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산 성지
천주교 박해 때 여러 처형장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유로 많은 순교자들의 시신이 매장되었던 유서 깊은 성지
현재 노고산 일대에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서강대학교 자리함.
순교자들의 땅 위에 학교 부지를 마련한 서강대학교는 2009년 6월 15일 기해박해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한 후
노고산에 4년 동안 매장되었던 앵베르 주교와 모방 · 샤스탕 신부를 기리기 위해 정문에서 가까운 가브리엘관 앞 소나무밭에
세 성인의 순교 현양비를 세우고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축복식을 거행.
현양비 맞은편에 확인 도장 있음
용산 성직자 묘지
한국 교회에서 언제 이곳에 성직자 묘지를 마련하기로 결정하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고
1887년 이 일대를 신학교 부지로 매입한 직후로 추정.
주교 4위, 신부 64위, 신학생 2위, 치명자 1위 모두 71위 가 안장된 곳.
대중교통으로는 은근 걸어야 하는 곳 ^^
용산성당 사무실에 도장이 있고 주차장 중앙쪽에 바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음
돌아오는 마을버스 정류장을 찾으면 또 묘지에 계신 성직자의 자손을 만남.
마을버스 안에서 과일을 쏟으신 어르신을 위해 여러분이 움직여 주시다가
한 분이 하차 정류장을 놓치자 기사님이 또 양해 해주시는 훈훈한 경험 ^^
형조터
조선 시대 중앙 관서인 육조의 하나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된 이후,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으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다.
한참 찾아 헤메었는데 아예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가야 했다는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터
광화문 광장이 조선 시대 의금부, 포도청, 서소문 형장 등
한국 교회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장소들과 가까운 곳.
경기 감영 터
경기 지역의 신앙 공동체는 숨어서 신앙을 이어가던 중
1801년 신유박해로 잡혀온 경기 지역의 신자들이
한성 서대문 밖 반송방에 위치한 경기 감영으로 이송되어 혹독한 형벌과 문초를 받았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에게 신앙을 배우고 따르다 체포된 조용삼은 옥중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대세를 받았고
마지ㅣ막 형벌 때에 박해자들을 향해 신앙 고백을 하고 순고하였다.
"하늘에는 두 명의 주인이 없고,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천주를 위해 한 번 죽는 것 뿐이며, 다른 말씀은 드릴 것이 없습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우포도청터
조선 중종 무렵 설치되어 350여 년 동안 존속한 서울의 초도, 순라 기관으로
중부 서린방 혜정교 남쪽 인근(현 광화문 우체국 자리)에 위치하였으며, 서울 서부, 북부와 경기 우도을 담당하였다.
우포도청에서 순교한 성인으로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열세 살의 어린 나이로 순교의 영광을 얻은 유대철 베드로 성인,
병오박해 때 한이형 라우렌시오, 우술임 수산나, 김임이 데레사, 이간난 아가타, 정철염 가타리나이다.
길가를 잘 살펴야함^^