막생활도 이제 익숙해졌는데, 떠나네요."
최저 기온이 영하 8도 아래로 뚝 떨어진 지난 12월 27일, 광주고등법원에서 3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천막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대책위)가 정당한 판결을 요구하며 30일 동안 릴레이 단식 농성한 천막이다. 대책위는 판결이 나온 뒤 천막을 치우느라 분주했다.
▲ 김용목 목사 아내 김민선 사모는 피해자들과 매일 연락하며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상담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월 27일 광주고법에서 성명서를 읽고 있는 김 사모 모습. ⓒ뉴스앤조이 김은실 |
김유선 집사(목민교회)도 천막 정리를 도왔다. "제 아이도 장애인이에요." 김 집사는 자식 같은 아이들이 무참히 짓밟혔다는 소식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7년 전 대책위가 꾸려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다. 정순임 집사(새누리교회) 자녀도 장애인이다. "장애인 인권을 위해 싸우는 건 장애인 자녀를 가진 부모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정 집사는 대책위뿐 아니라 장애인 교육권 연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교장과 행정실장 등 교직원들이 장애인 학생을 성폭행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은 지난해 영화 '도가니'가 개봉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는 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폭력 처벌을 강화하는 일명 '도가니법' 탄생을 도왔고 인화학교 사건 가해자 재조사에 힘을 싣는 등 의미 있는 결실을 낳았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해자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두드러져 정작 피해자를 돕는 개신교인들이 묻히는 아쉬움도 남겼다.
도가니 속 피해자 손잡아 준 개신교인들
대책위 절반가량이 김유선 집사와 정순임 집사 같은 개신교인이다. 대책위 활동 중심에는 실로암선교회가 있고, 실로암선교회 대표 김용목 목사는 대책위 7년째 대책위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관련 기사 : 영화 '도가니'가 말하지 않은 또 다른 진실)
김용목 목사는 보수적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이다. 인권 투쟁이나 가해자 처단, 엄벌 같은 구호나 주장에 익숙하지 않다. 김 목사 개인 성향과도 맞지 않는다. "성격적으로 부대끼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요.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라고 부르셨다고 생각합니다. 감당해야 할 사역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30일 전 천막 농성을 시작하며 삭발한 머리카락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
▲ 성탄절에는 민들레교회와 넘치는교회가 천막 농성장을 찾아 함께 예배했다. 예배에서 모인 헌금은 대책위에 전달했다. (사진 제공 김희용) |
김 목사 아내 김민선 사모도 대책위에서 일한다. 광주 장애인상담소 상담실장으로 일하고 있으니 인화학교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당연했다. 김 사모는 피해 아동들과 매일 문자나 메신저 등으로 대화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 상담한다. 이번 천막 농성 때는 12일간 단식을 하다 쓰러졌다.
▲ 성탄 연합 예배에는 두 교회 교인뿐 아니라 시민 단체와 불교 단체까지 참석했다. 천막은 60여 명의 사람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사진 제공 김희용) |
피해자들을 맡아 목회하는 목사도 있다. 인화학교는 기독교 재단이 설립한 학교라 피해자 대부분이 교회를 다닌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가해자와 같은 교회를 다닌다는 점. 인화학교 출신 이용보 목사는 당시 피해자들이 다니던 교회 전도사로부터 이 사정을 들었다. 밤잠을 설치며 기도하고 고민한 끝에 캐나다 유학을 접고 광주로 돌아와 수어로하나되는교회를 개척하고 피해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지난 아픔들이 치유되기 원합니다." 이 목사는 피해자들 눈높이에 맞추어 설교하고 가르친다.
영화 개봉 이후 대책위를 돕는 개신교인은 더 늘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광주 인권위원회 위원장 장헌권 목사는 지난해부터 대책위에 뛰어들었다. 경찰이 사건을 재수사하고 관련 법안을 정비하는 등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정 목사는 대책위를 통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건강하지 않은 시각이 개선되길 바란다.
떡국으로 성금으로 대책위 돕는 교회들
지난 성탄절에는 민들레교회(김용성 목사)와 넘치는교회(김희용 목사)가 천막 농성장을 찾아 함께 예배하고 떡국을 대접했다. 예배에는 두 교회 교인뿐 아니라 시민 단체, 불교 단체까지 참여했다. 김용성 목사와 김희용 목사는 "가난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고 싶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두 교회 교인들은 뜻깊은 성탄을 보냈다며 즐거워했다.
▲ 민들레교회와 넘치는교회는 천막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떡국을 한 그릇씩 대접했다. (사진 제공 김희용) |
성금을 보낸 교회와 개신교 단체도 있다. 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이박행 목사)에서 요양 중인 말기 암 환자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전달했다. 남대전성결교회는 송대웅 목사 제안으로 목회자와 교인들이 성금 1000만 원을 모아 피해자들을 위한 카페를 설립하는 데 보탰다.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신앙인의 삶이란 고난을 겪는 자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많은 개신교인이 인화학교 사건에 뛰어든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죠. 실천적 삶을 사는 신앙인들의 도움이 지난 7년 동안 대책위가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김용목 목사는 천막을 정리하고 인터뷰를 곁들인 점심을 후딱 해결한 뒤 다시 투쟁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